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8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0. 크로스솔져 III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9.14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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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과 유진의 식당에 돌아온 크로스솔져들은 정원에 모여앉아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제법 심각한 토의를 나누었다.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얽혀들었다. 지금껏 하나님 왕국의 시민답게 신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왔던 그들 앞에 난해하기 그지 없는 선택의 기로가 놓였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떻지?”
웨슬리가 각 팀의 지도자 격 인물들과 신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똑같아.”
“한 가지 답밖에 없지.”
“나도.”
각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의견은 하나로 합치되었다.
“공공과 관련된 일이라면, 혹은 사회와 시민들을 위한 일이라면 제한적으로나마 복종할 생각이다. 하지만 어느 한 개인에게 우리 의지를 복종시킬 생각은 없어.”
“더욱이 대상이 그자라면…….”
“해(垓) 단위도 넘는 수효의 인간의 자유의지를 농락했던 인물이다.”
“그나마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된 후에야 표식의 여파로부터 아주 조금 자유로워졌어. 하지만 우리처럼 되지 못한 히어로들은 그자를 향한 충성심에 속박되어있지. 시민권을 못 얻은 나머지 휴먼 솔져나 우주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바벨탑을 세운 니므롯 이래로 그자만큼 하늘을 향한 강한 정복욕을 노골적으로 실천하는 자는 결단코 없었어.”
“내 생각에도 위험해.”
시저(Caesar, 황제)는 퀴리오스(Kyrios, 주님)이 될 수 없다.
로마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단호히 고백했다. 국가를 맡은 지도자로서의 황제를 존중해줄 수는 있지만, 결단코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는 않으리. 이제 크로스솔져들도 서기 1세기의 신자들과 동일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직속 부대로 만들겠다라…, 틀림없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편히 놔두지 않을 거야. 이미 그는 이종족과 기계, 인공지능, 특수 서버, 심지어는 초인과 우주 인류마저도 완벽한 복속 체계 아래 굴복해두었어.”
아직 영웅들이 충성의 표식의 영향을 받던 시절에는 이런 위험성을 인식하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크로스솔져들은 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충성의 표식의 잔여 영향력으로부터 제법 자유로워졌다.
아울러 휴먼 솔져 시절 여러 초인과 얽히며 모았던 정보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더구나 ‘기억의 표식’의 효력도 약해졌기에 무의식중에 억눌렸던 기억도 풀려났다. 그 정보들과 기억들을 조합한 후 회복된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분별하고자 노력한 결과, 우주의 독재자 카이젤이란 인간에 대해서 제법 객관적이고 영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말세에 가까운 때잖아. 어쩌면 그자야말로…….”
크로스솔져 제10 팀의 리더가 흥분한 목소리로 발언하려다가 이내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멈췄다. 간식을 가져다주려던 성한과 눈을 마주친 탓이었다. 그는 머뭇거리며 아저씨의 시선을 피했다. 성한은 못 들은 척 태연하게 웃으면서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 눈은 슬퍼 보였다.
성한이 자리를 뜨자마자 무디가 한숨을 내쉬며 지적했다.
“개인적인 신학 노선이나 예언에 대한 해석의 관점은 존중한다. 하지만 판단하는 일과 언행을 주의하도록 하자.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미안하다.”
이들에게는 ‘황제’가 마냥 위험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로스솔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소중한 은인인 강성한에게는 그 사람 또한 소중한 혈육이다. 그것도 살과 피를 직접 이은 맏아들. 적대시하고 회피하라고 해서 될 일일까?
“나 또한 초인들의 왕을 퀴리오스로 받들 생각은 없어. 내 충정의 단 일 점도 그에게 선사할 수 없어. 내 삶과 죽음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소유다. 하지만…….”
무디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이어나갔다.
“그래도 이번 레비아탄 사냥은 어차피 언젠가는 꼭 해결해야 했을 일이다.”
