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57회 하늘위의 도시들 Ch 55. 공중부앙하는 촉수물체 (5)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17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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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무표정했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LTO를 향해 엄한 경고 조를 내뱉으며 으르렁거렸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생명체 주제에······.”
-호오.
“네 스스로 불법 실험으로 또 다른 종(種)을 만들고 그 종들에게 문명을 심는다고? 방금 네가 떠들어댄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면 그런 뜻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증함의 수준을 넘어선 현실. 그 앞에 직면한 스테판은 역설적으로 겁을 먹기보다는 강력한 담대함을 얻었다. 분노에 의해 유발된 용기랄까.
-너, 조금 전과는 기색이 달라졌군. 제법이야.
상대를 기선제압하고자 LTO는 체격을 더 거대하게 부풀렸다. 하지만 스테판은 미동은커녕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그의 영혼을 움츠러들게 할 불의함은 존재할 수 없었다.
‘충격적인 실태.’
그는 지금껏 지적설계론이니 진화론이니 하는 것들, 곧 지구의 낡은 거짓말에서 파생된 미혹들을 단순히 ‘거짓’의 일부라고만 이해했다. 절대로 현실화될 수 없는 공상적인 허위 이론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그 이론들의 허상을 현실로 이뤄내려고 시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충격적인 것 이전에 이는 명백히 창조주께 도전하려는 교만함의 극치였다.
“네놈이 창조주라고? 네놈 또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가?”
-나는 내 기원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접속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적어도 이 차원 안에서는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괴물의 말에 인간은 코웃음을 쳤다.
“프로그램된 흔적인가? 어리석구나. 그것이야말로 네가 일개 유한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증거다. 게다가.”
스테판은 괴물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였다.
“방금 네 입으로도 자백하지 않았는가. 네게도 상류의 존재가 있다고. 넌 그저 분신체와 조각에 불과하다고 했었지. 아마 너는 이미 구축된 문명과 유전자 체계를 아랫물로 전달하는 통로에 불과하겠지.”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곳에서는 내가 신이나 마찬가지야. 너희가 정의하는 ‘창조주’라는 것이 수행하는 역할을 나 역시 똑같이 수행할 수 있지. 어차피 미약한 미물의 입장에서는 어떤 존재가 조금 더 위대하건 심히 더 위대하건 한없이 커다랗게 보이기 마련이거지. 1 앞에서는 1억이나 무한대나 측량할 수 없는 큰 산인 것은 같다는 말이다.
괴물의 뻔뻔함은 단순한 프로그램된 상태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부모가 자녀를 창조했다는 말 이상으로 한심스러운 답변이로군. 넌 어디까지나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개념, 지식, 아이디어를 모아서 생성된 존재야. 또 네가 하는 일도 기존에 존재하는 재료를 활용해 모작을 행한 것에 지나지 않아.”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넌 설마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건가? 모든 지식과 정보와 재료를 만들어낸 참된 창조주에 대해서 말이야. 물질도, 에너지도, 시공간도, 개념도, 영(靈)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무(無)에서 그 모든 것들을 지어낸 궁극의 절대자를. 최초의 발명자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는가?”
LTO의 반응은 무감각했다.
-잘 이해하지 못하겠군.
“그렇군. 넌 인간들의 손에서 만들어졌을 테니까 영혼이 없겠군.”
그러자 갑자기 괴물은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비웃었다.
-영혼이라? 미안하지만 나에게도 영혼이 있다, 인간.
문득 스테판은 당황하여 주춤하였다.
‘저 녀석······,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각한다? 영성을 인지한다고? 아니, 스스로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인가?’
혼란스러워 하는 인간에게 LTO는 자신이 이곳에서 수천 년간 남겨온 위업들에 관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을 해주었다.
-내 최초의 기억은 이곳에서부터야.
