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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53회 하늘위의 도시들 Ch 55. 공중부양하는 촉수물체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08 | 회차평점 0 0

 

 

 

Chapter 55. 공중부양하는 촉수 물체

(Ch. 55, 56는 Blizard Entertainment의 게임, ‘Starcraft’ 시리즈의 스토리에 대한 패러디를 담고 있습니다.)

 

 

 

 

 

 

 

   불쾌한 경험의 데자뷔. 섬뜩한 감각에 눈이 저절로 번쩍 뜨였다.

   “헉, 여긴…….”

   아무런 밧줄도 없이 팔다리가 구속된 상태였다.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또다시 납치당했구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체념하듯 한탄하던 윤혁은 문득 자신의 상체가 허전한 맨몸임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천만다행으로 바지는 남아있었다. 다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녀석이려나.’

   얼마 가지 않아 그 답을 알게 되었다. 납치자들이 캡슐에 갇힌 윤혁을 만나보러 방안으로 들어왔다. 저번과는 달리 한 명이 아닌 여럿이었다. 더 놀라운 부분은 그들이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라는 데 있었다. 외계인들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윤혁의 몸 구석구석을 감찰하였다. 왠지 투시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불쾌했다.

   -음, 평범한 휴먼 계열 종족인데?

   불현듯 윤혁은 자신이 텔레파시를 인식하는 중임을 깨달았다. 그들의 말은 공용어가 아니었다. 낯선 언어였지만 의미가 텔레파시를 통해 뇌로 직접 전달되었기에 저절로 뜻이 이해되었다.

   “당신들은 누구시죠?”

   -넌 사이킥(Psychic) 레벨이 1밖에 안 되면서 어떻게 우리에게 대화할 수 있지?

   -최소 2레벨은 되어야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거늘.

   지금의 대화 인식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윤혁은 반지가 외계인들의 언어를 인식하고 번역하는 걸 도와주고 있음을 눈치챘다. 예전에 그가 티아라로부터 텔레파시의 혜택을 강탈해왔던 것과 같은 원리였다.

   천만다행인지 반지를 건 목걸이는 여전히 목에 걸려있었다. 상의는 벗겨놓고 왜 반지는 안 빼앗았을까? 영문은 모르겠으나 예전에 만난 원숭이와 달리 이번 외계인들은 그다지 반지에 주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건가? 반지의 보안 작용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외계인들은 순순히 윤혁을 풀어주었다. 아울러 그들은 윤혁에게서 특이한 기운이 느껴진 탓에 불가피하게 조사를 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불쾌감을 주어 미안하다며 정중하게 사과하였다. 겉보기에는 기이해 보여도 고귀한 품격과 정신을 보유한 종족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그들이 있던 장소는 50km 크기의 거대한 기함 내부였다. 그들의 종족 명은 그들의 언어로 발음하면 ‘판툴라’였다. 판툴라 족은 자존심과 긍지가 뚜렷한 종족이었다. 윤혁은 지금까지 접한 다양한 이종족 가운데 저토록 체계적이고 독립적이며 훌륭한 문명을 보유한 무리를 만나본 적 없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종족의 최고 족장으로 보이는 이가 질문했다.

   “강윤혁입니다. 종족은 인간입니다.”

   -흠, 역시 휴먼 계열이었군.

   “휴먼 ‘계열’이라면……, 여러 종으로 나눠지기라도 했단 뜻인가요?”

   -휴먼이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인가?

   족장은 대단히 신비롭다는 눈초리로 윤혁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점검 차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역사나 기본 상식을 물어봤다. 그러나 윤혁은 아무것도 몰라 눈만 껌뻑거렸다. 족장은 의아해하며 상대를 응시했다.

   -그럼 정말로 자네는 우주 너머에서 온 것인가?

   정곡을 찔린 윤혁은 뜨끔했다. 지난번 테라 아일랜드 때는 누구도 자신의 출신지를 믿지 않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아니, 어떤 맥락에서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듯 했다. 그 예견은 옳았다. 과연 족장은 자신들이 일족의 렐릭(Relic, 유물)과 사이킥 파워와 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윤혁을 소환했음을 고백했다.

