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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1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5. 크로스솔져 I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4.08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성한이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확률 병합? 그게 대체 뭐니?”

   “아, 아저씨는 과학 전공이 아니라 조금 낯설겠네요.”

   “알기 쉽게 설명해주지 않겠니?”

   즉각 친첸도르프의 설명이 이어졌다.

   “양자 역학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난제가 있어요.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입자의 이동 경로 불확정성과 관련된 문제죠.”

   본래 양자 역학은 모든 현상을 확률로 설명하는 학문. 양자 역학은 한 입자가 찰나 후의 시점에 어디로 이동할지에 대해서도 결정론이 아닌 ‘확률’로 설명하지만, 역으로 한 입자의 현 도착점과 첫 출발점이 알려졌을 때 그 중간 과정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도달했는지에 관해서도 ‘확률’로 설명한다.

   한 입자의 미래가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닌 여러 가능성의 중첩이듯, 한 입자가 겪어온 과거의 궤적도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닌 여러 가능성이 겹친 불확실성 덩어리인 셈. 적어도 양자의 영역에서는 그런 기이한 논리가 충분히 적용될 수 있었다.

   “마치 제 기억들과도 비슷하네요.”  

   재현이 중얼거렸다. 그때의 자신도 마치 입자처럼 되었던 것일까?

   “하지만 미시 세계에서만 가능한 그런 일이 재현 씨에게도 적용될까?”

   다른 히어로들이 반문을 제기했다.

   “사실 그게 바로 현대 과학의 영역이죠. ‘과거 궤적 미정(未定) 원리’를 단지 입자 같은 미시적 영역에 머무르게 하는 것을 넘어 강제로 거시 규모에까지 현실화하는 기술이 바로 ‘확률 병합’이라고 불리는 테크놀로지입니다. 사실 저도 자세히는 모르고 그런 게 실존한다는 것을 듣기만 한 입장이죠.”

   친첸도르프의 난해한 설명에 일행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대강 감은 잡힙니다. 현재 히어로즈 배후에 있다는 유성운 동부 섹터장, 그자는 최상위 초인 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특수 재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마 그가 유독 양자 역학과 관련된 기술력에 능통한 것도 그 덕분일 겁니다.”

   초인들에 관한 루머에 박식한 웨슬리가 조심스레 설명을 거들었다. 두 사람의 증언을 모아보니 얼추 재현이 겪은 패러독스에 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확실히 재현을 살려내는 과정에서 사용된 모종의 기술력이 양자역학적인 확률 이변 내지는 유사 평행우주적 혼선을 일으킨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과학적 이해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쪽은 상한 심령의 문제였다. 극단적 선택이건 타살 위협이건, 과거의 재현이 낭떠러지 같은 처절한 위기에 놓여있었음은 매한가지였다. 기적적으로 몸은 되살아나긴 했으나 마음의 부서짐은 여전히 봉합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저 아이에게는 어찌 다가가야 한다?’

   어쩌면 지금의 재현은 계약에 묶인 채 억지로 꾸역꾸역 살아있는 처지인지도 모른다. 매정한 유성운은 그런 재현을 어떻게든 더 쥐어짜 활용해보려고 일명 정신 치료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보냈다. 그런 이기적인 의도에 장단을 맞춰주자니 영 내키지는 않았으나 상처받은 자를 향한 불쌍함을 쉽사리 버리기는 힘들었다.

   “제가 어리석은 탓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어요.”

   힘없이 늘어진 재현의 표정은 참으로 처량해 보였다.

   “그래도 고맙구나. 살아줘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성한은 아무런 비난도 질책도 없이 위로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미 담담히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에게 지난날의 무능이나 실책을 지적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보다는 작은 상냥함이 절실할 것이다.

   “괴로움이 정말 심했을 텐데, 잘 이겨냈어.”

   히어로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을 건네며 위로했다. 재현에게는 조금 어색한 경험이었다. 평생을 알아 온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질타를 당했거늘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를 조건 없이 지지하다니.

   과거의 그가 듣던 말은 대개 ‘나약한 녀석’ 혹은 ‘의지력도 없는 녀석’ 같은 식의 꾸짖음이거나 ‘쓸모없는 장애물’ 같은 힐난이었건만. 사망 신고되는 바람에 더는 의무감에도 열등감에도 비교 의식에도 눌릴 필요가 없게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존감은 여전히 낮아진 상태 그대로 있었다. 그랬기에 선의란 그에게 도리어 어리둥절한 것이었다.

   “원래 세상에는 다양한 유형의 성격이 존재하는 법이야.”

   “남을 함부로 규정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어.”

   “그러니 스스로를 자책으로 무너뜨리지 마.”

   위로하는 청년들. 그래도 그간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긴 했구나. 그 결실을 보면서 성한은 기분이 뿌듯했다.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식구가 신경 쓰였다. 전직 솔져들은 부드럽고 온유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었다. 반대로 재현은 더 굳건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 일은 재현 자신의 의지에 달린 일이기에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었다. 단지 곁에서 기다려 주는 일만 가능할 뿐.

