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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6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7. 뿌리 원정대 (7)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10 | 회차평점 0 0

 

 

 

 

 

*

 

 

 

 

   마침내 고배를 다 마신 후 1000번째 스테이지를 격파하자 함대는 지긋지긋했던 기괴 영역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스테이지가 아닌, 통상의 공간에 당도했다. 다만, 그곳은 우주연합이 알던 우주와는 조금 성질이 달랐다.

   “드디어 마무리인가?” 

   싸움을 벌인 시간의 총량을 전부 더하면 족히 1년은 넘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윤혁의 몸이 기억하는 체감 시간은 기껏해야 10일 정도로의 느낌이었다. 마치 꿈속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살다가도 깨어나면 불과 하룻밤 밖에 지나지 않는 것과도 흡사한 이치였다.

   신기해할 틈조차 없이 곧바로 충격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바깥 통상 공간으로 나오자마자 윤혁이 탄 함선을 제외한 나머지 함선들이 일제히 신기루처럼 녹아서 사라져버렸다. 마치 허상이 지워지는 것처럼.

   “뭐지?”

   대원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이 탄 함선 자체는 멀쩡했다. 더욱이 스테이지들 속에서 싸우면서 획득해놓은 능력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처음 출발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안되게 강력해진 힘을 그대로 머금은 상태였다. 대원들은 자신들이 혹시 귀신에 놀아나는 건 아닌가하며 당혹감을 드러내며 술렁였다.

   ‘이건!’

   갖은 산전수전을 겪어온 윤혁도 이번만큼은 이 귀신 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설명할 방도로 한 가지 떠오르는 단서는 있었다. 헬리웃과 함께 들어갔던 그곳, 곧 시뮬레이션 우주와 현실 세계의 경계선인 ‘환상과 현실의 틈’. 혹시나 지금까지 이 함선도 비슷한 계열의 기술에 휘말렸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그때와는 감각이 미묘하게 달랐다.

   ‘설마 이젠 현실과의 구별조차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진보된 것인가?’

   스테이지 속에서 합류했던 아군 함선들은 분명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최소한 싸울 동안에는. 비록 사람들끼리의 통신은 차단되었지만, 함선 인공지능들은 분명 창조적 사고력을 발휘해 능동적으로 전투를 수행했었다. 심지어 긴밀한 연계로 각자의 고유 전략 체계를 하나로 연합시키기도 했으며 미션 클리어에 대한 스테이지 보상을 통해 공동 레벨업도 공유했었다.

   ‘정말로 유령에라도 홀렸나?’

   불행히도 의구심을 품을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적 함대가 곧바로 출현했다. 괴물이나 스테이지 속 몬스터와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함대였다. 낯선 디자인에 대원들은 당황했지만, 윤혁은 오히려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그것들은 예전에 본 인류연합 본 함대의 디자인과 나름대로 닮아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그가 직접 보았던 것들보다는 다소 뒤처진, 수년 전의 인류연합 함대였다. 물론 3세대 초인들의 기술력이 실린 문물들이니 아무리 옛 유물이라고는 해도 이곳 주민들의 문명보다는 압도적이었다.

   ‘제아무리 파워업을 했다지만 이 함선이 저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막상 길고 짧음을 대보니 맞대결이 충분히 가능했다. 물론 만만치는 않았다. 적 함선들은 바다의 모래알처럼 우글거렸다. 거대한 위성급 요새들까지도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군 함선의 레벨업된 스킬과 능력은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막상 스테이지에서 싸울 때는 그 상향을 제대로 실감할 수 없었는데 통상공간에서는 그 성과가 확실히 입증되었다. 싸움이 벌어지자마자 그 많았던 적들이 몇 분 만에 모조리 녹아내렸다.

   ‘인류연합 군대마저 저렇게 간단히?’

