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45회 하늘위의 도시들 Ch 53. 하이퍼스페이스의 기원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6.19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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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 그렇다는 말은…….”
“그래, 이번 하늘도시도 역시나 내부에 축소형 다중우주 구조물이 펼쳐져 있어. 비록 초능력은 완전히 회수해버렸을지언정 구조까지 바꾸진 않은 듯해. 오히려 구조물의 정교함과 규모, 그리고 안정성은 더 개선됐어.”
윤혁은 전에 형이 “내게는 별도의 우주를 창조하고픈 야망이 있다.”라고 선언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도 비록 진정한 의미의 창조는 하지 못하나 나름대로 아공간과 하늘도시를 활용하여 끝끝내 이 수준에까지 달했다. 오만함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 놀라운 지성에는 다시금 감탄치 않을 수 없었다.
“포탈?”
루디아도 오로라의 외양이 경이로운지 신기해하며 응시했다.
“이 몸이 획득한 세계관 정보 파편에 의존해서 분석하자면, 이곳은 실제 우주와도 거의 구분이 어려울 만큼 과학적인 물리 구조를 갖추고 있소. 어찌나 인공 우주의 구조가 매끄럽고 자체적인 개연성도 높은지 학자들조차 초자연적인 개입을 전혀 변수로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요.”
스테판의 해설에 따르면, 이 하늘도시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우주를 ‘하이퍼스페이스’라는 무한 공간 속에 무수히 많은 ‘아일랜드’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양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하이퍼스페이스는 이 하늘도시 밖에 존재하는 실제 우주로 비유하자면 텅 빈 검은 공간과 같았다. 하지만 하이퍼스페이스의 물리적 성질은 원래의 우주와는 상이했다. 일단 기본 물리법칙 자체도 다를뿐더러 시공간 좌표 개념이 일관성 없이 뒤죽박죽이었다. 차원축의 개수도 명확하지 않았고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 앞과 뒤라는 방향 개념도 명료치 않았다.
“혹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공간인걸까요?”
윤혁은 하이퍼스페이스라는 공간이 대체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추리해보았다. 그는 벌크와 멤브레인의 관계, 오버랩 월드, 그리고 시블링 홀로그래피 차원을 떠올렸다. 어쩌면 아공간의 변개 형태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발명품일지도 모르겠다.
“비단 그 이론 하나만 적용되지 않는 건 아닐거요.”
스테판으로서는 제공해줄 정보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윤혁은 스테판에게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대략 이곳의 우주관을 유추해냈다. 그 후 나머지 두 친구에게 자신이 추측하는 바를 설명해주었다. 리온은 그나마 얼추 이해했으나 과학적 상식이 부족한 루디아는 용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부터 난항을 겪었다.
“하이퍼스페이스 안에 떠다니는 아일랜드, 이것들은 이름에서 의미하는 그대로 섬과 같은 구조물인 듯 해. 이질적인 하이퍼스페이스와는 달리 아일랜드의 물리적인 성질은 지구와 같아.”
아일랜드에도 땅, 물, 대기가 존재했다. 형태는 일반적인 행성처럼 구형이었으며 통상 알려진 일반적인 물리법칙을 따랐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빛을 제공할 해와 달이 없다는 점. 대신에 하이퍼스페이스와 아일랜드의 경계에 놓인 일종의 가교, 곧 오로라 포탈(Aurora Portal)들이 빛과 열을 제공해주었다.
“터널인 동시에 태양의 역할인 셈이지.”
아일랜드 바깥으로 나가는 관문인 오로라 포탈, 자료 조사에 의하면 그것들은 이곳 주민들이 문명을 일궈내기 훨씬 전부터 상공에 존재했다고 한다. 관문으로써의 역할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이전부터 빛과 열을 적정 수준으로 분출해 밤낮과 사계절을 조성해주어 생물체들의 생존을 가능케 해주었다나. 이 세계 입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임이 분명했다.
