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1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5. 크로스솔져 I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4.01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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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뿌듯한 성과는 막상 따로 있었다.
“나는 네 말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틀렸었어.”
지구로 귀환하는 길에 무디가 담담히 신해에게 고백하였다.
“응?”
기대 이상의 급진적인 변화인지라 신해도 어안이 벙벙했다.
“나도 이 친구랑 같은 생각이야. 뭐랄까, 편안한 시절에 백날 들었을 때는 와닿지 않던 그분의 말씀이 생사의 기로에서 마주할 때는 뼈를 찌르는 칼날처럼 다가오더라. 두려웠지만, 동시에 생명수처럼 달콤했어.”
케리도 말씀의 권위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았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허락된다면 너와 같이 되고 싶다. 전능자이신 그분의 일꾼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우선 지난날 그분을 알지도 못한 채 멀리하고 배척했던 인생을 용서받고 싶다. 가능하겠나?”
“물론이지. 하나님은 저 먼 곳에만 계시지 않아. 누구든 조금이라도 그분을 찾으려는 열망만 갖는다면 팔만 살짝 뻗어도 닿을 지척에 기다리고 계셔.”
신해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겸허한 심정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고백의 기도를 드렸다. 기도 자체에 어떤 효험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그들의 순수한 심경 변화를 내뱉은 것에 가까웠다. 진실한 고백이 세 사람의 영혼에서 뻗어 나와 진동하였다. 그 진동들은 곧 하나의 합주곡으로 연합되어 천상에까지 전달되었다. 이내 세상이 알지 못한 평안함이 두 친구의 마음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일을 마친 신해는 뿌듯한 심정으로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십자가 군병 되어서 예수를 따를 때, 무서워하는 맘으로 주 모른 체할까?
뭇 성도 피를 흘리며 큰 싸움하는데, 나 어찌 편히 누워서 상 받기 바랄까?
이 죄악 많은 세상에 수많은 원수, 날 유혹하고 해치나 나 주만 따르리.
나 면류관을 쓰려고 몸 바쳐 싸울 때, 주 내게 용기주시사 이기게 하시네.
승리의 그날 이르러 십자가 군병들, 개가를 불러 영광을 주님께 돌리리.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넌 참 음치로군.”
“미, 미안.”
무디의 장난 어린 핀잔에 머쓱해진 신해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비난조라기보다는 십년지기 친구로서 장난치는 듯한 분위기였다. 무뚝뚝한 동료가 저런 친근감을 보이는 것부터가 좋은 변화였다. 신해는 솔져 시절에는 그 어떤 소속팀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깊은 우애를 두 사람에게서 느꼈다. 고작 한 달밖에 함께하지 않은 팀에서 이런 감정이 싹트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천국으로부터 주어진 초월적인 힘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자발적인 전우애 발생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야, 왜 애를 놀리고 그래, 마.”
케리도 장난스레 신해의 등을 두드렸다.
“시원시원하고 솔직해서 좋기만 하는구먼.”
“크윽, 역시 너밖에 없다, 케리.”
“난 솔직하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무디는 은근히 속으로 부러움을 느꼈다.
‘기쁨에서 우러나오는 찬미란 참으로 용맹하고 아름다운 것이로군.’
셋은 투덕거리며 장난을 치는 사이, 어느새 게이트를 통과한 뒤 워프까지 몇 차례 시행한 우주선은 태양계에 당도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귀화지이자 제2의 고향인 지구. 그곳에 돌아가면 다시 히어로로서 일상에 복귀하게 될 것이다. 전과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제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며 영웅주의 같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사상도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인류를 보호하리라. 그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과제이자 소명이었다.
“성한 아저씨가 보고 싶다.”
케리가 중얼거렸다.
“나도. 기회가 생기면 우리 다 함께 모여서 아저씨네 댁 방문하자.”
벌써부터 들뜬 목소리로 신해가 제안했다. 무디는 촐랑거리는 친구들을 묵묵히 쳐다보면서 웃었다. 그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문득 조금 전 들은 찬송가 가사의 한 마디가 유독 그의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크로스솔져(Cross-Soldier), 십자가 군병이라…….”
징집된 이래로 지금까지는 시스템을 위해, 인류라는 종족을 위해, 인류연합이라는 거대 집단을 위해서 개처럼 봉사해왔다. 히어로가 된 이후로도 사실 허울만 좋았으니 본질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지금, 그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무릎을 자주 꿇게 될수록 다른 존재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횟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여타 존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
오래간만에 청년들과 모임의 기회를 얻은 성한은 다섯 청년과 함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 때는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 한창 푸른 싹들이 나무에서 돋아나고 꽃이 만개하는 중이었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자연 만물은 생기를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아직 본격적인 냉전이 개시되기 전이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히어로들은 계절의 분위기를 가정적인 장소 속에서 한껏 만끽했다.
“아저씨는 나이를 하나도 안 먹으시네요?”
한 청년이 신기하다는 듯 성한의 얼굴을 응시했다. 주름살은커녕 기미 한 점도 없었다. 객관적인 제삼자의 시선에서 본다면 청년들보다 더 어리다고 판단될 정도였다. 지난 세기부터 인류의 보편적 의술 발달과 종족 단위의 유전자 결함 개선이 축적된 결과, 지구 인류 구성원 대부분이 이전 시대보다 노화 속도가 느려졌다고는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성한의 젊음은 비정상적인 궤도였다.
“도대체 신체 나이가 얼마세요?”
