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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5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6. 승천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20 | 회차평점 0 0

 

 

 

 

 

Chapter 56. 승천

 

 

 

 

 

 

 

   눈을 떠보니 그녀의 몸은 보랏빛 구형 공간 안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동시에 강렬한 고통이 머리를 엄습했다. 무언가 몸 안으로, 아니 인형 몸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력한 힘이었다.

   ‘익숙해.’

   1차 여행이 종료되던 시점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도 인형 몸체가 강제적으로 외부의 힘을 받아들여 변형을 일으켰지. 이번에는 그 힘보다도 훨씬 더 짙고 선명한 힘이었다.

   “넌 누구지? 인간이 아닌데 왜 인간의 정신을 담고 있는 건가?”

   어디선가 기계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디아는 황급히 소리의 방향을 응시했다. 체구가 매우 큰 실루엣이 하나 보였다. 전체적인 형태는 인간이었으나 갑옷인지 생체조직인지 외부무장인지 외골격인지 모를 애매한 껍질이 뒤덮고 있어서 살갗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인간 같기도 했고 괴물 같기도 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네가 내 질문에 먼저 답해야지?”

   사람 골격을 한 그자가 루디아에게 다가와 턱을 움켜쥐었다. 외골격으로 뒤덮인 딱딱한 손톱이 피부에 닿자 섬칫한 기분이 들었다. 보통 몸이었다면 공포에 질렸겠지만, 이상하게도 인형 몸체에 흐르는 외력 때문인지 묘한 감각이 두려움의 자리를 대신했다. 굳이 표현한다면 전투 본능이란 표현이 적절하리라.

   “뭐야?”

   섬뜩한 감각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그자는 루디아에게서 즉각 손을 떼고는 심장 쪽을 향해 손을 내리찔렀다. 두터운 냉병기나 마찬가지인 그자의 팔이 인형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루디아의 머릿속에는 냉정함만 흘렀다. 아무런 고통도 데미지도 없었다. 그녀는 태연히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손을 붙잡았다. 본능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차렸다. 아니, 인형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다음 순간, 어떤 현상이 발생하였다. 가슴을 찌른 자와 루디아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찌른 자는 재빨리 몸을 내빼어 뒤로 물러섰다. 이내 루디아의 인형 몸체가 점점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세포 조직 하나하나가 변형을 일으켰다. 동시에 인형의 눈 색이 변하면서 미지의 에너지가 솟구쳤다.

   한참을 지난 뒤에야 루디아는 맨정신을 되찾았다. 조금 전까지 인형을 통해 자신에게 간섭하던 영향력은 더 감지되지 않았다. 없어졌다기보다는 옅어진 것이겠지만. 루디아는 자신을 찔렀던 자를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그자의 본질이 선명하게 감지되었다. 외골격으로 칭칭 둘러싸인 겉모습 너머로 맨 본체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혹시 당신은 인간이신가요?”

   루디아는 조심스레 질문했다.

   “잘 모르겠군. 어려운 질문이야. 내게는 여러 기억이 혼잡하게 섞여 있거든. 휴먼의 기억 파편도 있는 것 같다만……, 그보다는 휴먼의 정보를 흡수한 정보생명체라고 보아야겠지? 나도 내 정체성이 혼란스럽군.”

   ‘정보생명체?’

   그러고 보니 언젠가 윤혁이 그런 언급을 했었던 것 같다.

   “정보생명체란게 도대체 무엇인지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일단 저는……, 이곳 출신이 아니니까요.”

   자신을 정보생명체라고 소개한 인간, 아니 인간 모양 생물은 잠시 고민하였다.

   “그렇군. 실패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로 차원 너머에서 불러낸 건가?”

   “혹시 저를 소환한 존재가 당신이신가요?”

   “맞아. 난 초자연적인 현상을 기대했거든. 그래서 우주의 틈새가 벌어지는 순간을 포착해서 술식을 발동했지. 하필 그때 네가 소환되었어. 생김새나 행동은 일반 휴먼과 똑같았는데 이상하리만큼 기운이 색다르게 느껴졌지.”

   마냥 숨길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일단 저는 인간이 맞아요. 단지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기계 단말기에 잠시 접속했을 뿐이죠. 이 몸은 제 본체가 아니예요.”

   그러자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래서 그 몸체를 빌려 내 힘을 복제해 머금을 수 있었던 건가?”

   루디아는 상대가 말하는 바를 바탕으로 상황을 파악해보려 애썼다.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기술은 한번도 본 적 없었는데. 게다가 내 능력으로도 원리의 분석이 불가능하다니……. 기이하군.”

   인간을 닮은 그 생물은 그제야 자기 자신을 소개하였다.

   “에슈타르라고 불러라. 정보생명체가 이름을 소유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나는 좀 예외적인 경우야. 기억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줄곧 그렇게 불려왔어.”

   “……네.”

   이어서 정보생명체에 대한 루디아의 질문에 에슈타르가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우리의 생물학적, 정보학적 존재 양태는 독특해.”