이후 이 지역에 고도의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오로라 포탈의 관문으로서의 속성을 밝혀냈고 더 나아가 조작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 혁신은 수십 년간 근심거리였던 이상 기후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주었다. 아울러 에너지 생산 혁명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진정 획기적인 소득은 따로 있었다. 오로라 포탈을 강제로 수축 또는 팽창시킴으로써 하이퍼스페이스로 진출할 길을 연 것.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우주 개척 시대, 정확히는 하이퍼스페이스 개척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하이퍼스페이스 전체를 통틀어 인류의 서식지는 ‘테라 아일랜드’가 유일무이했다. 테라 아일랜드는 전반적으로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지녔다. 비록 대부분 개량종이긴 했지만 자연 상태 지구에서 발견되는 생물들이 이곳에서도 똑같이 발견되었다. 사실상 동일한 바이오스피어나 마찬가지였다.
일행은 현지 네트워크에서 추출한 생물 도감 데이터베이스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과연 테라 아일랜드에는 인공생명체로 보이는 종은 아예 없었다. 인류연합 무리가 만든 이종족을 우려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모두 지구의 자연 종(種)이야.”
윤혁은 수차례 확인을 해본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이상한걸. 지금까지는 그토록 다양한 인공생명체들을 만나왔는데 말이지.”
리온은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의심이 되었는지 재차 점검을 부탁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마주한 이종족은 전부 지적인 능력을 갖춘 종이었소.”
스테판 말대로 지금껏 여러 하늘도시들에서 보아온 각종 이종족들은 기계와 다를 것 없는 인공지능적인 존재들이었다.
“오히려 유기체적인 기계라는 표현이 옳겠소.”
“차이가 있죠. 이종족은 자체 생식능력도 보유하고 있었잖아요.”
“그렇소. 하지만 그 또한 인간이 인위적으로 심어넣은 능력일 것이오.”
엄밀히 말해 그 이종족들은 자연적인 원리로 재생산을 하지는 않았다. 아니 재생산 이전에 애초에 유전 기전부터 기계적이고 인위적이며 부자연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자발적으로 사랑하여 번식할 수 있는, 그리고 DNA 기반의 조화로운 센트럴 도그마를 갖춘 자연계의 생물체들과는 달리. 신께서 만들어낸 생명체들이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유한 반면, 오늘날의 초인들이 만든 생명체들은 오로지 과도한 복잡성만을 지닌 실체들이었다.
“스테판 씨, 정확한 요점을 짚어주셨네요.”
윤혁이 대신 대답했다.
“인류연합 입장에서는 완전 통제가 가능한 인공지능 형태의 이종족만 부릴 수 있겠지. 지능이 없는 이종족을 만들어 마치 고대 지구에서 동물이 인간과 어울려 살 듯 자연계와 공존하게 한다? 불가능해. 너무나도 위험하거든.”
윤혁은 몸서리를 쳤다. 실험으로 만들어진 인공생명체는 결코 자연 상태의 생물권과 융화할 수 없다. 그것들은 너무 강하고 무작위적으로 성장하며 영악한데다가 창조주의 아름다운 목적이 깃들지도 않았기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게 불가능하다. 보통 그런 존재를 칭하는 용어는 따로 있으니.
‘생태계 교란종.’
실제로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그간 인류연합은 그 어떤 하늘도시에서건 인간 주민이 거주할 생태 환경을 조성할 때는 오로지 지구의 자연 생명체만 자원으로서 활용했다. 인공생명체가 생태계에 삽입된 적은 없었다. 오로지 아주 지능이 뛰어나 사실상 인간의 모방체나 다름없는 이종족들만 인간 사회와의 교류가 허락됐다. 그것도 극히 제한적으로만.
선교사들은 사정을 모르겠지만, 실제로 지성체로서의 이종족이 아닌 나머지 인공생명체는 따로 지어진 우주 규모의 공장에 구금되어 폐쇄된 환경에서 키워지는 것이 인류연합의 원칙이었다. 명색만 인공생명체지 실상은 기계 취급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공지능이든 이종족이든, 지능과 힘과 초능력이 뛰어난 유닛을 제작하는 일은 가능해도 온전한 조화와 균형을 갖춘 사랑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은 애초에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무리겠지.”
“그건 창조주이신 주님께 속한 영역이니까.”
