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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47회 하늘위의 도시들 Ch 53. 하이퍼스페이스의 기원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6.24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리온과 루디아는 이 과감함에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둘은 그들의 친구를 잘 알았다. 워낙에 거침없고 대담하며 한 번 뜻을 정하면 굽히기 어려운 사람. 동시에 그의 독특함이 가끔 엉뚱하게 느껴져도 우매함이나 무모함과는 거리가 먼 것을 알았기에 만류할 명분도 없었다. 조금 곤란하긴 하지만.

   “이봐, 감당할 수 있겠어?”

   “이왕 잡혀들어갈 바에 이게 낫지. 상황을 뒤집을 도리도 없잖아. 차라리 이렇게라도 해봐야 이 넓은 영역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겠지.”

   구구절절 옳은 소리에 리온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마음대로 해라. 난 이제 모르겠다. 하지만 저런다고 저들이 우리 말을 쉽게 들어줄까? 외계인이라고 해부라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내가 책임지고 너흴 지킬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말이라도 못하면.”

   놀랍게도 전개는 윤혁의 생각대로 되었다. 그의 당당한 선언에 중앙관리국 관계자들은 당황하면서도 의외로 선뜻 요구를 들어주었다. 특별한 위압감도 없는 평범한 청년이건만 이상하리만큼 그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기를 꺼려하였다. 이것은 약간의 반칙을 빌린 결과였다.

   ‘혹시나 싶어서 반지의 힘을 조금 진동시켜 보았는데.’

   반지의 힘을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 약간 활성화시켰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전에 아이카르 황자가 고분고분하게 굴었던 것처럼 순순히 윤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윤혁은 아이카르와 같은 이전의 사례들로부터 형과 자신의 ‘유전적 연결고리’가 식민지 주민들의 표식과 상호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귀납적으로 깨달은 상태였다. 이번 반칙은 그 점에 착안한 것이었다. 조금 비겁한 방법인듯 해서 여태 사용을 꺼렸지만, 이번처럼 일행 전체가 체포될 위기에 놓여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안해. 결국 이렇게 됐네.”

   윤혁은 유치장 안에서 친구들에게도 반지의 활용 사실을 털어놓았다. 동료들은 위기 때마다 자주 그 힘을 빌리는 윤혁에게 우려섞인 충고를 전했다. 너무 습관화되어서 좋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음은 이해해주어야 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 혹시 모르잖아. 저번처럼 납치자가 등장할지도. 게다가 강재혁 대표님이 만든 물건이니 초능력이나 여타 기술과 엮일 가능성이 높다고. 자칫 잘못하면 네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염려섞인 리온의 잔소리에 윤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자기 위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태도는 참 영리하다니까.’

   하긴 바울 사도께서도 복음 전파를 가로막는 물리적, 사회적 방해물들을 편리하게 우회하는 용도로 로마 시민권을 종종 활용했었지. 리온은 왠지 모르게 윤혁에게서 그런 모습이 겹쳐보였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는 쓰지 못하셨던 속세적인 특권을 예수님을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점에서는 윤혁이나 바울이나 비슷했다. 얄밉긴 해도 저런 얄미움은 유용한 법이지.

 

 

 

 

 

 

 

 

*

 

 

 

 

   네 선교사는 한 명씩 따로따로 각기 다른 방에 구금되었다. 의식주를 포함해서 필수품은 제때에 적절히 공급되었다. 하지만 서로 대화를 못 나누는 점이 몹시 불편했다.

