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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6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7. 뿌리 원정대 (8)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12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함대와 포기브니스가 대결하는 장면은 장엄하였다. 흡사 마법과 과학의 운명적 결투라는 테마를 직접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수적 우세가 있어서인지 시간이 흐르자 승패의 향방은 서서히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다. 포기브니스는 무한 포격의 열옥에 갇혀 서서히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여유롭게 미소를 입에 걸었다. 외관상으로는 연합군의 승기가 잡혀가는데도 지독하리만큼 불쾌한 불길함이 들었다.

 

   퍼엉.

 

   마침내 놈은 장렬히 산화되며 분자 단위로 해체되었다.

   “드디어!”

   하지만 승리를 자축하기 무섭게 불길한 예견 속에 있던 반전이 임했다.

   {이야! 그래도 한 번은 넘겼네.}

   그 존재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공격력이 어떤지 대강 평가해보려고 봐주면서 싸웠는데.}

   별안 간 어떤 마법의 모래시계가 뒤집히기라도 한 듯한 현상이 벌어졌다. 무대 전체의 시간이 대결이 시작되기 직전으로 돌아가는 듯한 묘한 이질감이 모두에게 엄습하였다. 이내 포기브니스가 멀쩡한 형체로 회복되었다. 그것은 재생 프로세스가 아니었다. 정황 상 시간 역행임이 분명했다. 그 증거로 연합군 함대도 전투하기 이전의 상태, 곧 에너지와 힘을 소모되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거짓말! 이런 일이 어떻게?’

   관망하던 윤혁도 이번만큼은 당황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가 아는 상식 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모든 일은 인류의 기술력으로 흉내낼 수 있어도 시간을 역행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안 된다지 않았던가. 최소한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심지어 신기의 경지에 도달한 윤혁의 형조차도 못하는 일.

   ‘이건 그 사람 본인이 직접 말해준 사실이다.’

   그때 그는 분명 ‘인과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시간 역행은 인간에게 있어서 결코 허락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단단히 못을 박았었다. 그 사람이 무언가를 착각했으리라는 가능성은 쉬이 상상되지 않았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결론은 하나다. 지금 포기브니스가 보여준 연출은 진정한 의미의 시간 역행이 아니라 속임수이리라. 대체 어떤 교묘한 반칙을 이용하였길래 저런 모양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어떤 방법으로? 어디서부터 잘못 짚은 거지?’

   혹시 조금 전의 전쟁은 처음부터 물리 전투가 아닌 환술이었던가? 만일 그것이 맞다고 친다면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허깨비에게 홀린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과 기계들의 인지 체계 속에 동일한 환술을 불어넣는다고? 아니면 현실 조작이라도 개입된 거인가? 양자 세계의 질서를 응용한?

   ‘인류연합은 대체 뭘 만들어낸 거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한 고민이 그리 길게 이어지기도 전에 전투가 다시금 재개되었다. 이제는 포기브니스도 공격력을 테스트한답시고 순순히 맞아만 주지는 않았다. 물론 여전히 오만하게 자신만만함을 드러내고 싶었는지 소형 개체만의 유리한 전술인 침투전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방어 위주의 전략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공격용 무기를 소환해 사용했다.

   차원의 문 같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더니 허공에서 놈의 병기들이 소환되었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미색이 돋보이는 동시에 설화적인 디자인이 배합된 무기들이었다. 무기 하나하나에서 함대원들이 지금껏 한 번도 체험해본 적 없는 괴이한 속성의 힘이 분출되었다.

   “흡사 판타지 속 마법 같군.”

   실제 그 무기의 기능은 우주 규모의 마법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공간의 찢어짐, 시공의 뒤틀림, 환상과 현실의 경계 해체, 현실조작으로 보이는 현상, 물리법칙의 변조, 정체불명의 속성의 힘의 분출까지, 마도 공학이 실존하는 지구에서조차 공상과학 속 이야기로 간주할법한 기현상들이 봇물 터지듯 솟구쳐 나왔다.

