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7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9. 인터미션 VII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28 | 회차평점 0 |
Chapter 59. 인터미션 Ⅶ
이로부터 얼마 후, 식민지 운영 정책에는 대대적인 격변이 일었다.
블랙홀을 연구함으로써 얻은 각종 인과율 제어 공식을 응용해 카이젤이 발명해낸 ‘마(魔)의 경계’와 그것을 장막 삼아 포장되어 생성된 인공 다중우주, 이 인조 시스템은 비록 큰 비용과 에너지와 자원과 경비와 인력을 소모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현존하는 5억 개의 우라노폴리스 거의 전부에 아낌 없이 접목되었다.
이러한 대대적인 낭비에는 몇 가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인류의 우주 정복으로 인해 생긴 경제적 여유. 수직 방향으로는 상위차원으로의 진출이 확대되었고 수평 방향으로도 초은하단 수십 기의 정복이 완수되었다. 따라서 더는 자원 문제가 걸림돌이 될 당위성이 사라졌다.
둘째, 인공우주 내부에서 자체적인 물질 복제 및 재생산을 이루도록 하는 프로세스가 성공하면서 투자 비용을 상회하는 거대 이익을 통상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초기 투자만 감내하면 그 뒤로는 도리어 황금알 거위 떼를 방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제적 수익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 마의 경계와 인공 다중우주는 장차 우주 인류가 어느 경지까지 도약할지를 연구하는 데 꼭 필요했다. 문명 성장 및 문명 폭주의 잠재력을 미리 측정해내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대응책을 시뮬레이션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 마지막 세 번째 목적은 이미 완료된 다양한 유형의 우주 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그 소기의 목표치를 달성하였다. 자연히 다중우주 형태의 복잡한 하늘도시 구조를 유지할 이유가 더는 없어졌다. 수지타산도 안 맞는 데다가 주민들의 문명을 제어하기에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류연합은 머지않아 도래할 전면개방의 시기를 대비해 노선을 전면 전환하기로 했다. 실험을 통해 미래에 대한 대비는 완수하였으니 더는 문명의 성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때였다. 경제성의 원리에 기초한 행정 운영과 인류연합 직접 통치권으로의 편입이 필요했다.
“이젠 준비를 해둬야지. 준비도 없이 갑자기 시민권을 부여할 수는 없으니까.”
지도자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개편이 개시되었다.
우선 마의 경계 안쪽 편의 인공 다중우주 구조물들은 모조리 회수되었다. 이미 만든 인조 우주를 버리기는 아까웠기에 공간 프레임은 인류연합 공용 재산으로 환원하였다. 결과적으로 추출 후 하늘도시 내부에는 행성 남짓한 크기의 땅만 남게 되었다. 잘해야 지구와 동급이 된 것이다. 대신에 에너지 조달이나 구조적 안정성은 전보다 더 강화되었다.
이어서 주민들을 향한 처분도 뒤따랐다.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문명이 이미 임계를 넘어 발전해버렸기에 이를 무마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상부에서는 사람들을 흩어버리는 조치를 취했다. 과도한 지식을 얻어버린 이들은 강제로 하데스 챔버에 봉인되었고 현지 주민들이 구축해온 네트워크와 사이버 공간과 데이터베이스는 따로 백업 저장해둔 후 삭제했다. 주민들로서는 수천 년간 쌓아온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압수당한 꼴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은 봉인되었으며 광범위한 셔플 작업이 개시되었다. 셔플은 본래 하늘도시 내부 자치 세력이 지나치게 성장해 인류연합 측의 제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실제로 인구 집단이 여럿 섞여버리면 그간 쌓아놓은 주민들의 공든탑과 사회 내 결속력은 즉각 사라졌고 주민끼리 다시 화합을 이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자연히 독립은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된다.
다만, 이 강압성을 띤 중앙 지배적 정책은 예기치 않게 선교사들의 활약이 날개를 다는 데 불을 지펴주고야 말았다. 가뜩이나 음지에서 스멀스멀 퍼져나가던 복음이 대대적인 셔플 정책의 영향을 거치자 걷잡을 수 없는 불이 되어 번져나가고야 말았다. 이는 확실한 영적 흐름의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식민지 인간들이 건설해온 각종 문명은 고스란히 인류연합의 차지가 되었다. 함선, 건물, 행성 개조 요새, 기계, 생체병기를 포함한 인프라까지. 언뜻 보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사람이 챙긴 격이었으나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다. 따지고 보면 식민지 인류가 캐낸 풍부한 자원은 실상 그들의 것이 아닌, 인류연합 측에서 제공해준 것이었으니까.
