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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5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4. 지적설계종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01 | 회차평점 0 0

 

 

 

 

 

Chapter 54. 지적설계종

 

 

 

 

 

 

   진의 푸른빛 눈이 함선의 창문 너머를 지긋이 응시하였다. 미리 좌표까지 계산해서 워프를 통해 신속히 당도했건만 예상했던 관측 대상이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스텔스 기능이나 기타 불가시 기능이라도 사용한 것인가 의심 되어 현자의 눈까지 발동시켜 보았으나 역시 아무것도 관측되지 않았다. 심지어 칼라비-야우 차원까지 뒤져보았는데 은폐의 흔적조차 전혀 없었다.

   “텔레포트? IDD 게이트를 이용한 건가?”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는 뜻인데.

   “그런 거대 물체를 이동시키려면 분명 잔흔이 남을 터…….” 

   희미하게 남은 워프 잔상이라도 점검해보기 위해 진은 흔적 추적을 발동시켜보았다. 곁들여서 수사용 사이코메트리까지 시전하였다. 하지만 범인은 그 모든 추적을 미리 그걸 알고 대응이라도 한 것인지 모든 시도가 가로막힌다. 진의 눈썹이 조금씩 불쾌감으로 일그러졌다.

   “뭘 꾸미는 거냐, 칼리드.”

   비밀리에 누군가가 어떤 프로젝트를 벌이는 것이 탐지되었다. 바로 위험한 피조물의 제작이었다. 그 피조물들의 정신파 궤적이 희미하게 우주 전역에 흩어진 상태였다. 예민한 진은 사념파의 흔적을 감지하고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간파했다. 그는 곧 여러 미래예측시스템과 더불어 본인의 두뇌에 담긴 초지능체의 연산력을 빌려 범인의 행보를 좁혀내었다. 조사 결과, 칼리드가 무언가 위험한 계획을 꾸미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 고유 정신파 패턴, 틀림없어. 하위 이종족을 제작하거나 변형시키는 놈들이다. 심지어 인공적으로 문명까지도 이식해줄 능력을 지닌 가짜 창조주들…….”

   지적설계종(Intellectual designer species).

   그것들은 하위의 종족을 설계, 제작, 개조, 간섭하는 기능을 소유한 이종족들을 일컫는 말이다. 분명히 여태껏 이론상의 개념이었다. 그래, 얼마 전까지는. 지적설계종을 제작하는 일은 비록 ‘출생 단계에서부터 인간 생명의 본질을 조작하는 일’처럼 공식적인 법문으로 금기시된 실험은 아니었지만, 예측불허의 위험성 때문에 인류연합 소속 구성원들끼리 암묵적으로 보류를 합의한 실험이었다.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칼리드는 무슨 목적으로 금기를 깬 거지?”

   카이젤을 견제하거나 제어하는 역할은 진의 몫이지 칼리드의 몫은 아니다. 칼리드는 철저히 정방향의 복종을 수행하는 장기말이다. 지금껏 한 번도 양아버지에게 심려를 끼치거나 반항한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왜 그랬을까?

   ‘단순히 지적설계종이 하위 종족을 만드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다행이다.’

   만약 그 하위 종족이 다시 독립하여 자율적인 재생산 기능이나 문명 구축 능력을 갖추면 인류로서는 제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더 나아가 만들어진 하위 종족이 또다시 지적설계 행위에 손을 대거나 자신의 설계자를 넘어선다면? 아니, 최악의 경우, 하위 종족을 새로운 지적설계종으로 승격케 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면?

   대대적인 혼돈이 야기될 것이다. 무절제한 폭주가 시작된다. 스스로 번식의 자격을 취득한 여러 아형 종족이 온 우주를 침탈할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도 결코 안전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왜 그걸 내버려 두셨지? 본인이 누구보다 지적설계종의 위험성을 잘 아실터인데. 게다가 칼리드가 제아무리 날뛰어도 그분의 감시망과 인프라 제어 능력을 벗어나지는 못할 텐데 말이지.”

