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6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7. 뿌리 원정대 (5)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05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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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도 함께 남아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어쩌면 실질적으로는 그편이 더 안전하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결해야 했다. 분명히 적임자는 자신뿐이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줘. 그들의 진정한 근원이 ‘뿌리’ 따위의 거짓부렁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을. 그들이 뿌리를 찾아 헤매는 이유, 아마 증오심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따지고 보면 귀소 본능이야. 인간이면 누구나 지닌, 절대자를 향한 귀의 본능, 저들에게서는 그게 어긋난 형태로 발현된 셈이지.”
윤혁은 세 친구에게 당부했다.
“미싱링크를 찾겠다며 굳이 우주 깊숙한 곳을 헤매며 삽질할 필요가 없다는 좋은 소식을 가르쳐줘. 참된 근원이신 그분께서는 사람들 한 명 한 명 가까이에서 기다리고 계시며 각 사람이 그분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신다는 걸 보여줘.”
결연한 각오가 실린 부탁을 들은 리온은 마침내 친구가 치기 어린 선택을 내린 것이 아님을, 수도 없이 많은 고민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임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
“그래서 넌 그곳에서 뭘 하고 싶은 건데?”
친구의 의중을 떠보고자 물었다.
“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윤혁.
“나는 지금껏 믿지 않는 분들의 처지를 이해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렇지 못한 자들은 마냥 가르치고 훈계하고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던 것 같아.”
어쩌면 그것도 교만은 교만이었을까.
“물론 하나님의 말씀만이 궁극적인 진리라는 생각은 변함없어.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지. 하지만 한 번쯤은 그들이 왜 거짓된 신앙에 빠질 수 없었던 것인지 입장을 고려해봐야 했었어.”
카뮈네라에서 사람들이 우상 신을 섬기는 것을 보았을 때 윤혁 일행은 주민들의 의지를 거슬러 성지 안으로 강제 침투를 시행했었다. 주민들이 싫어하건 말건 억지로라도 거짓을 들춰내어 폭로하고 싶었었다.
이는 마치 지구의 선교사들이 원시적인 신앙을 가진 오지의 토착 민족들에게서 우상신 조각상을 강압적으로 빼앗아 부순 격이었다. 선한 의도임은 지만 분명 주민들로서는 깊은 반발심을 느꼈을 수도 있다.
테라 아일랜드처럼 인류연합의 능동적 속임수가 개입되지 않았던 곳에서도 사람들은 스스로 거짓을 찾았다. 그들은 창조주를 거부하고 진화 이론을 자체적으로 창작해내었다. 그곳에서도 윤혁은 가차 없이 굴었다.
주민들을 속이는 미혹이 인류연합의 것이건 본인들의 것이건 상관없었다. 그는 마음이 어두워진 사람들을 꾸짖으며 그들이 허상을 믿고 있는 실태를 강압적으로 들춰냈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건 안되었건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이다.
사실 이 역시 윤혁이 애초에 인류연합과 그 경영 방침을 나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지식적 우위를 활용해 행패를 부렸던 측면이 있었다. 사람들을 언변으로 무참히 베어버리는 행패. 진실에 기반한 것이지만 급한 면이 있었다.
‘내가 저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나도 운이 좋아서, 아니 은혜를 입음으로 인해 진리를 발견했을 뿐인데……. 지적인 측면에서도 영적인 측면에서도 난 그들보다 나을 점이 실상 전혀 없어.’
태어날 때부터 이슬람 사회에서 줄곧 자라온 탓에 예수님을 올바로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던 사람에게 마냥 맹신과 미신을 버리라며 꾸짖고 비난만 하는게 옳은 태도일까. 예수님 본인이시라면 그렇게 하실 자격이 있으시겠지만, 적어도 윤혁에겐 불신하는 이들을 깔볼 자격이 없었다. 아니 주님이라면 도리어 그런 적법한 자격을 내려놓고 온화하게 그들과 대화하셨겠지.
