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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6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7. 뿌리 원정대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0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일전의 LTO가 이원론의 선악 중 절대 악에 가깝게 묘사된 역할이었다면, 이번 전설의 주인공인 ‘뿌리’는 선과 악을 동시에 담은 야누스적인 신으로 묘사되는 듯했다. 인격적 존재가 아닌 무인격적 신적 존재 비슷하게 설명되는 것을 보아 무신론적 측면도 신화 속에 반영된 게 엿보였다.

    사람들은 뿌리를 자신의 근원으로 여겨 애증에 가깝게 사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신들을 괴롭혀왔다고 믿으며 극렬히 증오했다. 이 양가감정은 뿌리를 정복해서 자신들의 수중에 두고야 말겠다는 야망으로 표출되었다.

   “신적 존재를 믿는 동시에 진화론을 믿는다니, 거참 애매하네.”

   “아니, 애초에 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러게. 믿는 게 아니라 증오한다니까.”

   무지가 쌓이고 쌓여 생성된, 한 시대를 잠식해버린 오류의 패러다임.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가늠이 안 섰다. 선교사들은 몹시 황당해하면서도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골머리를 짚었다.

   “잘못된 설화에 미혹당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루디아는 주민들의 처지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했다.

   “내 소견에 의하면 그렇지 않소. 이 사람들은 그저 본인들의 결정과 선택으로 거짓을 믿게 된 것 같소. 이곳은 과학적 사고 방식과 문명적 지성이 충분히 발달한 세상이니 무식해서라는 변명은 설 자리가 없소.”

   단연코 스테판은 그들에게서 변명의 여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말도 옳아요. 하지만 모두가 일관되게 잘못 믿고 있다면 나름대로 근거가 있지 않겠어요? 맹신이 아니라, 확신으로 인도하게끔 하는 모종의 요소가 있었겠죠. 우리는 지금껏 그런 일들을 많이 보아왔잖아요.”

   윤혁이 솔직하게 의문을 표하였다.

   “흠, 확실히 배후에 무언가가 도사리는 것만은 분명할 듯하오.”

   이성주의적이고 과학주의적 성향이 짙은 파라다이스시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도 뿌리의 실존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 물증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가 있으리라 판단되었다.

   수차례 학자들을 찾아가 직접 조사를 해본 뒤에야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뿌리를 믿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제로 기나긴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뿌리를 향해 항해했던 사건이 제법 많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 원정대들 중 일부가 돌아와 목격담을 들려주고 증거물을 보여줬죠.”

   놀랍게도 근거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뿌리에서부터 생성된 여러 이종족이 있었는데 그중 일부는 우리와 전쟁을 벌였죠. 그 시신을 해부해봤는데 놀랍게도 뿌리의 명령을 받도록 설계된 신경 중추가 공통적으로 심겨져 있었죠.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마냥 말입니다.”

   뿌리를 향한 이 세계 사람들의 양가감정의 신앙은 엄연히 역사적인 자료와 객관적인 관찰에 근거하여 형성된 것이었다. 똑같이 목격자들의 관찰 기록으로 구성된 책인 성경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시대를 막론하고 회의와 비판만 가득한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일해은 이내 억울함을 내려놓았다. 원래 그런 문제는 이성적인 차원보다는 영적인 차원의 문제 아니겠는가.

 

 

 

 

 

 

 

 

*

 

 

 

 

   열흘간, 선교사들은 파라다이스 행성의 대도시 구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대면 전도 혹은 원격 매체를 활용하여 포교를 활발히 수행하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무관심한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다. 테라 아일랜드 때처럼 과학자들의 냉소가 돌아오거나 마법적인 세계들 때처럼 사람들이 발끈하며 분노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저 무관심과 무반응뿐이었다.

   사람들은 창조자의 존재라는 명제 자체는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창조자는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아닌 뿌리라고 불리는 물리적 성질을 띤 개체였다. 전능자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임에도 인간들의 죄를 구하겠다는 사명으로 누추한 곳에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이야기, 사람들의 귀에는 그런 이야기들은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아무래도 뿌리에 대한 집념과 증오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닫는 것 같아.”

   리온은 올바로 문제를 진단해내었다. 물론 근원까지 따지고 올라간다면 그 역겨운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든 탓이 크겠지만, 표면적인 이유만 놓고 보자면 ‘뿌리’라는 이름의 개념이 미혹한 영향이 크리라.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결책을 줘야 할까?”

   루디아는 소위 뿌리라고 불리는 망령, 곧 복음의 방해물을 해치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차라리 명확하고 인위적인 거짓의 장치라면 카뮈네라 때처럼 억지로라도 파훼하는 방법을 고려해봤을 것이다. 또한, 테라 아일랜드 때와 같은 경우라면 왜곡된 과학 체계의 진실을 벌거벗기고 인류연합의 비밀을 폭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폭로할 실체 자체가 눈에 안 보였다.

   “뿌리……, 이곳 사람들은 그 실체를 분명 보고 들은 것 같소. 마냥 미신적이거나 원시적인 신앙은 결코 아니오. 상당히 체계적인 과학에 기반한, 아니 정말 관찰에 기반했으니 자연주의 과학의 연장선으로 봐야 할지도 모르오.”

   “제 생각도 같아요.”

   윤혁도 스테판의 의견에 동의했다. 어느 길로 돌아가건 뿌리의 환상을 깨부수려면 반드시 그것의 비밀을 밝히 드러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다. 무조건 믿음 체계를 바꾸도록 강요하는 것은 무리한 태도이다. 저들 눈에는 무책임함으로 비칠 소지도 충분하지.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에겐 뿌리의 정체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실존하는지 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착각과 망상인지, 실존한다면 인간의 작품인지 마귀의 소행인지도 전혀 갈피 잡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력을 나름 탄탄히 갖춘 이 인간들이 하필이면 ‘뿌리’에서 우주와 생명체의 기원을 찾았는지, 그 추론 과정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정보를 모르는 적을 상대하는 데는 엄연히 한계가 있어.” 

