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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0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4. 인터미션 V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3.2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들은 식탁에서 같이 식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한참을 수다 떨며 기쁘게 대화하였다. 창문 저 너머로는 황량하고 섬뜩한 우주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외딴 우주가 을씨년스러운 광경을 자아냈으나 모순적이게도 일행의 만찬 분위기는 평온히 눈이 내리는 창밖을 배경으로 따뜻한 모닥불을 쬐는, 어느 오두막집의 저녁 식사 자리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평범했다.

   식사 후 정리 차원에서 윤혁은 일행에게 앞으로의 여행 일정을 재공지했다.

   “앞으로는 14일간 하늘도시에서 지내고 하루 간 우주선에서 휴식하는 방식으로 사이클이 돌아갈 예정이야. 하늘도시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안에서는 약 40일 조금 넘게 걸리겠지. 빠듯할 걸 각해야 해.”

   이미 윤혁과 두 친구가 진에게 일방적으로 통지받았던 내용이었다.

   “몸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은 세 명, 나머지 하나는 우주선에 남아 인형을 조종할 거야. 아, 직접 몸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생활을 염려할 건 없어. 각자에게 휴대용 1인실 숙소가 주어질 테니까. 어느 장소에건 펼칠 수 있고 불가시 모드와 안전성도 보장되니 불편한 점은 없을거야. 현장에서 선교 활동하는 부분만 제외하면 딱히 공동 생활도 없을 예정이니 프라이버시 문제도 적겠지.”

   이어서 그는 구체적인 전략들도 다시 정리하여 못 박았다.

   “인형 조종자는 매 텀마다 나, 리온, 루디아 중 하나가 돌아가면서 맡을게. 그리고 시간을 절약하는 차원에서 다른 인형들도 같이 운용할 거야. 인형 조종자는 진이 다른 하늘도시들에 흩뿌려둔 인형들도 함께 조종할 거야. 동료들과 함께 움직이는 메인 인형이 잠들면 그때 다른 서브 인형들을 조종을 맡으면 돼.” 

   “오케이.”

   인형 조종 방식과 서브 인형의 이용하는 방법 및 순서는 어렵지 않게 합의되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있었으니. 

   “왜 내게는 조종 역할을 안 맡기는 것이오?”

   스테판이 순수히 궁금증을 드러냈다.

   “아, 스테판 씨는 하늘도시 주민이라 표식이 몸에 심겨 있잖아요. 후원자의 말에 따르면 정신 속에 표식의 잔재라도 남아있으면 인형 같은 매개물의 조종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네요. 그 이유도 있고 아무래도 네트워크를 쓰는 리스크가 있다보니 최대한 외부 세력에 노출될 틈을 줄일 필요성도 느꼈고요.”

   윤혁이 명쾌하게 의문을 풀어주자 스테판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래 계획의 브리핑을 마친 후, 일행은 잠시 묵념의 시간을 나누었다. 추모 대상은 지구의 동료들. 진이 전해준 소식에 따르면 윤혁 팀이 항법 오류 탓에 하나의 하늘도시에서 길을 헤매던 사이, 나머지 팀들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그들은 추가적인 이동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진은 그들을 하늘도시에서 빼내 주는 성가신 일을 하지 않았다. 다른 선교팀들은 자신이 당도한 콜로니가 휴면기간에 돌입할 때까지 계속 머물렀을 테니, 이미 사실상 압축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셈이었다.

   이제는 다시 만날 일은 요원하리라. 틀림없이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만큼 살아가며 충실히 주님의 일을 마친 뒤에 삶을 훌륭히 마무리했을 것이다.

   “좋은 친구들이었어.”

   “그래, 특히 너와는 기나긴 시간 추억을 공유한 분들이었지.”

