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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7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8. 이치죠우지 카가미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16 | 회차평점 0 0

 

 

 

 

 

*

 

 

 

 

   에녹이라는 남자는 친절하게 먼저 운을 떼며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위버멘쉬께서 그분의 이복동생에 대해서 내게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동생을 각별히 아끼고 귀여워하시던 것 같았죠. 속생각을 잠시 곱씹으며 에녹은 강윤혁이라는 자의 실물 생김새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살폈다. 그가 보기에도 카이젤과 약간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다만, 초현실적으로 완전한 외양을 지닌 카이젤과 달리 그의 동생이란 자는 적당히 현실적인 범주의 얼굴이었다. 일반인 기준에서는 잘난 편이겠지만 초인들에 대보면 전혀 두드러지지 않았다.

   “에녹 아담즈 씨……, 아니면 인류연합 부대표님?”

   상대에 대한 존칭을 어떻게 부를지 몰라 망설이는 윤혁.

   “아무래도 저에 대해서 그분이 언급하셨던 모양이군요.”

   “아아, 네.”

   분명 스쳐 지나가듯 간단하게만 언급했었지.

   “이치죠우지 쥰 씨의 아드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윤혁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말했다. 그러자 에녹의 푸른 눈동자가 호기심을 띠며 이채를 발했다. 아주 희미하게 진동하는 느낌도 들었다.

   “의외로군요. 나를 만나는 이마다 하나같이 2대째 위버멘쉬, 이벨리아 아담즈, 내 어머니를 추억하며 그녀를 언급하건만……, 내 생물학적 아버지를 토대로 나의 정체성을 인식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군요.”

   이에 윤혁은 어찌 대답할 줄을 몰랐다. 그게 그리 기이한 일인가. 난처한 입장이 된 그는 슬쩍 화두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질문 있습니다. 혹시 지금 제가 보는 당신은 본체입니까? 분신입니까?”

   “어리석은 질문이군요. 물론 분신입니다. TUNER 일부분을 실체화시킨 뒤, 트리니티 알고리즘을 매개로 제 의식을 일부 형상화한 것에 지나지 않죠.”

   에녹은 간단하게나마 윤혁이 마주하는 현 상황의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먼저 TUNER에 관하여.

   그것의 본질은 이데아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같은 하드웨어와는 무관하게 별도로 작동하는 무형(無形) 초차원 서버. 자세한 구동 원리는 초인조차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했다. 카이젤이 기초 원리를 넌지시 제안했으며 에녹이 그걸 바탕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빚어 만들어낸 물건이란다.

   기본적인 기능은 이종족의 진화를 조정하고, 자원 배분을 조율하고, 지휘계통의 역할을 감당하는 동시에, 이종족들의 집단무의식적 정신 체계를 조율하고 빚어내는 역할이다.

일단 TUNER는 대다수의 지적 인공 생명체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초차원 서버이기에 실제 물리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되는 아바타가 필요하긴 했다.

   현재 우주에 방출된 TUNER의 아바타는 총 1천 개인데, 현재는 기능을 집대성하기 위해 그 아바타들을 하나로 결합해 메타-아바타를 형성한 상태였다. 참고로 이 메타-아바타에는 자신의 조각을 분리해 분신처럼 원격 운용하는 기능이 있다. 뿌리 원정대 함대를 전멸시킨 조각도 메타-아바타가 대규모 실험을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흩뿌려놓은 것들 중 하나란다.

   “그러면, 저기 저 마흔 마리도 메타-아바타의 조각 같은 겁니까?”

   “아닙니다. 저것들은 아바타가 아니라 TUNER의 본체 서버를 시뮬레이션 우주 실체화 기술의 힘을 빌려 일부를 현실화한 것입니다. 서버 본체와 비교하면 수치화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티끌에 불과하지만요.”

   그런 게 또 가능했구나. 별의 별 희한한 게 다 나오는군. 물론 윤혁의 지식 수준으로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최소한 굉장한 테크놀로지의 산물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초인들의 지혜가 엄청 난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런 것까지 만들어낼 줄이야.

   ‘하긴 형도 부대표를 두고 가장 뛰어난 최상위 초인이라고 말했었지.’

   그런 엄청난 상대 앞에 비무장 상태로 서 있자니 괜히 주눅이 들었다.

   “편히 앉으시죠.”

   에녹은 긴 대화를 할 참인지 일부러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가 손짓 한 번을 하자 큐브 형태의 흰 방 모양 공간이 생성되었다. 방 안에는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 그리고 찻잔이 놓여 있었다. 벽면은 유리처럼 투명했다. ‘뿌리’의 모습이 그 너머로 비쳤다. 다만, TUNER의 본체가 실체화된 분신들은 유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윤혁이 지레 겁먹지 않도록 배려해준 듯 했다.