어쩌면 문제는 그 이후부터이리라.
“이번 사냥만 끝나면 난 크로스솔져를 그만둘 생각도 있다. 무력을 사용하는 불가피한 과업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해. 하나님께 다른 뜻을 구하고 다른 일을 맡을 거다. 너희도 가능하다면 나와 뜻을 함께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자 이번에는 신해가 발언을 꺼냈다.
“나도 너와 기본적인 생각은 같아. 하지만 나는 오히려 필요하다면 그자를 곁에서 감시하고 싶어. 그래도 성한 아저씨에게 입은 은혜가 있는데 내 나름의 방법으로 보답하고 싶단 말이지.”
친구는 가까이 두되 적은 더욱 가까이 두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자가 엇나가지 않도록 억제할 생각이다. 만일 정말로 절박한 상황이 닥친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그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안전핀이 되어줄까 해.”
무디는 신해의 생각이 약간 석연찮은지 눈썹을 찡그렸다.
“그 의도는 좋지만 조심해야 할 거다. 우린 일개 인간에 불과해. 초인들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잘 알 테지. 킹 오브 히어로즈만 해도 전쟁 경험 한 번도 없이 몇 분 만에 히어로 전체의 무력을 합친 것보다 훨씬 강해졌다. 하물며 초인들의 왕은 그와는 차원이 달라. 특히 지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각오는 되어 있어.”
이렇게 해서 끈끈한 화평의 줄로 연결되었던 굳건한 크로스솔져간의 연맹도 두 노선으로 갈라지고야 말았다. 카이젤을 회피하려는 무리, 그리고 경계하려는 목적으로 근처에 두려는 무리로. 본질적 생각은 하나로 만날지라도 그것을 이뤄내려는 방식의 차이는 평행선을 이루었고 이는 믿음의 형제들 사이에서도 불가피한 분리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
재현은 숙소에서 조용히 혼자 예배를 드리며 묵상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가 생각에 잠겨 기도하던 중 성운이 방 안에 들어왔다. 재현은 바짝 긴장감이 들어 몸을 꼿꼿이 세워 지탱했다.
“당신도 그들과 함께할 생각입니까?”
“그들이라면……, 누구를 지칭하시는 겁니까?”
재현의 불안감이 한 층 더 짙어졌다.
“천재현 씨 당신의 솔져 친구들 말입니다. 그들은 이제 내 손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더 큰 운명에 휘말리게 되었달까요. 그러므로 이제 당신에게도 자유를 주겠습니다.”
성운은 재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레비아탄을 포함한 다섯 개체의 전설급 신수를 사냥하라는 미션이 내려졌다는 소식, 그리고 크로스솔져들의 제어권이 성운에게서 떠나 인류연합 대표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신은 천수현군과 다시 만나고 싶겠죠?”
“유성운 회장님께서 저를 놓아주신다면요.”
“뭐, 놓아주긴 하겠지만, 그래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겁니다. 당신은 신을 섬기지만, 당신 동생은 나와 같은 U-society의 정식 회원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스에게 절대복종을 맹세했죠. 어쩌면 당신은 동생과 대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지금처럼 신분을 숨긴 채 지내는 것이 더 편안할 수도 있습니다.”
재현은 울적한 기분에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랑하는 동생과 같은 노선을 걷지 못한다니. 하지만 이제야 온전한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 발견했거늘 구원하신 주님을 배신하고서 다른 이와 함께 동행할 수는 없었다. 동생을 만난다면 그가 회개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확신이 안 섰다.
“천재현 씨.”
“……네.”
“이번 전설급 신수 사냥 임무 이후로는 당신도 자유의 몸이 될 겁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졸업 기념으로 특별한 선물을 하나 드리죠.”
