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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49회 하늘위의 도시들 Ch 53. 하이퍼스페이스의 기원 (6)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6.29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분명 저는 진실을 말했으니 믿지 않는 책임은 당신들의 몫입니다.”

   본래 윤혁은 이런 강압적인 성격이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완강한 거짓 믿음을 단기간에 깨트리기 위해 강경한 태도로 나오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해야 어느 누군가는 과학만능주의의 허물을 깨트리고 초자연의 존재를 발견하게 될테니까.

   “그러면……, 설마 당신들이 우리의 창조주이고……, 우리는 그저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의 프로그램이란 말입니까?”

   이내 어느 과학자가 용기내어 평소 자신이 지지하던 가설을 기반 삼아 질문했다. 실상 테라 아일랜드 학계에서는 오래 전 매장당했던 이론이었지만, 극히 일부분의 학자들은 혹시 자신들의 세계가 시뮬레이션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아무래도 우연에 의거한 자연발생만으로 우주를 설명하자니 정교한 미세조정의 실재가 좀처럼 설명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하, 이번에는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론인가?” 

   윤혁이 쾌활하게 웃음을 터뜨리자 질문한 과학자는 당황했다.

   “아, 죄송해요. 비웃으려는 건 절대 아니었어요. 저희 고향에도 똑같은 이론이 유행했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가 ‘시뮬레이션 우주라는 차원과 기술이 실제로 존재하긴 한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유래한 보이지 않는 강력한 진동이 윤혁의 입을 강타했다. 보안 프로그램으로 판단되었다.

   ‘쳇, 하여간 아무리 개방 직전이라도 중요 정보는 노출하지 않네.’

   이왕 자유로이 선을 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형답게 철저하네. 그런데 왜 테라 아일랜드의 진화론을 전면 부정했을 때는 보안에 안 걸렸지? 어차피 추후에 진실을 밝힐 예정이라서? 아니면 이곳 주민들이 제 스스로 거짓에 속은 것이니 은폐할 이유가 없는 건가?’

   이미 이곳 사람들은 자기들이 구축한 세계관의 진상을 뒤흔드는 존재는 결단코 믿지 않겠노라고 완고하게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아마 세상 바깥의 존재를 백날 열심히 설명해도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할 것이다. 하나님과 영적 세계를 부인하는 건 물론, 같은 인간인 인류연합의 존재마저도 믿지 않겠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되는대로 계속해야지.

   “여러분은 결코 시뮬레이션 속의 허상적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는 같은 인간이에요. 영혼을 가진 인간 말이죠. 그리고 하나님, 그러니까 조물주의 형상을 물려받은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윤혁은 복음과 성경적 세계관의 개요에 대해 한 시간 이상 공을 들여가며 차분히 설명했다. 믿음의 기반이 뿌리채 소멸한 세상인지라 처음부터 끝까지 고치려니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막막했다.

 

   다시 스테판의 방. 심문은 계속되었다.

   “혹시 그대들은 렙틸리언(reptilian)인가?”

   “렙틸리언?”

   새로이 화상 대화에 뛰어든 과학자 몇몇이 홀로그램으로 접속해와서는 스테판과 마주했다. 그들은 스테판을 만나자마자 대뜸 ‘렙틸리언’이라는 낯선 용어를 던졌다. 그가 지구 출신이었다면 언뜻 들었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여하튼 그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소.”

   “테라 아일랜드의 종족 중 현존 인류와 다른 계통으로 진화하여 인간의 형상을 띠게 된 존재, 뿌리는 다르지만 최종 진화 형태는 우리와 비슷한 존재들이지.”

   그 순간 스테판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은 하이테로 대륙과 그곳에 있던 수많은 이종족들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너무나도 형태가 인간과 유사했기에 기원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분간하기가 어려웠었다.

   “수렴(收斂) 진화를 말하는 거요?”

   “맞소. 우리는 자연발생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이론을 지지합니다. 생명체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미지의 의지력이나 강제력이 개입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결과 비록 진화의 처음 출발은 달라도 궁극의 단계에 이르면 기획자들의 모종의 의지에 의해 같은 모습으로 수렴한다고 믿는 셈이죠.”

   또 다른 학자도 덧붙였다.