   여하튼 다행스럽게도 재현은 속에 응어리 맺힌 모든 아픔을 숨기지 않고 해방했다. 그런 과정도 알게 모르게 치유에 도움을 주겠지. 긍정적인 징조임은 분명했다. 다만, 열등감이나 압박감은 내려놓을 수 있어도 사람에게 배신당한 고통은 쉽사리 아물기 어려웠다. 재현도 그 부분이 가장 큰 장벽임을 호소했다.

   “아팠겠구나.”

   사실 성한이야말로 누구보다도 그런 상처에 익숙했다. 한때 열렬히 몸과 영혼을 바쳐 정열적으로 갈구했던 여인에게 비정하게 버림받은 뒤 고통스러운 감옥 생활을 감내했던 과거를 지닌 당사자이니까.

   “내게도 부끄러운 옛 기억이 있지.”

   용기를 내어 서로의 어두운 과거를 털어놓자 양쪽 모두 조금은 편안해졌다. 성한의 과거를 잘 몰랐던 히어로들은 곁에서 그 이야기를 경청하며 진지한 마음가짐이 되었다. 한 인간의 실패, 그리고 회복으로의 여정은 그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정직한 자백은 아저씨를 향한 존경심을 희석하기는커녕, 더욱 깊은 인간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에 히어로들은 저마다 자신이 극복한 어려움의 여정에 대해서도 솔직히 고백함으로써 재현의 무게감을 덜어주었다.

   “강성한 씨는 어떻게 지난날의 배신감과 아픔을 극복하셨죠?”

   재현으로서는 몹시 궁금해했다. 미약하기 그지없는 자신도 선배의 삶에서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 히어로들도 그 대답에 가치가 있노라고 판단했기에 귀를 쫑긋 세우며 배우는 마음가짐이 되었다.

   “조건 없는 사랑을 깨달은 것이 나를 회복시켜 준 원동력이 되었지.”

   지체없이 확신에 찬 굳은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그런 게 존재하기나 할까요?”

   아직은 잘 믿기지도, 감이 오지도 않았다. 소위 서로 사랑한다는 사람끼리도 배신감을 느끼는 일이 비일비재하거늘, 과연 참된 사랑이란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아직 인간적인 범주의 사랑밖에 모르는 재현의 세계관에서는 성한이 말한 사랑이 현실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인걸.”

   탐욕에 물들어 나락으로 떨어졌던 성한의 삶을 건져 가치 있는 자리로 올려 준 것은 분명히 위대한 사랑의 권능이었다. 대단하고 거창한 모습으로 발현되지는 않았으나 그 사랑은 작은 손길과 작은 친절을 통해 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였고 끝내는 오늘의 회복된 그를 만들어냈다.

   아내와의 만남, 아들이라는 선물, 이웃, 그리고 믿음의 형제자매들, 그들이 가르쳐준 자비와 인애는 비록 단순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드러났으나 틀림없이 신적인 섭리와 사랑에 기인한 권능이었다. 그 능력에 힘입어 치유된 이후의 성한은 매일의 평범한 일상을 가장 위대한 기적의 결실이요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왔다.

   “너희에게도 그 기쁨을 알려줬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성한과 재현, 그리고 히어로들은 깊은 속에 맺힌 심정을 밝히 토로하면서 한참을 대화의 장을 이어 나갔다. 그 덕에 재현은 해묵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털어내었고 죄책감에 웅크린 자기 자신의 내면을 곧게 펼칠 힘을 얻었다. 누르던 괴로움이 해소되며 해방감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대화를 통해서 마음이 부드러워진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성한은 여느 때처럼 귀한 가르침 곧 말씀 속의 진리를 전달해주었다. 그 말씀이 각기 다른 이유로 상한 심령을 소유한 아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

 

 

 

 

   올해도 냉전은 소리소문없이 재개되었다.

   지구에 머무는 여러 초인은 성운의 히어로즈와 일라이저의 신수, 두 팀 중 어느 쪽이 경쟁에서 승리할지를 두고 저들끼리 내기를 벌였다. 이기는 쪽이 지는 쪽에게서 많은 경제권과 과학 기술력을 적법하게 빼앗아 온다는 조건으로. 처음 선전포고를 한 쪽이 일라이저였기에 첫 번째 수(手) 역시 그가 두었다. 그 여파로 전혀 깨닫지 못한 사이에 영웅들이 공격과 시험의 표적이 되었다.

   다섯으로 구성된 어느 영웅팀이 순찰 중 갑자기 낯선 공간으로 끌려갔다.

   “이게 무슨!”

   “여기는 어디지?”

   현실 세계와 똑같은 모양이되 기이하게 성질이 다른 곳이었다. 그곳은 시뮬레이션 우주를 현실의 지구 모양으로 가공해서 현실 위에 겹쳐놓은 실체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영웅들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그곳이 가짜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원인은 다섯 모두 전직 휴먼 솔져라 식민지 주민 출신이라는 데 있었다.

