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7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8. 이치죠우지 카가미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19 | 회차평점 0 0

 

 

 

 

 

 

*

 

 

 

 

   어느 정도 말이 트이자 윤혁은 조심스레 눈치를 봐가며 질문을 던졌다.

   “혹시 뿌리의 정체에 대해서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곧바로 에녹의 푸른 눈이 냉담하고 서늘한 빛을 머금었다.

   “평소에도 눈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겠군요.”

   “죄, 죄송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지극히 우문(愚問)입니다. 인류연합 부대표인 내가 감히 그분의 명령도 없이 공적인 이슈에 대해서 털어놓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엄격한 말투만 봐도 그가 얼마나 고지식한 인물인지 선히 느껴졌다.

   “저기……, 그렇지만 어차피 저는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저 같은 약소한 인물이 제 형님 같은 위인이 벌이는 경영에 무슨 흠집이라도 내겠습니까. 단지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인해 괴로워서 그런 것뿐입니다.”

   윤혁은 필사적으로 진심을 담아 호소했다.

   “…….”

   “게다가 정말로 인류연합이 인류 모두를 수호하고 번영케 하기 위해 존재하는 떳떳한 조직이라면, 적어도 스스로 그리 자부한다면, 굳이 그 경영을 비밀로 감춰둘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투명하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윤혁은 상대를 구워 삶아보고자 부질없는 노력을 반복했다.

   “사실 딱히 비밀로 해야 할 사항은 아니긴 합니다만.”

   에녹은 그 페이스에 휘둘리지 않은 채 차분히 제 할 말을 이어갔다.

   “강윤혁 씨가 이곳저곳 치고 들어오는 모양새는 썩 좋지 않군요. 아무리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의 울타리 안, 소위 ‘우주적 교회’를 세상과 분리시켜 거리를 두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지만, 그런 명목으로 우리를 적대시하거나 계몽할 대상처럼 여기는 태도는 불쾌합니다. 당신은 이 순간에도 속으로 내가 식민지 주민들을 착취하고 미혹했다고 여기고 있잖습니까?”

   속내를 거침없이 파고드는 정곡에 윤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니,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자니 차마 그럴 수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이번 일을 빌미로 우리의 책무를 꼬집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합니다. 식민지 주민들이 뿌리 원정에 나선 것은 엄연히 그들의 자유의지에 기반했습니다. 우리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제 발로 함정을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들었을 뿐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까지 우리가 물어야 할까요?”

   탁월한 언변과 빈틈없는 논리. 몹시 골치 아픈 상대였다.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부대표님께서 불편해하신다면 하늘도시 주민들에게는 절대로 발설하지 않고 저 혼자서만 알고 있겠습니다.”

   “공수표를 남발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의 전적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여간내기가 아닌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러면 원하신다면 제게 정신 간섭을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윤혁은 이런 상대에게는 일부러 고개를 숙여주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진이나 다른 초인을 상대할 때처럼 뻣뻣하게 대해봤자 역효과가 나겠지. 과연 그 결정이 옳은 것인지 효과가 나타났다. 에녹은 상대의 굴종 어린 자세가 불쌍했는지 예상 밖의 자비를 베풀었다.

   “뿌리……, 원래의 이름은 ‘뿌리’가 아닙니다.”

   그토록 생색은 생색대로 내더니, 사실 별 아쉬운 기밀도 아니었는지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쩌면 수많은 계획 중 하나, 그것도 별 중요치 않은 작은 일부에 불과해서 그런 것일까?

   “제품명은 해처리, ‘종의 기원’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부산물로 마물왕(魔物王)의 작품입니다. 생산 기지죠. 기계, 이종족, 인공생명체를 총망라해 무엇이든 생산 가능한 궁극의 생체공장입니다.”

   “무엇이든이라면?”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의 유기체 조합, 특수 원소 기반의 생명체, 벌크 차원에 속한 특수 물질로 된 하드웨어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제약이 거의 없습니다. 엄밀히는 유전 데이터를 편집, 생성하는 장치라 이해하는 편이 좋겠군요. 창조자라 하기에는 편법 쪽에 가깝지만, 어쨌건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품은 종족들을 생성해낼 거대한 잠재력을 탑재했습니다.”

