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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7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8. 이치죠우지 카가미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21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지적설계종이라면, 혹시 공중부양하는 촉수 물체, 그것도 관련이 있습니까?”

   심히 엉망인 작명 방식에 에녹은 불쾌해하며 이마를 찌푸렸다.

   “하아, 현지 주민들이 그 따위로 부르덥니까?”

   “네.”

   “나 역시 일일이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 존재도 지적설계종의 분신 내지는 조각일 겁니다. 지적설계종 계열은 내 블라스핌 헥사그램의 제어에서 벗어난 존재입니다. 그들은 특별히 자기 마음대로 하위 종족을 설계하고 조작할 권세를 지녔습니다. 심지어 하위 종족에게 유사 자유와 문명을 선사할 수도 있죠.”

   문명 폭주 현상의 당혹스러운 현 주소를 목격한 윤혁은 기겁했다.

   “아니 그런 일이 가능키나 한답니까?”

   “그러는 저 너머에 보이는 뿌리는 어디 상식적인 존재였습니까?”

   “여하튼, 형이 지적설계종 그놈들을 이용해서 폭발적으로 성장할 우주 인류 문명의 미래를 대비한 시뮬레이션을 했단 말입니까?”

   “맥락은 비슷합니다. 상세히 묘사하려면 훨씬 복잡한 논설이 되겠군요.”

   이어지는 과학적, 철학적, 수학적 설명은 너무도 어려웠다.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강의 목적과 흐름을 이해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정작 알고픈 요지는 따로 있었으니 그 부분을 좀 더 시원하고 긁고 싶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 이종족들을 제어할 방도는 확립된 겁니까?”

   “위버멘쉬의 ‘그 계획’만 완성된다면 분명 그럴 것입니다.”

   그놈의 그 계획이란 게 뭘지. 더욱 혼미한 미궁에 빠져드는 듯했다.

   “지적 생명체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쳐도, 바이러스 같은 무지능의 존재들에 대해서도요? 인공적으로 만든 괴이 미생물체들이 범람할 가능성을 통제하지 못하면 인류 전체를 재난으로 끌고가는 격이 될 텐데요.”

   “자연법칙 그 자체의 조정에 대해서도 따로 방책을 마련해두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기존의 통제 타워에 여러 가지의 방책들을 조합해서 사용하면 지성 여부를 막론한 인공물은 물론 사실상 모든 범주의 자연 피조물에 대해서도 적용이 허락되리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윤혁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들과 그에 대한 해결책들까지 짚어주었다. 철두철미한 성격이라더니 과연 어떤 잠재적 위험도 인류를 해하지 못하도록 안배를 둘 심산이었구나. 한편으로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한 지식적 성취였다.

   “오히려 이종족보다 더 큰 문제는 인간입니다.”

   “인간이요? 딱히 인류연합 측에 반역을 일으키려는 사람도 없을 텐데요.” 

   윤혁이 그게 가능하냐는 식으로 반문하자 에녹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도 인간의 본질을 아시지 않습니까. 역설적이게도 인간이야말로 자연 만물과 인공 발명품을 통틀어 그 무엇과도 비기기 힘든 골칫덩어리입니다. 그들은 기회만 나면 반역과 분열을 꾀하고 제어에서 벗어나려 하며 낭비를 일삼고 균형을 일그러트리는 존재들이죠.”

   어째 인간계 조직의 2인자가 발언하기에는 어색함이 짙은 평이었다.

   “어, 음……,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당신 인본주의자 아니셨습니까? 이 질문이 혀 끝까지 올라왔다. 다행히 아이를 과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그 아이가 문제아라는 것을 인지하는 일이 부모에게는 별개이듯, 에녹은 최소한의 종족 성찰 및 객관화가 가능한 모양이었다.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에 한착하던 시절부터 늘 그래왔습니다. 아주 조금만 영토를 넓히는 데 성공해도 같은 민족 안에서 여지 없이 분열과 독립 투쟁을 일삼았죠. 전쟁은 일상사였고요.”

   앵글로 색슨 족속에서 분리되어 국가를 이룬 미합중국처럼. 혹은 이베리아반도에서 분리되어서 독립 국가들을 세운 남미 국가들처럼. 긍정적인 의미건 부정적인 의미건 인류는 분열하고 흩어지기에 최적화된 종족이었다.