   정보생명체. 총 1,024개의 독립적인 바이오스피어로 구성된 이곳 우주의 기괴한 집단. 이들은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는 관습이 없기에 기원이 알려져있지 않다. 유일한 단서는 ‘공중부양하는 촉수 물체’라고 불리는 신적 존재였다. 현존 정보생명체들은 공통적으로 LTO의 영향력으로 인해 각성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어쩌면 정보생명체들도 처음에는 그저 일반적인 동물 혹은 평범한 지적 능력을 갖춘 생명체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각성한 후에는 종(種)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어. 스스로 유전정보를 재단하고 변형하여 완전히 새로운 개체를 생성해내어 집단 내 데이터베이스에 첨가할 수 있게 되었거든.”

   만약 종과 종을 구분하는 기준이 ‘유전정보’라면, 정보생명체는 하나의 종이라는 카테고리로는 정의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의 정보생명체 군집은 수없이 많은 다양한 유전정보 세트를 동시에 보유한, 일종의 데이터베이스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하나의 슈퍼컴퓨터가 어머니 노릇을 하여 온갖 동물과 식물과 미생물을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 찍어내는 것과 비슷했다.

   “생체 공장과 비슷하지.”

   개체만 만들어낸다면 그나마 정상 축에 들었겠지. 나중에는 함선, 요새, 인공위성까지도 생체조직만을 활용해 생산해내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임의로 세포 블록을 연결하여 나노머신을 제작하거나 커다란 구조물을 만드는 일마저 가능해졌다. 심지어 생체 장기를 자동화 설비처럼 개선해서 금속 기계나 장비를 생산해내기도 했다. 끝내 정보생명체들은 휴먼연맹이나 우주연맹의 문명화된 종족들과 비교해도 과학 기술 측면에서 밀리지 않게 되었다.

   “정보생명체라는 군집체 뒤에는 형상 없는 소프트웨어가 있어. 배후에서 진화를 촉진하고 이끄는 무시무시한 망령이지. 별도의 본체가 없으니 그 소프트웨어가 곧 정보생명체 사회의 본체야. 하드웨어 개체들은 꼭두각시나 단말기에 불과하지.”

   각기 다른 중앙 소프트웨어의 통제를 받는 1,024개의 정보생명체 군집은 그간 우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외계 종족을 침공해왔다. 때로는 전멸시킨 뒤 그것들의 시체로 실험을 했으며, 때로는 과학 기술의 산물을 빼앗아 소프트웨어 속에 새겨넣었다. 때로는 통째로 먹어치워 자신들의 유전자 풀을 다양하게 확장했다.

   이렇게 군집들은 점점 많은 생체 정보, 유전자 정보, 기술 정보를 획득하면서 다양성을 늘려나갔다. 이런 팽창에 힘입어 때때로 하나의 군집이 여러 군체로 분화하기도 했다. 각 군체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졌다. 종종 군체에서 다시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 새로운 군체를 이루기도 했다. 그때마다 기존 지도자가 새로운 군체의 지도자를 만들어냈다. 생성된 군체들은 우주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보생명체들이 각성과 계몽을 시작했지. 자신들을 지배하는 본체인 소프트웨어, 그것이 LTO라는 녀석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 거야. 그 뒤로 하나둘씩 그 지배를 거부하는 개체가 나타났어.”

   여전히 복종하려는 이와 복종을 거부한 이. 두 부류 사이에서 치열한 대립과 격전이 벌어졌다. 종종 복종을 택한 군집 내에서도 반란이 벌어졌다. 독립을 택한 군체도 과도하게 변형되다 보니 원래 독립했던 의도와 다른 식으로 뜻이 변질된 무리도 생겨났다. 때로는 한 군체가 다른 군체를 흡수하는 일도 생겼고, 의견이 다른 두 군체가 만나 한쪽이 다른 쪽을 세뇌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런데 LTO의 제어로부터 다수의 정보생명체가 벗어나자 곧장 대대적인 혼돈이 이어졌어. 고삐 풀린 포악한 괴물들이 타 종족을 마구 침공하면서 학살을 일삼았지. 휴먼 족과 조우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어떤 문명도 정보생명체라는 시련을 온전히 이겨내지 못했다. 아무리 무력을 써서 일시적으로 제압해도 다시금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아메바처럼 증식하는 괴물들이었으니 감당할 겨를이 없었다.

   정보생명체는 전염병이자 자연재해 그 자체였다. 그들에겐 악의도 선의도 없었다. 마치 괴팍하고 불친절한 자연 질서를 현현 시켜놓은 양 본연의 임무만 수행하되 무자비하게 하였다. 그래서 제아무리 발전한 문명도 정보생명체와 마주하면 공포에 질리기 일색이었다.

유일한 예외가 휴먼 계열 종족들이었다.

   “그들은 대체 어떤 점에서 달랐던 거죠?”

   루디아가 궁금증에 묻자 에슈타르가 되물었다.

