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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6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7. 뿌리 원정대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28 | 회차평점 0 0

 

 

 

 

Chapter 57. 뿌리 원정대

 

 

 

 

 

 

 

 

   난데없는 상관의 친절한 대접에 진은 조금 어색한 기분이 되었다.

   “마실래?”

   저럴 분이 아니거늘.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나.

   “……커피로 하겠습니다.”

   “취향 참 소박하군.”

   카이젤은 곧바로 허공에 잔과 커피를 소환했다. 아니 사실상의 생성이라고 해야 하려나. 어쨌건 그는 주전자에 담긴 커피를 잔에 나눠 따르면서 마침 하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번에 제시한 기술 교류는 제법 흥미로웠다. 지적설계종에 관련하여 네 견해와 미래 예측을 들어볼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 훌륭한 참고가 되었어.”

   “이미 아버지께서도 다 알고 있었던 일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가끔 다른 안목에서 바라본 바를 참고할 필요가 있거든. 이미 정답을 아는 처지에서 수행한 사고(思考), 그리고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유추한 사고 프로세스는 성질 자체가 다르니까.”

   그가 굳이 지력이 뒤떨어지는 부하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지력이 부족한 우리의 쓸모란 딱 거기까지로군요.”

   “뭐 그렇게까지 자책할 필요까지야.”

   카이젤은 피식 실소하였다.

 

   오늘의 소박한 만남은 사실 회의를 위한 자리였다.

   최근에 진은 유리스가 전해준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지적설계종이 빚어낼 미래에 관해 연구를 수행하였다. 어느 정도의 결과물이 도출되자 카이젤과 직접 마주하고 정보교류를 하기 위해 제로원을 방문했다.

   의외로 카이젤은 평상시와는 달리 꾸중 한 번도 없이 진의 발표를 너그러이 경청하였다. 심지어 자기 생각에 대해 상대의 견해를 묻기까지 하는 등 수평적인 태도를 제법 견지했다.

   ‘학문적 토론에서는 항상 권위적이셨던 분인데…….’

   진의 이런 어리둥절해하는 생각을 훤히 읽은 카이젤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점잖게 굴었다. 그는 커피 향이 물신 풍기는 잔을 고고히 입가로 가져다 대며 다시금 화두를 꺼냈다.

   “아, 그리고 유리스가 수행한 연구도 봤다. 흥미로운 관점으로 접근했더군. 항상 인간 이외의 존재를 압도하여 찍어누르기 좋아하는 나와는 다른, 그 아이의 사고방식이 담기니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결과물이 얻어졌어. 직접적인 쓸모는 많지 않겠지만 어쨌건 좋은 영감의 근원이 되겠어.”

   “지적설계종과의 대화, 그리고 설득……, 다양한 버전으로 개량만 한다면 추후 무궁무진하게 응용될 소지가 충분할 겁니다.”

   “네 조언도 담아 듣지. 아무튼, 유리스의 성장이 기대되더군. 너도 그렇고.”

   진에게는 아버지의 나긋나긋하고 자비로운 말투가 어색했다.

   “많이 성정이 유해지셨군요.”

   “뭐, 그런가?”

   “혹시 가족들의 영향입니까?”

   “잘 모르겠군. 아직 그들은 나를 울타리 안에 받아주지 않던데…….”

   진은 혹시라도 자신이 주제넘은 질문을 하지 않았나 싶어 무서워했다. 다행히도 그것은 기우였지만 제발 저리듯 그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제일 궁금해하던 질문의 해답 쪽을 향해서 직접 다가갔다.

   “지적설계종에 대해서는 이미 아시고 계셨습니까?”

   “흠, 네 생각에는 어떨 것 같지?”

   “제 가설은 이렇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비밀리에 칼리드의 연구보다 몇 단계 이상의 앞선 수준까지 성과를 마련해놓으셨을겁니다. 그 후 모종의 목적으로 칼리드를 이 방향으로 일하도록 부추겼다고 생각합니다.”

