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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0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4. 인터미션 V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3.25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는 지난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최초의 악몽이 현실 속에서 전개되었던 그 순간 이후로 장장 압축 시간을 누빈 수만 년의 세월을 이런 수모를 겪으며 보내왔다. 매일의 잠은 이 같은 고역의 순례길이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허억, 헉!”

   카이젤은 부르르 경련하였다. 현실 속 그의 몸은 치료용 수조 안에 담겨있었다. 전신에는 미세한 섬유형 촉수가 꽂혀 있었다. 체내에는 무수한 피코머신들이 활발히 움직이며 자체 네트워크를 구성하거나 외부 기계장치와의 공명을 이루고 있었다. 피코머신과 촉수들은 심지어 차원 너머의 특수 구조체와도 연결된 상태였다.

   “또다시 살아남았군.”

   이번 수면은 수술 도중 벌어진 것이었다. 치료로서 아닌, 인간의 영역을 근원적으로 뛰어넘기 위한 수술이었다. 물리학의 영역을 초월하여 더 강력한 본질을 손에 넣기 위해, 그리고 인간 정신의 한계점을 뛰어넘어 궁극의 초지능을 획득하기 위해 시행되는 창조의 경지에 이른 개조 작업. 그러나 카이젤 자신에게는 워낙 자주 시행되었기에 그다지 특별한 이벤트는 아니었다.

   그가 이런 수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편히 못 잘 운명이니 수술이라도 받는 편이 더 낫다.’

   초월 성장에는 크게 두 종류의 방법이 있다. 먼저,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이루는 자기 단련, 이를테면 훈련을 통한 정신적 잠재력 추출, 그리고 학습이나 연구를 통한 진리 탐구 같은 방법으로 정석적으로 강해지는 전략이다. 반면, 두 번째 방법은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서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반칙이었다. 곧 신체와 정신을 개량하고 개조함으로써 진화시키는 방식이었다.

   카이젤은 지금껏 전자와 후자 모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광적으로 성실히 수련하였고 또한 두려움 없이 스스로를 개조하였다. 보통 초인 같았으면 둘 중 하나도 견디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선택받은 존재인 위버멘쉬는 달랐다.

   그는 그 어떤 과도한 신체 및 정신 수련에도 지치지 않았고 어떤 위험한 개조에도 부작용을 당하지 않았다. 그는 최고의 자질과 최상의 잠재력을 소유한 동시에, 노력의 양과 밀도에서도 최정상이었으며, 무언가를 과도하게 주입해도 어떤 것이든 온전한 자신의 유익으로 소화해버리는 그릇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뇌에 초지능체와 양자 두뇌를 융합시켜 안정화하는 수술은 그에게조차 적잖은 부담이었고 매번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동반했다. 그래서 그런 류의 수술을 받을 때면 평소의 몇 배 이상의 세월을 시뮬레이션 우주에서 헤매야 했다. 깨어나는 순간의 악몽도 강렬히 배가되었고. 회복 도중에 으레 발생하던 플래시백(Flashback, 트라우마 장면이 회상되는 순간)도 더욱 심화되었다. 회복 후에는 아무 후유증이 없지만, 거기까지 통과하는 과정은 무시 못 할 만큼 험난했다.

   “크윽.”

   무사히 금일 수술을 마친 카이젤은 염동력으로 체내에 연결된 초미세 장치들을 모두 분리해 내었다. 동시에 잠깐 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갔다. 로봇이 옆에서 몸을 부축하였다. 가까스로 기운을 차린 그는 몸을 닦지도 않은 채 터벅터벅 어딘가로 걸어갔다.

