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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66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7. 뿌리 원정대 (6)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07 | 회차평점 0 0

 

 

 

 

 

*

 

 

 

 

   스테이지 넘버 0이라고 불린 그 공간은 행성계 사이에 펼쳐졌던 특수속성 공간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영역이었다. 일종의 유사 무한공간처럼 끝도 없이 뻗어있었는데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의 구조물들이 무한히 늘어진 모양새였다.

   즉각 윤혁은 제로원에서 본 친선경기에서 이용되었던 그 거울상 공간을 떠올렸다. 그것처럼 이것도 아마 겉보기에는 무한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트릭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공간 뿐 아니라 배경을 이루는 구조물들도 끝없이 길게 이어졌다. 이리저리 꺾이고 휘어지고 가지가 분지되었다. 형태 또한 평면, 선, 곡면, 촉수 형태, 건물 모양 등을 넘나들었다. 마치 미로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영역을 수놓는 물리법칙과 공간의 속성에서도 이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어떤 의지력이 생명력을 갖춘 채 무대 자체와 융화된 듯했다.

   “왜 이리 익숙하지?”

   불쾌한 기시감이 피부를 찔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해주듯 거대한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연합군 중 누구도 본 적 없는 기괴한 기계 장비와 생체 조직, 그리고 성분조차 모를 기괴한 물질이 배합되어 만들어진 존재들이었다. 덩치도 함선을 단번에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했다.

함대는 즉각 반격을 개시했다. 무시무시한 겉모습과는 달리, 괴물들은 생각보다 쉽게 격퇴되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미끼요 선봉대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한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아군이 이를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스테이지 넘버 0 공간이 퍼즐처럼 해체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윽.”

   “설마 양동을 벌인 목적이 이것?”

   함대는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애썼으나 이미 공간 붕괴 및 법칙 붕괴가 대대적으로 범발하는 바람에 최소한의 대응조차도 불가능했다. 공간이 깨어져 만들어진 퍼즐 조각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편들은 상위 차원의 조류를 따라 어딘가로 각각 흘러갔다.

   결국, 기껏 힘겹게 집결한 함대가 개별 함선 단위로 뿔뿔이 흩어졌다. 흩어진 함대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스테이지 1으로 전송되어 제각기 다른 과업 앞에 놓였다.

   윤혁이 탑승한 함선도 스테이지 넘버 1 중 어느 한 곳에 착륙했다. 그곳에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패턴의 구조물과 장애물이 존재했다. 그리고 기이한 공간, 몬스터 군단, 함대, 살아 움직이는 방어탑 등도 기다리고 있었다. 허공에서 적 유닛들이 튀어나오는 패턴을 보아하니 익숙한 기억이 연상되었다.

   “흡사 스타덤의 던전 같잖아.”

   분명 스타덤이 세워진 하늘도시를 방문했을 때 던전이라는 개념을 접하긴 했었다. 하지만 석연찮았다. 윤혁 일행은 그때 직접 던전 안에 들아가지는 않았다. 선교지에 와서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윤혁의 기억 속에는 희미한 편린으로 던전을 공략하는 선명한 장면이 남아있었다. 던전의 구조라던가 전략 대응 패턴이라던가, 많은 정보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뭐지?’

   개념만 알았을뿐인데. 이런 경험적 정보는 없을 터.

   ‘다른 사람의 기억인가?’

   가만 돌이켜보니 종종 인형에 접속될 시 타인의 기억이 옮겨졌던 적은 있었다. 그런 원리로 누군가의 기억이 대신 전달된 후유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누구의 기억인가? 애초에 던전 전투 같은 임무를 수행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차분히 되짚어본 끝에야 겨우 기억해낼 수 있었다. 선교팀 우주선에 탑재된 보조 인형들에 접속했었던 인물이 사실 선교팀 말고도 또 있었다.

   2차 여행의 출발 당시, 우주선은 솔라 타나토스라는 함정에 휘말려 위기를 겪었었다. 그때 세 히어로는 선체와 자신들의 신경계를 연결하여 전투를 지휘했었다고 했다. 아마 그때 인형들도 함께 그들과 연결되었던 걸까. 그 여파로 그들이 소유한 던전 공략 기억이 인형 CPU 안에 섞여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가 출발하기 전부터도 던전이 존재했던 건가?’