   식민지 주민이라면 누구나 탑재한 표식들, 그 세트 중 하나인 ‘환상의 표식’. 그것은 시뮬레이션 우주에 자유롭게 진입하도록 도와주는 매개체인 동시에 현실 세계와 S-unvs의 구분 감각을 방해하는 기능도 탑재되어 있었다. 물론 시민권을 얻은 이후 솔져의 표식은 비활성 상태로 전환되지만, 그럼에도 환상의 표식 자체가 뇌리에 남긴 영향이 아예 지워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교묘하게 현실처럼 꾸며진 시뮬레이션 우주에 속수무책으로 속기 쉬웠다.

   -위대한 영웅 나으리들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허공으로부터 뭔가가 내려왔다. 윤곽은 인간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크기는 훨씬 더 거대했다. 피부는 녹색이었고 비늘로 잔뜩 뒤덮여 있었다. 히어로들은 역겨움을 느끼고 표정을 찡그렸다. 직감적으로 그들의 상대의 적의를 감지했다.

   -이 몸은 비록 신수왕께 이름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름 Deadly god princes의 구성원입니다. 편하게 119번이라고 불러주시죠.

   Deadly god princes. 휴먼솔져들에게도 제법 악명을 떨친 유명한 신수 집단으로 일라이저가 특별히 애용하는 영웅급 신수로 구성된 조직. 원래는 아홉 명뿐이었지만, 최근 대폭 인원을 추가하였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기존의 아홉에게는 이름을 허락했으나 추가 인원들은 번호로만 식별하는 모양이다.

   “무슨 속셈이지?”

   “싸움이라도 걸 생각인가?”

   영웅 둘이 나노 슈트를 장착했다. 아울러 특수 무장과 이능력을 발동할 채비도 하였다. 그들의 등 뒤에 인벤토리형 차원 틈새가 열리더니 외장형 무기들이 소환되었다. 나머지 셋도 슈트를 입고 언제든 대응하도록 태세를 갖췄다.

   -이런, 그대들은 제 상대가 되지 못한답니다. 당신들을 폄훼할 마음이야 없지만 그게 바로 현실입니다. 더구나 지금 이 몸은 본체조차 아니죠. 내 본체를 소환했다면 영웅이 무더기로 몰려와도 썰렸을 것입니다.

   분하지만 119번의 말은 허세는 아니었다. 휴먼 솔져 때처럼 무한에 가까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모를까, 지구의 히어로는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무력 사용에 제약받는다. 유명한 신수를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저열한 몸 싸움이 아닙니다. 그대들을 시험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대들이 솔져의 지위를 버리고 새로 획득한 히어로라는 정체성, 그 명성에 걸맞은 자격이 그대들에게 있을지 확인하려고 합니다.

   “뭔 헛소리냐?”

   -어허, 아직도 깨닫지 못했군요.

   그 119번이란 자가 갑자기 이능력을 부려 공간의 형태를 비틀더니 서로 다른 도심 지역으로 연결되는 포탈을 열 개 정도 형성해내었다. 지금껏 상대해온 몬스터와 달리 몹시 지능적이라는 느낌이 선명히 전달되었다. 119번의 뜻밖의 위세에 영웅들은 바짝 긴장하였다.

   -지금부터 바로 예비 테스트에 들어가겠습니다.

   “뭐?”

   -트롤리 게임은 아실 테죠? 당신들은 여러 시험을 맞게 될 겁니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버릴지를 두고 딜레마와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나는 도심 지역 중 몇몇을 내가 정한 리듬과 규칙대로 파괴할 것입니다.

   사고의 틀을 마비시킬 발칙한 제안을 괴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밀었다.

   -당신들의 여력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살려야 할 것입니다. 판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난 당신들이 무너질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할 것입니다.

   히어로들은 이를 갈았다. 상대의 수법은 전형적이지만 아주 악랄한 전술이었다. 알면서도 당하는 치가 떨리는 시험. 히어로 중 몇 명은 의심했다. 저자가 과연 민간인들을 정말로 죽일까. 사실 저 도심 지역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의심과는 별개로 119번의 광기는 실로 압도적으로 거대했다. 더욱이 히어로들은 환상의 표식의 잔재의 영향으로 이성이 왜곡된 상태라 이 공간 안에서는 차분한 현실분별이 어려운, 몹시 불리한 처지였다.

   ‘만약에 정말로 사람들이 죽는다면…….’

   히어로들은 염려했다. 반면 119번은 의기양양했다. 놈은 상대가 얼마나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는지 잘 알았다. 설령 히어로들이 환상의 표식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 해도 속이고 협박할 카드는 얼마든지 남아있었다. 이번 시험은 어차피 연습 게임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라 여유로웠다.

   거짓과 진실을 교묘하게 꺼내 뒤섞은 뒤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뒤섞는 일은 악신들린 신수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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