   윤혁은 진중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타개책을 구상하였다.

   그러던 여행 11일 차, 때마침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주연합이 제121차 뿌리 공략 출전을 실행한다는 소문이 온 도시에 두루 퍼졌다. 사람들은 이제야말로 자신들을 만들고 자신들을 괴롭혀온 애증의 근원을 확고히 정복하리라는 생각에 크게 들떴다.

   “무려 121차라고?”

   ‘이미 이전에도 여러 번 찾아갔었다는 이야기인가?’

   그토록 자주 공략하고도 포기하지를 않았단 말인가. 기가 찼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한 주민이 주었다. 이미 우주연합이 설립되기 한참 이전부터 이 증오의 도전으로 이어진 연쇄는 거듭되었다고 한다. 시대와 체제를 막론하고 인간들과 그들의 동맹 종족 및 노예 종족들은 최초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뿌리를 향해 거듭 공략 전쟁을 감행하였다.

   “아니, 왜 그토록 뿌리를 향한 증오가 질기고 강한 거죠?”

   그 집념에 이해를 하지 못한 윤혁의 질문에 누군가가 이렇게 답했다.

   “방어 본능이지. 뿌리가 우리를 없애려는 의지를 숱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오.”

   이 세계에서는 보통 백 년 정도를 주기로 우주 어디에선가 낯선 외계 종족이 느닷없이 출몰하여 인간과 그 연합한 종족들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었다고 한다. 그것도 아무런 사전 징후나 조짐도 없이. 외계 괴물들은 탁월한 신체 능력과 우수한 유전적 특성을 소유했고 나아가 생체 기능을 통해 구축한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간들을 숱하게 괴롭혔다.

   “그 때문에 문명이 통째로 리셋 가까이 간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소. 매번 엄청난 재산 손실과 인명 손실을 경험했지. 괴물 무리를 퇴치하고 박멸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소모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이곳 주민들에게는 그 오랜 침략의 역사는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도 침략을 많이 당한 나머지 유전자에까지 한이 새겨질 지경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침략 일당의 잔해를 분석한 뒤 뿌리가 인간과 그 동맹군을 ‘우주의 암세포’처럼 취급하여 일종의 면역 세포를 만들어낸 것이라 해석하였다. 뿌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들은 마땅히 사라져야 할 암적 존재였던 것이다.

   “그 존재는 일종의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항상성)의 중추라오.”

   우주의 본체이자 중앙신경계. 사람들은 뿌리를 그런 존재라 믿었다. 일종의 대자연 숭배 사상과 교차점이 있었다. 과거 환경주의와 대자연을 우상숭배했던 지구의 인간들도 인간을 기생충처럼 생각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엄한 존재라고 믿는 선교사들의 사상과는 너무도 상이했다.

   흥미롭게도 정작 이곳의 인류는 뿌리가 자신들을 대하는 그런 가혹한 관점을 믿으면서도 순순히 순복하기는 또 싫어했다. 그들은 암세포로서 숙주를 죽여버릴지언정 자신들이 박멸당하기는 싫어했다.

   그 덕에 최근 천 년의 역사는 뿌리가 보낸 것으로 의심되는 사악한 괴물 종족과 연합군의 전쟁으로 온통 점철되었다. 반복해서 피해를 입다 보면 문명이 소멸할 법도 싶은데 이상하게도 인간은 바퀴벌레보다도 끈질겼다. 그들은 오히려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면서 더욱 강해졌다.

   위기를 거듭 이겨낸 인류는 점차 더 넓은 영역을 정복했고 탁월한 기술을 얻었으며 마침내 천체의 도움 없이도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생산해낼 기술력을 얻었다. 괴물들을 상대하면서 전쟁 기술은 경이로운 수준까지 발전되었고 괴물의 몸을 해부해 얻은 데이터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심지어 괴물들의 일부를 길들여서 우리의 노예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치면 다칠수록 인간들은 강해졌다. 우주의 모든 종족은 이내 이 끈질긴 인간을 중심으로 뭉쳤다. 종국에는 우주연합이 설립되었고 이종족과 인간이 만들어낸 실험체 출신 종족들은 연혼(聯婚)을 통해 인류 유전자 풀에 흡수되었다. 풀무 불 속에서 여러 금속이 녹아 섞여 단단한 합금을 만들어내듯이 이 연합은 더욱 많은 강함을 창출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10년 사이에 경제 발전과 식민지 건설은 절정의 수준에 이르렀다. 오랜 역사 동안 온갖 시행착오와 아픔을 통해 쌓아온 경험, 기술력, 전략, 전술은 소실 없이 고스란히 축적되었다. 그렇게 인간 세계는 전성기에 도달했다. 이번에야말로 문제의 근원인 뿌리를 정복할 수 있을까? 이제 주민들의 관심사는 온통 이 생각에 집중되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윤혁은 아이디어를 냈다.

   “내가 저들과 동행해서 뿌리의 실체를 보고 오지.” 

   그는 파격적인 제안을 매우 의연한 기색으로 내던졌다.

   “뭐?”

   “잠시만!”

   친구들은 일제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면서 황급히 만류하였다. 하지만 윤혁도 생각 없이 내린 결론은 결코 아니었다. 나름 그의 도전에는 충분한 당위성이 있었다.

   “너희는 남은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파라다이스 행성 주민들에게 성경 말씀과 복음을 전해줘. 모든 사람이 귀를 막아도, 분을 내어도, 무관심으로 일관해도 좋아. 그저 충분히 들을 수만 있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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