   “눈치가 빠르긴 빠르군.”

   의외로 카이젤은 재빨리 자백하였다.

   “근거도 파악했나?”

   “나름 열심히 수색했건만 이미 칼리드가 숨겨둔 지적설계종 저장 탱크가 전부 다 털렸더군요. 열다섯 탱크 전부 다 말이죠.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미 인류연합 정규군 함대가 그것들을 나포해서 봉인했더군요.”

   그렇게 빨리 대응했다는 말은 곧 카이젤의 손바닥 안에서 지적설계종들이 놀아났다는 의미. 애당초 그것들은 그의 계획을 벗어난 존재일 수가 없었다.

   “인류의 작품은 그 어느 것이든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렇다면 왜 지적설계종의 제작을 허락하셨습니까?”

   카이젤은 진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주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전부 다 털어놓기에는 다소 민감한 주제도 섞여 있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교활한 속내를 투명하게 밝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적당히 부분부분 설명해야겠군.’

   진실을 말하되 중요치 않은 부분만 드러내는 식으로.

   “이종족……, 최근 들어서 과도한 수준까지 진화하고 말았지.”

   “네, 맞습니다.”

   “늘 궁금했어. 틀에 박힌 기계들이야 마음 없는 정신뿐이니 기계 율법이건 기계 신의 현신이건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제어 가능해. 문제는 기계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이야.”

   이는 사실 초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알려진 바였다.

   “인공생명체, 그리고 온갖 다양한 지성체들……, 최근에는 유닛 카테고리의 다양성이 지나치게 증대된 나머지 상식의 틀마저 말아먹는 엄청난 수준의 괴물들이 무수하게 창조되고 양산되고 있어.”

   과연 카이젤의 말대로 이미 이종족의 다양성은 상식의 상한선을 넘은 지 오래였다. 나아가 현재는 기계와 이종족이라는 두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마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양쪽이 뒤섞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드웨어의 성질이 너무도 다양해져 버렸다. 구성 물질, 조립 알고리즘, 작동 물리 기전까지 전부.

   게다가 상위 차원을 조작하는 기술과 더불어 초미세 범위의 ‘펨토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들의 발명품은 3차원을 넘어선 범위로까지 진화해버렸다. 만일 그것들이 스스로를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발명품을 건설해낸다면 걷잡을 수 없는 문명의 폭주가 발생할 것이다. 과연 그것을 감당할 여력이 있겠는가.

   “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존재들을 철저히 지배할 생각이다. 정신과 마음을 넘어 육체까지 전부 다 말이야. 창조자가 그것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창조자 행세를 할 자격이 없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이데아를 통해 어느 정도는 그 꿈을 실현해내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종족을 완벽하게 지배하지는 못하지.”

   만들어진 존재라 해도 본연의 성질 자체가 확연히 다르니까.

   “현재로서는 임시방편을 써서 제어하는 수밖에 없죠.”

   “그래,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태어날 발명품들이 전부 다 제어가 가능하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는 데 있지. 그래서 궁극의 해답이 필요했어. 장차 등장할 인간의 피조물, 아니 그 피조물의 피조물들까지 포함해 모든 잠정적 존재들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답 말이야.”

   진은 상대가 저리도 자랑스레 말하는 이유를 올바로 읽어냈다. 카이젤의 뉘양스로 미루어 보아 그는 분명 그가 말하는 해답을 이미 어느 정도 완성 궤도로 끌어내었다. 진은 이를 눈치챘으나 굳이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마키아밸리즘의 대가인 카이젤은 끝내 비밀로 덮어둘 것이 뻔했다.

   “그 해답을 완성하려면 모든 잠재적 예외를 남김없이 포괄하여 색출해야만 했어. 하지만 지금도 이토록 발명품이 다양하게 나타나거늘 장래에 등장할 것들까지 어떻게 다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도 불가능해.”

   “그러면 지적설계종이란 역시……, 그 미래에 등장할 발명품들을 모조리 점검하여 미리 위험성이 짙은 ‘예외적 대상’들을 모조리 색출하는 수단입니까?”