   독특한 기하학적 배열로 구성된 거대한 실내는 흡사 신령한 신전 같은 분위기가 깃들어있었다. 공간들과 아공간들이 뒤섞여 기이한 짜임새를 이루었으며 초고도의 문명의 정수들이 신비한 마방진처럼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또 상위 차원과 연결되는 관문들이 벽면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허공에서 세척용 물이 생성되어 그의 몸으로 분사되었다. 수술 중 그의 몸에 묻었던 끈적거리는 액체들을 말끔히 씻겨져 나갔다. 물기는 곧 염동력에 의해 말끔히 증발하였다. 수술을 막 마친 후라 그의 몸은 적신이었지만, 사적 공간이었기에 개의치는 않았다.

   ‘심히 무겁군.’

   왕관과 제복이란 그에게 있어서 늘 무거운 짐이요 족쇄였다.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인류 전체를 지배하는 왕관에 엮인 책임은 그 질량이 상당했다. 한 번 그것을 쓰는 순간 자기 자신이란 개념을 잃게 된다. 이후로는 ‘인류’ 그 자체로 살아야만 하며 인류의 근원적 갈망을 자신의 야망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망을 인류의 존망과 합치시켜야 했다.

   최강의 힘과 최강의 지혜,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강요되는 절대적인 덕목이었다. 오로지 그에게만 강요되는 의무. 제복은 그것을 상기시키는 상징물이요,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무기이자 왕의 정체성을 규정해주는 기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제복과 왕관, 유형(有形)과 무형(無形)의 왕홀이 주는 압박감을 버거워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유로워지기를 갈구했다. 실오라기조차 걸치지 않은 지금의 자유분방한 상태는 그런 그의 내적 갈망을 적나라하게 투영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남 앞에는 결코 그런 몰골을 보일 수 없었다. 내면의 연약함과 수치감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왕으로서 그것은 결코 허락될 수 없었고, 한 개인으로서도 그러했다.

   ‘괜히 또 녀석이 생각나는군.’

   불과 넉 달 전에 만났던 동생이 뇌리에 스쳐 갔다. 유일하게 자신이 연약함을 가리지 않고 표현해도 되는 편안한 상대. 지겨운 악몽마저 그 녀석과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는 동안에는 흔적도 없이 달아나곤 했다. 정작 그런 이유로 함께함을 부탁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낮은 자세로 부탁했다면 착한 동생은 당장 들어주었겠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이런 서러움도 들었다.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매일매일을 살아가는지 동생은 알기나 할까? 자신의 사연 깊은 어두운 고생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천진난만하게 제 일에만 집중하는 녀석이 조금 얄궂고 야속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동생과 조금이라도 더 공통분모를 나누고 싶었다. 그는 아버지와 이복동생을 접촉한 이래로 가족이란 존재와 많은 것을 공유하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각성하게 되었다. 이름도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결국은 물려받은 이름 곧 2세대 초인이었던 그녀가 제작해낸 라스트네임 대신에 아버지의 평범한 성씨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택하기에 이르렀다.

   ‘초인의 정점, 카이젤 א 라흐블뤼크.’

   그리고 인간 강재혁.

   ‘이것이 자유인가. 네가 지녔던 그 자유로움. 부럽군.’

   이름을 통해 동생을 모방하다 보니 동생의 영혼 속에 있던 자유도 옅게나마 맛이 느껴졌다. 실제로 윤혁에게는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질의 자유가 존재했다. 신적인 자유. 영혼의 자유. 방종이 아닌, 율례를 따르는 신실함, 그리고 규율을 괴로움이 아닌 즐거움과 자유의지로서 따르도록 만들어주는 자유.