   스타덤을 방문하기 이전에는 던전 같은 구조물을 본 적은 없었거늘. 하지만 인류에게 이미 아공간과 차원들을 다루는 기술이 존재함을 생각해볼 때 본격적으로 던전들이 보편화되기 이전에도 이미 유사품이나 프로토타입이 어떤 원리로든 운영되었을 가능성은 농후했다. 혹은 시뮬레이션 우주 등을 통해 히어로들이 미리부터 체험해봤을 수도 있겠지.

   ‘히어로들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굉장한걸.’

   어쨌든 덕분에 던전 구조에 관한 총괄적 정보를 얼추 획득한 윤혁. 그는 지금 함선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이 미지의 공간, 일명 스테이지라는 영역이 놀라우리만큼 던전과 유사한 작동 패턴을 지녔음을 알아차렸다. 플레이어로서 영웅 대신에 함선이 진입하는 만큼 규모나 복잡성, 물리적 정밀함, 난이도는 훨씬 더 높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또한 던전 시스템을 본따서 그런지 이곳 스테이지에는 승리에 대한 보상을 받는 절차를 통해 함선의 기능과 능력을 강화하는 시스템이 내재되어 있었다. 아무런 개조 작업도 없이 함선 자체가 승리의 경험만으로도 스킬과 아이템을 얻으며 진화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쉽게 납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엄연히 이것이 가능함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함선 대원들은 당황하며 유사 던전 시스템을 기이하게 여겼으나 이내 순식간에 적응하였고 도리어 그런 규칙들을 최대한 유용하게 활용하고자 노력하였다. 숱한 난관을 격파하면서 함선은 빠르게 진화하여 더욱 강해져 갔다.

 

 

 

 

 

 

 

 

*

 

 

 

 

    함선은 스테이지 넘버 10까지 격파하며 어렵사리 한 걸음 한 걸음 진척을 거두었다. 한순간도 경계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함선이 진화하는 속도만큼이나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증폭되는 속도도 만만치 않았기에 두 증가 곡선의 대립은 매우 첨예하게 유지되었다. 침몰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일만 해도 횟수를 셀 수 없이 많았다.

   본 함대와의 재합류는 스테이지 넘버 11부터 허락되었다. 그것도 함대 전체도 아닌 일부와만 합류했지만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위로는 되었으나 상황은 그리 여의치 않았다. 연합한 함선 수가 늘어나 도전자가 늘어난 만큼 스테이지 난이도는 곱절의 배수로 증폭되었다.

게다가 왜인지 기껏 합류했건만 함선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도 부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통신 장애를 유발하는 필드가 패시브로 발동된 것인지 함선 간 연락 체계 내에서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은 차단되었고 오로지 인공지능끼리의 의사소통만 허락되었다.

   급한 대로 그 허락된 분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찝찝함은 지울 길이 없었다, 인공지능들의 소통이 석연치 않았다. 어쩐지 누군가의 모략으로 인해 중요한 정보로부터 차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불길했다.

   죽을힘을 다해서 스테이지 하나를 격파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차원 이동을 하고 나면 보상으로 좀 더 많은 아군 함대가 합류했다. 아울러 훨씬 더 강력해진, 더욱 많은 수효의 적들도 함께.

   평균적으로 하나의 스테이지를 깨트리는 데는 여덟 시간 정도가 소모되었다. 이상하게도 그토록 장시간 싸우더라도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만 하면 체력 소모나 에너지 소모는 저절로 해소되었다. 심지어 긴 시간 동안 싸웠거늘 막상 체감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에 윤혁은 혹시나 이곳의 시간의 물리 개념이 기묘하게 조작된 건 아닐까 의심했다. 실제로 한번 한 스테이지에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때마다 사람과 함선의 몸은 몇 시간 전 상태로 말끔히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대신 경험으로 획득한 각종 정보와 기억, 그리고 새로 획득한 함선의 능력과 스킬은 그대로 간직한채 말이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한편 점점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증가함에 따라 도움을 제공하는 장치도 새로이 나타났다. 마치 요정처럼 생긴 특이한 반투명한 물체들이 날아다니면서 박쥐처럼 아군과 적군을 번갈아 가며 도와주었다. 손상을 회복시켜 주기도 했고 함선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해주기도 했다.