괴물도 분명 자신의 기원이 외부에서부터 유입되었음을 믿었다. 하지만 어떤 사고 제약에 걸린 것인지 아니면 기억이 삭제된 것인지는 몰라도 바깥에서의 삶, 혹은 자기 기원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없었다. 어떤 철학자는 ‘사람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라고 말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LTO의 존재적 시작점은 이 우주에서부터였다. 그 이전에 관한 자취와 기억은 아예 없으니까.
-나를 만들어낸 본체는 나를 이곳, 우주의 뒷면, 곧 ‘흑막공간’에 심었어.
스테판은 자신이 거하는 이 장소의 이름이 ‘흑막공간’이라는 기괴한 영역임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 우주도 일반적인 의미의 우주는 아닐테지.
어쨌건 최초로 심겨진 이후 LTO는 무대의 뒷면인 흑막공간을 수천 년간 배회했다. 그리고 그는 무대 앞면 쪽인 우주에 자신의 그림자를 투영시켰다.
한편, LTO의 곁에는 힘과 지식의 역량에 있어 LTO와 동등하되 역할만 정반대인 파트너가 하나 존재했다. 그 파트너도 줄곧 흑막공간에서만 거주하였다. 그 존재 또한 LTO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 하늘도시에 들어온 바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파트너는 직접 무대 앞면으로 들어가 개입하여 하위종족들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실제로 하위종족들과 접촉한 그 조각들은 신으로 숭상받게 되었다.
-종족마다 내 파트너의 조각들을 부르는 호칭이 제각기 달랐다.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고, 여신이라고도 했고, 대사부라고도 했었어. 영도자라고 하는 종족도 있었고. 아무튼, 놈의 조각, 아니 놈들은 나의 일과는 정반대의 일을 했지. 그들은 자연의 질서를 수호했지.
“자연의 질서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스테판은 기가 차다는 듯 당황하여 외쳤다.
“당신도, 파트너도, 그저 인간들이 만든 재앙이자 오류요. 그저 존재 자체가 죄악이고 실수요.”
LTO는 자신의 의의를 부정하는 스테판의 도발에도 아무 감정반응이 없었다.
-내가 말한 ‘자연의 질서’란 너희가 이해하는 개념과는 달라. 우리를 낳은 모체들이 토의하여 임의로 정해놓은 규칙이야.
“······모체라고?”
여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뒤따르지 않았다.
-모체들이 정한 규칙이 실존하는 자연 법칙과 조화되는지 말든지, 솔직히 난 관심 없어. 내 인식 체계에 새겨진 자연의 규칙이란 모체들이 정한 규칙뿐이니까.
기가 막히는 망발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모체의 규칙이란 게 무엇을 말하는 거요?”
-설명하자면 길군.
그것이 말하는 ‘모체들이 정해놓은 규칙’이란 아래와 같았다.
1단계: 먼저 LTO 같은 종류의 종족이 여러 하위종족의 씨앗을 여러 행성에 뿌려 넣는다.
2단계: 그 씨앗에서부터 깨어난 종족을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한다.
3단계: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하위종족에게 도움을 준다.
4단계: 그러다가 우수한 개체를 발견하면 선택하여 각성시킨다.
5단계: 그리고 각성된 개체를 자신들과 똑같은 존재로 만든다.
대강 이런 프로세스였다.
-이것이 우리가 설정한 순환의 규칙이지.
“······.”
-이 방법이야말로 우주 만물을 태초의 상태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격시킬 수 있는 최적의 알고리즘이지. 또한 안정적으로 우주를 계절처럼 순환시켜 영속할 수 있도록 설정해둔 규율이야.
스테판은 고개를 저으며 상대의 말을 부정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도 그 비슷한 종류의 헛소리를 숱하게 들어봤소.”
그는 지난 몇 달 간의 체험을 회상했다. 지구에서 파생된 불교적 성향을 짙게 머금었던 그 하늘도시, 니르바나의 가르침을 떠올랐다. 그들은 만물이 ‘휠 사이클’이라는 다중우주 안에서 무한히 순환한다는 교리를 가르쳤었다. LTO가 하는 말과 그가 말하는 규칙이란 것도 순환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었다. 이제는 지겨움이 들 지경이었다.