   “그나저나 부대표님은 이 하늘도시에는 무슨 볼일로…….”

   “글쎄, 도리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군요.”

   에녹이 지긋이 나무라듯 윤혁을 쳐다보았다.

   “당신이야말로 왜 겁도 없이 해처리 앞에까지 왔습니까?”

   곤란했다. 말하자면 너무 복잡한 사정인데 어찌 설명한다냐.

   “그. 그게….”

   “초인들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는 점잖게, 그러나 꾸짖는듯한 목소리로 윤혁에게 말했다.

   “얌전하게 몸 사리며 다닐 수는 없는 겁니까?”

   에녹의 음성은 매우 엄격하고 차가웠다. 윤혁은 일부러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이 선택을 내린 동기는 어디까지나 주민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지식을 직면하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이 결정에 관해서 만큼은 세상 지도자들이 내린 평가 앞에 주눅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변명을 늘여놓자니 장차 일이 복잡하게 뒤엉킬까 봐 걱정되었다. 무엇보다 부대표 같은 거물이 하나님의 복음을 탄압하는 노선을 취하게끔 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자극하지 않고 좋게 좋게 설명할 방법은 없을까?

   “저는……, 식민지 주민들이 자기들의 근원이라고 믿는 물체, 그러니까 ‘뿌리’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정체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뿐입니다. 인류연합 군대나 시스템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흐음.”

   에녹은 딱히 더 궁금하지는 않았는지 진실을 파헤칠 목적으로 깊게 심문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윤혁의 눈을 빤히 응시하며 불편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의외로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카이젤보다 불편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혈연이라는 찬스가 없어서 그런 것이겠지.

   “어쨌건 규정을 위반할 생각은 아니었단 뜻이군요. 그렇다면 이 정도까지 진상을 봤으면 충분하니 이만 돌아가시기를 권합니다. 나 역시도 위버멘쉬의 귀한 혈육이 괜한 일로 다치는 상황은 원치 않으니까.”

   시무룩해진 윤혁은 아주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애초에 그놈의 규칙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데…….’

   느닷없이 범법자 취급을 당하며 사고뭉치로 몰리자 은근 빈정이 상했다. 하지만 억울해도 어쩌겠는가.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인데. 더 어색해지기 전에 화제를 돌려보았다. 윤혁은 에녹에게 TUNER 계통의 분신들에 새겨진 문양의 의미에 관하여 여쭤보았다.

   “육망성……, 죄다 그 문양이 그려져 있던데……, 무슨 의미인가요?”

   “호기심이 많군요. 과한 호기심은 개구리를 죽인다고 했습니다만.”

   에녹은 충고인지 경고인지 모를 섬뜩한 표현을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미 TUNER에 대해서도 들어버렸으니 한 번만 더 부탁드릴게요.”

   윤혁의 너스레에 에녹은 한숨을 내쉰 뒤 허공에 육망성을 그렸다.

   “일각에서는 악마의 그림이라고도 하고 유대교에서는 거꾸로 다윗의 별이라 부르며 신성시하기도 하죠. 고로 신성함과 불경함을 동시에 담은 기하학입니다.”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그 문양은 밝고 섬뜩한 빛을 흩뿌렸다.

   “TUNER를 고도화시키는 과정에서 여섯 개의 보조 프로그램을 서버에 심어 넣었습니다. 각각의 보조 프로그램은 이종족을 다룰 목적으로 설계되었죠. 공통점이라면 생성할 때 유물론과 무신론적 철학을 재편해서 만들어내었습니다.”

   “그건 왜죠?”

   “그것들은 인간의 지혜를 마비시키는 몽매(蒙昧)의 응집체니까요. 그 점을 감안해 역발상을 했습니다. 이종족을 무지하게 만들어 인간의 영원한 노예로 복속시킬 아이디어를 착안해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죠. 조만간 한계가 드러나긴 하겠지만 시간 벌이는 이뤘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긴 해도 말본새를 들어보면 에녹도 카이젤처럼 무신론적 과학을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하는 모양이었다. 적의 적은 잠정적 친구. 어쩌면 의외로 대화가 통하는 상대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들었다.

   “불경의 육망성이라면……, 그런데 혹시 육망성, 아니 다윗의 별에 주님의 말씀에 계시된 비밀이 담겨있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들어보셨습니까?”

   13, 37, 73.

   TUNER 분신들의 육망성 문양을 이루던 원의 개수이다.

