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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7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8. 이치죠우지 카가미 (6)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26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영문을 모른 채 입이 떡 벌어진 윤혁에게 에녹이 다시금 쐐기를 박았다.

   “판데믹(Pandemic) 현상.”

   “……네?”

   웬 전염병 이야기?

   “초인들은 예측불허의 무형의 불확정성 요인이 무작위로 확산되어 통제의 틀을 벗어나는 현상을 전염병에 비유하여 명명합니다. 영적인 기류, 아니 초자연적인 기류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기독교의 전파, 당신들이 소위 말하는 세계 복음화 현상 역시 이에 속합니다.”

   흔히 전염병의 전파 단계 중 최고로 심각한 수준을 가리켜 ‘판데믹’이라고 부른다. 아무래도 초인들은 기본적으로 영적인 변화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번지는일을 흉측하고 지저분한 전염병처럼 바라보는 모양이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복음 확산의 제어 불능 임계점, 곧 저희가 ‘코드블랙’이라고 정의내린 ‘판데믹 이벤트’가 벌어질 조짐이 이미 은하 전역에서 나타난 상태입니다. 아마도 당신들이 저지른 일의 나비효과겠죠.”

   “하지만 저희의 인력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인데 어찌…….”

   정작 당사자가 못 미더워하자 에녹은 한심해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내가 허언하는 사람으로 보입니까?”

   “아, 아니요! 절대 아니죠.”

   “좋아서 마구 날뛸 줄 알았는데……, 좀 시큰둥한 반응이로군요.”

   “그게, 그렇다기보다는, 너무 놀라워서요. 잘 와닿지도 않고요.”

   이에 에녹은 배후에서 벌어졌던 일들의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하늘도시 시스템의 경영 방침에는 셔플이라는 정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셔플요? 카드를 섞는 그 ‘셔플(Shuffle)’ 말인가요?”

   “같은 어원입니다. 하늘도시의 인구가 일정 이상으로 포화되었을 때 인구 집단을 나눈 뒤 신설된 하늘도시로 옮겨 심는 작업입니다. 개방상태에 있는 하늘도시 중 포화된 곳 여럿을 택해 인구 집단을 전량 추출해 뒤섞은 뒤 새로운 식민지에 심습니다. 마치 한 곳에서만 살던 민족이 세계로 흩어지는 것과 비슷하죠.”

   그것은 흡사 앗시리아 제국이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뒤 인구 혼합 정책을 수행했던 것과 결과가 비슷했다. 또한 유대인들이 로마 점령으로 인한 디아스포라 사건 때 만국 사방으로 흩어진 것과도 흡사하다. 만약 셔플이 그러한 개념으로 작동하는 기전이라면 틀림없이.

   ‘신자들도 셔플과 동시에 여러 하늘도시로 흩어지게 된다. 그들이 그 자리에서 또다시 복음을 전하고, 그 후손들이 계속 교회를 이어나가게 되겠지.’

   이런 패턴이 수십 차례 겹겹이 반복된다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 비록 타임필드 안에서는 수만 년에 걸쳐 서서히 벌어진 일이겠지만, 우주 표준 시간으로 환산하면 불과 3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 그 협소한 3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연쇄 반응이 곳곳에서 이어져 내려왔던 셈이다.

   ‘그리고 만약 하늘도시들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종교 개혁과 같은 사건이 수십 차례씩 벌어져 중첩되었다면 어떨까? 역사의 중요 임계점들 속에서 위대한 역할을 감당한 신앙인들이 나타났다면?’

   어쩌면 걷잡을 수 없는 부흥의 연쇄적 불꽃에 기름까지 부어졌으리라. 이는 막연한 상상이 아닌, 충분히 감안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어느 지경까지 이르렀을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은연중 기대하던 와중, 에녹이 찬물을 부었다.

   “물론 어마어마한 수준을 기대하기는 이르긴 합니다. 최근 인류연합이 벌인 여러 프로젝트에 의해서 종교의 힘이 상당히 시들시들해졌으니까요.”

   “아, 초능력 프로젝트나 진화론 관련 프로젝트 같은 것들 말씀입니까?”

   “그것들의 영향도 있겠군요. 당신들을 막을 의도로 기획한 일은 아니지만, 분명 당신들의 메시지의 효력을 꽤 약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증언에 따르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재도 음지에 숨어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하늘도시에 많이 흩어져있는 상황이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윤혁에게는 적잖은 희망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며 난관을 견뎌 왔던가. 언젠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조할 수 있으리라 기대감으로 험난한 장벽들을 인내해왔었다. 그 결실이 허망한 헛수고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께서 선물하신 결말은 윤혁이나 그의 친구들이 상상했던 범주와는 비교하기도 민망할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사실 그들은 그분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도 은연 중 그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제한했던 셈이다. 또한 자신들이 이미 귀하고 가치 있는 일에 쓰임 받는 중임도 온전히 인지하지 못했다.