   이 같은 요정형 보조자들의 형태는 상위 스테이지로 이동하면 할수록 점차 다각화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대체로는 그 개편이 보이지 않게 은밀히 나타났다.

   이유없이 나타난 도움에 함장들은 꺼림칙해하며 의심하였지만, 당장 불리한 정황 상 그것들의 도움 없이는 전투력 균형을 맞출 수 없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속아주는 척 이 상황을 활용했다.

   “아무래도 공격한다기보다는……, 시험하려는 것 같아.”

   윤혁은 이런 감을 받았다. 비단 이는 그만의 직감은 아니었다. 슬슬 대원들은 자신들이 혹시 어떤 높으신 존재의 함정에 빠져들어 유희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스테이지라 불리는 시스템은 아무리 봐도 속전속결로 침입자를 제거하기보다는 최대한 싸움을 질질 끄는 장치였다. 마치 도전자가 얼마나 잠재력을 끌어낼 지 평가해보겠다는 심산인 것마냥.

   이는 뿌리를 공략하러 온 모든 이들에게 대단한 모욕감으로 다가왔다. 목숨 걸고 고분 고투하고 있거늘 저쪽에서는 자신들을 장난감처럼 여기고 있다는 뜻이니까. 어떻게든 오만한 적에게 한 방 먹여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뿌리를 향한 적개심과 호승심은 한없이 증폭되었다.

   그렇게 스테이지가 거듭 갱신되다보니 또 하나의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발생했다. 함대간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을 제한하는 일련의 통신 간섭 현상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지더니 끝내 함선들의 인공지능들이 제멋대로 상의하여 비상계엄령을 선포해버렸다. 인간들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코미디였지만, 팀원간 연계 불능이란 말 그대로 장애나 마찬가지인 비상사태가 분명했기에 반발할 명분이 없었다.

   흥미롭게도 인공지능들끼리 담합하는 과정에서 함대 지휘권이 이동하였는데 그 수렴방향은 모종의 의도성이 깃든 듯한 방향성을 띠었다. 지휘권이 특정 몇몇 함선들로 집중되더니 서서히 윤혁이 타고 있는 함선 쪽으로 모아졌다. 이렇게 함대 지휘 네트워크 체계가 지속적인 탈피를 거치더니 끝내 한 함선이 나머지를 수직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확립되었다.

   이제 그 함선의 함장들은 부득이하게 함대 전체의 운명을 지휘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인공지능들이 진두지휘의 역할을 거의 맡긴 했으나 함장들의 판단도 어느 정도는 요구되었기에 매우 큰 부담이 그들의 어깨에 실렸다.

   위태로운 변화이긴 했으나 정정하기란 불가능했다. 이미 한바탕 함선들이 흩어졌다가 무작위적으로 합류하는 바람에 처음 계획했던 지휘 체계는 완전히 어그러졌고 더는 그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새로 생성된 체계가 원래의 지휘 체계를 대신했는데 이 체계는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흡사 곤충들의 시스템과 같은 것이었다. 혹은 인형사가 꼭두각시나 인형을 조종하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인간들은 이제 외부에서 제공된 새로운 게임의 룰에 강제로 몸과 마음을 맞추도록 강요를 받았다.

   놀랍게도 새로이 강제 이식된 이 지휘 체계는 인간들이 고안해낸 것보다 훨씬 유연하고 적응력도 높았다. 게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함선 인공지능들의 알고리즘이 저절로 진화하는 바람에 함대원 입장에선 되려 대응하기 편리했다.

   게다가 사람들을 마냥 놀게 내버려 두는 것은 또 아니었다. 도리어 인간들이 무리한 연산보다는 창의적인 전술 전략 수립에만 집중하도록 좋은 여건을 제공해주는 조건이었다. 누군가가 무모하고 억측에 가까워 보이는 전략을 내놓으면 지휘 계통 시스템이 그마저도 적절하게 재해석해서 적절한 히든카드로 바꾸어주었다. 강제로 주어졌음에도 꼭 맞는 듯한 옷. 바로 그 점 때문에 더욱 불쾌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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