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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46회 하늘위의 도시들 Ch 53. 하이퍼스페이스의 기원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6.22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여기까지가 테라 아일랜드의 하이퍼스페이스 개발 역사야.”

   윤혁은 수집해놓은 데이터를 친구들과 공유하였다.

   “시작이 어려울뿐이지 그 뒤로는 상당히 순탄했네.”

   “그야 그럴수밖에. 애초에 진짜가 아닌 인공적 우주였으니까. 하이퍼스페이스가 대체 무슨 기술로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인간이 활용하기 편리한 특성을 지닌 건 아마 인류연합의 창조물이기 때문이겠지.”

   리온의 의문점에 윤혁이 논리적으로 대답해주었다.

   “아마 인류연합은 조만간 비슷한 계열의 공간 구조물을 더욱 다양하게 창조해 마음껏 활용하려는 속셈인 모양이오.”

   “공간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생성해내다니…….”

   인간들은 과연 어느 영역까지 침탈하려는 속셈인가? 창조주에게만 속했던 영역을 하나하나 집어삼키며 은근슬쩍 넘보는 인류의 행태가 스테판과 루디아에게는 우려스럽게 다가왔다.

   “좀 더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어. 이곳 인간들이 하이퍼스페이스 곳곳을 누비며 수만 개 이상의 다른 아일랜드들을 발견했는데 말이지……, 그곳에서 외계 생태계와 외계 종족을 발견했다는 데이터 보고가 있어.”

   윤혁은 인형 몸체를 통해서 테라 아일랜드의 네트워크에서 몰래 추출해온 데이터베이스를 펼쳐 동료들에게도 보여주었다. 커다란 하이퍼스페이스 항법 지도 위에 여러 아일랜드들이 표기되어 있었다. 각 아일랜드를 확대하여 관찰해보니 해당 아일랜드에 서식하는 생명체 군집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종족?”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라.”

   “어떤 점에서?”

   리온의 질문에 윤혁은 잠시 머뭇거린 뒤 입을 열었다.

   “첫째, 그 외계 생명체들에 조사해놓은 탐험가들의 해부학 도감을 보니 기가 막히더라고. 몸체 조성을 보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료가 총동원되어있더라. 탄소는 기본이고, 규소 기반 생명체에 기계 기반까지……. 심지어는 통상 물리학으로 설명 불가능한 물질들까지도 나오더라. 그야말로 공상과학이지.”

   셋은 경악한 나머지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아니, 하다못해 바이러스조차 탄소생명체가 아니었던가? 바나나조차도 최소한 DNA 기반의 유전 체계를 소유했다는 점에서는 인간과 공통 분모를 지녔거늘. 무기물을 넘어 통상 물질도 아닌 것이 육신의 기초라면 도대체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여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충격적인 해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둘째, 그것들은 자체적으로 온전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어. 물론 테라 아일랜드 환경 내에서는 서식하지 못해. 또한 한 아일랜드의 생태계가 다른 아일랜드로 건너가지도 못하지. 두 아일랜드의 생태계는 서로 섞이지 못해. 극히 드물게 하이퍼스페이스를 횡단하는 종은 존재한다만…….”

   침묵 가운데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셋째, 일부 생명체는 정보 생명체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잠시만! 정보 생명체란 건 또 무엇이오?”

   “그게……, 말하자면 몹시 기괴해요.”

   “방금 들었던 이야기보다 더 기괴할 수가 있단 말이야?”

   “흠, 정보 생명체란 타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흡수해 자신들의 일부로 만드는 군집이야. 직접 잡아먹는 방식으로든, 기생하는 방식으로든, 혹은 정신 지배를 통해 이족 개쳬를 포섭하는 경우도 있어. 심지어는 유사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해 수집한 정보를 조합한 다음 맞춤형으로 개체를 제작하는 생물계도 있어.”

   소식을 전달하는 윤혁 본인도 말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마치……, 기계 같잖아.”

   “맞아. 사실상 생체 기계지.”    

