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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56회 하늘위의 도시들 Ch 55. 공중부양하는 촉수물체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15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아니, 어쩌면 지금과 같은 연맹 결성이야말로 진정 악한 결과물일 수도 있어.’

   닐 총사령관 앞에서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리온은 이러한 다종족 간의 연합이 썩 석연치 않았다. 죄악의 결과물로 탄생한 여러 종족은 분명 인간의 책임이리라. 하지만 불행히도 이미 태어나버린 이상 맘대로 죽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지성을 가진 생명체를 함부로 만드는 행위 자체는 죄일지언정, 그 생명체를 잘못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정죄하고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 비극적인 운명의 농락이여! 생명을 함부로 다룬 책임의 무게란 참으로 가혹하였다. 종족의 분화, 종족의 융화, 인위적인 수렴진화로 인한 유사 인간 탄생, 종족끼리의 혼종화까지. 첫 시작을 더럽히는 바람에 온갖 것이 쇄도하였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책임질 방도마저 없어졌다.

   그나마 합의해낸 최선의 결론이란 게 고작 “그 모든 산물을 포용하고 한 테두리 안에 받아들이자”인데 이는 곧 죄의 결과물을 선하고 자연스러운 것인 것마냥 포장하는 셈이니 영 불편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악으로 인해 탄생한 결과물들이 어떤 공공의 적에 대항하면서 뭉친다는 방식도 썩 맘에 들지 않아.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단 말인지.’

   윤혁이 은연 중 느꼈던 껄끄러움을 리온도 똑같이 느꼈다. 외계인이나 신적 존재가 침공하자 인간들이 하나로 뭉친다? 이런 류의 설화는 꽤 오래전부터 유행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투도 엄밀히 말하면 그런 류의 연장선이었다. LTO인지 뭔지 하는 우주적 존재,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분명 이곳의 여러 종족이 신적 존재로 여기는 대상이리라. 리온은 영적 분별력을 일깨워내었다.

   ‘이 모양새는 틀림없이 아마겟돈(Armaggedon) 전쟁이다. 온 열국이 한마음으로 뭉쳐 주님께 대항하는 최후의 몸부림. 지금의 전쟁 시국은 정확히 그런 모습을 비유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이번 전쟁의 흐름이 과연 자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LTO라 불리는 존재의 큰 그림인지, 그것도 아니면 인류연합의 촌극 중 하나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재혁의 입김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도 불확실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마겟돈 전쟁’과 유사한 그림이 그려진 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설마 피조물과 창조주의 대결을 확인하고자 만들어낸 시뮬레이션?’ 

   이런 식으로 인류연합과 그 식민지를 용의선상으로 몰아갈 근거는 솔직히 불충분했으나 마음속의 의혹은 짙은 안개처럼 남아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휴먼연맹 연합군이 한 좌표에 모여드는 동안, 리온은 요새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라도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지체없이 계획을 행동으로 옮겼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잡념에 빠져 본업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일전에 하이테로에서 얻었던 교훈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을 추구하는 영성을 갖고 있다’라는 진리였다. 이미 휴먼 연맹은 건너서는 안 될 강을 수차례나 건너버린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면 저 악한 인간들이라도 돌이키게 할 능력이 충만하리라 믿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리온은 친구 윤혁의 방식처럼 인류나 이종족, 하늘도시 내에 만들어진 인공우주의 기원에 대해 폭로함으로써 자극적인 호기심을 유도하거나 영적 충격을 주는 요법은 삼갔다. 그런 방법도 때에 따라서는 효율적이겠지만, 지금은 다른 접근법이 안정적일 듯했다.

   그보다는 우주의 창조주이자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주고, 그분이 하셨던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기회를 주는 데 주력했다. 굳이 자극적인 과학 이론이나 창조론 대 진화론 식의 토론을 유도할 필요는 없었다. 들을 귀가 있으면 알아서 복음을 받아들이겠지. 그렇게 듣다보면 서서히 관심을 키워나가게 되리라. 리온은 남은 자들이 있을 가능성을 믿었다.