   진이 고민하던 중, 다시금 함선에 탑재된 인공지능이 이주 경로 예측 지도를 내놓았다. 지적설계종을 탑재한 것으로 예상되는 격납고들의 위치로 현재 이동이 매우 잦았다. 15개 중 당장 추적할 수 있는 것은 다섯 개 미만이었다.

   ‘보고해야 하나?’

   하지만 진은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아버지께서는 상황을 제어할 여력을 완벽히 갖춘 채 일부러 칼리드를 풀어놓은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당장은 보고를 하기에 앞서서 사전 조사를 해두는 편이 낫다.

   진은 드넓은 권역으로 강력한 사념파를 담은 텔레파시를 전송하였다. 초능력 시스템이 개발된 이후로 그를 비롯해 모든 초인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한 정신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덕분에 전과 달리 별도의 증폭 장치가 없이도 쉽게 상대방에게 연락이 닿았다.

   “유리스.”

   “어머, 무슨 일일까나?”

   시간차조차 없이 순식간에 답변이 도달했다. 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 와중에 진의 감정의 흔들림으로 인해 발산된 초능력의 잔재가 주변 항성계의 공간을 조금씩 일그러트리며 위성들의 궤도를 마구 뒤흔들었다.

   “상의할 일이 있어.”

   진은 유리스에게 자신이 모은 정보와 추측하는 바를 모두 전달했다. 그는 그녀의 능력을 빌려 이번 사태에 대한 정밀 조사를 수행할 작정이었다. 나아가 필요하다면 장차 사태가 위험한 방향으로 어긋나는 것을 방지하고 추가 정보도 얻고자 했다. 그러자면 유리스의 도움이 절실하고 시급했다.

   “칼리드가 지적설계종을 만들었다니, 의외네. 말 잘 듣던 아이가 말이야.”

   “네 의견은 어떻지?”

   진의 질문에 유리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응답을 주었다.

   “비록 아버지께서 직접 명령하진 않았겠지만……, 내 추측에 의하면 그분이 이 상황을 일부러 유도한 거야. 아마 넌지시 칼리드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암시를 주셨겠지. 혹은 다른 협력자를 몰래 칼리드에게 붙여서 부추겼거나.”

   “협력자? 로스트엠페러 중 한 사람이려나?”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유리스는 심사숙고를 기다리지 않고 계속 대답을 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아버지의 의중을 생각해봐야 해. 개인적으로 나는 아버지도 이미 자신만의 지적설계종들을 제작했으리라고 봐. 그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들을 많이 벌이시잖아.”

   “왜 그러면 칼리드가 별도의 연구를 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커뮤니케이션의 전문가, 유리스는 타인의 의중을 이해하는데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 그 재능 덕분에 그녀는 곧바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무려 그 카이젤을 상대로.

   “아버지는 대단히 신중한 성정이셔. 모든 위험성을 철저히 계산한 뒤, 잠정적인 위험이나 예측 불가능성을 남김없이 배제한 뒤에야 비로소 작업을 시행하시지. 만약 그분이 신중함을 조금만 줄였더라면 문명 발전은 훨씬 더 빨랐을지도 몰라. 정작 그 문명을 제어하지 못해서 공멸에 이르렀겠지만.”

   진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 그분께서도 자신의 그 과도한 신중함이 일종의 한계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아시지.”

   “과감히 모험에 나서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그래, 때로는 도박도 필요한 법이야. 하지만 인류 전체의 운명을 이끌어야 하는 아버지가 도박에 의존할 수는 없지. 자신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창조물이나 기술을 무책임하게 만들어버리면 훗날 어떻게 되겠어. 차라리 갈트론 같은 철인왕 수준의 초인이 그런 짓을 벌이면 더 뛰어난 아버지가 수습해주시겠지만, 아버지 본인이 직접 감당치 못할 일을 벌인다면 그건 인류 차원의 재앙이 돼.”

   그제야 진은 유리스가 한참을 에둘러 무얼 말하려는지 의도를 깨달았다.