   가히 생명 공학의 한계를 넘어선 금단의 절정.

   “게다가 제품명이라 함은, 그런 괴물급 생체 공장이 여럿이란 뜻이군요.”

   “네.” 

   “그럼 뿌리의 정체도 해처리들 중 하나입니까?”

   “파생된 건 맞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맞춤형으로 커스텀 개조된 버전. 마물왕에게서 해처리 최종 완성형을 인계받아 온 뒤, 타임필드 내부에서 수천 년간 개조 작업을 추가로 거쳤습니다.”

   거대한 스케일의 시간 개념이 대화 중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갔다.

   “단순한 생체공장을 넘어 완벽한 초차원 구조물로 승격되도록 각종 테크놀로지들을 접목시켰죠. 여기에 이곳 인공 우주, 곧 ‘특수공간’을 생성해낸 원점이 되었던 ‘제너레이터’까지 결합시킨 끝에 비로소 ‘뿌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에녹의 설명이 옳다면 이곳 사람들이 소위 뿌리라는 미지의 존재를 두고 생명체와 우주의 기원이라고 믿었던 것도 어느 정도 일말의 일리는 있었던 셈이 된다. 하늘도시 내부의 무대를 이룬 인공우주 그 자체와 그곳의 여러 이종족들이 어찌 되었건 뿌리에서 생성된 건 맞으니까. 하필 그 때문에 뿌리와 무관한 인간들마저 자신들의 기원을 뿌리에서 찾으려 하게 된 것이 문제다만.

   “이종족을 인공적으로 제작한 이유는……, 노역을 시키기 위함입니까?”

   “뭐, 따지고 보면 전부 인류의 이익과 번영을 위한 창조이긴 하죠. 욕망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과연 에녹도 카이젤과 다를 바 없이 인간중심주의의 야망에 깊이 물든 사람이었다. 윤혁은 조금 안타깝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에녹을 향해서 동정심이 느껴졌다. 설득한다고 해서 당장 달라질 일은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왕 질문한 김에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물어보시죠.”

   “이곳까지 원정대가 올라오는 과정에서 온갖 장애물을 보았습니다. 던전을 함선 전용 버전으로 바꿔놓은 듯한 것들도 있었고 인류연합 초기 단계의 함대를 모방한 무리도 보았죠. 마법 같은 괴이한 병기를 휘두르는 괴물도요.”

   에녹은 대강 뭘 말하는지 감을 잡았는지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보시죠.”

   “거듭 마주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들은 단순한 방벽이나 장애물이라기보다는……, 뭔가 식민지 인류의 역량을 시험해보려는 의도로 지어진 듯한 느낌이 짙어 보였습니다. 얼마나 더 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 미리 평가해본다고 해야 할까. 제 짧은 소견입니다.”

   던전이라는 개념을 응용한 스테이지 시스템, 시뮬레이션 우주의 실체화를 이용해 구현한 것으로 보이는 구 인류연합 함대, 그리고 포기브니스라 불리던, 시간을 이용해 장난을 치던 괴생명체까지. 단순 뿌리에 대한 방어만이 목적이라면 그렇게까지 불필요한 장비를 두어 여력을 낭비할 이유가 전혀 없다. 처음부터 파워업 하지 못한 함선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거나 봉인하면 훨씬 쉬웠겠지.

   이 석연찮은 의문에 대해 에녹은 별것 아니라는 듯 솔직히 대답했다.

   “네, 공교롭게도 당신의 추측이 맞습니다. 우리가 일부러 저들을 시험해보려 했습니다. 인류 문명의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객관적으로 측량하고 평가하는 것, 그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죠.”

   의외로 순순히 인정해버리니 윤혁도 에녹의 의중이 궁금해졌다.

   “조금 전 이종족의 창조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강윤혁씨 당신의 의식 위로 떠 오른 생각을 잠시 독심술로 엿봤습니다. 분명 당신은 이종족이나 실험체들, 기계들이 인간의 제어에서 벗어나 문제를 야기할 상황을 염려했겠죠.”