   {슬슬 참 교육을 시작하지.}

   이윽고 포기브니스의 머리, 아니 머리 모양의 신체 부위에서 일곱 개의 뿔이 솟구쳐 나왔다. 뿔마다 눈처럼 보이는 것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눈동자의 모양이 기이했다. 윤혁은 그중의 몇을 알아보았다. 격자무늬의 선들이 사방으로 방출되는 푸른 눈, 밤하늘처럼 은하수를 머금은 검은 눈,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눈,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눈.

   ‘설마 현자의 눈?’

   느껴지는 아우라는 희미했지만, 진에게서 본 현자의 눈과 비슷했다.

   ‘왜 저 녀석이 저 눈을 소유했지?’

   일곱 개의 현자의 눈은 서로 공명을 일으켰다. 그것들은 시야를 다 함께 공유하기라도 하는 지 연합군을 일제히 다방면에서 동시 관찰하였다. 공격 목적으로 꺼낸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정보 관측이 목적 같았다. 눈들은 연합군에게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내려는 모양이었다.

   {자, 나를 즐겁게 해달라고, 친구들.}

   다시금 포기브니스를 향한 집중 포격이 재개됐다. 이번에는 놈이 마술 같은 무기들을 휘두르는 바람에 적잖은 함대가 정지상태가 되거나 행동 불능에 빠졌다. 놈은 여전히 실실 웃으며 봐주듯 싸웠다.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처음보다는 길게 걸렸으나 오랜 포격 끝에 포기브니스의 몸체는 다시금 녹아내렸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어김없이 다시금 시간을 되돌리는 듯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제 놈의 일곱 뿔 각각에서 작은 뿔 일곱이 가지 뻗듯 솟구쳤다. 작은 뿔에도 현자의 눈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포기브니스의 외향은 더 기괴하게 변했다.

   마침내 70번째 차례에 이르렀을 때 놈은 설렁설렁 봐주는 태도를 내버리고 전력으로 싸움에 임했다. 이내 지옥도의 광경이 펼쳐졌다. 근처에 행성계라도 있었다면 그 행성마저 전부 열기로 녹아내렸을 만큼 끔찍한 대격전이었다. 이젠 연합군도 힘을 아껴가며 싸울 여유가 없었다. 숨겨둔 비장의 무기는 물론 자폭 공격까지 아껴가지 않으며 총력을 쏟아부었다.

   마지막 70번째 대결은 사흘 동안이나 이어졌다. 끝내 연합군은 피 흘림과 고통을 대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미 반 이상의 함대가 전투 불능이 되거나 격침되었다. 전투가 가능한 남은 절반도 부품이 심각히 훼손되어 온전한 전투력을 낼 수 없는 상태였다.

   {큭, 이번 기수의 수험생들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군.}

   포기브니스는 항복을 선언하는 대신에 흥미를 표했다.

   {설마 일흔 번을 전부 채울 줄이야……. 칭찬해주지.}

반쯤 격파된 포기브니스는 더는 자신의 회복을 위해 시간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에 놈은 공간 일부를 잡아 찢어 틈새를 만들더니 커튼처럼 펼쳐버렸다. 이윽고 검은 공간이 산산이 부서지더니 흰 배경의 공간이 나타났다.

   ‘뭐지?’

   모두는 당혹감에 물들었다.

   흰 배경 그 너머에는 태고의 물체 같은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빛을 머금은 양치식물처럼 생긴 거대한 건축물이 공간 전체를 수놓으며 사방으로 몸을 뻗어대고 있었다. 언뜻 보면 히드라나 산호초처럼 보이기도 했다.

   꿈틀거리는 그것의 가지마다 열매가 맺혀 있었는데 열매의 크기가 산채만큼 거대했다. 건축물의 모양 자체는 흉측했지만, 현란한 빛을 발하는 특성 때문인지 역설적인 아름다움과 경외심까지 같이 느껴졌다.

   “설마 저게…….”

   “……뿌리?”

   대원들은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괴이 물체의 형상에 넋을 놓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인간들이 정복하고 싶어 안달을 내었던 애증의 대상, 뿌리가 코앞에 놓여있다. 마음속에서 미묘한 심정이 교차했다.