   쓸쓸함을 머금는 리온에게 윤혁이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젊은 시절 상당 부분을 함께 했던 믿음의 동역자들을 먼저 천국으로 떠나보내는 심정은 어떠할까? 비록 객사가 아닌 자연사를 맞이했을 가능성은 크니 위로는 되지만 어쨌건 더는 같은 시대를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얼마나 아쉬울까? 동역자들과의 연대를 졸업하고 홀로 세상에 남는 기분이란 어떠할까? 리온의 마음이 얼마나 울적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기운 내. 그들이 남긴 결실을 꼭 우리 눈으로 확인하자.”

   “고맙다.”

   의외로 리온은 담담하게 남은 무게를 받아들였다.

   “네가 할 일은 아직 많아. 내가 봐도 너는 앞으로 훌륭한 목회자가 될 그릇이야. 그러니 꾸준히 소명의 방향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해봐. 네가 친구들의 몫까지 더 귀한 활약을 감당할 것을 생각하니 기대되는걸.”

   윤혁의 진심 어린 격려와 칭찬에 리온은 말없이 웃었다.

 

   한편, 윤혁은 최근 여정에서 본 다섯 구역에 나타난 일들의 의미에 대해서 찬찬히 영적으로 고민해보았다. 주제별로 분류해놓기는 했지만, 분명 그것들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재앙의 테마가 배열된 순서는 패턴이 질서정연했다. 그 패턴은 윤혁이 잘 아는 어느 가르침을 연상케 하는 방향으로 수렴했다.

   먼저 제1구역에서 곳곳에서 생물학적 테러로 인한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그리고 그다음 구역에서는 인간의 손으로 지어진 인공지능이 월권을 일으켜 주권을 빼앗았다. 또한, 인간의 욕망으로 빚어진 인공생명체들이 활보했고 그로 인한 비극이 쇄도했다. 이후 곳곳에서 지진, 폭풍, 기후변화 등의 자연재해가 벌어졌다. 종국에는 사람 간에 정이 식고 증오심이 창궐하여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틀림없이 이건.”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예언. 감람산의 설교(마 24장), 그리고 계시록의 일곱 봉인 재앙(계 6장), 성경에 예언된 재앙들이 적나라하게 실현된 시대를 미니어처로 축소한 듯한 버전이 얼마 전 일행의 눈앞을 스쳐 갔었다. 사실 원본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지 않았다.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긴 하니까.

   “역시 너도 같은 생각을 했나 보네.”

   상고에 잠긴 윤혁의 옆으로 리온이 다가왔다.

   “그래, 제1구역부터 제5구역까지 고의로 설치된 재난들, 모종의 의미의 머금은 작위적인 순서였지. 가리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아마도…….”

   “실제로 지구 위에서 벌어졌던 역사, 구체적으로 말하면 혼돈의 시대 때에 특징적으로 등장한 핵심 재난들을 재현해놓은 것이겠지.”

   철인왕으로 추정되는 그 점령자가 대체 어떤 의도를 품고 이런 메시지를 기획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가올 인류 보편적 재난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 미리부터 전 인류적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려는 연습 게임일까? 아니면 재난마저도 장기적인 유익으로 바꾸어내는 능력을 함양하려는 속셈일까?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지구를 휩쓸었던 재난의 시대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지우기 힘든 진한 상처와 열등감을 남겼다는 사실을. 인간의 힘이 부족했던 탓에 자연재해나 인재(人災)를 통제하지 못해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야 말았던 그 뼈저린 기억. 그 패배감은 인류연합 입장에서는 크나큰 트라우마이자 수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기억이 결코 수치가 아니었다. 도리어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할 교훈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전하는 속히 돌아오라는 메시지. 그분은 어제도 오늘도 동일하게 외치고 계시리라. 사람들에게 그 음성을 들을 귀가 있다면 참 좋으련만, 완악함이란 그리 손쉽게 바로잡아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외침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으리라. 그분 손으로 모든 결착을 맺는 그 순간까지. 일행은 쓰라린 마음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무수한 사고 활동을 시행하며, 고뇌하고 고찰하고 사색하는 시간. 그는 그간 이 같은 방식으로 억겁의 시간 동안 환상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그곳을 마음대로 개변하였고 무수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자연법칙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더하였으며, 복잡한 집단 사회의 작동 원리를 깨우쳐갔으며, 인격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까지 획득하였다. 더 나아가 만물과 형이상학적 개념의 본질적 성찰에 다가가기도 했다.