   바벨탑의 저주로 인함일까?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대화할 줄 몰라서일까? 혹은 허울 좋은 가치와 명분을 내세워 다툼의 소재로 소비하는 데 이골이 나서? 무엇이 이유이건 인류연합과 같은 단일정부 주의자들에게는 미약하게나마 잠정적 근심거리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하물며 장차 인류가 치리하게 될 영토는 초은하단을 넘어 전 우주로 확장될 것입니다. 광학적 가시우주(可視宇宙)를 넘어 불가시 우주로, 3차원을 넘어 상위차원까지 확대될 것입니다. 그렇게 영역이 불어날 시대에 분열이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여긴다면 이는 안일함에서 비롯된 사고일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기야 하겠죠?”

   보아하니 에녹의 사상은 국가 독립이니 분리주의니 하는 것을 지지하는 이념과는 일절 타협점이 없는 모양으로 보였다. 어투에서부터 전체주의적인 사상이 절로 묻어나왔다. 세계 단일정부 구성을 향한 강렬하고도 선명한 애착이 엿보였다. 분명 인간들을 단 하나의 절대적 단일 지배 체제 아래 굴복시키길 원하리라. 아마도 그 기치란 바로 그의 주군, 윤혁 자신의 형제이겠지.

   ‘이 사람도 형만큼이나 사상이 위험하네.’

   에녹은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는 윤혁을 여유로이 바라보며 계속 읊었다.

   “그래서 장차 인류연합의 영토 내에서 인간들이 자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을 대비해야 했습니다. 나아가 그들이 운 좋게 독립에 성공했을 경우도 방비해야 하죠. 반역이 발생한다면 얼마만큼 제어에서 벗어날지, 그들이 혹시 폭주하게 될지, 그렇게 되면 인류연합에 얼마나 위해가 될지 예측, 아니 예언에 가까운 분석이 필요했습니다.”

   폭주. 지도자들의 두려움을 한 마디로 형상화하기에 이 단어보다 적절한 선택이 또 있을까. 멀리 돌아볼 필요 없이 지금 이 하늘도시의 주민들만 해도 막상 탁월한 기술력을 획득하자 냅다 생체 실험이나 인공인격 제작 같은 각종 비인도적 행위에 종사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내다 던져버리는 역사를 선보였다.

   에녹의 염려는 어쩌면 단순 세력 분열만 고려하는 것은 아니리라. 제어에서 벗어난 세력이 문명을 통제하지 못한 끝에 폭주하거나 연합과 함께 공멸하는 것을 두려워할 테지.

   ‘바벨탑을 중심으로 흩어지지 않으려 했던 니므롯 세력의 야망처럼…….’

   이제 왜 에녹이 굳이 식민지 인류를 시험하려 했는지 그 명분이 명확해졌다. 그것이 도의적으로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인류연합이 감안하고 예방하려 했던 미래는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들이 충분히 위협감을 느낄만한 것이었다.

   “부대표님께선 이곳 인간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나아갈 수 있고, 또 그렇게 진보했을 때마다 중앙 측에서 그들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셈입니까?”

   “네, 그 일명 하에 이미 수억 개의 도시에서 수백 차례 시험을 해보았죠.”

   지금 본 현상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구나. 기가 몹시 차지만 깊게 고민해봤자 근심과 번민만 더할 뿐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 자명했기에 잠시 의식적으로 고민을 제쳐두었다.

   하지만 부나방처럼 뛰어들었다 사라져버린 인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설마 위해를 당한건 아니려나?’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은 명료화해야 할 듯했다.

   “원정군은……, 혹시 TUNER 손에 모두 죽어버린 겁니까?”

   “그럴 리가요. 식민지에 거주하는 우주 인류에게는 죽을 권한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시점이면 아마 당신도 이미 알게 되었겠지만, 그들 속에는 ‘생사의 표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죽거나 다치기 직전, 그 표식이 찰나 직후의 미래를 예측하고 반응을 일으킵니다. 즉각적으로 대상자의 몸을 워프시켜 안전히 지킨 뒤 동면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 원리면 한 끝만 어긋나도 위험해질 수 있지 않나요?”

   “확률론적으로는 그렇게 판단되겠지만, 생사의 표식이라는 테크놀로지의 위력을 간과한 생각입니다. 이제껏 어떤 경우에라도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텔레포트를 통해 누군가를 안전히 보호한다는 발상부터가 그리 좋은 서비스 정신은 아니었다. 인체에 안전하게 적용 가능한 텔레포트 기술은 그리 흔치 않으니까. 영혼의 분리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적용이 허락된 것이 워프와 게이트인데 이마저도 현재처럼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편화, 개량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외부에서 사람을 역소환하는 기술은 일시적이나마 정신 충격을 유발하기에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는 많이 쓰이지 않는다.

   죽기 직전에 구출해 동면시키려는 상황에서는 별 의미없는 이야기겠지만.