   태고의 피조계에 신께서 심으신 공생의 원리. 그 사랑의 메시지가 적출된 세계에서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건 중앙 통제시스템으로만 지배되는 강압의 원리. 아일랜드들 위에는 그런 원리의 인공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었다. 가는 환경마다 파괴만을 남기기에 오롯이 목줄을 채워 통제해야 하는 생체 기계들. 산소나 물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 변질된 괴물들. 그것들은 분명 뒤틀린 창조 열망이 만들어낸 비정상의 절정이었다.

   ‘과연 생명체라 칭할 수 있기나 한걸까?’

   오한이 들며 섬뜩한 기분이 뇌리를 스쳤다.

   “그럼 이곳 테라 아일랜드의 사람들은 종종 외계 생명체들과 접촉하나?”

   이번에는 리온이 색다른 질문을 꺼냈다.

   “간접적인 데이터로 보자면, 흠, 하이퍼스페이스 개척 시대가 열린 뒤 인간들이 다른 아일랜드를 침공했던 기록이 여럿 남아있긴 해. 발견된 신세계 중 80%는 생명체가 부재했고 15%는 원시적인 수준의 생명군집이 발견되었다더라. 그리고 나머지 5%는 상당히 체계적인 지성의 외계 종족이 발견된다군.”

   체계적인 존재란 이를테면 정보 생명체들 같은 경우를 말했다.

   “테라 아일랜드의 인류는 지금껏 자신들과 조우한 외계 생명체 대다수를 정복했어. 하지만 일부 강력한 외계 종족은 하이퍼스페이스를 횡단가능할 정도로 신체 및 정신 능력이 고도로 발전했기에 쉽사리 당하지 않았어. 도리어 인류를 몰아붙인적도 있다더라.”

   “그러면 주민들은 그 외계인의 기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데?”

   궁금증이 든 루디아가 돌연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윤혁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몰랐다. 이는 테라 아일랜드 내에서 우주론,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 어찌 변천해왔는지 그 과학사를 통달해야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우주관 자체가 지구 인류와는 다르니 학문도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컸다.

   “모르겠어. 현지 주민과 만나서 대화해보는 수밖에.”

   그보다 한 가지 걱정이 남아있었다.

   ‘저들은 과연 자신들이 인지하는 우주와 생명체의 기원을 어디에서 찾으려고 할까? 저들은 초자연계나 혹은 자신들이 모르는 외부 간섭을 인정할까. 아니면 끝까지 눈에 닿는 영역만 인정하기를 고집하려는 선입견에 종속될까?’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설혹 신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주어도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 뻔했다. 자연만이 존재의 전부이고 과학만이 만물을 이해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란 공상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을테니까.

 

 

 

 

 

 

 

 

*

 

 

 

 

   선교지가 고도의 문명을 지닌 사회이니만큼 일행은 이에 발맞춰 신속한 전략을 전개했다. 바로 현지 주민들이 구축한 통신 네트워크 전역에 복음과 성경을 한꺼번에 퍼뜨리는 것. 물론 일일이 개개인을 상대하는 전도도 훌륭하겠지만, 이미 여러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삼은 테라 아일랜드 인들은 사실상 다행성 종족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만큼 인구수는 상당했다. 수십 일 남짓한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보려면 현지 통신기술의 적극 활용은 불가피했다.

   “다행히 이곳은 22세기 지구 인류와 마찬가지로 여러 행성, 아니, 여러 아일랜드를 동시에 엮는 통신 기술을 보유했어. 사람들이 쉽게 접속가능한 유사 사이버 공간도 존재하고 말이야.”

   윤혁은 자신이 몸을 빌린 인형 CPU를 도구 삼아 가까스로 테라 아일랜드의 네트워크들에 자신의 정신을 연결시켰다. 곧 테라 아일랜드 인들이 적립한 방대한 양의 정보가 뇌리로 흘러들어왔다.

   “잘됐네. 한번에 뿌리 뽑지.”