대답하는 루디아 자신도 경탄이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일행은 지금껏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연 생태계가 얼마나 위대한 경지의 작품인지 새삼 체감했다. 초능력과 괴력을 행사하는 괴랄한 이종족보다 오히려 작은 들꽃 한 송이, 여린 새 한 마리가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구나 싶었다.
‘그런 주제에 인류는 자연을 마치 제 소유인 것마냥 망가뜨려왔구나.’
인류는 지구 안에 갇혀 있던 시절에도 자원을 물쓰듯 낭비해서 위기에 봉착했었다. 우주 시대가 개막된 이후에는 테라포밍 기술 덕택에 생태계 자원을 무제한으로 복제해낼 기술력은 얻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깨달음은 얻지 못했다. 도리어 이번에는 생명체 대신 천체들을 갈아마시며 은하들을 소모했고 끝내는 상위 차원까지도 자기 물건인양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인류의 욕심과 야망은 대체 끝이 어디일까?’
지구를 망가뜨린 부작용도 그토록 컸거늘, 우주라는 더 큰 자연계를 훼손한 대가는 어떠할까? 장차 부메랑처럼 돌아올 후유증이 얼마나 거대할지 가늠이나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
테라 아일랜드는 지면 전체가 첨단 문명의 도시로 뒤덮여있었다. 현지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성과라고 믿었으나 실상 이들 역사의 배후에는 몰래 문명을 진화시켜온 조정 세력이 있었다. 어쨌건 그 사실을 모르는 입장에서 위대한 발명과 발견을 통해 지금의 성과를 이룩한 것은 충분히 자부할만 했으나 문제는 그 대가로 테라 아일랜드 내의 에너지원과 자원 대부분을 소모해버리고 만 점이었다.
그렇게 고갈로 인해 문명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시기적절하게 오로라 포탈을 제어하는 기술력이 획득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그 당시 상황은 흡사 지구의 21세기 후반과 유사했다. 그때 지구 인류는 자원 고갈에 이르기 직전 가까스로 게이트와 워프 기술을 완성해 우주 개척 시대를 열었다. 곧 태양계의 행성들이 자원 탱크가 되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새로 획득한 태양계 자원에 힘입은 인류는 이론으로만 정립해놓은 첨단 기술들을 본격적으로 실용화하였고 이는 더 넓은 우주로 나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다만 지구의 경우 1세대 초인들의 등장이 이런 도약을 가능케 해준 결정적 촉매제였으나, 테라 아일랜드의 경우 그런 위대한 지성의 원동력이 부재했다. 하이퍼스페이스 개척 시대 개막 직전의 테라 아일랜드 지식 수준은 미흡했다. 빈약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로라 포탈을 제어할 정도로 뛰어나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오로라 포탈 기술의 등장은 여러모로 미스테리였다. 혹자는 외계인이 몰래 기술을 전수해준 것은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물론 대다수는 그 의견을 음모론이라 취급하고 비웃었다.
아무튼 하이퍼스페이스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서부터 테라 아일랜드 문명은 드넓은 권역으로 뻗어나갈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는 하이퍼스페이스라는 공간의 속성을 분석하고 거기에 적응할 우주선을 개발해내는데 애를 먹었다.
아울러 하이퍼스페이스 내부를 좌표화하고 그곳을 가로지를 장거리 이동 기술을 획득하는데도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력이 수직 상승했고 현대적 우주론도 체계적으로 확립되었다. 테라 아일랜드는 장애물들을 차례로 극복낸 끝에 마침내 하이퍼스페이스 대항해의 시대를 열고야 말았다.
하이퍼스페이스는 최초 진입 장벽만 높을 뿐 인류에게 호의적인 공간이었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이 사실은 자명해졌다. 지구 인류가 광활한 우주를 정복하느라 피땀을 흘렸던 것과는 달리 하이퍼스페이스는 장거리 여행에 최적화된 구조를 지녔다.
일례로 그것은 여행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모되기는커녕 더욱 많은 에너지를 재생산해내도록 우주선들을 도와주는 기이한 물리적 특징도 있었다. 물론 진짜 우주를 본 적이 없었던 테라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들이 겪은 우주가 원래 자연의 것보다 우호적인 편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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