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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5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4. 지적설계종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03 | 회차평점 0 0

 

 

 

 

 

*

 

 

 

 

    우주선에 돌아온 동료들은 잠깐의 휴식을 만끽했다. 이번 방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감금되어 조사를 당하는 데 소모한 터라 깊은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대중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통에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신경 쓰느라 참으로 힘들었다. 생리적인 활동마저 감시당했으니 원. 아마 잠정적인 위험 요소로 간주당하는 바람에 더욱 불편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고생시켜서 미안해.”

   윤혁은 일을 크게 벌인 걸 진지하게 사과했다. 그러나 동료들은 너그러이 이해해줬다. 어차피 뭘 해도 제대로 된 존중을 받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복음을 전달할 수단은 공개 토론회밖에 없었다. 가장 적절한 자리로 인도 받은 셈 아니겠는가. 더욱이 정신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거나 신체적인 고문을 당하지 않은 점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사생활을 감시당하고 갇혀있느라 답답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토론이 버거웠던 것 같아. 역시 나의 지적 능력만으로는 완벽하게 감당하긴 무리였어.”

   루디아는 테라 아일랜드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온갖 논리와 궤변을 내세워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코너로 몰아붙이던 기억을 떠올리며 소스라치게 떨었다. 믿음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부지런히 익히고 배워야 세상과 잘 맞설 수 있겠다는 교훈을 느꼈다.

   리온도 이 점에는 깊이 공감하였다. 그도 수일간 한바탕 열정을 내어 겨루던 바람에 기진맥진해진 참이었다. 토론하는 내내 나름 제딴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었으나 역시 신의 부재 및 존재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격한 학술적 다툼이 불가피했다. 이는 상당한 피로를 주는 일이었다.

   반면에 스테판은 워낙 고생에 단련되어서인지 힘겨운 씨름을 통과한 사람답지 않게 거뜬해 보였다. 윤혁도 피곤해 보일지언정 상당히 맑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몸이 건강해서 피로를 덜 느끼는 건지 아니면 과학적인 지식과 변증법을 많이 알고 있어서 그 상황을 즐길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윤혁은 토론 내내 괴로워하기보다는 열의에 넘쳤었다.

   “나는 묵은 빚을 갚아줄 수 있어서 후련했어.”  

   윤혁의 고백에 친구들은 그답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 우리가 주눅들 이유는 전혀 없어.’ 

   아직 과학력이 충분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던 20세기 시절, 곧 어설픈 수준의 지식만 쌓였던 그때, 무신론을 믿던 지구의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변을 열렬히 떨치며 종교인들을 멸시했었다. 그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심리적으로 괴로워했었다. 그러나 진리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류의 비난 때문에 주눅든 나머지 대부분은 당돌해지지 못했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결국, 모든 진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들의 편이었거늘.

   어쩌면 과거에 무신론이 맹위를 떨치던 때에도 천계의 초자연적 존재들은 인류의 어리석은 행태를 바라보면서 어처구니없는 나머지 비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거짓에 속아 진실을 왜곡하는 작태가 얼마나 한심했을까. 천사들은 혀를 찼을 테고 악마들은 조롱했으리라.

   누군가가 나서서 인간들에게 직접 우주 만물의 탄생 역사를 보여줬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의 창조를 목격했던 새벽별들이 그 광경을 영상으로 찍어서 남겨두었더라면. 가정법이기는 해도 아쉬움의 뒷맛은 남았다. 하나님께서 그런 직접적인 천기누설은 허락하지 않으셨던 걸까?

   ‘그분은 진리를 사랑하려는 자들만 좁은 길로 이끄는 분이니까.’

   하긴 보여지는 것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닐 테지. 진정한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아도 말씀에 의지하여 걸어가는 것이라 했던가. 그러한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는다면 천상의 녹화 영상을 본다고 한들 하나님을 만나기란 요원한 일이리라.

 

   여행으로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일행은 우주선에 구비된 세신 시설에서 몸을 풀며 안락을 잠시 만끽했다. 온기에 몸을 녹이던 중, 스테판이 리온에게 여행지에서 잠시 묵혀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아, 과거의 지구는 어떠했소?”