   곧 장교부터 말단 군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리온의 전도에 관심을 기울였다. 반응은 저마다 다양했다. 기이하게도 어떤 이들은 잠깐의 지적 호기심을 드러낼 뿐 영적 진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구에서 보았던 복음 거절자와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고 리온은 혹시나 그들이 참 인간이 아닌, 비인간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의심했다. 실제로 확실한 기준으로 비 휴먼이나 유사 휴먼으로 분류된 종족 개체들은 리온의 전도를 듣고도 무반응 상태를 유지했다. 하이테로 대륙에서 실험해본 가설이 이번에도 어느 정도는 타당하게 입증되었다.

   하지만 리온에게는 각 개체의 유전 정보 상태를 일일이 점검하여 누가 진짜 사람이고 누가 가짜 사람인지를 분석하며 병아리 감별사마냥 분간할 능력이 없었기에 무의미한 노력은 포기한 채 접어두었다.

   높은 장군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닐 총사령관은 리온과 친분을 더해가면서 차츰 하나님이란 분에 향해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마침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으로 나아가는 처지인 만큼 대원들의 어깨에 걸린 부담은 대단히 막중했다. 참호 안에는 무신론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군인들은 사후의 운명, 인간의 기원, 창조자 혹은 절대자의 존재 같은 본질적 문제의 해답을 깨닫기를 갈망했다.어쨌건 이런 심오한 질문에 대해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보다 명료한 대답을 내어줄 대안은 없었다.

   “만일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여 무사히 고향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제 주변 친구들에게도 이 책의 가르침을 공유하고 묵상하고 싶습니다.”

   닐은 나름의 진중한 어투로 고백했다.

   “감사합니다. 부디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 말씀이 역사하셔서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그리고 존엄성이 훼손된 사회에 회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리온도 정중함과 인류애를 담은 태도로 대답하였다.

 

 

 

 

 

 

 

 

*

 

 

 

 

   무의식 중에서 정신을 차린 스테판은 문득 자신의 몸이 무중력 공간에 묶여있음을 확인했다. 낯선 이질감. 별안간 이전에 쳐들어갔던 ‘실존하는 허상 세계’, 아니 시뮬레이션 우주의 심장부에서 체험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통상 공간과는 느낌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허상 세계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공간 같은 부류에 가까웠다.

   ‘여기는 어디지?’

   -너는 누구냐?

   생각의 결론을 채 맺기도 전에 허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테판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소리의 진원지가 어느 방향인지 도저히 간파되지 않았다. 잘 들어보니 머리 안쪽으로 직접 음성이 흘러들어오는 방식에 가까웠다.

   “모습을 드러내시오!”

   -너는 이곳의 휴먼인가?

   “당신이 먼저 대답하시오!”

   -지구의 오만한 시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그 순간 스테판은 ‘지구’라는 말에 한쪽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저자는 지구, 아니 인류연합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정작 그러면서도 스테판의 정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분출하는 정신파의 패턴은 휴먼들과 비슷한데? 변형 속성인가?

   “뭐라고 하였소?”

   -누가 널 변형시킨 건가? 내 지혜로도 간파되지 않는군.

   정신파 패턴의 변형이라고? 보통의 휴먼과 다르다? 맥락이 다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불안감이 스쳤다. 설마 이레귤러라는 사실을 들킨 것인가. 긴장감이 곤두섰다. 정체불명의 어두운 목소리를 내는 존재의 정체가 궁금했다.

   “난 그대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기를 원하오.”

   -그래?

   잠깐동안 침묵이 머물렀다. 그러더니 별안간 공간이 진동하면서 여러 속성의 에너지가 뒤섞여 분출되었다. 포탈이 열릴 때와 비슷한 기이한 물리학적 현상이 발현되더니 곧 어둠 속에서 물체가 튀어나왔다. 점차 녀석의 모양이 선명해졌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는 빛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수상했다.

   ‘빛이 없는 곳에서 물체가 보인다고? 그러면 빛에 의한 시각 반응이 아닌 건가? 소리의 경우처럼 이것도 뇌로 직접 정보가 전달되는 것인가?’

   -정답이다.

   마치 독심술이라도 사용하는 듯한 상대방의 대답에 스테판이 다시 흠칫했다. 이윽고 흐릿했던 실루엣이 분명해졌다. 징그러워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것은 스테판이 보아온 형상 중 가장 기괴했다.

