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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6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6. 승천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24 | 회차평점 0 0

 

 

 

 

 

*

 

 

 

 

   지구식 하루 계산법 기준으로 약 스무날이 지나는 동안 연합군과 괴물 LTO의 권수들 사이에서는 우주적인 규모의 대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각기 다른 좌표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윤혁과 리온. 두 사람 다 불안감이나 공포에 휩싸인 것은 아니었으나 마음은 썩 편치 않았다.

   다행히 기함들의 전투력이 워낙 강력했기에 침몰할 걱정은 적었다. 그리고 물리적인 충격 또한 대부분 중화되어 우주선 내부에는 닿지 못했다. 때문에 싸움의 여파가 직접적으로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귀도를 연상시키는 전장의 풍경이 바깥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그걸 지켜보는 눈이 편할 리는 없었다. 만에 하나 일이 커지더라도 하늘도시의 시스템이 개입은 하겠지만, 모든 변수가 완벽하게 통제되지는 못할 수도 있다.

   “언제든 위기와 맞닥트릴 가능성은 고려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휘말리는 방식일 줄 몰랐는데. 차라리 공개적인 순교라면 체면이라도 살았을 텐데.

   전에 윤혁은 인류연합 소속 함대가 은하계 바깥의 반역자 군단을 압도적으로 휩쓸어버리는 장면을 보았었다. 그때는 워낙 일방적인 승기의 싸움이라 전혀 긴장감이 들지 않았건만 이번에는 양쪽의 격차가 생각보다 적었다. 기함은 파괴될 가능성은 적겠지만 승리를 함부로 보장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그리고 리온은 그와 같은 염려에 더해 불편감까지 느끼는 중이었다.

   “우주는 영 체질에 안 맞네.”

   사실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구라는 비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활동해왔던 리온은 공상과학 같은 이 장면이 몹시 낯설었다. 거대한 함선들이 섬광의 권능을 발산하며 온 공간을 현란한 충격파와 기괴 에너지와 섬광으로 수놓는 장면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한방 한방의 일반 포격마저 행성 파괴용 핵폭탄을 상회하는 위력이었다. 더욱이 그런 공격마저 손쉽게 막아내는 함선들의 방어력은 한 층 더 심히 당혹스러웠다.

   ‘장차 도래할 아마겟돈 전쟁의 규모는 얼마나 섬뜩할까.’

   시시각각 위기와 마주한 함대 속에서 리온과 윤혁은 줄곧 마음을 졸였다. 그렇게 전투 개시 후 20일 정도 지나자 승리의 향방이 한 쪽으로 기울었다. 마침내 연합군이 LTO의 하수인들을 격퇴했다. 적은 파괴당하거나 달아났다.

   정보생명체들은 적의 시체를 해부하여 정보 분석을 시작했고 휴먼연맹과 우주연맹도 나름대로 노획물로써 적군의 기술력을 획득할 겸 함선에 설치된 이동식 연구실 안에서 획득 표본들을 연구했다.

   한편, 루디아는 전투에 참여하는 척하면서 분주하게 함대 사이를 왕래했다. 그녀는 동료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위치를 찾아다녔다. 너무 함선 수가 많아서 위치를 지정할 수는 없었으나 대략적인 방향 확인은 가능했다. 다만, 전투가 너무 치열했고 함선이 빠르게 움직이는 통에 가까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 좋았으나 한 가지 우려가 스쳤다.

   ‘그런데 왜 스테판 씨의 기운은 안 느껴지지?’

   불길한 직감이 들었다.

 

   한편 그녀가 분주히 거니는 중, 승리를 쟁취한 연합군은 마침내 LTO의 좌표를 추적해냈다. 군대는 놈이 도사리고 있는 ‘흑막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공성전을 개시했다. 연합에 소속된 종족들은 각자의 특화 비기들을 총동원해 하나로 융합했다. 그 결과로 흑막공간으로 강제로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뚤렸다. 공성전은 열흘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지겨우리만큼 오래 지속되었고 틈새는 매우 천천히 벌어졌다.