   “맞아. 그게 핵심적인 이유지. 자세히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지적설계종 시리즈는 벡터로 비유하면 ‘기본 벡터’와 같아. 기본 벡터 셋이면 3차원의 모든 벡터를 구현낼 수 있지. 그처럼 지적설계종 세트를 완성하면 그들을 조합해 장차 등장할 마음 체계들의 발생 가능성을 한꺼번에 내다볼 수 있지.”

   역시나 구체적인 원리는 드러나지 않은 채 진 앞에서 감춰졌다. 하지만 말하려는 바는 명백했다. 카이젤은 미리 모종의 우두(牛痘)를 인류에게 놓음으로써 장차 나타날 천연두에 대비하였다.

   원래라면 하나의 백신은 한 종류의 아형에만 대비할 수 있는 법. 그러나 지금의 그가 보인 기행은 비유컨대 두어 종류의 백신을 중복 투여함으로써 앞으로 나타날 모든 가능성의 변종 바이러스에 만능 면역을 획득한 셈이었다.

   물리적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수학적 기적. 그러나 지적설계종이라는 ‘기본 벡터’들은 이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저 괴랄한 카이젤에게만 허락되는 창의력인 동시에 그만이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언터쳐블 전략이었다.

   “그렇군요. 그러면 칼리드를 동원한 것은…….”

   “나와 다른 관점이 하나 필요했거든. 난 늘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만큼만 실험하기에 도박을 과감히 시행할 엄두는 못 내지. 반면, 칼리드는 내가 뒷수습해줄 것을 굳게 믿고 있기에 작게나마 도박을 벌일 용기를 낼 여건이 되지.”

   진은 속으로 놀랐다. 과연 이것도 유리스가 예상했던 바와 거의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몰래 녀석을 부추겼지. 직접 명령은 내리지 않은 채 아이디어와 암시만 주었지만. 나아가 일라이저를 뒤에서 부추겼지. 칼리드 녀석과 손을 잡도록 유도했고.”

   “신수왕이라. 왜 로스트 엠페러들 중 하필 그를 택하셨습니까?”

   “성향상 그 둘이 가장 잘 맞으리라고 여겼으니까.”

   물론 그것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다. 카이젤은 신수가 지닌 괴이 속성을 늘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수들이 초자연과의 연접 행위가 가능하다는 물증이 종종 속출되었기 때문이다. 뭘 만들 작정인지 일라이저를 직접 대면해서 캐묻고 싶었지만 괜히 신뢰만 깨질까 염려되어 내버려 두었다. 그래서 그는 역으로 일라이저가 열심히 활동하도록 유도해 단서를 추출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지적설계종을 만들도록 내버려 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어.”

   이종족들의 잠재력 개화라는 변수에 대한 대비, 신수들의 속성에 대한 분석,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명분은 따로 있었다. 카이젤로서는 ‘문명의 폭발’이라는 현상에 대비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했다.

   문명의 폭발.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만들고, 그 종족이 또다시 새로운 종족과 그 문명을 만드는 연쇄가 우주 전역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일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면 기술 진보나 문명 발전의 속력은 수직상승하여 제어조차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연발적으로 생성된 종족들은 필시 암세포처럼 우주를 잠식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 될 때 과연 인류연합은 우주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우리가 압도적으로 강력하지만, 혹 모르는 일 아닌가. 한 박자만 어긋나도 인류가 타 종족에게 추월당하는 일이 벌어질 지 모르지. 초인이 있는 이상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돼.”

   카이젤은 ‘문명의 폭발’이 벌어질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원천적으로 대비하고자 하였다. 그 목적으로 그는 여러 하늘도시를 실험재료로 썼다. 그리고 가상의 ‘문명의 폭발’ 현상을 모의실험하도록 허락했다. 얼마든지 다른 방도를 쓸 수도 있었겠지만, 하필 이 실험의 매개체로 쓸 주체로 지적설계종이라는 모델을 선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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