성한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저번에 측정했을 때는 한 스물이었지?”
“우와!”
얼굴만 동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신체 나이에 비하면 도리어 얼굴은 노안인 편이었다. 초인들의 신체에 숨겨진 비밀을 알지 못하는 히어로들은 대단히 의아해했다. 그들로서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노화 차단 기술을 따로 사용하시는 것도 아닌데도요?”
첨단 기술에 문외한인 성한은 당황스럽게 되물었다.
“그런 기술은 언제 또 나왔다니?”
“아, 모르셨군요.”
청년들은 아저씨가 일반인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였다.
‘하기야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지.’
사실 피코머신을 통한 회춘과 불로가 완성된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물론 그마저도 소수에게만, 제한적으로 전해졌지만) 비교적 최근이었다. 그 기술의 원제작자는 진작부터 그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 덕분에 수만 년 이상의 시간을 타임필드 속에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작자 이외의 초인이나 일반인에게까지 부작용 없이 적용할 피코머신을 완성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나아가 전 인류가 영구히 쓸 만큼 대량생산을 이루려면 생산 체계의 경제성을 향상해야 했고 동시에 무한한 자원 확보를 위한 정복 사업도 필요했다.
그 과제는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해결되었다. 오늘날은 바야흐로 꿈의 시대에 넉넉히 이르고도 남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히어로나 솔져들 정도만 되면 인류의 노화 정복이 성취되었다는 정보를 암암리에 충분히 접할 수 있었다.
‘쓸데없이 아저씨께 뒷세계의 이야기를 많이 누출할 필요는 없겠지?’
히어로들은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눈짓하였다.
“자, 담화도 좋지만, 간식이라도 좀 먹으면서 해요.”
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일동은 반갑게 일창하였다. 그녀는 인원수대로 특별 서비스 후식을 챙겨다 주었다. 히어로들이 워낙 신진대사량이 큰 근육 덩어리인지라 일반 분량보다 몇 배는 풍성하게 듬뿍 담아주었다. 풍부한 단백질 함량과 함께. 테이블 앞에는 스페너, 프랑케, 크로스비 이렇게 세 젊은 여성과 친첸도르프와 웨슬리라는 이름의 남성이 성한과 앉아있었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온몸이 강철처럼 탄탄한 사람들이었다. 두터우면서도 동시에 날렵했다. 어느 누가 보아도 그들이 숱한 실전으로 단련해온 것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히어로들이 성한네 가정을 방문하기를 기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에는 생기와 사랑이 넘쳤다. 물질적인 풍요나 명예로는 대체하지 못할 평화로움이 충만했다. 환경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사랑과 평화. 나아가 성한과 유진은 이런 가치들의 참 근원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있다는 진리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이 자리의 다섯 명은 히어로 중에서도 그런 그의 증언을 제법 진지하게 경청하던 자들이다.
“그런데 아저씨, 이 집 아들, 그 친구는 지구에 언제 돌아와요?”
붉은 곱슬머리의 남성 웨슬리가 대뜸 질문했다.
“그러게요. 가족사진 봤는데 아저씨를 닮아서 그런지 잘생겼더라고요. 아저씨만큼은 아니지만요. 아무튼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스포츠머리를 한 프랑케도 덧붙였다.
“아저씨네 아들……, 이름이 강윤혁이라고 했던가? 혹시 그 친구도 아저씨처럼 독실한 크리스천인가요?”
“야, 말이라고 하냐? 못 들었냐? 그 아이가 한창 떠들썩거리는 소문의 중심, 하늘도시로 선교팀을 이끌고 쳐들어간 친구잖아. 킹 오브 히어로즈도 그 일 때문에 우리 중 몇을 용병으로 선발해가기까지 했는데, 소문이 너무 느리네.”
친첸도르프의 질문에 스페너가 답변을 가로챘다.
“우와 정말? 용감한 친구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러게 말이다. 우주 식민지는 일반인들에게 위험한 곳이잖아. 특히 하늘도시는 가는 곳마다 무슨 난관이 숨어있을지 알 수 없는 미로인데 말이지.”
웨슬리와 크로스비도 감탄했다.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가 당차고 진국인 녀석이지. 부모 말에도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철저히 따르는 친구지.”
성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답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다.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으셨네요.”
“그러게요.”
“비록 다른 의미로 대단하긴 하지만, 장남과 차남 둘 다…….”
어느 순간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웨슬리는 말문을 멈췄다. 문득 장남 이야기가 나오자 성한의 표정이 아주 조금 어두워졌다.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잠깐 흘렀다. 넷은 웨슬리에게 눈짓으로 핀잔을 주었다.
‘아차, 그 이야기는 금기인데.’
영웅들을 훈육했던 크리슈나도 유독 ‘그’에 대한 언급만큼은 주의하도록 거듭 명한 바 있었다. 크리슈나 본인도 카이젤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성한과의 인연을 생각하여 선을 지킬 줄은 알았던 것이다. 히어로들은 성한의 표정을 면밀히 보았다. 맏아들 이야기는 확실히 불편한 지뢰인 듯했다.
‘복잡한 가정사인가? 혹은 상처 어린 기억?’
히어로들은 다시금 실수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바로 그때 정문의 알림 종 소리가 울리면서 현관문이 열렸다. 때마침 어색한 분위기로부터 히어로들을 구해줄 구원 투수가 나타났다. 어두운 분위기를 환기시킨 주인공은 나직이 헛기침하며 인기척을 내뱉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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