   동생의 그런 모습에 질투심을 느낀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 카이젤은 윤혁과는 반대로 본질상 늘 묶여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나마 강재혁으로 존재할 때면 잠시나마 개인으로서, 그리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재정의할 기회를 얻는다. 그 순간은 제법 달콤했다. 그러나 카이젤로서 살아가는 삶에는 무거움만 있었다. 위버멘쉬, 초인들의 왕, 인류연합 대표, U-society의 수장, 우주 인류 제국의 지배자와 같은 무거운 짐들. 오로지 의무 위의 의무뿐이었다.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타인의 심리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지배해야만 했다. 분란을 잠재우고 사회를 안정시켜야 했다. 사람들에게 최대의 만족과 평안을 주어 자신에게 충성하고 세계정부를 사랑하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경영자로서는 어떠한가. 그 책무의 무게는 한층 더 막중했다. 무한에 가까운 자원의 공급이 열리면서 경제의 개념이 송두리째 바뀐 이 시대. 대중을 상대로 재물을 벌어들이는 패러다임은 옛 시대의 유물로,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전락했다.

   영악하고 지혜로운 초인들은 인류연합이라는 조직과 카이젤이라는 지배자를 상대로 신뢰를 쌓는 방식, 곧 신개념의 경영에 적응하였다. 모든 지식과 물질의 생산을 주관하는 주역인 왕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좋은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소유와 권력을 늘리는 궁극적인 길이었다.

   모든 인간의 경영 대상이 된 동시에, 카이젤 본인도 경영자로서 평생 힘겨운 싸움을 지속해와야 했다. 그가 상대해야 했던 대상은 다름 아닌 ‘우주’ 자체였다. 그는 인간들이 ‘최소의 자원 투자’로 ‘최대 효율의 유익’을 영속적으로 얻고 확장해나갈 지혜로운 길을 모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바쳤다. 그가 아닌 다른 지도자였으면 그 일을 책임지지 못했을 것이며 자연히 인류는 과도한 자원 소비를 견디지 못한 채 자체적으로 붕괴했을 것이다.

   철학자로서도 그는 의무와 씨름해야 했다. 인간, 그리고 인공지능이나 이종족과 같은 인격적 존재들에게 궁극적인 존재의의를 심어주고 재정의해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이 부분에서 작은 실수라도 벌이면 무수한 인격체들이 일대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될 테니까. 그랬다면 전쟁과 비극의 시대가 이어졌겠지.

   과학자로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나도 모르게 감상적으로 되었군.”

   지금은 자기연민에 취할 때가 아니었다. 의무에 묶여있는 신세를 한탄하던 재혁은 이내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지금은 정점으로서 맡은 의무에 마땅히 최선을 다할 때이다. 너무도 중요한 시기를 앞둔 지금 계략과 계산의 오차는 허락될 수 없었다. 황금빛 눈동자에 새겨진 엷은 빛의 고리가 강렬한 섬광을 내뿜었다.

   그는 낮고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엄중한 명령어를 내뱉었다.

   “아카식 레코드!”

   {위대하신 주인의 부름에 소신 응답합니다.}

   즉각 허공에 특이한 형태의 물체가 형상화되었다. 아니, 물체라고 정의해도 될지도 애매했다. 색채나 형태나 크기 모두 상숫값으로 정해지지 않은 채 변화무쌍한 진동을 보이는 유동체였다. 그 물체는 카이젤이 시뮬레이션 우주 실체화 기술을 활용하여 현실에 소환한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의 핵심부였다.

   엄밀히 말하면 실체화 기술을 이런 식으로 적용하는 것은 카이젤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묘기였다. 아카식 레코드는 S-unvs와는 원리가 다른 별도의 시스템이니까. 시뮬레이션 우주, 홀로그래피 우주, 그리고 벌크 차원의 원리를 약간씩 응용해 짜깁기한 아류작으로 기틀과 이론은 그가 처음 제공했지만, 제작자는 수하들이었다. 특별히 아카식 레코드 프로그램의 설계에는 수양딸인 제6 철인왕, 킴벨리아가 크게 이바지했다. 물론 최종 소유권은 그에게 속했지만.

   “왜 주춤거리지?”

   아카식 레코드는 겁을 먹은 것인지 위축된 상태였다.

   {당신의 본체를 직면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지라 말입니다.}

   카이젤은 하찮은 존재를 바라보듯 살짝 미간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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