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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13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5. 크로스솔져 I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4.06 | 회차평점 0 0

 

 

 

 

 

*

 

 

 

 

 

   솔직하게 심정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어색한 침묵은 금방 깨어졌다. 친분이 제법 쌓였는지 성한과 재현은 말을 편히 놓았다. 곁에서 듣고 있던 히어로들도 어느 새 차분히 두 사람의 대화 속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이런, 그간 힘들 일이 많았겠구나.”

   사고를 당하기 이전 지난 날 재현이 겪었던 인생사를 개략적으로 듣고 난 성한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재현을 어른답게 자상하게 위로했다. 마음 여린 청년에게는 모범과 의지가 되어줄 상냥한 위로자와 멘토가 절실했다.

   “저 참 모자란 사람이죠?”

   재현이 한탄하듯 자조했다.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렴.”

   옆에서 둘의 대화 장면을 묵묵히 지켜본 히어로들은 성한의 탁월한 친화력과 타인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과연 어른에게는 애송이들이 흉내내지 못할 깊은 연륜과 이루 설명하기 어려운 재주가 있었다.

   히어로들도 가만히 구경만 할 수는 없었는지 재현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갔다. 당장 친구가 되기에는 약간 어색함이 남았으나 그래도 상처받은 이의 마음을 추스르는 일은 나름의 보람이 있는 법. 각자 형태는 달라도 지난 삶에서의 어려움이나 역경이 조금씩 있어서인지 공감의 장을 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소심해보이던 재현도 빠르게 거리감을 내려놓고 히어로들과 말문을 텄다. 낯선 이들에 대한 거리감을 극복한 재현은 사고 전의 사연들을 구체적으로 풀어주었다.

   그가 성한 및 히어로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화목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난 재현, 그리고 그의 몇 살 터울 동생인 수현, 둘은 서로를 제 목숨처럼 아끼는, 오늘날 보기 드물게 우애 깊은 형제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뛰어난 동생의 그늘에 가려진 형은 자연스레 주변에서 비교하는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소위 ‘동생 발목이나 잡는 하자 덩어리’ 취급을 당했다. 실상 그도 객관적으로는 훌륭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단지 상대적 비교의 차원에서 욕을 먹은 것만은 아니었다. 수현은 형을 좋아했다. 동시에 눈치도 빠르고 영리했다. 그랬기에 수현은 일부러 자기 재능을 발휘하기를 거부했다. 형이 열등감이나 상처에 매몰될까 염려한 것이었다. 만일 수현이 제 재능의 극히 일부만이라도 발휘했더라면 재현 주변의 세계는 전부 동생을 중심으로 공전했으리라. 수현은 이를 회피하고자 제 능력을 숨긴 채 살았다.

   그러나 재현이라고 어찌 동생이 자기 능력을 억눌렀음을 몰랐겠는가. 오히려 그런 은근한 배려는 알게 모르게 원치 않는 상심과 열등감을 일으켰다.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임에도. 더욱이 수현의 외적인 능력만을 바라봤던 이기적인 주변 사람들은 형을 동생 앞길을 막는 방해물로 여겼고 이는 열등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동생을 아낀 탓에 차마 동생에게 미움을 투사하지는 못했다. 내성적인 성격 상 상처는 자기 자신을 향하였다. 게다가 마음마저 유약했으니 상처는 더 커져갔다.

   형제가 자라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수현이 부와 권위를 쥐기를 거부하고 형에게 맡기자 재현을 흘겨보는 시선이 늘어났다. 그중에는 그를 대놓고 눈엣가시로 여기는 자들도 있었다. 보통 시대였으면 재현도 유능한 축이었겠으나 당시는 이미 초인들의 시대가 개시된 이후였고 능력 만능주의가 시대의 지배적 사상이었던 때였다. 주변에서는 형보다는 초인적인 동생 쪽을 리더로써 선호했다.