   “어떤 점에서 말이죠?”

   “자연적 만물 발생 이론, 소위 ‘진화론’이라 불리는 학문이 지구 역사 속에서도 존재했었다고 들었소. 그러니까 인격적인 창조주의 실재를 부인한채 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오로지 우연적 사건의 연속으로만 만물을 설명하던 이론 말이오.”

   “아아.”

   리온은 스테판의 의중을 대강 이해했다.

   “여전히 지구인들이 그 프레임에 갇혀있는지를 묻고 싶으신 것이군요.”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었다. 윤혁의 증언대로라면 현대 과학의 선봉장에 서 있는 초인들은 이미 자연발생적 진화론을 부인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실질적으로 학계에서의 싸움은 일단락된 셈.

   하지만 자연 발생론의 완패라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시대의 대중은 창조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여전히 ‘만물은 우연히 저절로 발생했다’라는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태초라는 문제에 대해 굳이 알아보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학계 또한 무관심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생명과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탐구하여 창조주의 위대한 역사를 알아보려 하는 대신 주제 자체를 오리무중의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 인류를 위대하게 만드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탄하기 위한 목적의 과학이라면 과학자들에게도 그리 동기 부여를 주진 않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불리한 싸움이니 그 주제 자체를 피하려는 셈이겠죠. 최근 밝혀진 첨단 과학 정보를 바탕으로 탐구하고 변증하면 무신론이 송두리째 대중 앞에서 부정당할 테니까요.”

   무신론자들의 입장이 유리하다고 판단되었던 20세기와 21세기에는 그토록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학술적 공격을 서슴지 않았으면서, 막상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는 바람에 무신론이 불리해진 22세기가 이르자 토론은 눈 비비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쏙 들어가 버렸다. 진짜 비겁함이란 건 이런 것이 아닐까.

   “여전히 생각 없이 진화론을 믿는 대중도 많아요. 그나마 최근 연구들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자연 발생이 워낙 비합리적이고 근거가 없다 보니 다른 이론을 믿게 되었죠.”

   “다른 이론이라면 이를테면?”

   “지적설계론 계열의 이론들요. 외계인의 간섭, 정체불명의 의지의 간섭……. 제가 직접 파헤쳐보지는 않았지만, 무작위적 다중우주 이론, 심지어 우주 자체가 컴퓨터 속 세계라는 시뮬레이션 가설 등도 인기가 상당하더군요.”

   생각해보니 테라 아일랜드에 구금당하던 중 그곳 과학자들에게 들었던 가설도 큰 맥락은 대체로 비슷비슷한 시나리오들이었다. 과연 인간의 상상력이란 특정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럼 지구에는 성경의 창조 기사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소?”

   “간혹 다른 종교에서 제시된 창조 기사를 믿는 사람은 있어요. 하지만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라 해도 성경 속의 하나님을 믿기는 어려워하죠. 정확히는 싫어한다고 해야겠죠. 시뮬레이션 따위의 기괴 가설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면서 말이에요.”

   “다들 창세기만큼은 거부하는 모양이오. 비이성적일 정도로.”

   “네, 정확히는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이예요.”

   “하지만 일반 대중이야 무지몽매해서 그렇다고 쳐도, 이미 진실을 알게 된 천재들은 왜 인류를 올바른 진리의 방향으로 이끌어 계몽하지 않는 것이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리온도 내리기 어려웠다. 왜 최고의 학자들, 문제의 그 초인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비밀을 대중과 공유하지 않았나. 그들이 진실이 드러난 이후 부여될 신께 복종해야만 하는 필연성을 두려워했던 것인가? 아니면 대중은 어리석으니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여겼을까. 혹은 본인들이야말로 인류의 핵심이니 다른 열등한 자들은 굳이 삼라만상의 섭리를 깊이 알 필요 없이 사육되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으려나.

   “한 마디로 답을 말하기가 어렵네요.”  

   “음, 아무튼 안타까운 일이오.”