   끝끝내 궁지에 몰린 LTO는 실체를 드러내었다. 이곳 우주의 역사 속에서 간혹 분신과 아바타를 통해 접촉해온 바는 있었지만, 이렇게 본체를 직접 드러낸 일은 처음이었다.

과연 그 괴물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앞에 높여있던 선발 함대가 괴물의 손짓 한 번 만에 가루가 되었다. 처절한 광경이 펼쳐졌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 함대는 영웅과 최고 성능의 부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제야 루디아는 희미하게나마 스테판의 기운이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LTO라고 불리는 괴이 생명체 근처에 봉인된 반투명 구체가 하나 둥둥 떠 있음을 눈치챘다. 환상계 병사 한 기가 근처로 다가갔다. 하지만 LTO가 사방으로 분사하는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접근하기조차도 어려웠다.

   -나약한 벌레들이 끝내 발톱을 드러냈군.

   LTO는 전쟁에 참여한 지적 생명체 모두의 뇌리로 텔레파시를 발산했다.

   -절망을 느끼면서 패배를 마셔라. 곧 차라리 죽여달라고 외치게 되리라.

   그들을 포획해서 자신의 실험체로 삼겠다는 선언이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겠다는 말에서부터 자신의 힘에 대한 압도적인 자만심이 느껴졌다. 과연 LTO는 절망적이리만큼 강력했다. 함대 전체가 포격을 가한 끝에야 가까스로 LTO의 체력을 반쯤 깎아내었으나 여전히 격퇴하진 못했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도리어 연합군 측이 LTO의 신비한 힘에 휘말려 봉인 당할 지경이었다.

   “네 상대는 나다.”

   에슈타르가 단독으로 LTO 앞에 섰다. 일개 생명체 하나가 자신을 쓰러트리겠다고 나서는 꼴을 본 LTO는 크게 비웃음을 터뜨렸다. 한심하군. 연합군 전체의 힘을 모아도 겨우 저항하는 것이 고작이거늘.

   -뭘 믿고 그렇게 기세등등한 거지?

   “혼자 상대하고 싶군. 너와 맞부딪히면 실타래처럼 얽힌 내 머릿속의 비밀을 해독하고 깨달음을 얻게 될 듯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에슈타르는 물리적 격돌 대신에 정신 대결을 택했다. 그녀는 LTO의 막강한 텔레파시 생성 기관에 바이러스처럼 침투해 정신파를 쏘아붙였다. LTO는 모기에 물린 듯 불쾌한 감정을 터뜨렸다. 이내 그것은 에슈타르를 짓뭉개기 위해서 물밀 듯한 막대한 사념파를 쏟아부었다. 그녀가 매몰되기를 기대하면서.

   -격차가 느껴지는가?

   일대 다수 전투로 힘이 소진된 LTO였음에도 역시 일개 개인이 맞상대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웠다. 에슈타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외부무장은 정신파와 사념파의 충돌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분자 단위로 분해되었다. 자연히 그녀의 외골격 안에 숨겨진 맨피부가 서서히 드러났다.

   “……고맙군.”

   신음하던 중 에슈타르가 나직이 혼잣말을 내뱉자 LTO는 당혹감을 느꼈다.

   “너와 정신적으로 접촉한 덕에……, 마침내 깨달았어.”

   잠시 후, 그녀가 내뿜는 아우라가 반전되었다. 신체적 구조나 육체 능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겁에 질린 쪽은 LTO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에슈타르의 이질적인 기운을 느낀 LTO가 거대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뭐냐……, 네게서 왜 그 이질적인 힘이?!

   “드디어 깨달았어. 너는 지적설계자의 행세를 하고는 있지만 실상 창조자도 뭣도 아닌 버러지였구나. 역시 네놈은 조물주도 신도 아닌 그저 나와 같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았군. 아니, 오히려 내 동족이 너를 창조해냈으니 항렬 상 내가 더 창조주에 가깝다고 해야 하려나.”