   “즉 당신과 같이 동행한 원정대, 그 사람들도 피격 직전에 워프 되었습니다. 메타-아바타의 공격마저도 죽음에 이르게하지 못할만큼 그 표식의 성능은 확실합니다. 아울러 함선과 이종족들은 별도의 차원에 봉인해뒀고요.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전부 재활용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걱정은 무슨. 인명만 신경쓰는 윤혁에게는 함선 이야기는 어찌 되건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어쨌건 사람들이 살았다니 다행이었다. 십년감수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

 

 

 

 

   에녹은 윤혁과의 거리감을 허문 김에 자비롭게 선물 삼아 몇 가지 정보를 더 얹혀 알려주었다. 원정대가 여기까지 오면서 거쳐왔던 각종 시험, 그 원리에 관한 의문을 해소시켜주었다. 실제로 그중 많은 부분은 에녹이 다른 최상위 초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전략이나 기술을 본떠 상향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스테이지란 던전 기술을 기초로 그 위에 공간제어 및 차원 관련 기술을 첨가해서 제작한 아공간 기술이었다. 이 과정에서 던전 활용에 능숙한 신수왕의 전법도 모방되었다. 그때 출현했던 괴물들도 신수를 응용해서 제작한 것이었다. 한편 불쑥 튀어나와 적군과 아군을 보조해주었던 요정 형태의 보조자들은 요정왕과의 기술 교류를 통해 만든 군단이었다.

   “그러면 환상 형태의 아군함대가 나타났던 현상은요?”

   “그건 환상이 아니라 실체가 맞습니다. 확률 파동의 복제 기술을 활용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의 미래를 현실화하여 겹쳐놓은 것이죠. 확률왕의 재능과 전매 특허를 본떴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전에 유성운 회장은 성녀와도 협력했었죠?”

   분명 성녀는 인류연합과 반역자들 사이의 내전이 벌어졌을 당시 양쪽 세력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의 확률 파동을 여럿으로 쪼갬으로써 고도화된 은폐술을 전개하였다. 기술적 자문에 유성운이 개입했었다던가.

   “티아라 그 여자에게서 이야기를 다 들었군요. 꽤 불쾌한 기억이군요.”

   “죄송합니다.”

   에녹은 잠시 눈으로 흘겨보며 눈치를 준 뒤 계속 설명을 이었다.

   “스테이지 안에서 벌어진 물리 법칙의 변형 현상 및 특수 구조물의 전개는 마도왕(魔道王)의 전략과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입니다. 포기브니스가 사용한 무기들은 무장왕(武仗王)이 제공한 도면을 활용했고요. 함선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패싱한 채 서로를 연결하여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던 지휘 체계는 인형왕(人形王)의 알고리즘을 참고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포기브니스가 전투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한 일곱 철인왕의 현자의 눈의 복제본, 그리고 TUNER 분신들의 배열에 이용된 아크삼형제의 ‘트리니티 알고리즘’도 모방 활용의 좋은 예시였다. 이렇듯 에녹은 타인의 고유 재능과 전법을 배우고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적재적소 응용하는데 천부적이었다.

   “최상위 초인의 고유 재능과 전매 특허라면 쉽게 모방할 수는 없었을 텐데, 굉장하시네요.”

   동일 레벨의 초인들 사이에서는 기술력 카피가 그리 쉽지 않다고 진이 하소연했던 기억이 얼핏 떠올랐다.

   “3대째 위버멘쉬만큼은 아닙니다. 그분은 교류도 없이 상대와 만나는 순간 고유 재능을 곧장 간파한 뒤 즉각 복제해서 영구적으로 흡수할 수 있습니다. 한번 능력을 얻으면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것도 모자라 원주인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개화해내죠.”

   “으으, 그건 저도 듣긴 했습니다.” 

   솔직히 그건 인간의 재능이라기보다는 괴인의 능력이라고 봐야 맞겠지.

   “그에 비하면 나의 학습 능력은 아이들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 대단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 하지만 윤혁 입장에서는 이미 익히 알던 그 사람의 능력보다는 에녹 쪽이 더 예상밖이었다. 어쨌건 어렴풋이나마 카이젤을 비교 대상으로 두는 게 가능하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러면 부대표님의 재능도 ‘학습의 괴물’로 분류될 수 있는 겁니까?”

   “큰 틀에서 보면 본질은 비슷하니, 네, 맞습니다.”

   에녹은 묘한 어투로 어색해하며 대답했다.

   “다만, 그분에 비하면 한없이 미미해서 표현하기가 민망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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