   이번에는 바깥에서 반입해 온 통신 장비들을 일절 작동시킬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우월한 지구제 기술을 통해 통신 차단 정도는 손쉽게 우회했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초인들만큼은 못 해도 테라 아일랜드의 기술력 또한 영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적어도 일행이 현재 소유한 것들만으로는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인형 몸체는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믿고 여기에 희망을 걸어보았지만 이 또한 실망스럽게 무산되었다. 이유는 이러하였으니 인형 몸체에 내재된 기계 율법 세부 적용 리스트 중에는 이런 명령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만일 식민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이룩한 문명 수준이 특정 임계 레벨 이상에 도달해있다면, 본 개체는 납치 및 해부를 당함으로 인한 기술 누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완전한 위장형 은닉 모드로 전환된다.}

   윤혁의 인형 몸체는 이 조항에 의거해 은닉 모드를 발동한 상태였다. 이런 전환에는 기술의 탈취를 막는 것 말고도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윤혁 본체와의 통신 연결 상태를 발각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여하튼 이런 이유들로 인해 모드가 변형된 인형 신체는 한결 더 인간의 해부학과 생리학에 가까워졌으나 동시에 기계로써의 기능은 상당부분 봉인당했다. 당연히 외부 기계들에 대한 간섭력은 약해졌다. 때문에 인형의 통신을 이용하려는 계획도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며칠 간 선교사들이 구금되어 있는 동안, 테라 아일랜드 인들의 사회에서는 시끄러운 소문과 함께 큰 반향이 일어났다. 외계 생명체들의 존재야 이미 많이 알려져있어서 익숙했다. 하지만 인간과 동등한 지능을 지닌 외계 종족이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침투하는 일은 흔치 않았던 것이다.

   일전에도 몇몇 외계인들이 인간 형상을 입고 침입해 이곳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바가 잦았는데 그때마다 테라 아일랜드 인들 사이에는 외계인들의 진정한 진원지에 관해 논란이 빚어졌었다.

   “인간 형태로 진화한 생명체가 분명 타 아일랜드에도 존재할 것이오.”

   혹자는 이러한 주장을 밀어붙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강력히 반박하는 주장도 거셌다.

   “이곳 외의 다른 아일랜드들은 테라 아일랜드와 환경이 완전히 다르거늘 어찌 우리와 똑같은 모양으로 발전한단 말입니까.”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다른 종류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들은 속칭 사회 내 잠입한 외계인들을 그저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착각하는 사기꾼, 정신이상자, 혹은 인간 사회에서 떨어져나간 반정부세력의 후손이라고 여겼다.

   또다른 이들은 유사 미생물 내지는 기생충 형태의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정신을 감염시킨 결과가 이것이라고 주장했다. 드물게 인간 형태 외계인의 기원을 ‘우주 너머의 영역’에서 찾는 이도 있었지만, 그런 주장은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이유로 몰매를 맞으며 사장당했다. 

   과거에 중앙관리국에 사로잡혔던 외계인들, 혹은 자신을 외계 아일랜드나 하이퍼스페이스 바깥에서 왔다고 주장한 자들 중에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 해답을 알고 있노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간혹 있었다. 대개는 괴상한 이론을 주창하였다. 신적 존재나 초자연적 존재를 빌어 우주론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음모론자들도 있었지만 훗날 그 낭설들은 전부 다 사기극 내지는 무지에 기인한 거짓말이었음이 들통났다.

   또한 하이퍼스페이스의 개척, 탐험, 연구, 관측이 진행되어 물리법칙 지식과 우주론이 정립되면서 사기꾼인지 외계인인지 모를 침입자들의 가르침에 의거한 우주론은 설 자리를 잃고야 말았다. 결국, 문명권 전체는 완강한 자연주의와 과학만능주의로 회귀했다. 차츰 초자연의 언급 자체에 혐오를 느끼는 자들이 늘어났다. 양치기 소년에 속다보니 늑대를 믿지 않게 된 격이었다.

   이번에 새로 잡혀온 네 외계인의 구속은 한동안 잠잠했던 토론의 장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이들은 심심찮은 이슈거리였다. 물론 일각에서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 형태로 진화한 외계인’이느니, ‘기생형 외계 종족’이니 하는 헛소리에 대해 환멸을 토로했다.