   에녹은 역시 초인답게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드러내지 않았다. 윤혁은 긍정의 답변 대신에 침묵으로 응수했다. 그런 윤혁을 아랑곳 않고 에녹도 자기 할 말만 담담히 이어나갔다.

   “3대째 위버멘쉬는……, 겉보기에는 마치 감당하기 힘든 폭주의 열차처럼 비칩니다. 막무가내로 문명 발전을 과증폭시키는 판도라의 상자의 개방자처럼 여겨지기 쉽습니다. 동생으로서 본 형님 또한 그렇게 보입니까?”

   “음, 아무래도요. 형은 워낙 엄청난 천재이다 보니까.”

   “하지만 소꿉친구로서 제가 평가해온 바로는 다릅니다. 그 사람만큼이나 극렬한 신중함을 선보이는 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우매한 도박을 경멸하지요. 아주 작은 도박에도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발생할 모든 위험 가능성을 미리 낱낱이 찾아낸 뒤, 한없이 100%에 가까운 확률로 방비책과 봉인책을 마련해두죠. 그 일이 완비되지 않는 한 프로젝트 자체를 시작조차 않는 자입니다.”

   이 말은 좀 의외였다. 윤혁이 겪어온 카이젤은 어떤 대단한 일이건 뚝딱 이뤄내는, 흡사 도깨비방망이, 혹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사람이었다. 미다스의 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그가 고민하는 모습은 쉬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엄청난 추진력의 소유자가 알고 보니 과도하게 신중하다 못해 벌벌 떨기까지 하는 사람이라니.

   “그렇군요. 좀 놀랍네요.”

   “기계나 이종족에 대한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하늘도시라는 모듈이 발명되기도 한참 전, 즉 인류가 막 여러 항성계로 확장 정책을 펼치던 시절, 카이는 기계들의 반란을 극도로 경계한 나머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궁극의 비기를 완성해버렸습니다.”

   그 신비로운 실체의 이름이 재언급되자 윤혁을 귀를 쫑긋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써 ‘기계 율법’이라는 시스템이 확립되었죠. 그때 당시에 그는 비단 상용화된 기계나 현존하는 기계를 제어하는 것을 넘어 장차 발명될 모든 기계마저도 속박으로부터의 탈출 가능성을 영원히 박탈할 작정이었습니다.”

   현재 드러난 위협만이 아닌 미래에 나타날 위협까지 깡그리 제거한다. 과연 편집증에 가까울 만큼 염려가 많은 위인이다. 하기야 그런 신중함 덕분에 현시대처럼 기술적 특이점을 수천 차례 뛰어넘은 시대에도 별다른 위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분명 신중함은 이 시대의 지도자에게 적합한 자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계와 같이 온전히 복속된 발명품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이 잠재적 문젯거리가 되고 있죠. 인공생명체 따위의 것들 말입니다. 카이는 인류가 만들어낸 발명품이라면 무엇이건 철저히 자신의 제어 아래에 두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종족의 정복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안타깝게도 과학 기술이 지나치게 발달하면서 인공 발명품의 카테고리 또한 지나치게 확장되고야 말았다. 그 결과, 지적능력을 갖춘, 임계 수준을 넘어선 새로운 발명품들이 무수히 등장했다. 나아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하위차원과 상위차원, 심지어 유기체와 기계의 경계마저 허물어졌다. 이로써 제어 불능의 존재가 등장할 위험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아쉽게도 제가 완성한 블라스핌 헥사그램은 당장 드러난 위험성은 제어할 수 있으나 미래에 드러날 잠재적 경우의 수까지 모조리 색출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죠. 그는 벌써 자신만의 비밀 프로젝트를 개시했습니다.” 

   에녹의 해설에 윤혁은 빨려갈 듯 호기심을 느끼며 집중했다.

   “그리고 최근에 그는 지적설계종(種)들을 제작했습니다. 이로써 장차 ‘인류의 발명품’들이 인간을 넘어설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계획을 세웠죠.”

   “지적설계종이요?”

   뭔가 흐릿한 기억 너머로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듯한 감이 들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37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8. 이치죠우지 카가미 (2)
등록일 2024-08-16 | 조회수 42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37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8. 이치죠우지 카가미 (4)
등록일 2024-08-21 | 조회수 45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