   유일하게 21세기 시절 세대에 속한 조부는 동생인 수현쪽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소수의 초인이 세상을 뒤엎는 역사를 두 번이나 지켜보며 자라온 세대였던 만큼 초인적인 잠재력을 내포한 수현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런 이유로 그는 재현으로 하여금 자기 뒤를 잇게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조부는 결코 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랑이 아닌 은근한 폭압으로 재현을 대했고 그 부담감에 재현은 서서히 정신적으로 메말라갔다.

   “부적격적자인 저에게 할아버지는 무리한 요구를 하셨고 동생과 비교하며 저의 비굴함을 부채질하셨죠. 반면 그분보다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저를 깎아내리면서 짓밟으려 했어요. 차라리 깔끔히 동생 뒤로 물러났으면 편했으련만.”

   이도 저도 하지 못하게 만든 현실과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의지할 구석은 동생이었는데 그런 그에게마저도 원치 않는 원망이 튈 때가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자책감에 스스로의 마음을 망가뜨렸다.

   부모님은 그나마 온화하고 가정적인 편인 분들이었기에 형제 사이를 이간질하는 사람들의 행렬에 참여치 않으셨지만, 그분들은 유약한 재현과 비슷한 성정이었기에 진지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미룬 채 사실상 두 형제가 보이지 않게 곪아가는 것을 손 놓고 지켜보며 방치하셨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문제에서도 불화의 고리가 끊이지 않았다. 재현이 연모하는 연인이 생길 때마다 그녀는 항상 형을 배신하고 동생 쪽으로 다가갔다. 정작 수현 본인은 그런 배반을 극도로 혐오해 가차 없이 여인을 내쳤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재현으로서는 쓰라림이 거듭 더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동생은 미워하지는 못하면서 내면에 배신감으로 인한 상흔만 늘어갔다.

   이토록 정신력이 유연치 못했던 재현에게 업친데 덮친 격으로 불행까지 거듭해서 닥쳤다. 갈등의 점화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격화되었다. 그를 물리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해하거나 패망케 하려는 이들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심지어 과거 연인이었던 자가 그를 해치려 하는 일도 생겼다. 아마 연모하던 동생 쪽에 다가가는 데 형이 징검다리는 되지 못할 지언정 방해가 되었다고 여겼을 지도 모른다. 혹은 억하감정으로 보복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건 사랑하는 형제 때문에 연인이라 믿었던 자에게 배반당하는 것도 충분히 찢어지는 심정이건만,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위협이라는 현실까지 감내해야 했다.

   “동생을 권력의 전면부에 내세우려던 사람들 가운데도 여럿이 수시로 저를 없애려는 시도를 벌였어요. 덕분에 숱한 협박을 당했죠. 생사의 경계선 위를 거니는 나날이었죠. 죽음과 저 사이에는 늘 한 발자국 뿐이었어요.”

   히어로들의 입에서 무거운 공감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런…….”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나름 우주에서 편치 않게 험난한 인생을 겪어왔다지만 그래도 휴먼 솔져로 당당히 선발될 정도로 대단한 독종 중의 독종이었던 만큼, 그들은 정신력이 강했다. 고생 앞에서 굴하기보다는 의지력으로 악착같이 이겨내는 타입이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정신력이 연약한 이가 겪는 내적 아픔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체휼하지 못하는 아픔 앞에서 그들은 방만하거나 교만해지지 않았다. 도리어 숙연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나약한 도련님을 마음속으로 힐난하며 타박했겠지만 성한과 신앙적으로 교제하며 성장한 지금, 히어로들은 모든 모양의 약자들의 처지를 안타까이 여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

   “어려운 이야기를 용기 내어 꺼내줘서 고맙구나.”

   묵묵히 들어주던 성한이 조심스럽게 말해주었다.

   “저야말로요.”

   재현은 옛 추억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고뇌에 절어드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는 꾹 참고 자신의 이야기의 끝자락을 마무리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대목까지 마쳐야 비로소 속이 후련해질 것만 같았다.