성운은 재현의 손등을 가볍게 붙잡았다. 그러자 성운의 몸에서 재현 쪽으로 유체 같은 무언가가 흘러 들어갔다. 그것은 이내 응축되어 구체화한 형상을 입더니 옷이 되어 재현의 신체에 꼭 맞게 배열되었다.
“이건 설마!”
“제복의 분신. 제복을 하향 버전으로 디자인한 옷입니다.”
제복. 궁극의 경지에까지 이른 의복 기술의 정점. 그것은 인류의 각종 분야 첨단 기술들이 소형화된 뒤 응축되어 하나로 합쳐진, 가히 천체에 맞먹는 가치를 지닌 비밀 병기이다.
초은하단과 상위 차원의 대거 정복으로 인류의 부가 증대되면서 전과 달리 양산이 가능해졌다지만, 그럼에도 제복의 희소 가치는 줄지 않았다. U-society 소속의 초인이 아니면 제복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라이센스 코드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초인 이외의 존재가 이것을 사용하려면 하향 버전을, 그것도 초인의 허가 아래에서 사용해야 했다.
“당신의 잠재력을 인정하기에 선물해주는 겁니다. 참고로 이 제품의 하향 조절 이전의 원본은 천수현 군의 소유물입니다. 뭐, 편한대로 형제 커플룩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운은 사족처럼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당신네 형제와 마찬가지로 얄궂은 운명에 휘말린 자들이 또 있습니다.”
“…….”
“강성한 씨의 아들인 강윤혁입니다. 혹시라도 그를 만나게 될 일이 있거든 친하게 지내보시죠. 어쩌면 같은 처지끼리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의미 모를 말에 재현의 표정은 상쾌함보다는 오히려 심란함으로 물들었다.
*
얼마 후, 열두 팀 전원은 전신 슈트를 갖춰 입은 채 인형과 무장과 전투 보조용 드론들을 대동하여 마리아나 해구 근처에 모여들었다. 이곳은 레비아탄을 잡을 사냥터로 진입하기 위한, 일종의 최초 통행 관문이었다.
수심이 워낙 깊어 빛은 들지도 않았고 수압도 상당했다. 하지만 솔져 시절 항성 내부 전투까지 겪어본 이들에게는 그리 큰 두려움이나 부담을 주지 못했다. 물리력을 상쇄 소멸시키고 관성마저 중화시키는 근력 강화 슈트 덕분에 아무런 불편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레비아탄 감지 완료.}
카이젤이 크로스솔져들 곁에 붙여둔 보조 로봇들이 아공간과 칼라비-야우 차원을 수색한 끝에 은폐된 레비아탄을 발견했다. 이미 카이젤이 사형선고를 내린 터라 레비아탄을 도울 외부 세력은 일절 없었다. 외부 공간으로 요리조리 달아나는 수작도 차단되었다. 이제 크로스솔져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레비아탄과 그녀의 권속들을 물리치는 일만 남았다. 만일 가능하다면 말이다.
{차원 이면에 숨겨둔 아공간으로 통하는 소형 웜홀을 개방하겠습니다.}
{충격파에 미리 대비해주십시오.}
보조 로봇들은 보조 장비들을 조정하더니 곧 차원 공간의 문을 개방하였다. 작게 생성된 틈새가 소형 패널들의 보조와 공명 장비의 지원으로 널찍하게 벌려졌다. 한꺼풀 한꺼풀 양파껍질을 벗기듯, 로봇들은 아공간 속에서 다시 더 깊숙한 심도에 자리한 아공간으로 파고들면서 레비아탄이 숨어든 좌표를 색출하였다.
{최종 검색 완료.}
{전투에 대비해주십시오.}
책 속에서 간절히 찾아 해매던 글귀를 발견한 것마냥 모두의 가슴에 흥분감이 일었다. 잠깐의 정적과 고요함이 흘렀다. 이내 태풍의 눈이 지나가자 폭풍우가 몰려왔다. 거대한 틈새가 열리더니 이색적인 아우라의 공간이 노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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