   “발전을 위해 적절한 실험, 모험, 도전은 필요한데 그걸 본인이 시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약간의 위험성을 허락하는 한도에서 칼리드로 하여금 자신 대신 그러한 도전적인 실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래, 아마도 이번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고뭉치 갈트론 대신 신중한 칼리드를 도박에 동원해야만 할 정도로 심각하고 중대한 실험이라는 뜻이겠지.”

   아마도 초인들의 왕은 지적설계종이라는 실체가 얼마나 제어력에서 빨리 벗어나는지를 미리 실험으로 살펴보고 대안을 마련하려는 계획인 모양이다. 일종의 고육책이자 백신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 일의 희생양으로 삼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칼리드라는 뜻이겠지.

   일이 잘 풀려 실험에서 나올 지식적 결실을 무사히 확대 적용한다면 굳이 자신이 직접 위험한 도박에 뛰어들지 않고도 지혜롭게 미래 문명의 안전성 문제에 대처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카이젤 자신이 만들어두었을지도 모르는 지적설계종들 또한 이렇게 칼리드가 악역을 자처한 덕분에 덕을 보아 온전한 조화로움을 입고 발전할 가능성을 얻으리.

   ‘꿩 먹고 알 먹는 격이군.’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듯했다.

   “여하튼, 분석과 의견 제시 고마워, 유리스.”

   “뭘, 또. 아, 이건 개인적인 사견인데 말이야.”

   유리스가 머뭇거리며 사족을 더하자 진의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뭔데 그래?”

   “아버지의 목적 말이야, 어쩌면 다른 계획도 하나도 겸하여 해결하려는 건 아닐까 싶어.”

   “다른 목적이라고? 그건 뭐지?”

   “흠, 어설픈 확대해석일 수도 있으니 큰 기대는 마. 나중에 천천히 알려줄게.”

   진으로서는 괜히 기분이 석연찮았다. 미신적인 징크스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그의 귀납적 경험상 보통 유리스가 저렇게 불확실하게 말끝을 흐리면 이성적인 예측을 할 때보다 오히려 적중할 확률이 크게 높아지곤 했었다.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표현해야 하려나.

   ‘쓸데없이 궁금하게 만들고 참.’

   그렇다고 심문하듯 다시 캐묻자니 아주 조금은 미안했다.

   “좋아, 천천히 조사해줘. 나도 조사하는 족족 자료를 계속 보내줄게. 너는 텔레파시나 여타 능력을 써서 지적설계종과 접촉해. 그리고 놈들을 제어하거나 설득할 일반화된 방법을 연구해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카드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호호, 그거야 내 전문이지. 맡겨둬.”

   유리스는 활짝 웃으며 진과의 텔레파시를 종료했다. 대화를 종료하면서도 진은 궁금증을 떨치지 못해 거듭 불편감을 곱씹었다. 그는 과연 아버지의 그 ‘다른 목적’이라는 게 무엇일까 궁리하였다.

 

 

 

 

 

 

 

*

 

 

 

 

   지적설계종 중 대표 종(種) 중 하나인 아간렉스.

   최근 사출된 아간렉스 1백 기는 은하계 곳곳에 흩어져 배회하였다.

   한 개체가 자기 목표 지점으로 지정된 항성계에 당도했다. 그것은 즉각 효율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자신의 몸을 여러 개로 쪼개기로 판단했다. 연산 능력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그 거대한 괴물은 몸을 부풀리더니 아메바가 이분법으로 나누어지듯 분열하였고 그 과정을 반복해 본체를 여럿으로 나누었다.

   서브-아간렉스, 즉 아간렉스가 쪼개져 생긴 파생물들.

   그들은 사념파를 통해서 회의를 나누었다. 그들이 부여받은 존재 목적과 임무에 부합하는 최대의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 전략 알고리즘을 수차례 재검토하였다. 복잡다단했으나 본질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학예회에 대비해 연극을 준비하며 각자 배역을 나누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들은 토의 끝에 선한 역과 악역으로 배역을 나누었다.

   물론 통념적인 의미처럼 선역이란 게 깨끗하고 선량한 성품을, 악역이란 게 포악하고 잔인한 성정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단지 서브-아간렉스들끼리 정해놓은 일련의 ‘규칙’을 기준으로 정방향으로 행동하느냐, 역방향의 변수를 일으키느냐에 따라서 임의로 분류한 것에 불과했다.