   “결국은 쌓일 것이 쌓여 극단으로 치닫고 말았죠.”

   쌓이는 고뇌를 견디다 못한 과거의 연약한 재현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삶을 이어나갈 의지도 들지 않을 만큼 심적으로 쇠약해졌다. 그 결과는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죽음을 방불하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재현 자신은 그날 자기 자신이 죽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죽기 직전에 기이한 방법으로 구조되었다. 그리고 십수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의식을 되찾았다.

   “사인(死因)은 교통사고인 거니?”

   언뜻 뉴스에서 그리 들었던 기억이 난 성한이 질문했다.

   “그게……, 제 기억에 혼선이 생겨서인지 명확하지가 않아요.”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재현이 고개를 저었다.

   “교통사고……, 그래요, 교통사고인 것은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 스스로 삶의 의지를 내려놓고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타살을 유도한 것인지, 기억의 편린들만으로는 정확하게 판단이 가지 않아요.”

   몹시 모호하기 그지없는, 미궁 같은 답변이었다. 듣는 이들로서는 답답해 속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 기억이 쓰라린 건 당사자이리라. 재현은 그날의 선명한 기억을 다시금 되새기며 현장에서의 상황을 묘사하였다. 단서가 될 기억은 빠짐없이 증언하였다. 히어로들은 각각 탐정이 되어 차분히 재현의 괴롬 섞인 증언을 종합하여 추리해보았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난다는 뜻인가?”

   “하지만 사고로 치명상을 입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뇌에 손상이 생겼다면 말이야.”

   “그래, 구태여 억지로 생각해낼 필요는 없어.”

   히어로들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뇨, 기억의 상실은 아녜요. 뇌 과학적인 손상도 아니고요.”

   재현은 자신의 사고가 일어났던 날을 아주 선명하고 정확하게 기억하였다. 성운의 최첨단 기술로 검증받은 바에 의하면 그 기억은 정신 병리적 현상으로 생성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 기술은 과거를 검색하는 분석법인 사이코메트리 테크놀로지에 정신파-확률파 공명을 접목한 것으로 이 둘을 통해 이중으로 검증한 바에 의하면 재현의 기억은 실제로 일어났었던 현실 현상이었다.

   게다가 의학적으로도 재현의 뇌는 소생 직전까지 완전한 뇌사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였다. 정확히는 의사 노릇을 한 성운이 본래의 분자 배열 그대로 손실 없이 복원해낸 것이지만.

   “기억의 손실이 아니에요. 각기 다른 시나리오의 기억이 공존하고 있어요.”

   서로 뒤섞이지 않은 두 종류 이상의 모순된 기억. 그중에는 스스로의 의지로 교통사고를 피하지 않은 시나리오도 있었고, 타의로 재난에 휘말린 시나리오도 있었다. 그것들 모두 개연성은 충분했다. 그날의 그의 의지는 분명 꺾여 있었으니 충동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극단적 선택의 유혹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또한 그를 해하려는 주변인도 도처에 있었으니 희생당했을 가능성도 농후했다.

   “그 모든 기억이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현실로 검증되었다는 말이지?”

   “네, ‘엄연히 존재했던 현실’로 확인되었어요.”

   재현은 자신이 기억하는 각기 다른 알리바이 여러 개를 모두 읊어줬다. 고도의 추리력을 훈련받은 히어로들은 그 알리바이들이 물리적으로는 전혀 모순되지 않음을 눈치챘다. 어떤 시나리오를 대입해봐도 현장 당시 관측 기기에 기록된 정황이나 뉴스 데이터에는 모순되지 않았다.

   한참을 고심한 후 친첸도르프가 추리의 결론으

   “가능성은 극도로 작다고 보긴 하는데요, 아무래도 이쪽 가능성 밖에는 딱히 경우의 수가 안 남네요. 이건 확률 병합이라는 테크놀로지의 결과물인 듯합니다.”

   모두의 눈이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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