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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54회 하늘위의 도시들 Ch 55. 공중부양하는 촉수물체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10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판툴라 족의 초능력은 기본적으로 ‘사이킥 파워(psychic power)’라는 것에 기초를 두었다. 이는 일전에 윤혁 일행이 보았던 하늘도시 주민들의 초능력 시스템과는 사뭇 양상이 달랐다. 원리 면에서 겹치는 요소가 일부 있었지만, 본질은 달랐다. 명상을 통해 외부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일종의 텔레파시 현상으로 인한 부가적 반동을 극한까지 증폭해 끌어내는 방식이었다.

   사실 이 세계에서 사이킥 파워라는 것은 비단 판툴라 족에만 국한된 능력은 아니었다. 같은 무대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이종족, 심지어 휴먼 계열 종족들에게도 사이킥 에너지는 허락됐다. 다만, 사이킥 파워를 가공해서 실제 힘으로 발현하는 비법은 각 종족별로 달랐고 각 비법은 해당 종족 내에서만 비밀처럼 전수되었다.

   판툴라 족의 사이킥 파워를 다루는 재주는 이 하늘도시 속에 구축된 유사 우주의 전 지역을 통틀어 한 손에 꼽힐 등급이었다. 심지어 판툴라 족은 사이킥 파워와 과학 기술과 섞어서 독특한 형태의 문명을 창작해내는 데 이르렀다.

   -그런데 300년 전, 비극이 시작되었소.

   영도자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았으나 다수의 판툴라 족 학자들은 그것들이 우주 바깥에서 왔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우주 바깥에서 건너온 ‘태고의 존재’가 여러 덩어리로 갈라져 영도자들이 생성되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태고의 존재’에게는 적대자가 하나 있었다. 힘과 능력 면에서 ‘태고의 존재’와 완벽한 대칭성을 이루되 의지와 행동 양상만은 정반대인 존재. 이 적대자가 3백 년 전의 판툴라 족에게 몰래 접근해오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다.

   -혹자는 적대자를 이런 별칭으로 부릅니다.

   공중부양하는 촉수 물체(Levitational Tentacular Object, LTO).

   -녀석은 달콤한 유혹으로 교묘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에게 지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우리가 감히 감당하지 못할 위험한 기술들을 말입니다.

   LTO는 판툴라 족을 파멸로 다가가게 할 과학 기술과 무모한 사이킥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그 지식은 종족 전체를 탐욕에 물들였다. 곧 내전이 벌어졌다. 파멸적인 결과가 야기되었다. 아름다웠던 낙원은 사라졌다.

   뒤늦게 그들은 LTO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영도자들에게마저 깊은 의심을 품게 되었다. 일부는 영도자들에게서 벗어나겠다며 독립을 선언했다. 또 다른 일파는 각기 자신들만의 영도자를 정해 그 영도자만을 섬기겠다면서 서로 간에 파벌을 나누었다.

   그리고 내전이 벌어졌으며 이는 승자의 무리와 패자의 무리를 갈랐다. 이 결과는 영원한 갈라짐과 분열이 공고화되는 데 기여했다.

   이에 LTO와 영도자들은 판툴라 족을 내다 버리고 떠나갔다. 내분은 더욱더 증폭되었다. 숭배자들은 각자가 섬기는 주인을 다시 찾아내겠다며 우주로 모험을 나섰다. 적대자들도 움직였다. LTO를 잡아서 죽이겠다, 혹은 영도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제각기 다른 길로 떠났다.

   이미 우주여행 능력을 확보한 판툴라 족은 우주 전역으로 진격할 능력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러한 흩어짐, 그리고 내전으로 인해 인구는 크게 줄었다. 필연적으로 종족은 유성생식을 포기한 채 인위적인 유전자 재조합이나 클론 복제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생성된 후손들은 점차 원조에서 벗어나 포악한 성향을 띠게 되었다.

   진격자들은 영도자나 LTO를 찾으려는 순례길 도중, 과거 약속의 땅에 도달하지 못한 낙오자 동포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자비롭게 그들을 포용하고 지식을 베풀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낙오자들의 문명을 약탈하거나 정복해 자신들 속에 흡수시키기도 했다. 비유컨대 지구의 ‘혼돈의 시대’와 비견할만한 시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판툴라 족은 자신들과 유전적으로 별개인 종족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대부분 문명 수준이 판툴라 족보다 뒤떨어졌으나 몇몇 종족은 대등한 수준의 국력과 위격을 자랑했다. 이미 판툴라 종족은 폭력성에 깊이 물들었기에 다른 종족과의 대립은 불가피했다.

   이때부터 미움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죽고 죽여 인구가 줄고, 다시 클론 복제로 번성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점차 전쟁의 규모는 우주 범위로 증폭되었다. 백 년간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교훈을 얻은 끝에 판툴라의 지성인들은 회의감을 느꼈다. 이들은 여러 차례의 뼈저린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외계 종족끼리의 전쟁 배후에는 LTO의 흉계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마침내 우주 전체의 패권을 뒤흔들 대격변이 벌어졌다. 무려 1,024종류의 ‘정보생명체’가 출현하였다. 멸망 그 자체를 현현해놓은 듯한 이 우주 교란종들로 인해 문명들은 멸절 위기에 처했다.

   윤혁은 이 대목에 이르렀을 때 재빨리 머리를 스친 의문을 질문했다.

   “설마 그 정보생명체란 것들이, 자율적으로 자기 종족 개체의 육체와 유전 정보를 진화시키려는 목적으로 타 종족의 문명과 정보를 흡수하는 것들입니까?”

   -음, 아예 문외한은 아니로군.