   그 규칙이란 온갖 내용이 버무려진 복잡한 알고리즘인지라 인간의 언어로 간략히 표현하기는 어려웠으나 개략적으로나마 묘사한다면 다음과 같았다. 선악의 질서라기보다는 그들만의 방법론이었다.

 

   우리는 여러 이종족의 씨앗을 뿌려놓고 그것들의 확대재생산에 인위적으로 간섭한다. 단, 일정 수준의 정보 삽입 이상의 과도한 간섭은 금한 채로. 하위 종족들이 발전하여 안정적으로 특정 레벨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 후 생명 발생의 원리를 깨우쳐 큰 지혜를 얻은 자들을 선발해낸다. 선택받은 아이들을 출신지에서 분리해낸 뒤, 특수 유전 인자를 조금씩 주입해 우리와 비슷한 새로운 서브-아간렉스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여러 ‘선택받은 아이’들을 융합시켜도 좋고 반대로 분리하거나 증식시켜도 좋다. 충분한 자격을 갖춘 선택받은 아이는 기존의 서브-아간렉스 개체와 융화하여 원본 아간렉스로 재탄생하게끔 한다.

   그 후, 다시금 융합체를 서브-아간렉스로 쪼개는 과정을 순환한다.

 

   상기의 정돈된 규칙을 깨고 변수 역할을 맡아줄 자들이 바로 ‘악역’인 서브-아간렉스였다. 이들에게는 하위 종족에 규율 이상의 과도한 진화를 일으키거나, 금지된 실험을 수행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높은 지성과 문명을 하위 종족에 이식하는 행위가 의도적으로 허가되었다.

   악역 내에서도 세부적인 행동 범위에 따라서 역할이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단순히 선역 개체들의 일을 방해하고 견제하는 목적을 지닌 온건파, 그리고 하위 종족들의 대대적인 공멸 및 자연선택을 유도하는 과격파, 이 둘로.

   그리하여 하나의 아간렉스로 말미암아 범 항성계 규모의 촌극이 개시됐다. ‘진화’와 ‘지적설계’라는 두 가지 허상적 개념을 절묘히 버무려 한편의 서사시로 재구축해낸 셈이었다. 얼마나 많은 종족이 이 촌극에 휘말려 오염되고 농락당하게 될까. 식민지의 인간들이 이런 배후 세력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필시 얽히기를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의 속임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라.

   한편, 악역과 선역으로 구성된 서브-아간렉스 그룹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시금 대행자들을 만들었다. 서브-아간렉스 개체는 직접 생물권이나 문명권에 진입하기에는 여전히 덩치가 너무 컸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본인의 임무를 수행해줄 작은 분신체 혹은 아바타가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생성된 분신체들은 비밀 게이트를 관통하여 여러 항성계 좌표들로 흩어졌다. 대다수는 이종족이 서식하는 특수 아공간 위주로 정착했다. 하지만 일부 분신체는 대담하게도 하늘도시 안에까지 들어갔다. 그리하여 상당수의 하늘도시가 서브-아간렉스들과 그 권세에 오염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곳에는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군.

   -어서 가서 우리의 존재의의를 실현할세.

   -지금부터 우리는 스스로 기억을 조작한 뒤 맡은 역할에 충실히 임한다.

   선역 맡은 서브-아간렉스의 분신체 하나, 그리고 악역을 맡은 서브-아간렉스의 분신체 하나가 짝을 이뤄 차원의 틈새를 벌렸다. 둘은 하늘도시 내에 침투한 뒤에 그 속에 구성된 소형 다중우주를 건너, ‘무대 뒷면’으로 진입했다. 둘의 기억은 자가 조작에 의해 변개되었고 이내 자신들이 ‘역할극’을 하는 중이라는 사실이 잊혀졌다. 완벽한 메소드 연기에 몰입하기 위한 전략. 이로 인해 본체 및 제작자들과의 연결도 잠시 끊어질 예정이었다.

 

 

 

 

 

 

 

(다음 회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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