   -공간의 틈새가 벌어질 때 내가 선수를 쳤네. 우주 너머에서 온 존재를 사로잡기 위해 소환술진을 펼쳤지. 설마 일족의 기대와는 달리 적을 물리칠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서 처음에는 휴먼 계열의 개체가 잘못 떨어진 줄 알았다네.

가볍게 흘려 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무려 인류연합 측의 기술을 우회 공략하여 전송 대상을 훔쳐내다니. 이는 판툴라 종족의 과학력 수준이 상당하다는 방증이었다.

   게다가 납치 이전에 그들은 공간의 틈새가 열리는 이질감까지 감지해냈다. 물론 전에 헬리웃도 비슷한 일을 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는 애초에 인류연합에서 파견된 관계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종족이 자력으로 공간 강탈을 벌인 건 충분히 경악할 일이었다.

   윤혁은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족장님, 저는 판툴라 종족의 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러분들을 도울 힘도 없습니다. 그러니 자비를 베푸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제가 제 동료들을 찾아 바깥으로 나가도록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음, 그것은 어려울 듯하네.

   시무룩한 표정이 윤혁의 입가에 번졌다.

   ‘하긴 저들이라 해도 각기 다른 곳에 흩어진 세 사람을 찾아내기란 어렵겠지.’

   -게다가 일족이 급한 과업을 수행하는 중이라서 말일세.

    그 과업이란 게 뭔지는 몰라도 여유롭게 윤혁의 부탁을 들어줄 처지는 아닌 듯했다. 설령 루디아와 리온과 스테판을 찾더라도 판툴라 족의 역량만으로는 하늘도시 바깥으로 내보내 줄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만약 그럴만한 기술이 있었다면 진작 저들도 바깥으로 빠져나가 진출했으리라.

   아무래도 진이 직접 개입해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윤혁은 체념하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런 기묘하고 당황스러운 상황들에 적응되어 버린 게 슬펐다.

   며칠간 기함이 항해하는 사이, 다수의 판툴라 족 함대가 기함 곁으로 결집하였다. 이미 인류연합 함대를 보았던지라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이 함대도 대단한 위용을 뽐내는 수준이었다. 규모를 보아하니 종족이 지닌 전력을 모조리 끌어모은 듯했다.

   ‘이번에는 정말 우주 같아 보이네.’

   이번 하늘도시 내부는 말 그대로 우주 하나를 별도로 구현해놓은 듯했다. 하이퍼스페이스와 통상 우주의 중간 정도 성질로 보였다. 다만, 상대성 이론의 적용을 받지 않았고 에너지의 농도가 적었으며 공간 자체의 견고함이 부족했다. 공간의 규모도 무한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은하 대여섯 개 정도 규모로 추측되었다.

   함대가 열심히 목적지로 항해하는 와중에 윤혁은 판툴라 족의 기사단장, 주교, 법사, 법관, 신관을 여럿 만났다. 어차피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복음을 전할 필요성도 없었다. 윤혁은 맘 편히 그저 말동무만 되어주었다. 덕분에 무료함과 부담을 잊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이 전해 듣게 되었다.

   ‘도무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걸.’

   인공우주 곳곳을 누비며 문명을 건설해 온 판툴라 족의 장구하고 화려한 역사, 그것은 가히 장편 환상 문학 속의 고귀한 요정 종족의 서사시를 스페이스 오페라 버전으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윤혁은 판툴라 족 고위 관료들의 증언을 통해 판툴라 족이 자랑하는 과학 기술, 사회 제도, 학문적 성과, 경제 제도, 철학 체계 전반에 관하여 새로이 배웠다. 무작위적인 것이 아닌, 일관적인 질서를 갖춘 문명이었다.

   요약하자면 이들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천년 전, 우리는 어느 한 행성에서 하늘의 별들을 보고 깨어났습니다.

   참고로 이곳 하늘도시 속에 조성된 우주에는 항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천동설을 반영한 세상이었다. 해와 달, 그리고 별은 그저 행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광원체였다. 에너지가 생산되는 방식도 핵융합이 아닌, 모종의 신비적인 유사과학적 원리에 가까웠다.