   리온은 그가 지금껏 지구에서 모아온 모든 기독교 서적, 자료, 주석본을 윤혁에게 제공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화된 설명 텍스트는 물론이고, 어린이 교육에 적합한 영상 자료들까지도 함께. 성경 그 자체가 가장 위대한 핵심이겠지만, 성경을 돕는 수종(隨從)들도 적잖은 유익을 낳으리라.

   “그렇다고 너무 급하게 굴거나 무리하지는 말고.”

   루디아는 혹 전달자 역할인 윤혁에게 과부하라도 걸릴까봐 거듭 당부하였다.

   “이미 여러번 해봐서 괜찮아.”

   호쾌하게 웃으며 윤혁은 아무 문제없음을 알렸다. 허풍은 아니었다. 사실 인형 몸체 안에 형이 준 반지도 탑재해놓았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 힘을 사용할 생각도 있었다.

   이윽고 방대한 자료가 현지 사이버 공간으로 분출되었다. 성경 원본과 번역본, 성경 해석학, 기독교의 역사, 교회사, 지구 인류의 역사, 신학 자료, 신앙 교육용 자료에 더하여 복음주의자들의 설교 녹화본들도 다수 포함된 패키지.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참 진리를 일깨워주기 위해 여러모로 필요한 자료들이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맡겨보는 수밖에.’

 

 

   그렇게 사출 프로세스가 개시된 지 며칠이 흘렀다.

   네 팀원은 자료를 정리하고 전송하고 그 일을 보조하는 작업에 전력투구하였다. 당장 사람들과의 접촉은 요원한 상황이었기에 이 방법이 선교하기에는 가장 열린 길이었다.

   ‘시간도 그렇지만, 공간조차도 온기를 나누기엔 여의치가 않네.’

   지역 전체가 고도로 문명화된 탓에 사람과 사람의 직접 접촉을 가로막는 장벽이 워낙 높았다. 외계인의 침공을 염려한 것인지 건물과 도시들 사이에 방벽과 방어막을 세워둔 상태였다. 보안 시스템도 원체 철저한 탓에 거주지에 출입하는 것조차도 번거로웠다. 필요한 물자는 로봇들이 옮겨주었고 교통 기술도 편리했기에 거리에는 행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프라인으로 침투할 기회조차도 없는 건가?’

   나중에는 선교팀도 이곳 시스템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각종 전략용 물자를 조달해야 할 필요가 종종 자주 생겼는데 현지 사이버 시스템을 이용해 주문하는 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조달은 무인 장비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역시 사람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참고로 지구 시민들이 사용하는 ‘생명 유착형 자본’은 어떤 식민지에서든 현지의 경제 시스템로 환원되는 특성이 있었기에 구매 활동에는 지장이 없었다. 물론 루디아와 스테판에게는 생명 유착형 자본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았고 윤혁은 인형 몸체였기에 리온 혼자서 지출을 감당해야 했지만 종종 후원자 측에서 소액 지원금을 보내주기에 크게 부담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여행 10일째 일이 터졌다. 테라 아일랜드 중앙관리국에서 낌새를 맡은 것인지 선교사 일행을 체포하기 위해 요원들을 파견했다. 아마 그들은 선교사들을 외계인으로 의심한 모양이었다.

   당국은 탁월한 무력과 기술력을 보유했기에 일행으로서는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그들은 꼼짝없이 중앙관리국 본부에 구금되었다. 조사 목적은 ‘이 넷이 정말로 외계에서 기원했는지 아니면 외계인을 사칭하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반지성주의적 사상을 퍼뜨리는 저의’을 국문하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심문은 비밀리에 은밀히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렇다. 분명 그랬었건만.

   “우리는 인류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그리고 우주의 기원에 대해 양심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와 나누는 토론 내용을 투명하게 사회 전체에 공개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비밀까지 전부 털어놓겠습니다.”

   의외성의 넘버원인 윤혁이 뜻밖의 빌미를 던지면서 일이 더 커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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