물론 인류연합 역시 테서렉트 아키텍쳐라는 반칙을 활용해서 상위차원으로부터 자원과 에너지를 갈취해 온 점에서는 피장파장이었다.
인공 우주 내부를 누비던 외계인, 아니 이종족들도 다시금 인류연합 측에 회수되었다. 한때나마 높은 명예와 지적능력을 자랑했던 이종족도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했다. 이는 노예면 노예답게 바닥을 구르라는 엄중한 선포였다.
이종족의 자유의지는, 애당초 그런 게 진정으로 존재한 적도 없었지만, 철저히 유린당하고 개조당했다. 인간에게, 인간들의 왕에게 철저히 충성하도록 재조정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개조당했음에도 이종족 개체 중 누구도 아무런 불편감이나 불만도 느끼지 못했다.
“창조물이면 창조자에게 굴복해야지.”
본인도 창조주를 거역한 종족의 왕인 마당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었지만 어쨌건 이 일들을 주관한 자는 이러한 신념 하에 일들을 처리하였다.
이 같은 전 우주 영역에 걸친 대대적인 개편 과정에서 범 인류 차원의 최면 현상이 가동되었다. 아크삼형제, 일곱 철인왕은 물론 카이젤 본인까지도 최면의 효력을 증대하는 데 힘을 보탰다. 새로 얻은 초능력까지 연료로써 더해지는 바람에 효과는 상당했다. 아울러 은하 전역에 설치한 증폭 장치가 정신 간섭 효력을 곱절 배로 늘려주었다. 이제 각 하늘도시 내부의 인류는 자신들에게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올바르게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다중우주 형태의 하늘도시를 행성 형태로 재구축하는 바람에 인구 집단을 새로이 고르게 배분하는 과업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카이젤은 하늘도시의 추가 운용을 허락했다. 곧 Galaxy-0로 수많은 IDD 게이트들과 차원 문이 열리더니 몇 달 전 미리 생산해둔 신식 타입의 하늘도시 1조 개가 당도했다.
이에 따라 초인들과 시스템들은 행정적 개편을 위한 논의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무려 1조 개의 식민지가 장래 시민권을 받을 이들의 거주지로 추가되었다. 이젠 주민들을 이 새 터전들에 새로 배분해야 했다.
거기다가 장차 투입되어 활용될 테라포밍 행성들의 문제도 있었다. 외부 은하들을 정복하면서 생물체 거주 적합도가 높은 수천억 개의 외계행성들을 대거 확보한 마당이었다. 이들 역시 ‘퀘이사 프로젝트’의 후속작만 완성된다면 순식간에 테라포밍이 완료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역사상 최다 인구, 최대 영토가 확보된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안정화를 위해 준비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경탄스러운 과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칼리드와 일라이저가 몰래 제작했던 지적설계종, 그것들을 탑재해놓은 컨테이너형 항성급 요새 열다섯은 진이 보고를 위해 떠나자마자 미리 차원 후방에서 대기하던 인류연합 정규군 함대의 손아귀에 강제로 나포되었다.
더불어 유리스는 우주 각지로 방출된 지적설계종과 그 개체와 분신들을 추적한 뒤 특수 커뮤니케이션 알고리즘을 활용해 길들였다. 곧 그녀에 의해 가축 신세로 전락한 지적설계종들 역시 인류연합 측에 송환되었다.
이렇게 ‘명목상 불법’인, 실제로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들은 해부대로 인도되었다. 이제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은 생명체들은 저들의 육체와 정신을 최소 원소 단위 이하까지 해체당할 운명을 순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이 작업의 복잡성은 단순한 해부의 차원 그 이상이었다.
먼저, 지적설계종들은 시뮬레이션 우주 깊숙한 심연에 구금되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양자역학적으로 무수히 분화되는 유사 평행우주 시스템과 강제로 동기화되었다. 곧 지적설계종들이 그 잠재력을 바탕으로 이끌어낼 잠정적 위험의 경우의 수를 반영한 가상 미래들이 남김없이 실체화되었다. 공상과 형이상학의 차원에만 머무르던 미래들이 현실의 물가로 견인되었다.
이 미래들은 서로서로 겹쳐지고 공명하며 더 깊은 가능성의 트리를 도출해내었다. 이윽고 시뮬레이션 우주가 실체화되었다. 추출을 통해 실체화된 미래들은 초능력에 의해 역(易)방향 연산되었다. 이 프로세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실제 미래와 잠정적 경우의 수 전체를 망라해 발명될 모든 인공발명품의 정신을 하나로 엮을 ‘궁극의 허브’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지적설계종의 도입으로 유발될 예정이었던 잠재적 역사 특이점들이 가상 정보로 변환되어 이데아에 축적되었고, 이데아와 그 보조자들은 그 특이점들을 해결할 알고리즘들을 도출하였다.