   히브리어 창세기 1장 1절, 곧 성경의 첫 문장을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표현한 뒤 그 알파벳에 대응되는 고유 숫자로 치환해 배열한 뒤 연산하면 다윗의 별과 관련된 오묘한 수학적 패턴들이 도출된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우측에서 좌측으로)

 

   위 문장에 나열된 히브리 알파벳을 대응 숫자로 바꿔 숫자 행렬을 만든 뒤 일정한 규칙대로 묶어 더하거나 빼면 13, 37, 73 같은 ‘다윗의 별 관련 기하학 숫자’와 ‘완전수’(주 : 약수를 모두 합해서 자기 자신이 되는 수), ‘삼각수’(주 : 1부터 특정 자연수까지 나열하고 모두 합한 값) 등의 수학적 패턴이 신묘막측하게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위대한 첫 문장, 하나님의 최초의 선포. 그것은 비단 영적 위엄만 갖춘 것이 아니라 정미한 수학적 구성 패턴까지도 오밀조밀하게 드러내는 역작이다. 더욱이 다윗의 별 관련 숫자인 13, 37, 73 등에서는 삼위일체나 7일 창조 등의 성경적인 진리까지 엿볼 수 있다.

   윤혁은 이것을 미끼로 상대의 지적 호기심을 끌어당기고자 시도해보았다.

   “그 코드는 알레프 노인이 알려준 것입니까?”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네?”

   그의 말대로 윤혁은 어르신이 남긴 주석 책에서 이 기묘한 수학시(數學詩)를 배웠었다. 아주 어려운 지식은 아니긴 해도 따로 배우지 않고서는 스스로 깨닫긴 어려운 내용. 그런데 에녹 저 사람은 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눈치챘을까. 수학적 패턴이야 천재니까 자력으로 깨달았다고 쳐도 이 숫자와 윤혁과 에드레이와의 연관성은 어찌 눈치챘단 말인가.

   “어떻게 아셨죠?”

   “종종 그분이 애착을 보이던 바이블 코드 중 하나였으니까요. 정확히는 알레프 노인의 수양딸이 그분이 남긴 성경 연구 자료를 좋아했습니다. 나와 3대째 위버멘쉬가 유모의 손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알레프 노인의 딸은 종종 우리를 찾아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중에는 이런 류의 내용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카이젤과 에녹은 에드레이의 딸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다정한 부모라는 축복을 누리지 못한 두 소년에게 에드레이의 딸은 따스하고 친절한 이웃집 할머니가 되어주었다.

   에녹의 평을 따르면 그녀와의 교류는 나름 유익했다. 정서적인 만족감을 충족하기에 도움이 되었고 잠깐이나마 안식의 요람이 되었다. 지혜로웠던 그녀는 영특한 두 소년에게 창조주의 위대한 진리와 말씀을 설득시키기 위해 그녀 나름의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모양이다. 그 도구로서 보통의 어린이 동화 성경 대신에 복잡한 바이블 코드 이론을 택한 것은 의외의 전략이었으나 영리한 발상임은 분명했다.

   물론 참된 신앙을 심어주는 데는 실패했겠지.

   믿음이란 지식적인 설득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법이니까.

   “당신이 알레프 노인과 마주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별세 소식도 들었죠.”

   에녹의 묵묵한 어조에 윤혁은 눈초리가 축 가라앉았다.

   “그렇군요.”

   “개인적으로 존경하던 분이었기에 저도 몹시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슬프다라. 일정 부분 공감은 되었다. 짧은 인연이었어도 헤어지기 아쉬운 좋은 분이었지. 그와 직접 교류하지 못한 채 간접적으로 명망만 들었던 두 초인에게도 그 빈 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하물며 믿음의 후배들에겐 어떠하겠는가. 분명 험난한 영적 순례를 견뎌야 할 다음 세대의 연약한 씨앗들에게는 그 묵직한 거목이 공석이 상실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오히려 윤혁은 에드레이가 카이젤이나 에녹 같은 교만한 위인들의 마수에서 벗어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겼다. 박수를 칠 때 멋진 모습으로 잘 떠나신 훌륭한 케이스가 아닐까. 하지만 일부러 그런 생각을 입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

   여하튼 공통의 관심사로 겹쳐진 주제를 논하다 보니 뻣뻣하고 얼음장과 같았던 분위기가 조금은 녹아내렸다. 에녹 아담즈라는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조금은 마음을 열고 알아가고픈 호기심도 생겼다. 윤혁은 정보를 취하려는 목적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와 편안하게 대화의 장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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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스토리 전체의 축을 뒤흔들 운명적인 만남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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