   “실제로 그 증거를 외계 아일랜드에서 수차례 발견했습니다.”

   테라 아일랜드 인들은 몇몇 외계 아일랜드의 생태계를 통째로 해부한 적이 있었다. 분자생물학적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수십 년간 연구를 진행한 결과, 우연적인 현상과는 조금 다른, 별개의 힘이 진화 과정에 개입되었음을 어렴풋이 눈치채게 되었다.

   그 힘은 아일랜드 내부의 물리적 요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기에 많은 이들이 하이퍼스페이스에서 근원을 찾으려했다. 실제로 아직 하이퍼스페이스의 물리적 속성은 많은 부분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음, 렙틸리언이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르겠소이다만……, 확실한 건 인간은 인간일뿐이오. 애초에 우연적 진화로 인간이 구현될 수도 없지만, 다양한 계통이 하나의 모양으로 수렴한다니……, 그거야말로 더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 않소? 신앙의 문제 이전에 그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오.”

   “아니, 그러니까 어떤 우주의 의지가 간섭한다면….”

   “도리어 그런 미지의 의지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설명하려는 것부터가 당신들이 말하는 과학주의적 관점과는 모순되지 않소? 도무지 우연적 원리로는 설명할 재간이 없으니까 억지 가설을 도입하는 것 아니오? 정작 그런 가설을 증명할 수도 없으면서 말이오. 과학만으로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창조주의 존재는 무조건적으로 부정하고 있으니 원.” 

   그러자 다른 과학자가 자신들이 믿는 바를 토로했다.

   “그야 지금이야 아직 학문의 수준이 충분히 높지 못해서 그럴뿐이죠. 장차 과학이 더 발전한다면 우리의 능력만으로도 모든 이치를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흠, 그것이야말로 더욱 근거없는 믿음 아니오? 당신들의 지식이 더 발전할지, 아니면 영영 정체될지, 혹은 퇴보할 지 그걸 누가 알겠소.”

   자존심이 상한 과학자들은 입을 닫았다. 물론 스테판은 윤혁에게서 초인이란 존재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었기에 인류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잘 알았다. 인류의 과학 지식은 분명 지금 이곳 테라 아일랜드의 수준보다는 훨씬 더 높이 발전할 여지가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쉴새없이 발전해서 지식을 얻은 결과, 끝내 절대자의 존재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얻었을 뿐이지.’

   스테판 본인의 지적 능력이 충만하지 못함이 아쉬웠다. 더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지 못함이 참으로 원통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어디까지나 그는 초인이 아닌 일반인이었다. 그저 정직하게 진실을 믿는 일반인.

   ‘아쉽군. 1+1=2라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것만큼이나 어려워.’

   창조의 진실을 알면서도 상대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

 

 

 

 

   수일 간 공방은 계속 오갔다. 외계인, 혹은 외계인을 사칭하는 정신병자로 추정되는 자들이 우주의 비밀을 털어놓는답시고 허황된 종교를 당당히 퍼뜨린다는 소문이 테라 아일랜드 전역에 퍼졌다. 일부 사람들은 오래 전 이 땅에서 잠시 불었다 사라졌던 ‘그 종교’가 저들의 증언과 일치하는 맥락이 많음을 깨달았다. 잊혀졌던 서적을 발굴해내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터져나왔다.

   여기서 사람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렸다. 윤혁 일행의 말을 완전한 헛소리로 여기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런가하면 ‘혹시 고대 시절 외계인들이 벌였던 업적이 소위 하나님이니 그리스도니 하는 그 신화와 연계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발생적인 진화를 순도 백퍼센트의 믿음으로 붙잡기 어렵다는 방증이었다.

   후자의 무리 사이에서도 세부적 의견은 엇갈렸다. 테라 아일랜드의 ‘생명의 씨앗’ 자체가 외계에서 왔다는 주장, 생명은 본토에서 기원했으나 외계의 영향력이 간섭했다는 주장, 과학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의지력이 진화 과정에 개입했으리라는 주장, 문명 발전 과정에만 개입했다는 주장 등 각양각색이었다.