   아무리 뒤처진 구세대 버전이라지만 충격적이었다. 몇 시간의 치열한 격전 끝에 고작 한 척의 아군 함선이 구세대 인류연합 군으로 구성된 적 함대를 남김없이 격파해버렸다. 무려 은하계급 규모의 함대를.

   그리고 전투가 끝나자마자 더욱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적 함대의 잔해가 죄다 연기처럼 녹아내리더니 순식간에 아군 함선 안에 흡수되어 융합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아군 함선은 번데기가 나비로 변태하듯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마치 쓰러트린 적 함선들의 힘을 자신의 일부로 소화하기라도 한 것처럼.

   ‘애초에 실체가 아니었나?’

   분명 싸우는 순간에는 물리적 실체였는데? 일부러 난이도가 조정된 눈속임도 아니었다. 인류연합 구 함대를 본떠 만든 그 함선들은 분명 모든 능력을 제한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 속임수의 원리로 당장 의심 가는 후보는 시뮬레이션 우주 실체화밖에 없었다. 인류연합 측에서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걸까? 고민해봐도 윤혁 혼자서는 답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인류연합 군대에 대한 정보라곤 전혀 없었기에 대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다.

   ‘결국,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군.’

   이윽고 적들을 모두 무찌르자 우주 전역을 두를 듯 넓게 펼쳐진 거대한 장벽이 앞에 나타났다. 모양을 보자마자 다이슨 구체가 떠올랐다. 구체적인 형태나 작동 원리나 가동 목적은 조금 달랐지만, 디자인만 보면 꽤 비슷했다.

   다이슨 구체같이 생긴 장벽을 함선의 힘으로 강제로 뚫고 들어가자 방금 전과 물리적 속성이 달라진 공간이 등장했다. 아울러 이번에도 인류연합 구세대 버전을 연상시키는 군단이 가로막고 있었다. 숫자는 꽤나 늘어난 상태였다. 게다가 방금 구세대보다 진보된 기술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당연히 전투 난이도도 훨씬 높아졌다. 만일 직전의 스펙으로 싸웠다면 패했으리라. 그러나 조금 전에 함선들을 흡수해서 진화한 덕에 대충 엇비슷하게 버틸 수 있었다. 고전 끝에 적들을 모두 쓰러트리자 이전과 동일한 과정의 기현상을 거쳐 적 잔해가 아군 함에 흡수되었다.

   이후로도 다이슨 구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점점 규모가 크고 진보된 함대가 나타났다. 매번 흡수를 통해 아슬아슬하게 힘의 균형은 맞춰지긴 했지만, 차츰 승세를 휘어잡기는 어려워졌다. 통상 게임의 방식이 그러하듯이.

   더욱이 매 전투마다 적과 아군 양측 모두에 특수 테크놀로지와 특수 시스템이 무수히 첨가되는 바람에 전략 양상도 복잡하게 확장되었다. 아군 함선의 인공지능 성능도 경험을 통해 실시간으로 진화했기에 얼추 전략적 대응은 가능했지만, 점차 대원들의 순수한 지적 능력만으로는 감당은 고사하고 따라가기도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윤혁은 차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처음 맞상대한 함대는 분명 인류연합 구세대 버전 함대였다. 그런데 다이슨 구체를 뚫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수록 함대의 모습이 변모해갔는데 윤혁이 원래 기억하던 인류연합 함대와는 다른 디자인으로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인류연합 기술 발전사를 박물관 식으로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독자적인 변형과 리폼을 주도하는 것 같았다.

   ‘단순한 장난이나 환술이 아니야.’

   실제적인 전투, 실제적인 위기임이 확실한 이 상황.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불확실성의 안개가 짙게 드리워졌다. 차츰 불리하게 흘러가는 전황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격침이나 표류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커져갔다.