   반성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끝내긴 아쉬워.’

   가슴이 깊은 전율로 진동하였다. 주께서 큰 영광을 취하실 날이 가까웠다는 기대에 윤혁의 연약한 심장이 요동하였다. 장차 어떤 방해물이 기다릴지는 예견할 수 없겠지만 이젠 그러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 인간 세계의 세력은 물론이거니와 초자연적인 훼방조차도 주님의 뜻을 꺾을 방도가 없으리라는 확신이 보다 더 선명해졌다.

   “강윤혁 씨,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일을 멈추지 않을 셈입니까?”

   “그야 물론입니다.”

   “설령 우리가 방해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까?” 

   윤혁은 그 뼈 실린 듯한 경고에 긴장감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의도로 한 말이지? 복음의 진전을 막을 작정인가.’

   설마 에녹은 윤혁을 놓아주지 않을 심산으로 이곳에 유인한 것인가.

   “최소한 부대표님만큼은 저희와 정반대 방향으로 걷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소심하면서도 뼈가 굵은 윤혁의 대답에 에녹은 작게 실소하였다.

   “끝내 세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포부로군요.”

   “네, 당신의 부친께서 그러셨던 것처럼요.”

   “알겠습니다. 그 뜻은 이해하겠습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상대를 알게 되었다는 생각에 에녹은 깊은 흥미를 느꼈다. 무미건조했던 일상에 강윤혁이라는 존재가 작은 조약돌을 내던져 잔물결을 만들어내었다. 만약 형과 동생, 두 이복형제가 진검승부를 벌인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그 결말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보고픈 욕심이 들었다.

 

 

 

 

 

 

 

*

 

 

 

 

   한참을 더 이야기한 뒤에야 둘의 담화는 마무리되었다.

   “축복까지는 아니어도 무운 정도는 빌겠습니다. 이미 말했듯 당신의 일을 방해할 의향은 없습니다. 딱히 당신 동료들에게 거부감을 느끼지도 않고요.”

   “감사드립니다.”

   친절에 대한 성의 표시로 윤혁은 에녹과 맹약했던 대로 뿌리에 관한 진실의 비밀을 누구에게도 실토하지 않겠다고 재차 다짐을 표했다. 당장 그 기밀을 털어놓으면 전도를 위한 관심을 끌기에 조금 유리해질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상대에게 거짓말을 하여 신뢰를 더럽히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큰 유익이 없을 가능성도 있는데 소탐대실을 해서는 안되리라.

   “당신들 기독교인들의 명예가 이중적인 잣대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을지 지켜보겠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향한 엄중한 경고에 윤혁은 도덕적 책무감을 느끼며 긴장했다. 나아가 에녹의 경고는 윤혁이나 동료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정부에 해를 끼치는 반역 행위를 유발하지 않을지 두고두고 확인해보겠다는, 일종의 낮은 단계 선전포고였다. 윤혁은 어떤 경우에도 시민의 의무를 소홀히 여기거나 저버려서는 안 되겠다고 긴장의 끈을 조이며 다짐했다.

   “시간이 되었으니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진에게도 연락을 취해놨으니 당신이 파라다이스시에 당도하는 즉시 그가 당신 일행 모두를 회수할 겁니다.”

   에녹은 아무런 장비도 없이 자신의 초능력만을 사용하여 게이트를 열었다. 떠나기 전, 그는 윤혁의 손에 기념품을 하나 쥐여주었다. 낡은 펜던트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사진 한 장이 담겨있었다.

   “내가 들고 다니던 소지품을 복제한 사본입니다. 위버멘쉬께서 당신에게 쌍둥이 반지 한쌍 중 하나를 선물했다 들었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펜던트와 당신에게 준 복제형 펜던트도 비슷한 원리로 연계됩니다.”

   윤혁의 손에 쥐어진 펜던트는 겉보기에는 특별해 보이는 구석이 없었다.

   “특수 능력도 깃들어 있으니 반지와 함께 연계해서 사용하면 편리할 것입니다. 무리하게 남용하는 건 추천하지 않지만 말이죠.”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 후 윤혁은 펜던트를 펼쳐 그 속에 박제된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젊은 남녀의 사진이었다. 검붉은 머리칼의 남자는 키도 얼굴도 평범했지만, 선량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예수님의 자애로움이 연상될 정도였다.

   그 옆에 있는 키 큰 여성은 푸른빛을 머금은 흑발을 하고 있었는데 인세에 강림한 여신이라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이를 배었는지 배는 크게 불러 있었다. 임신만 아니었다면 제법 날렵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여전사의 느낌이었으리라. 그녀의 오른쪽 눈은 남색이었고 왼쪽 눈은 하늘색으로 오드아이였다.