   하지만 호기심을 갖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덧붙여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애초에 여러 아일랜드에 독특한 생태계가 실존함을 모두가 잘 알았기에 가능성을 크게 열어두는 이들은 더러 있었다. 일부는 이번 침입자를 설명하고자 ‘우주 밖의 또 다른 우주의 존재’를 다시금 주장했는데 이 가설은 그리 인기는 없었다.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던 중, 스테판이 갇힌 방에 마침내 불이 들어왔다.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테라 아일랜드 전역에 방송됨을 깨달았다. 긴장하던 스테판 앞에 홀로그램 화면 여럿이 나타났다. 사각형의 화면에는 희미한 실루엣이 몇 있었다. 그들은 자기 이름을 밝혔다. 전부 테라 아일랜드에서는 명망높고 유명한 과학자들이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테라 아일랜드 출신의 생명체입니까 아니면 다른 외계 아일랜드에서 왔습니까?”

   과학자A가 질문했다.

   “어느 쪽도 아니오.”

   “구체적인 의미를 말해주시지요.”

   “말 그대로요. 당신들 세계의 통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하이퍼스페이스라고 부르는 당신들의 우주가 아닌, 그 너머에서 왔소.”

   이에 곳곳에서 작게 비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풋, 그러니까, 실례가 안 된다면……, 그대는 초자연계의 영역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셈이구려. 혹은 과거의 ‘낡은 정신적 유물’이 말하는 신적 존재? 설마 그거라고 주장하는 거요?”

   “왜 그리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소만, 나는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오. 당신들과 성정이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오. 뿌리도 당신들과 완전히 똑같소.”

   스테판은 왜 비웃는지 도통 몰라서 일단 진지하고 정직하게 답했다.

   “하하, 하이퍼스페이스 바깥에 인간이 존재한다고요? 우리보고 증명조차 불가능한 그런 소설을 믿으란 말입니까. 과거에도 종종 그런 식으로 사기를 치던 자들이 출현했었지요. 종교나 신화란 것도 다 그런 망상의 연장선 아니겠습니까.”

   과학자B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게다가 이미 자연발생 이론이 여러 외계 아일랜드의 고고학적, 지질학적 흔적 자료를 통해서 증명된 마당에 굳이 생명체의 기원을 하이퍼스페이스 너머의 초자연적 요소에서 찾을 필요가 있겠소?”

   이번에는 과학자C가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자연발생 이론이라고?”

   스테판은 이유 모를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동시에 그 시각, 리온도 유사한 심문을 받고 있었다.

   “침입자여,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테라 아일랜드의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기초 교육을 통해 배운 내용이건만……. 정말로 당신이 외계인이신 건지 아니면 극도로 연기를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리온은 그 비아냥거림에 응수하여 자연스레 기회를 만들어 냈다.

   “말씀 잘하셨군요. 마침 궁금했습니다. 저는 이곳의 기초 우주론과 생명 발생 이론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먹히긴 한 것인지 대답 대신 시청각 자료가 몇 개 제공되었다. 과학에 능통하지 않은 리온조차도 대강 그림만 봐도 문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구에서 본 것과 구체적인 내용물은 달랐지만 분명 같은 사상을 담은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계통 분화를 나타내는 지도였다.

   그 지도는 테라 아일랜드와 외계 아일랜드들 각각의 생태계가 독립된 환경 조건 아래에서 어떤 식으로 생성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내용은 복잡해도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일관적이었다.

   하나의 아일랜드 내에서 여러 물리적, 화학적 환경 조건이 수천억 년 이상의 세월을 거치며 격변하고 여기에 우연이 겹치고 겹쳐 생명체의 기본 단위를 만들어 낸다. 이 기본 단위가 서로 얽혀서 더 복잡한 구조물을 구성하고 점차 자연선택의 원리를 거쳐 상위의 단계까지 올라간다. 대략 이런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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