   한편 ‘다른 인류 가설’이라 불리는 설은 그리 인기가 없었다. 참고로 이 가설은 체포된 외계인들이 증언해준 이야기를 요약하는 용어였다. 하이퍼스페이스 자체가 초고도 문명을 이룩한 인간들이 재단한 인조 공간이며 테라 아일랜드의 인류도 그들과 뿌리가 같다는 이야기 말이다. 어찌보면 대단히 배신감이 느껴질법한 음모론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의식적으로 잊어버렸다. 윤혁은 그것이 ‘사상제어의 표식’ 때문임을 잘 알았다.

   그 대신에 한동안 학계에서 매장당했던 ‘시뮬레이션 가설’과 ‘다중우주 가설’이 다시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윤혁은 그에 대해 여러 질문을 받았지만 친절하게 반박해주었다. 사실 반박이랄 것도 없었다. 이미 형이나 다른 초인들과 부딪히면서 진실을 들어버렸으니까.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초인 같은 자들과 얽히도록 허락하셨는지 조금은 이해되었다.

   “다중 우주라.”

   하여간 지구나 테라 아일랜드나 사람들 심리는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결국, 창조주라는 존재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미세조정의 문제’를 해명하고자 ‘다중우주’라는 똑같은 대안책을 붙잡는다. 무작위적으로 무수한 우주를 무한 생성하다보면 그 중에서 최소한 하나는 우연히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도록 조건이 맞춰지겠지. 무수히 주사위 놀이를 시도하면 운좋게 한 번 정도는 잭폿이 얻어걸리겠지. 하는 상상들. 뻔한 레퍼토리가 아니겠는가.

   “그게 말이죠, 다중우주, 아니 상위 차원이 분명 존재하긴 하는데…, 당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무작위적 다양성을 지닌 무질서한 세계는 아니에요. 도리어 질서정연하고 정교한 세계죠. 실제로 공부해보면 도리어 상위 차원들이야말로 결코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걸요?”

   저들은 알려나? 다중우주나 상위 차원 같은 계가 통상 공간보다 더 정교한 미세조정을 소유했다는 사실을? 더 자세히 변론하려다 참았다. 솔직히 말하면 윤혁에게도 미지인 영역이었으니까. 분명한 건 우주의 범주를 코페르니쿠스적 원리로 크게 확장시켜도 창조주의 위대한 설계는 더욱 여실히 증명되지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걸 끝내 부정하려는 사람이 어리석을까? 아니면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면서도 창조주께 항복하지 않는 자가 더 어리석을까.’

   다시금 형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라 씁쓸했다. 물론 자신도 딱히 혜안이 밝아서 믿게 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어디까지나 성령께서 어리석은 자신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추구하게 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분이 아니었으면 자신도 저들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평생 헛발질과 헛수고를 반복했으리라.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세계관을 갈아엎어 주셨다.’

   선교팀은 다시금 피조물 자신의 지성만으로는 창조주를 온전히 알 수 없음을 깊이 체감했다. 하지만 절대자께서 스스로를 계시해주고 그분의 존재를 믿도록 허락해주신다면 피조물도 창조주를 알 수 있으리라. 그분께서 허락하는 범주까지만 깨닫겠지만. 일행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다시금 감사하는 마음을 품었다. 또한 가련하고 눈 먼 테라 아일랜드 인들을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잡혀온 덕분에 윤혁 일행은 테라 아일랜드 방방곡곡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다. 회심이라는 결실을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주님의 뜻이 이곳에 있다면 적절한 때에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떠날 시간이 이르자 진은 넷이 잡혀있는 방마다 각기 포탈을 열어 순식간에 일행을 전부 회수하였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휴거하듯 홀연히 자연스럽게 사라졌기에 한동안 테라 아일랜드에서는 외계인들의 행방으로 인해 논란이 불 것이 예상되었다.

   우주선으로 귀환한 동료들은 각자 심문 받는 동안 접했던 정보를 공유했다. 그 중에는 놀랄 만한 단서들이 있었다. 루디아는 어쩌면 예전에 테라 아일랜드에 복음이 전해졌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알렸다. 이에 다들 경악했다. 이유는 몰라도 복음의 물결이 하늘도시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는 추정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 세대에 결실을 볼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솟구쳤다. 의구심과 놀란 마음은 접어두고 기도로 지혜를 간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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