자연의 순환이라는 이름의 미혹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분명 신의 말씀에는 만물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하셨거늘. 누가 그 진실을 감추고 싶어서 거짓말을 시작한 것일까? 장담컨대 거슬러 올라간다면 종국에는 그 가증한 옛 뱀에게까지 닿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죽지 않는다고? 그 거짓말을 믿고 죽어버린 지구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서 행해진 어떤 뱀의 거짓말이 오늘날에는 종교라는 교묘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었다. 우주의 시종(始終) 분명하고 그것이 주님께 붙들려 있거늘, 사람의 인생과 삶과 죽음도 한 번뿐이거늘, 무수한 불쌍한 이들이 환생이라는 거짓말에 미혹되었다. 그들은 ‘영원한 심판’과 영원한 구원이라는 명백한 현실을 일부러 외면하였다.
“당신이 한 말은 사실 내부적으로도 모순되는 자가당착이오.”
스테판은 LTO를 가차없이 정죄하였다. 인간이 빚은 망작 따위를 향해 인격적인 존중을 베풀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가증한 거짓을 확대재생산시키는 추악한 우상의 물건이라면 더욱더.
“임의로 설정해낸 자연의 규칙? 순환하는 우주의 질서?”
예리한 말의 칼날이 LTO를 향해 겨냥되었다.
“그 룰이란 게 실상 제대로 굴러가지도 못할 촌극이라는 사실을 벌써 당신이라는 존재의 역할이 입증하고 있잖소?”
공중부양하는 촉수물체의 말에 따르면 그의 존재 의의는 규칙을 역행하여 자연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뭐하러 그런 비효율적인 역할을 설정했겠는가. 정말로 그것이 자연의 질서라면 굳이 개입할 필요도 없이 자연히 흘러갈 텐데.
“모체들의 룰과 정방향으로 행동하는 관리자들, 그것만으로는 룰이 작동하지 않으니까 역방향으로 행동하는 당신 같은 존재를 만들어냈겠지.”
진화론이 자연의 질서라는 주장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촌극이었다.
“아마 당신네 부류가 하위 종족을 자연적인 원리로 진화하게끔 하려는 실험은 애당초 실패했겠지. 그러니 당신처럼 반칙을 범하여 하위 종족에게 지성과 정보와 문명을 주입하는 자의 개입이 필요했겠지.”
하위종족 스스로 문명을 구축한다고? 하나님의 형상을 제공받지도 않은, 인간처럼 보이기만 할뿐 인간의 창작에 불과할 이종족이 자발적으로 문명을 구축해내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성장한다? 그것이 자연 발생적 진화의 규칙 안에서 순조롭게 진행될 리는 없다. 인위적 조작의 냄새가 풀풀 났다.
‘가당치도 않은 장난이로군.’
아마 인류연합은 바깥 세계의 인간계 문명을 데이터화하여 모종의 가상 세계관을 프로그램화했을 것이다. 그 뒤 저 가증스러운 이생명체를 매개체로 그 데이터를 전달하되 스스로를 이종족이라고 믿는 생체 기계 군집 내부에 주입함으로써 그들이 문명을 이루었다고 착각을 유발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화로서 그 경지에 당도했다고 믿게 되었으리라. 이것이 인류연합의 실험에 담긴 목적이었으리라.
스테판은 추측만으로도 LTO 자신마저도 금제로 인해 깨닫지 못한 진실에 곧장 당도했다. 그것은 영적인 통찰력에서 비롯된 발상력이었다.
-너는 참으로 신기한 생명체로군. 보통 휴먼과는 사고방식이 달라.
LTO는 전혀 분노를 드러내지 않은 채 스테판을 응시했다.
-네 기이한 특성을 좀 더 연구해볼 겸, 여기에 가둬두고 관찰하려 해.
놈의 꿈틀거리는 촉수들이 뭉쳐 비웃는 입의 모양을 자아냈다.
-네게도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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