   에슈타르는 희열에 찬 기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녀가 말하는 동족, 그것은 휴먼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고, 정보생명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위에 서 있는 관리자. 그녀는 마침내 자기 정체성을 발견했다.

   “이제야 나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휴먼의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인간들을 관리하는 이곳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말이야. 아울러 네놈이 시작된 기원도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그녀를 감싸던 외골격이 산산이 부서지며 벚꽃잎처럼 흩날렸다. 찬란한 인간의 나신이 드러났다.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아름다운 인체였다. 정보생명체의 기운이라고는 단 한 가락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동맹군들마저도 갑작스럽고 이색적인 그 기운의 발산 앞에 경외감을 느꼈다.

   “루디아의 질문에 드디어 답해줄 수 있겠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 에슈타르.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더욱 높은 격의 존재로 승천하였다. 인위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각성 따위가 아닌, 인간 본연의 자연적 각성, 곧 승천을 이룩하였다.

   -잠들어라!!

   분노한 LTO가 수천 개의 촉수를 거대화하여 에슈타르를 가격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도리어 거대한 초능력을 발산해 촉수들을 모조리 비틀어 꺾어버렸다. 윤혁과 리온, 스테판은 곧 익숙한 기운이 사방으로 방출되는 것을 느끼고는 에슈타르의 쪽을 일제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스테판을 감싸던 봉인 구체가 충격파로 인해 부서졌다. 스테판이 진공 상태에서 질식하기 직전에 루디아가 보낸 환상계 병사가 재빨리 그를 낚아챘다. LTO는 근처에서 뻔히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못할 만큼 궁지에 몰려있었다.

   “이만 끝내자.”

   에슈타르는 거대한 권능으로 LTO를 갈기갈기 찢어서 소멸시켰다. 끔찍한 비명을 머금은 괴물의 단말마가 텔레파시 파동의 형태로 우주 전역으로 울려 퍼졌다. 이 순간만큼은 누가 괴물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저 힘! 설마!”

   윤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니르바나, 요가플레임, 네오테라에서 줄곧 보았던 초능력 시스템과 같은 성질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번 힘은 그때 주민들이 사용했던 것과는 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 차원이 달랐다. 힘의 운용 규모나 정밀도도 몇 단계 이상 상승했지만, 무엇보다도 힘의 본질을 이성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한 뒤, 직접 연산해서 사용하는듯한 기색이 돋보였다.

   ‘마치 초인이 초능력을 사용한다면 꼭 저런 느낌일까?’

   기함이 초능력의 충격파로 붕괴했다. 동시에 한 기의 환상계 병사가 윤혁의 몸을 낚아챘다. 리온도 거의 같은 시점에 구조되었다. 스테판, 리온, 윤혁을 잡아챈 세 환상병들은 루디아의 명령에 반응하여 그녀 쪽으로 모여들었다. 주변에는 포격, 섬광, 뇌전, 공간의 진동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그 여파는 환상병들의 몸에 닿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현실의 물체와 허상을 맞바꾸는 기능 덕이었다.

   -끄아아아악.

   와중에 분자 단위로 처절히 해체되어가는 LTO. 놈은 죽음 앞에 직면하자 비로소 자신의 본질에 대한 정직한 정보를 어렴풋이 기억케 되었다. 아울러 자신이 무엇을 수행했어야 했는지 즉각 깨달았다. 서둘러 모체에 넘겨야 할 중요 정보가 있는데 하필이면 싸우는 통에 힘들게 잡아둔 ‘그 인간’이 도망치고 말다니!

   이판사판으로 LTO는 마지막 한 줄기의 힘을 짜내어 그 인간, 곧 이레귤러에 대해 면밀히 기록했던 데이터를 압축하여 ‘비상 전송 시퀀스’를 발동시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죽기 전에 반드시! 다음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LTO는 흔적도 없이 우주 먼지로 화하였다. 에슈타르는 쓸쓸함과 상쾌함을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반짝거리는 빛의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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