   “이건……, 혹시 부모님 사진입니까?”

   “내게 남은 마지막 유품입니다. 둘과의 추억 자체가 없기에 그리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내 뿌리에 대한 단서라고 믿고 작은 의미를 부여하고 다녔습니다. 카이의 도움을 받아 중요 이능력과 기술력을 이식하기도 했죠.”

   “역시 신경을 아예 안 쓰신 건 아니었네요.”

   “아무래도 인간에게는 회귀 본능이 존재하니까요.”

   사진 한 귀퉁이에는 작은 손글씨가 하나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카가미(ゕゕ〞ゐ)에게

 

   “카가미라는 이름……, 혹시 부대표님의 것입니까?”

   “부모님이 남긴 태명일 겁니다. 어차피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실상 폐기된 이름입니다.”

   “지금의 이름은요?”

   “라일라 씨가 남겨준 것입니다.”

   이치죠우지 카가미(火神).

   신의 불꽃, 소멸하는 불(consuming fire, 신 4:24).

   과연 이치죠우지 쥰 다운 작명이구나 싶었다. 마냥 묻어두자니 아쉬웠다.

   “좋은 이름이네요. 이치죠우지 카가미. 그럼 카가미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상대의 어처구니없는 능청스러움에 허를 찔린 카가미는 실소를 터뜨렸다.

   “편할 대로 하시죠.”

   “아, 그러고 보니 형도 한국 이름이 따로 있어요. 나름 괜찮지 않나요? 부모님의 출신 국가가 다르면 이름을 둘 정도는 소유하셔도 유익할 것 같아요.”

   카가미는 명랑하고 친근감 넘치는 윤혁의 쾌활함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참 재밌는 사람이로군. 그분이 주목할만해.’

   그래서 그도 일부러 오랜 친구를 맞상대하듯 여유롭게 응수했다.

   “카이 그 친구도 제가 아버지의 이름을 지닌 것을 보고 부러워하더군요. 자신도 아버지 라스트네임을 계승하여 동생처럼 한국식 이름을 소유하겠다고 떠들어대더니 끝내 실천으로 옮겨버렸군요.”

   “형도 의외로 귀여운 면이 있었네요.”

   재혁이 들으면 발칵 뒤집힐 소리였지만 무슨 상관이랴. 에녹은 잠시나마 기분이 누그러들었는지 윤혁의 농담에 가벼운 웃음으로 응수해주었다.

 

   이제 정말로 짧은 만남을 마무리할 때가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경고하겠습니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반전되어 묵직함으로 바뀌었다.

   “말씀하세요. 조언이라면 귀담아 듣겠습니다.”

   “이미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1 철인왕 칼리드, 그자를 조심하시죠. 기독교 복음의 급속 확산, 판데믹 현상에 대해 이미 눈치챘을 겁니다. 안타깝지만 그자는 기독교에 대해서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경고하는 에녹의 동공에 깃든 푸른 이채는 섬광처럼 예리했다.

   “본성(本星) 출신인 나와는 달리, 그는 우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지구라는 행성의 장구한 역사와 나란한 획을 형성해온 그리스도인들의 유산과 위업, 칼리드는 이를 향해 존중을 표하려는 마음가짐이 전혀 없습니다.”

   “그 사람……, 들어봤습니다. 진이 한두 번 언급했었죠.”

   아마도 카이젤의 장남이라고 했던 그자가 지금 거론된 칼리드겠지. 무려 인류연합 2인자까지 나서서 고평가할 정도면 상당한 강적이라는 뜻. 불안감과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대단히 강력한 실력자겠죠?”

   “그 정도로는 부족한 표현이 되겠군요. 일례로 이번 초능력 프로젝트도 그자의 작곡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물론 힘의 원천과 원리, 에너지원은 위버멘쉬가 전적으로 제공했지만, 일반인과 초인이 권능을 수여하는 전달 체계를 구체적으로 확립한 데는 칼리드의 공로가 컸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구축 실험 과정에서 기독교와 반대 방향을 띤 종교나 사상들을 이용했었다고 합니다만.”

   몇몇 지난 선교지에서 겪은 악몽이 반사적으로 번뜩 재현되었다. 사람들이 초능력에 심취하여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대적했었지. 그런 만행의 근본을 지핀 장본인이 다름 아닌 제1 철인왕 칼리드라. 과연 위험하다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한 대적이었다.

   에녹은 이 이상은 언급하지 않았고 곧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그럼 수고하시죠.”

   “짧게나마 신세졌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에녹에 의해 소환된 게이트가 입을 벌려 윤혁을 즉각 흡수했다. 눈을 뜨자마자 파라다이스 행성이 시야에 나타났다. 이어서 몇 초 채 지나지도 않아 공간의 틈새가 벌어지더니 네 명의 일행을 진의 우주선으로 회수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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