   인간의 질문에 족장이 친히 긍정의 대답을 주었다. 사실 윤혁은 하이퍼스페이스 때도 저런 개념의 존재 양태를 지닌 종족들이 존재함을 데이터베이스로나마 간접적으로 배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번 하늘도시의 그것들과는 규모부터가 차원이 다른 모양이다.

   족장의 말에 따르면 무수한 문명이 정보생명체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소멸하였다고 한다. 행성 하나에만 정착한 종족은 멸절하였고 오로지 다행성 종들만 살아남았다. 물론 그 살아남은 이들도 막대한 피해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정보생명체 출현을 계기로 우리는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부족끼리, 분파끼리, 나아가 종족끼리 싸우던 그간의 싸움을 즉시 중단했지. 그 덕에 점차 크게 뭉쳐서 연합을 이루게 되었어. 공공의 적 없이는 불가능했지.

   그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 바로 우주연맹(United-Cosmos)이었다. 그리고 우주 외곽을 주름잡던 휴먼연맹(United Humanity)이 이 우주연맹과 손을 잡으면서 다시금 국면은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되었다.

   휴먼연맹은 기술력으로는 우주연맹보다 뒤떨어졌지만, 대신에 독특한 개성과 독창성을 선보였다. 인간 및 인간과 유사한 외형의 2천여 가지 종족들의 집합으로 구성된 휴먼연맹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기치를 발휘해 우주연맹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끝내 정보생명체를 타파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일등공신이 되었죠?”

   -그들은 정보생명체를 길들이는 기술을 만들어냈지. 물론 완벽한 제어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우리는 정보생명체와 공생의 시대를 열게 되었어. 한때 우리를 위협했던 적과 동침하자니 반대 의견도 제법 많았지만, 당시로써는 공생을 받아들이는 게 최선의 전략이었어.

   내분과 끝없는 전쟁 연쇄가 마침내 진정되자, 판툴라 족을 주축으로 결성된 우주연맹에 소속된 5백여 종족은 시선을 돌려 오래 묵혀둔 숙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악의 근원, 흑막이자 원흉, 수많은 종족을 농락해온 LTO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터무니없는 강함을 그들도 익히 잘 알았기에 연합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일부는 영도자들의 도움을 받자고까지 제안했으나 다수가 반대했다. 그들도 어렴풋이나마 LTO나 영도자나 실상 본질은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존재임을 인지했고 그 때문에 믿음을 즉각 버렸다. 위험한 자들을 신뢰하느니 차라리 살아남은 모든 우주연맹을 모아 LTO를 공략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합의는 어렵지 않게 이뤄졌지.

   휴먼연맹도 기꺼이 손을 잡았다. 이상하리만큼 이들에게서는 다른 문명 종족과는 다른 창의성이 돋보였기에 우주연맹은 이번에도 휴먼 계열 종족이 새로운 변수를 낳으리라고 믿었다.

   두 연맹과 직접 연합하지는 않았지만, 정보생명체들도 반항의 준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정보생명체들은 자신들을 조종했던 LTO를 공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소소한 견해차를 드러내며 내분의 시대를 겪었었다. 그런 난항을 통과한 끝에 마침내 결론에 이르렀으니.

   -1,024개의 정보생명체 집단 중 절반가량은 이제 LTO를 공격하자는 의견으로 확실히 기운 것 같네. 나머지 절반은 아직 내분을 겪고 있거나 토의 중이지.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 측에 유리한 행동을 보일까 기대하고 있지. 물론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현재 윤혁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기함이 소속된 군대는 LTO의 본진을 공격하러 출정하는 판툴라의 연합군이었다. 판툴라 종족 전체가 분열 없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인 것은 이번이 역사상 최초였다. 아울러 우주연맹에 가담한 다른 종족들도 연합군을 조성하여 가담하였다. 종족별 연합 전선이 완성되면 이들 모두가 모여서 궁극의 연합 곧 범 종족 연합이 구축될 예정이었다.

 

 

   이후 며칠간 윤혁은 이곳 인공우주, 아니 현지인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우주라고 인식되는 이곳을 무대로 펼쳐진 장구한 역사를 상세히 듣고 배웠다. 그는 왠지 모를 익숙함과 불쾌한 기시감을 느꼈다.

   ‘약속의 땅이니 하는 개념……, 이스라엘의 구약 시대를 모방한 건가?’

   분명히 그런 요소가 느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의 유명한 환상 문학 속의 가상 종족의 역사도 부분부분 짜깁기된 것 같았다. 인류연합이 무대 뒤에서 개입했을 테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만.

   ‘게다가 사이킥 파워라고?’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성녀 티아라가 어린 시절 카이젤과 함께 사념파와 정신파 분야를 연구했다고 했던가. 혹시 사이킥 파워라는 것도 그 연구의 연장선으로 나온 산물일까? 전에 본 초능력 시스템과도 연관성이 있으려나? 상상의 나래가 넓게 펼쳐졌다.

   ‘그나저나……, 지금 전쟁을 하러 가는 중이라고?’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부분이었다. 정체도 모를 괴물과 싸우러 간다고 하니 조금은 심란했다. 전투란 늘 위험을 상정하는 법. 어쩌면 자신도 휘말려 죽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 그런 두려움도 적지 않았지만, 더 걸리는 점은 영적인 어둠이 배후에 도사리는 듯한 이질감이었다.

   ‘이곳에 구축된 역사는 그저 인류연합이 만들어낸 촌극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촌극을 작곡한 자의 의도에는 뭔가가 숨겨져 있어. 뭐지?’

   은유적인 표현법인가? 아니면 모종의 영적인 의미를 담은 상징인가? 무언가 중요한 퍼즐 조각이 하나 잊혀진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찝찝했다. 진상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아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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