   태곳적에는 각각의 행성마다 지적 능력이 탁월한 종족이 두어 종류 이상 잠들어있었다고 한다. 반짝이는 별빛은 그 지성체를 일깨우는 일종의 신호탄 역할을 하였다.

   얼마나 좋은 질의 별빛을 받고 깨어나냐에 따라 지능 각성의 정도가 달라졌다. 판툴라 족은 상당히 명석한 편에 속했다. 그 덕분인지 깨어난 지 백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꽤 우수한 문명을 일궜다.

   그러던 어느 날, 판툴라 족은 배후에서 몰래 자신들을 지켜보며 도움을 전해주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존재는 끝내 자신을 숨기려 했지만, 판툴라 족은 소통을 요청했고 끝내 베일에 싸인 보호자는 못 이기는 척 모습을 드러냈다. 판툴라 족은 그를 ‘영도자’라고 불러주었다.

   판툴라와 친해진 이후, 그 영도자는 자신 이외에 다른 영도자들이 실존함을 밝혔다. 그리고 영도자는 판툴라 족을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켜주겠다며 제안을 하였다. 낡은 변방 행성 대신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에서 번성하도록 지원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판툴라 족 대부분은 그를 흔쾌히 따라나섰다. 하지만 일부는 고향 행성에 남아서 자신들만의 문명을 일구기를 택했다.

   아직 우주 비행 능력이 없었던 판툴라 족은 영도자가 만들어낸 이동 요새를 타고 광할한 우주를 누볐다. 도중에 거쳐간 몇몇 행성에 일부 무리가 정류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그중 일부는 정류 행성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아예 눌러살게 되었다.

   영도자는 종족을 강제적으로 이끌지 않았고 억지로 재촉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여행은 대단히 지지부진했으며 차츰 판툴라 족은 우주 곳곳에 조금씩 흩어져 나뉘었다. 때때로 남겨진 자 중 일부가 마음이 바뀌어 다시 여정에 합류하기를 원한다면서 자신들을 픽업해줄 것을 요청하는 SOS를 보냈다. 영도자는 그 요청도 들어주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판툴라는 차차 다행성 종족이 되었다.

   마침내 끝까지 이탈하지 않고 남은 소수의 판툴라 족이 영도자가 말했던 ‘약속의 땅’에 도달했다. 도중에 여러 행성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종족은 여러 분파로 분화되었고, 자연히 각 분파별로 약속의 땅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에는 시간차가 생겼다. 첫 분파의 정착부터 마지막 분파가 도달하기까지는 거의 5백 년이 걸렸다.

   약속의 땅에 정착한 판툴라 족은 다섯 명의 영도자가 보호하는 가운데 2백 년간 경이로운 발전을 거듭했다. 영도자들은 우주를 관리하며 돌아다니느라 항상 판툴라 족의 곁에 있어 주지는 못했다. 최소한의 도움만을 줄 뿐 직접 역사에 간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종족 특유의 타고난 지성 덕택에 판툴라 족은 영도자들의 도움 없이도 눈부신 업적을 이룩했다.

   판툴라 족의 여러 부족들은 문명 발전에 저마다 기여했다.

   어느 부족은 종족 최초로 우주선을 만들어서 우주 개척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어느 부족은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탁월한 공학 기술을 발전시켜나갔다. 다른 부족은 언어와 학문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문화 유산들을 남겼다. 그들은 수많은 서적을 써냈고 이웃에게도 책을 나눠주어 지식을 전수했다.

   또 어떤 부족은 독특한 무술 재능을 이끌어내어 무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무술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일반화하였다. 한편 영도자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던 부족은 종교성을 고도로 발전시켰다. 이들의 종교는 훗날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각기 다른 형태의 특유의 초능력으로 발전하였다.

   이렇듯 판툴라는 부족별로 개성적인 문화 특징이 뚜렷했지만, 서로 섞여 살면서 차츰 서로의 특질을 교류하였다. 이에 따라 자연히 계층이 형성되었고 계층별로 사회적인 역할이 세분화되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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