“그러니 이번만큼은 저들과 발걸음을 맞춰보고 싶어. 거짓을 들춰내되 무리해서 저들보다 앞서나가거나 반발심을 일으킬만한 행동을 하고 싶진 않아. 그들의 탐구에 함께 참여해서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는 일을 도와주고 싶어.”
‘비록 시행착오를 곁에서 함께 감당해주는 바보 짓일지라도 말이지.’
윤혁의 깊은 생각과 고백에 세 친구는 숙연해졌다. 한편으로는 친구가 정신적으로 성숙한 모습이 선명히 느껴져서 기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본인들의 마음속에 혹시나 영적인, 또는 지적인 오만이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과 회개의 마음도 들었다.
“네 의도는 잘 알겠어. 하지만 몸조심해야 해.”
루디아는 그에게 가벼운 포옹과 함께 격려의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그녀의 따스한 응원에 힘이 솟는듯한 기분이 충만해졌다.
“못 말려. 왜 이렇게 항상 우리를 걱정시키고 말야.”
“……미안해.”
“하지만…….”
바로 그런 너이기에 더 좋아. 제대로 방어할 틈도 없이 찔러오는 루디아의 기습 공격에 윤혁은 조금 당황했다. 해사롭게 웃어오는 그녀의 미소에 그도 올곧은 웃음으로 약속했다.
“안전하게 돌아올게.”
끝으로 스테판이 윤혁에게 조용히 첨언했다.
“단순히 뿌리만을 보는 게 당신 목표의 전부가 아님은 알고 있소.”
그 빠른 눈치에 윤혁은 내심 흠칫 놀랐다. 스테판은 계속 말을 이었다.
“정치적인 충돌이 발생한다면 혼자서 독박쓰고 책임지겠다는 약속, 아마도 그에 대한 책임감도 동기가 되었을 테지.”
“역시 못 숨기겠네요.”
솔직히 말하면 스테판의 말이 맞았다. 현재 윤혁은 뿌리라는 미지의 존재 앞에 직접 다가가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되도록 아예 인류연합 직속 관계자와 만나는 것, 심지어 초인과 마주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친구들은 내버려 두고 자신 혼자 나서야 했다.
“그 약속뿐 아니라 이번의 약속도 꼭 지키시오. 안전히 돌아오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한편 리온은 윤혁의 고집을 흔쾌히 용인해주겠다는 것인지 눈빛과 고개로만 대답했다. 그도 이제는 강윤혁이라는 천둥벌거숭이의 끈질긴 생명이 인간들의 의지가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아래에 놓여있음을 분명히 믿게 되었다.
*
가까스로 사람들을 설득한 끝에 윤혁은 뿌리 정벌 여정에 합류하는 함선 중 하나에 탑승했다. 처음에는 민간인에 불과한 그가 걸림돌이 되리라 생각한 군인들이 반대했으나, 적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보유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윤혁의 은근한 유혁에 다수는 금세 혹하였다.
결국, 함대원들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동반을 허락해주었다. 함대원들은 윤혁이 전쟁을 무서워할 줄로 알았으나 오산이었다. 그에겐 이미 함대전 목격 경험이 있었기에 충분히 견딜 담력이 있었다.
각 함선에는 충격, 관성, 고열, 고압을 상쇄시키는 기술이 존재했기에 내부 공간은 안전하고 편안했다. 또한 이곳 하늘도시의 문명권에는 지구권과 같은 급의 워프, 게이트 기술은 없었지만, 그 대신 이곳 인공우주의 물리적 속성에 맞게 설계된 텔레포트 기술이 존재했다.
차차 각지에 흩어져있던 함선들이 한 좌표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후, 함대는 텔레포트를 통해 적진으로 예측되는 좌표로 이동하였는데 과연 그 앞에는 수많은 괴생명체 군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함대는 막강한 첨단병기로 전투를 손쉽게 해결해내었다. 이내 괴생명체 군단은 흔적도 없이 전멸했다.