   살아남은 함대는 뿌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것은 아무런 저항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괴물들을 내보내서 공격을 가하지도, 몸체를 움직여서 공격하지도 않았다. 그저 저항 없이 묵묵히 침엽수처럼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긴 여정 동안 들끓었던 인간들의 시련과 원한의 축적이 허무해질 만큼.

   함대원들은 심란함에 빠졌다. 우리는 고작 저것을 만나겠다고 지난 수천 년간 피눈물을 흘러왔던 것인가. 지금 당장 저것을 정복한다면 앞으로는 무슨 미래가 펼쳐질까. 이전 세대의 원정대도 저 모습을 보았을까. 보았었더라면? 저들은 과연 어떤 해답을 얻었을까? 자신들의 근원에 대한 귀소 본능을 해결했을까. 아니면 더 큰 미궁 속에 빠졌을까? 이제 그들과 동일한 과정을 겪게 될 우리는 과연 과거를 씻어내고 밝은 앞날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을까.

   대원들이 한참 상념에 잠겨있는 순간, 허공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망이군, 집행관. 본선 통과자가 전체의 3분의 1을 넘기다니.}

   포기브니스와는 다른 색채의 음색이었다.

   {너무 방심한 나머지 무르게 대해주었군.}

   무시무시한 목소리에 남아있던 대원들은 공포감에 저절로 몸이 굳었다.

   ‘누구지?’

   ‘상대가 아직 남아있었나?’

   ‘왜 뿌리를 눈앞에 둔 지금에 와서 다른 적이?’

   포기브니스의 변명 섞인 응답도 같이 메아리쳤다.

   {상대의 잠재력을 끝까지 시험해보려다가 부득이하게 이렇게 되었습니다 마스터. 하지만 유사-‘현자의 눈’의 ‘프렉탈 아이’ 모드를 일흔 번째 단계까지 발동시킨 결과, 저것들의 문명이 자력으로 당도할 수 있는 잠재력 최대 한계치를 관측해내었습니다.}

   {좋다. 그 데이터는 지금 곧바로 회수하지.}

   잠시 후, 초거대 규모의 거신(巨身)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먼 실루엣이었는데 손가락만으로도 함선을 쥘 만큼 거대했다. 그것의 주변으로 빛의 경로가 뒤틀리고 왜곡되는 바람에 구체적인 형태는 관측조차 불가능했다.

   거신은 포기브니스를 쥐더니 쥐어짜 버렸다. 곧 포기브니스의 현자의 눈들은 거신의 손바닥에 모조리 흡수되었다. 반파되었던 포기브니스의 몸도 원래 상태로 회복되었다.

   즉각 연합군은 눈앞의 거신이 결단코 이길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공포감에 몸이 굳자 행동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튀어나왔다. 함대는 사전 공모도 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총 포격을 감행했다. 설령 무의미한 포격이 될지라도 그렇게 해야만 이 압도적인 우주적 공포에 매몰되지 않을 것 같았다.

   {조율 프로그램의 메타-아바타, 분신에게 처형 프로세스 허용.}

   거신의 입에서 방금 전과는 다른 톤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대화라기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시스템 메시지 같은 느낌이었다. 공용어와 다른 언어가 섞인 듯한, 흡사 기계어와도 같은 기괴한 명령어. 공포감이 들었다.

   {Execution.}

   다시 원래 목소리로 거신이 읊조렸다.

 

   촤아아아악.

 

   섬광 덩어리로 된 구체가 거신의 몸을 중심으로 생성되어 방사형으로 쭉 뻗더니 온 사방을 가득 뒤덮었다. 백색의 섬광 덩어리는 마치 팽창하는 적색 초거성처럼 주변의 물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집어 삼켜버렸다. 함대도, 함대원들도, 포기브니스도, 뿌리도, 심지어 윤혁마저도.

   그와 동시에 윤혁의 반지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위이이이잉.

 

   반지로부터 발생한 반응은 희미한 발광(發光)과 함께 모종의 작용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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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7 Finished. 다음 화에 오랜만에 중요인물 재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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