   “그거 알아?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순수한 악도 순수한 선도 아니야.”

   “그거야 당연한 말 아닌가요?”

   “하지만 깊게 파고 들면 복잡한 이야기지. 정보생명체, 휴먼 계열, 여타 지성체 종족, 이 세 부류는 그들 속에 선과 악이 혼재되어있는 방식이 각각 달라.”

   에슈타르는 차근차근 하나씩 들어서 설명했다.

   “먼저 정보생명체, 이들의 각 개체들엔 선의도 악의도 없어. 그저 우주적인 법칙을 자연 만물이 따르듯, 자신들을 지배하는 소프트웨어의 철학에 충실하게 움직일 뿐이지. 죽음이라는 자연현상, 혹은 부패라는 자연현상처럼. 차이가 있다면 원래의 자연현상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우주적 섭리랄까.”

   인위적이라는 용어가 적용되는 시점에서 그걸 섭리라 부르는 건 어불성설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들었지만, 루디아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일단 워낙 복잡한 이야기인지라 따라기가만 해도 벅찼다.

   “두 번째, 고도의 문명을 일궈낸 지성 생명체 종족들, 그들은 개개인이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지. 그중 일부는 심지어 스스로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고 있어.”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에슈타르는 알기 쉽게 비유를 들었다.

   “어렴풋이 알잖아. 네 안에 새겨진 ‘절대적 기준의 흔적’을 말이야.”

 

   설마 창조주의 형상을 말하는 것인가.

 

   “영혼이란 그 ‘절대적 기준의 흔적’을 향해 이동하려는 시곗바늘을 의미해.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는 개체들은 내면에 그 시곗바늘을 지녔지. 시곗바늘이 놓인 방향을 ‘절대적 기준의 흔적’ 쪽으로 일치시킬 수도 있고 어긋나게 할 수도 있지. 그 선택력을 다른 말로는 자유의지라고도 하지.”

   놀랍게도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정확히 같은 내용이었다. 형태는 달라도 만들어진 이종족에게도 그런 룰이 적용된다는 말인가. 루디아는 매우 궁금해하며 다음 대목을 들었다.

   “그래, 이종족들에게도 나름대로 ‘절대적 흔적’ 비스무리한 법칙이 내면에 존재해. 그들은 그것을 삶의 궁극적 목표, 존재의 의의라고 부르지. 하지만 휴먼과 이종족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종족들은 자신에게 심어진 ‘절대적 흔적’을 분명히 인지한다. 그리고 항상 그것을 추구한다. 그들의 영혼, 아니 내면의 시곗바늘은 ‘절대적 흔적’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절대적 흔적’이란 게 각 종족마다 다르고, 개체마다 다르며, 더 나아가 불완전하고 상대적이고 잘 변질한다는 데 있었다.

 

   반면, 휴먼 계열 종족은 ‘절대적 흔적’을 감지하는 능력이 상당히 미약했다. 심지어 자신 속에 그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이들도 많았고 어렴풋하게는 알아도 그것을 따르지 않으려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요컨대 휴먼의 시곗바늘은 항상 절대적 흔적에서 어긋난 상태로만 놓여 있었다.

 

   설명을 다 들은 루디아는 그 의미를 상고해봤다.

   ‘인간에게는 참된 영혼이 존재해. 그리고 참 하나님의 형상도 존재해.’

   에슈타르가 말하는 시곗바늘과 절대적 흔적이란 영혼과 하나님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겠지. 엄연히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존재하나 전적으로 부패한 죄성에 물들어있기에 시곗바늘이 늘 절대적 기준의 흔적에서 반대 방향으로 어긋나 있는 것일 테고.

    ‘하지만 이종족들은…….’

   만들어진 인공생명체일 뿐이니 진정한 영혼이 없으리라. 나름 영혼이나 영성을 흉내내어 인공적으로 ‘절대적 기준의 흔적’을 흉내 내긴 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임의로 만든 법칙이리라. 말로는 ‘절대적 흔적’이라 칭하면서 정작 본질은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또한 만들어진 이종족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기에 시곗바늘이 흔적에서 벗어나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겠지. 만들어진 자유의지, 그럴 듯해 보이는 유사품으로서의 자유의지는 정의되지만, 에슈타르가 말한 이종족의 자유의지란 가짜이리라.

   “혹시 너는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인가?” 

   에슈타르는 루디아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질문했다. 루디아는 일부러 침묵하며 대답을 미루었다. 사실 영적 혜안에 힘입어 이미 해답은 알고 있었지만, 에슈타르가 자신의 말을 오해하기를 원치 않았다.

   ‘에슈타르는 인간일까? 아니면 정보생명체일까?’

   나름 영적 통찰력이 뛰어난 것을 보면 확실히 인간으로서의 특성이 강하게 엿보인다. 허나 아직은 불확실했다. 현 시대에는 인격을 모방해낸 인공품들도 많이 존재하니까. 괜히 알지도 못하는 채 오판하여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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