승리 이후 원정대는 다시 텔레포트를 수행했다. 그곳에는 각지에서 적과의 싸움을 해결하고 온 다른 함대도 모여있었다. 합류 후 다시 단체 텔레포트로 특정 좌표로 이동했는데 그곳에도 적군이 매복해있었다. 숫자, 크기, 위력이 더 증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함대 측에도 아껴둔 전력이 있어기에 금세 승리를 거두었다.
이처럼 큰 전투를 치르고 아군과 합류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적의 수적, 질적 위세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자연히 전투는 점차 버거워졌다. 숨겨둔 히든카드들을 남김없이 꺼내야 할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에 우주연합 측에서는 본부를 비롯한 각 행성에 지원을 요청했다. 곧 함선과 기함은 물론이고 준행성급 거대 요새마저 본대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들은 아무리 죽여도 줄지 않았다. 가까스로 제압했다 싶으면 다시금 더 많은 수효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수적 우위를 점했던 우주연합조차 차츰 숨겨둔 전력을 드러내 소모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비장의 수였던 특수 전략들까지 하나하나 노출되었다. 전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아끼던 것들도 가차 없이 소모되었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쌓아온 경험의 산물들마저 자연의 위용 앞에서는 일회용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던 윤혁은 그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면서 참고 인내하였다. 어쩌면 뿌리에 당도하기도 전에 여정은 실패로 중도에 끝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함선이 격추되어 매몰될지도 모른다.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니 안심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때는 다 내려놓고 기도하며 잠잠히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해답이 없었다.
‘반지의 힘은……, 아냐, 오히려 더 상황을 악화시킬지도 모르니 아껴두자.’
아무래도 무력 대결의 현장에서 반지의 힘을 쓰는 것은 꺼려졌다.
이윽고 연합군은 마침내 그들이 사는 우주의 최 중심부라고 여겨지는 좌표에 당도했다. 지금껏 쓰러트려 온 적들을 모조리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적군이 모여있었다. 종류도 다양했고 서로 간의 연계 전술도 기가 막힐 정도로 지능적이고 철두철미한 군단이었다. 겉보기에는 온갖 오합지졸의 모임 같았으나 보이지 않는 어떤 악의가 군단을 꼭두각시 다루듯 지혜롭게 조종하는 느낌이었다.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더한 시간 동안 대규모 함대전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적 함대의 맹렬한 공격과 인해전술로 인해 연합군이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연합군은 상대측 전략에 대응할 최고 효율의 대응책을 찾아내 적의 음모를 훼파했다.
승리에 근접하는 광경을 보면서도 대원들의 안색은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았다. 지난 역사 속에서 이뤄진 120차례의 원정을 통해 보고된 데이터 때문이었다. 앞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의 싸움은 시작조차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뿌리가 보낸 끄나풀들을 상대했다면……, 앞으로 들어갈 곳이야말로 개미지옥이겠죠.”
윤혁과 같은 방을 쓰던 함선 대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것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죠?”
“매 원정마다 과업의 내용이 달라진다고 들었습니다. 단 한 번도 이전의 보고가 도움이 되었던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사이 괴이한 조직체로 구성된 적군 함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모두 녹아내렸다. 극소수의 패잔병은 변방 지역으로 도주했다.
이후 연합군 함대는 특이한 기술을 이용해 힘의 공명을 일으켰다. 일전에 윤혁이 본 다른 연합이 LTO를 사냥하기 위해 흑막공간으로 진입했을 때처럼 차원 반대편에 놓인 공간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 흡사 웜홀과 유사했지만, 게이트에서 쓰이는 웜홀과는 형태나 느낌이 사뭇 달랐다.
‘미지의 땅으로의 여행, 이제 시작이구나.’
승리의 기쁨을 자축할 새도 없이 대원들은 일제히 긴장감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불길한 예감은 곧바로 현실로 만들어졌다. 어디에선가 침투해온 정체 모를 메시지가 함선의 보안 방벽을 해킹하더니 곧장 네트워크를 뚫고 들어왔다. 메시지창이 모든 화면 위에 나타났다.
{스테이지 넘버 0을 개시하겠습니다.}
윤혁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본격적인 함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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