   보통 이렇게 환상계에서 수억 년 이상의 가상 시간을 향유하다 보면 자기 정체성의 망각이 부작용으로 따른다. 그것이 과해지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지식과 정보를 사유하는 기계적 존재로 전락한 듯한 느낌까지 오게 된다. 닳고 닳은 내면은 허망함으로 차오른다. 과도하리만큼 많은 사고 활동을 수행한 나머지 삼라만상의 지식마저 무료해지며 내면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다.

   ‘지루하군.’

   그때마다 그의 내면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 탐닉하게 되곤 했다. 더 많은 섭리를 이해하려고 들고 더 많은 신비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내 그것도 허무해지며 결국은 스스로의 존재의의에 대해서마저 회의를 느끼게 된다.

   한편 억겁의 시간 동안 수행된 탐구 행위는 뇌리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비약적인 양의 정보를 축적한다. 망각을 막는 무서운 저주 탓에 이 버거운 짐을 마음대로 잊어버리지도 못한다. 축적된 정보들은 생동감 있게 꿈틀거리며 시끄러운 교향곡을 자아내었다. 곧장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정체성이 혼탁하게 희석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보의 홍수는 압축의 임계점을 넘어 폭발할 지경에 이르면 문제의 그 두려움이 시작된다. 망자로부터 유래한 무언가가 자신에게 덧씌워지는 현상. 영이나 혼은 아니다. 그보다는 밍밍한 느낌, 그래, ‘정보사념체’라는 표현이 적합하겠지. 사람의 영혼의 본체를 미숙하게나마 누군가가 데이터로 변환하여 분신처럼 복제해낸 듯한 정보사념체, 그것이 자신 속에 들어와 겹치며 융합하는 것이 느껴졌다.

   융합과 동시에 감정의 파편, 재능의 파편, 불완전한 무의식이 함께 섞여 들어오면 낯선 감각과 공포감이 영혼을 사로잡는다. 희석되었던 정체성은 점점 더 희석된다. 금방이라도 자아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상실감. 여기에 더해 나타난 역설적인 취기, 곧 오만의 감정, 그것은 제어 불능의 수준까지 증폭되어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휩쓸려갈 것만 같았다.

   ‘그런가. 또다시 수난이로군.’

   이런 일련의 흐름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방어기제로서의 ‘악몽’이 제지의 방아쇠를 당긴다. 곧장 탐구와 사색의 시간은 중단되고 자기 자신을 향한 고문이 개시된다.

   내용은 늘 똑같았다. 피비린내가 풍기는 밀실의 압박감. 살이 베여나가는 통증, 전신을 태우는 고압 전류, 둔탁한 타격음, 살이 태워지는 소리, 소중한 것을 상실하는 공포, 비웃음이 주는 모멸감. 인간의 인지 한계를 초월한 묘기를 부리다 보면, 환상계의 탐색이 과도히 깊어지다 보면 항상 그 끝은 이 꿈속으로 추락하는 결말이었다.

   한 번 개미지옥의 덫에 걸려들면 순차적으로 더 깊은 꿈, 몽중몽(夢中夢)으로 끌려가기를 피할 수 없다. 이 같은 연쇄를 따라 깊은 심도로 끌려갈 때면 한 단계 추락마다 한층 더 기괴한 절망이 그를 맞이한다. 종종 몸의 고통이 과중해진 나머지 흐려진 의식이 각성되어 얕은 꿈으로 떠밀려 나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부유하는 조각배처럼 깊은 심도와 낮은 심도를 오가는 진자 운동을 반복하다 보면 누구라도 미쳐버리기에 십상이었다.

   악몽의 연쇄 속에서 깊은 꿈과 얕은 꿈을 오가며 절규하다 절정에 이르면.

   “크헉.”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별안간 벗어나 가까스로 현실에서 눈을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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