   스테판은 무려 인류의 요람이라는 곳이 식민지들과 다를 바 없이 지식과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있음을 슬퍼하며 탄식했다. 우주 인류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환경 때문에 진실을 알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지구 인류는 능히 진실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자세히 알아보기를 거절했다. 어느 쪽이 더 비극인가.

   그 와중에 리온은 고뇌했다. 혹 인류연합이 하나님께 대적하려는 심산으로 가련한 민중을 오도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되었다. 지배층의 행적이란 역사 속에서 늘 같은 형태로 반복되는 게 일반이라지만, 적어도 선각자를 자처한다면 그런 비겁한 위선을 보여서는 안되지 않은가. 심란했다.

 

 

 

 

 

 

 

 

*

 

 

 

 

   이후 윤혁은 실내 라운지에서 루디아와 논의를 나누었다. 주제는 우주 인류의 복음화에 관한 문제였다. 섣부른 설레발에 앞서 객관적인 파악이 필요했다.

   “과거에 누군가가 그곳을 거쳐 갔던 게 아닐까?”

   루디아는 분명 복음화의 여파가 역사의 어느 한 경점에 테라 아일랜드를 휩쓸었으리라고 믿었다. 학자들과의 토에서 이를 지지할만한 근거도 여럿 얻었다. 만약 그저 현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종교였다면 기독교만의 특징적 지문이 나타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만일 네 말이 옳다면, 대체 누가 전했을까?”

   윤혁이 아는바에 따르면 우주 인류는 기본적으로 복음이나 성경의 하나님을 모른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들이 찾아간 하늘도시들은 하나 같이 기독교적인 개념을 담은 흔적을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다. 지구에서 유래한 종교나 신화가 변형되어 심어진 모습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류연합이 벌인 장난이었다. 그런 그들이 복음과 성경을 전해주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혹시 그들이 이단 종교나 배교 종교를 퍼뜨렸을까?’

   이를테면 티아라의 행적과 비슷한 식으로. 하지만 윤혁은 잠깐의 고민 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오늘날의 초인들이 정말로 반 복음적 영적 권세의 앞잡이라면 그들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이단 기독교를 하늘도시에 퍼뜨릴 이유가 없다.

   이단 종교는 이미 복음이 창궐하여 제어하기 힘들 때만 맞불로써 내세우는 사탄의 무기니까. 복음화되지 않은 미개척지에는 도리어 이단 종교를 내세우지 않는 편이 그들 편에선 안전하다. 아무리 변개된 이단이라 할지라도 혹 성경 말씀의 잔흔이 미세하기라도 영향력을 뻗치면 악의 세력 측에는 위험 요소가 될 테니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배제하고 나니 한 가지 결론만 남았다.

   “우리, 혹은 다른 선교팀들, 그도 아니면 우리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인 현지인들로부터 유래한 복음화의 흐름일 거야. 틀림없어.”

   루디아는 확신에 차서 외쳤다. 윤혁의 추리도 이미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상태였다. 다만 그는 여전히 미심쩍음을 완전히 떨쳐내기 어려웠기에 회의적인 의견을 제기했다.

   “하지만 하늘도시의 개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솔직히 말해 윤혁은 자기 세대에 우주의 복음화가 완성되리라고는 전혀 기대치 않았다. 추후에 하나님께서 다른 일꾼을 동원해서 남은 세계에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시리라고 믿기는 했다. 그런데 본인들의 시대에 그 결말은 본다? 그 부분만은 확답하지 못할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복음화가 이번 세대 안에 완성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영광스러운 일인 동시에 두려운 일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 땅끝까지 기쁜 소식이 편만하게 전해질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이 세대가 최후의 세대일까?’

   섣불리 장담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은 지나친 생각은 제쳐두었다. 허나 어느 세대건 종말을 맞이할 가능성은 열려있는 법. 임박한 말세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다. 어쨌건 그 최후의 순간을 앞당기는 일에 자신들이 동참했음을 깨닫자 몹시 가슴이 떨렸다. 스스로를 잠시 갈무리한 뒤 윤혁은 처음부터 정보를 재점검했다.

   ‘어디 보자.’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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