 

 

 

 

 

 

 

 

*

 

 

 

 

   그 후로 몇 번이나 더 이런 지겨운 과정을 반복했을까. 일일이 횟수를 세보기도 어려울 만큼 거듭 허상 군대와 싸운 끝에 함선은 완전히 다른 속성의 아공간으로 방출되었다. 이전 단계까지는 우주 공간을 빼곡하게 메웠던 적 함대가 코빼기조차 안 보였다. 을씨년스러운 빈 공간만 황량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때 공간의 틈새가 벌어지더니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연합군 원정대 함선들이 당도했다. 메모리 데이터를 공유해보니 그들도 각기 자신만의 여행 코스를 거치며 개별 맞춤형으로 설계된 스테이지와 미션과 환상 군단을 맞상대한 듯했다. 비슷비슷해도 세부적인 내용은 완전히 다른 시험을 거친 듯했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시험들이 허깨비가 아닌 실체였다는 점이었다. 그 증거로 함선들은 미션 통과와 경험 축적을 통해 독특한 모양으로 진화한 상태였고 그 변화는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스테이지들이 진행되던 가운데 중도에 재합류했던 아군 함대, 아니 실상 그 정체는 허상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 불명의 허깨비들과는 달리, 이번에 다시 합류한 진짜 아군들끼리는 통신 연결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함선이 결집한 뒤 그 총수를 계수해보니 출발 시 결집한 함의 3분의 2가량만 남아있었다. 손실된 수가 적지는 않았지만, 온갖 역경과 위기를 연속적으로 겪어온 점을 생각하면 선방한 셈이었다.

   함장들과 사령관들이 토론을 나누던 중, 외부에서 음성이 전달되었다.

   {예선 시험 통과자들은 이 정도인가?}

   순간 정적이 임했다. 이내 함대원들은 공황에 가까운 감정 상태에 빠졌다. 이윽고 함대 대열의 정중앙에 어떤 미확인 물체가 기척 없이 형상을 드러냈다. 기계 병기 같은 모양이었으나 몸체를 이루는 재질은 보통의 물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아니, 육체를 가진 것인지 유령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너는 누구지?”

   한 총사령관이 그 괴이체와의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포기브니스(Forgiveness). 나를 이 이름으로 불러라. 나는 너희의 자격을 평가할 시험관이자 이번 실험의 주관자, 그리고 너희를 판결할 심판관이지. 나아가 그분께서 파견한 대리인이다.}

   포기브니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존재는 괴이한 입매 모양을 그리며 기괴하게 웃었다. 동시에 포기브니스는 음산한 기분의 텔레파시를 전 함대원에게 일시에 전파했다. 즉각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격 개시.”

   공포에 잡힌 함장들과 사령관들은 반사적으로 일제히 포화를 명령했다. 하지만 포기브니스는 지금껏 상대한 적절히 조절된 난이도의 난관뿐이던 앞선 시험들과는 격이 달랐다. 놈은 함대 전체를 꺾어버릴 심산으로 덤벼들었다. 크기는 기껏해야 10m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포기브니스는 앞서 상대한 세력 전체를 합한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이번에도 보스 유닛인가?’

   이전 하늘도시에서 LTO를 공략했을 때와 비슷하게 고작 하나의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 인간 함대 전체가 덤벼드는 우스꽝스러운 진풍경이 벌어졌다. 녀석은 무력도 무력대로 강했지만, 여유가 넘쳤고 그 점이 더욱 분과 두려움을 유발했다. 함대 사이에 파고들어 각개전투를 벌였으면 단번에 전멸에 가까운 손실을 입힐 수 있는데도 일부러 방어에만 전념하였다.

   “녹여버려라.”

   항성들을 분해하고도 남을 전략 병기들의 화력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막아내는 괴물. 물리적으로 크기가 작은 개체는 제아무리 강해도 오랜 시간 함대를 상대로 버티기 어려운 것이 정석이건만, 이 괴랄한 괴물은 그 말도 안 되는 위업을 손쉽게 이룩해내었다.

   “저런! 무슨 정신 나간 괴물이!”

   “사용하는 능력의 종류가 무엇인지도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흡사 마술을 부리는 것 같군.”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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