   “우욱!”

   가히 수천, 아니 수억 개는 될듯한 촉수들이 형이상학적인 예술을 구현하듯 얼기설기 섞여서 프렉탈 패턴을 자아내고 있었다. 촉수 하나하나가 사방으로 분지되며 생동감 있게 춤을 추는 바람에 징그러운 느낌이 한층 더했다. 구역질을 가까스로 참아낸 스테판이 질문했다.

   “다, 당신은 이름은 무엇이오?”

   -위대한 자의 분열체, 아니, 그 분열체의 분신.

   “뭣?”

   -참고로 모체의 이름은 공개하지 못해. 

   골치 아픈 답변에 스테판의 주름이 좀 더 깊어졌다.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이곳 존재들은 나를 ‘공중부양하는 촉수 물체’, 줄여서 LTO라고 부르더군.

   괴상한 이름을 들으니 좀 더 머리가 아파졌다.

   ‘정체가 뭐지? 영적 존재? 아니면 이종족이나 인공지능?’

   하지만 자신의 이레귤러적 속성을 어렴풋이 눈치채면서도 정작 그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타락 천사는 아닐 가능성이 컸다. 만약 그랬더라면 전지적 영적 세계 관점에서 모든 정보를 알았겠지. 타락 천사라기에는 미약하되 인간들의 눈에는 위대하게 비칠만한 게 뭐가 있을까.

   ‘역시나 인공생명체?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것들과는 급이 다르오.’

   스테판은 LTO의 외모, 흡사 태고의 공포 신화 자체를 형성화시킨 듯한 외양에 비위가 몹시 상했지만, 용기를 내어 정보를 캐보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일행에게 도움이 될만한 단서를 발굴해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혹시 당신을 조종하는 상위 개체, 아니 시스템 중에…, TUNER, 그러니까 조율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이 있소?”

   먼저는 그나마 접해볼 만한 정보부터. 먹히긴 한 것인지 LTO는 고민하였다. 사람이 아닌지라 고민하는 모양도 기괴했다. 아니 사고 활동이라고 불러도 될지조차 의문이었다.

   -내 기억을 뒤져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군.

   ‘내 예상이 틀렸나?’

   윤혁에게 전해 듣기로는 그가 대화했다던 그 알리엔이라는 인공생명체는 무의식중에 조율 프로그램과 접촉해 대화했었다고 했는데? 그럼 모든 이종족이 공통적으로 그것과 접촉하는 것은 아닌가? 애매했다. 스테판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한 가지 더 질문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마음’이 무엇인지 아시오?”

   이번에도 LTO는 고민 후에 대답했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왠지 나의 메모리 데이터베이스 중에 정보가 있는 듯 하다. 오직 그 이름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정보는 없어. 왜 그게 뇌리에 새겨졌는지는 모르겠다.

   의외의 수확이었다. 스테판은 다급히 이어서 질문했다.

   “혹시 ‘보이지 않는 마음’을 만났던 것이오?”

   -나도 모르던 중에 만났을지도.

   아주 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면 단지 그것이 일방적으로 내게 접촉해왔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대가 하는 일은 무엇이오?”

   -지적설계(Intellectual Design).

   “지적설계라고?”

   -생명체의 기초 설계도 정보를 인위적으로 발명하거나 재조합해서 유전적 자가 설계 씨앗을 생성하고 그 씨앗을 행성에 심어 양육한 뒤, 진화하는 과정을 제어하는, 일종의 관리자 역할이다.

   충격적인 단어의 연속에 잠시 스테판은 사고가 정지되었다.

   -이곳의 지적 생명체들은 그래서 나를 ‘신’처럼 여기기도 하더군.

   그것은 명백한 신성모독이었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그들의 문명을 생성한 주체가 나와 내 동류니까. 그들은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해 문명을 구축했다고 믿겠지만, 실상 나와 내 상류로부터 다운로드되어 이식된 것에 불과하지.

   여태껏 거대한 위압감 앞에 위축되었던 스테판의 눈이 용맹한 노기를 맹렬하게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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