그다음에는 지적설계종의 정신체를 해부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해부된 정신체 파편들은 씨앗으로 화하였다. 씨앗은 통상공간 이면에 놓인 시블링 홀로그래피 차원 및 오버랩 월드에 ‘중간자(中間者)’ 형태, 곧 물질과 정보의 중간 상태로 심겨졌다.
씨앗들은 급속도로 자라나면서 열매를 맺었다. 또 자라난 줄기들은 자기들끼리 교접함으로써 다양성을 증대시켰다. 마치 기본 벡터 세 개가 한 삼차원 공간의 모든 벡터를 만들어내듯, 씨앗들은 모든 가능성의 공간을 망라하며 침식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적설계종의 육체가 해부당할 차례가 돌아왔다. 하위종족을 지적설계종으로 승천시키는 작업을 여러 번 벌였던 차인지라, 지적설계종들의 육체에는 처음 설계 때와는 달리 여러 종의 특질이 보기 좋게 버무려져 조합되어 있었다. 만일 이들의 육체에서 예상치 못했던 형질이 발현되어 있다면 해부를 통해 좋은 참고자료를 얻게 될 것이다.
{지적설계종: 블라인드-워치메이커, 해체 및 분석 완료.}
시스템이 작업의 최종 완료를 선언했다.
{다음 단계 프로세스를 진행하겠습니다.}
{오픈아이드-워치메이커 소환.}
지적설계종: 오픈아이드-워치메이커(Open-eyed Watchmaker). 칼리드와 일라이저가 작당하여 만든 ‘블라인드-워치메이커’ 시리즈와는 달리 카이젤의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 개체 수는 블라인드-워치메이커의 백배, 성능이나 질로 따지면 수십 세대 이상 앞서가는 수준의 걸작들이었다.
다만, 오픈아이드-워치메이커들은 블라인드-워치메이커와 달리 의외성이나 잠재적 위험성은 내포하지 않았다. 백신 역할을 맡아준 블라인드-워치메이커들의 해부 데이터가 전송되어 오픈아이드-워치메이커들에게로 온전히 흡수된 덕이었다. 이제 죽은 시체들의 양분과 더 우수한 존재들이 합쳐져 생성된 융합체들의 역할은 백신 데이터를 대량양산해서 실질적으로 배분하는 일이었다.
{오픈아이드-워치메이커의 승천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스템이 다시 한번 지시를 내리자 이윽고 무시무시한 오픈아이드-워치메이커들의 ‘정신’과 ‘혼’은 형태학적 구속에서 벗어나 무형화된 존재로 승화하였다. 정보와 지식, 확률과 인과율이라는 형태를 새로이 입었다. 무형의 실체들은 서로 합쳐지고 복합되어 시너지를 일으켰고 곧 지수함수적으로 강해져 갔다.
연기처럼 스멀스멀 올라간 승화체들은 이윽고 자신들이 섬기기로 예정된 본체 앞에 당도하였다. 그 존재는 형체도 색도 질량도 없는 기이한 구조물이었다. 마음이나 정신을 가진 존재, 혹은 법칙을 따르는 존재라면 자연물이건 단순한 구조체이건 복잡한 인공물이건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굴복시키는 궁극의 역작이었다.
그것은 본래 모든 인공 이종족들을 영구적으로 종속시키기 위해 설계한 황제의 네 번째 메이저급 초지능체였다.
{인비저블 마인드, 승화체 흡수 프로세스 개시.}
인비저블 마인드(Invisible Mind).
보이지 않는 마음.
그 육중한 초지능체는 승화된 정보체들을 자신의 영양분으로 받아들여 소화했다. 이것은 갈취가 아닌 합당한 회수였다. 애당초 지적설계종들이 소유한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생명체 설계 능력 역시 이 메이저급 초지능체로부터 샘솟아 나온 영감(靈感)으로부터 받은 공급에 일정 부분 기인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최상위 초인들만의 설계만으로 그런 금기 작품을 만들 수 있었겠는가.
이윽고 가뜩이나 짙었던 인비저블 마인드의 존재감은 이제 한층 더 격상되었다. 동시에 오픈아이드-워치메이커들의 육체에 심긴 눈들이 번뜩 떠졌다. 이제 그들은 무작위적인 변수를 낳는 설계자가 아닌, 주인의 명령과 의지를 철저하게 수행하는 꼭두각시로 재탄생하였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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