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83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0. 크로스솔져 III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9.16 | 회차평점 0 |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곳에는 거대 괴수들이 빼곡히 뒤덮고 있었다. 개체 하나하나가 크기가 최소 산채만큼은 되었다. 진영의 후방부로 갈수록 상위 지휘계통에 해당하는 괴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지위에 비례해 크기도 지수함수적으로 커졌다.
슈트에 내장된 감지장치로 관측해보니 저 멀리 까마득하게 먼 곳에 레비아탄의 몸체가 감지되었다. 이름 그대로 흉악하면서도 고고하고 아름다운 바다 괴물이었다. 고래인지 물고기인지 파충류인지 종류를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외양. 저것마저도 진정한 본체가 아닌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니, 참 놀라웠다.
“키메라인가?”
바로 그때, 마침 침입자에 대응하기 위해 부하 괴수들의 비늘에서 소형 전투용 드론 개체들이 튀어나왔다. 크기는 인간보다 조금 더 큰 정도였지만, 초음속에 가까울 정도로 민첩했다. 완력도 어마어마했고 전투 경험도 상당해 보였다.
“저 숫자를 모두 감당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케리가 냉정하게 분석을 내렸다.
“상관없어. 다들 돌격 준비해.”
“곧바로 우두머리 녀석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웨슬리와 친첸도르프가 대답했다. 열두 팀은 각자 작전 상 맡은 위치로 해산하여 계획된 대열을 만들었다. 그들은 예정된 원격 공격 이후 곧바로 뒤따라 들어갈 채비를 마쳤다.
-한심한 인간들이여.
-냉전 때는 우리가 세력 균형을 맞춰 봐준 줄도 모르는군!
-겁도 없이 레비아탄의 권속들에게 덤비다니.
신수의 권속 유닛들이 텔레파시로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크로스솔져들을 조롱했다. 대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공포와 상당히 비슷한 류의 감각이 엄습했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훌륭한 전사들은 전혀 당황치 않았다.
“한 방에 끝낸다.”
“준비해.”
도리어 전사들이 신뢰하고 응원하는 비장의 카드는 아직 겁이 많고 마음이 여렸기에 실전의 공포 앞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기도하면서 겨우 공포감을 몰아내었다. 버텨 서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상당한 선전이었다.
“잘할 수 있겠지?”
경호 역을 맡은 크로스비가 곁에서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이 우리보다 나이는 더 많아요. 존재한 시간으로나 태어난 시점으로나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를 불편하게 여기지 말고 동생들처럼 편하게 대해줘요. 필요하면 소모품으로 이용해도 좋아요.”
“말씀만으로도 고맙네요. 하지만.”
재현은 여전히 잘할 수 있을지 긴장되었다. 그래도 이내 굳게 마음을 먹었다.
-매몰되어라.
-본인들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사라져라.
잠깐동안 근접전이 벌어졌다. 거대한 신수들이 일제히 초거대 규모의 빔을 발사했다. 광학적 빛과는 다른 속성의 미지의 에너지 덩어리였다. 단순히 힘의 밀집도나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물리법칙에 간섭을 일으키는 속성이 깃들어 있었다. 함대 급 위력이니만큼 크로스솔져들로서는 스치기만 해도 끝장이었다.
“지금이야!”
신해가 큰 소리로 전음 메시지를 보냈다. 그 순간, 신수들은 인간들이 대체 무엇을 믿기에 저렇게까지 오만방자하게 설치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그리고 찰나의 다음 순간 그들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반응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슈우우우웅.
거대한 섬광 덩어리가 공간을 가르며 질주했다. 아니, 질주라기보다는 실수 좌표 직선을 무한히 잘게 쪼개어놓은 후 좌표와 좌표 사이를 연달아 연속 텔레포트 하여 진행한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횟수의 텔레포트의 충격파가 겹치며 공명이 발생했다. 양자 정보가 한 좌표에서 다른 좌표로 점프하는 과정에서 확률 파동이 겹쳐졌다. 무수한 횟수가 중첩이 더해지자 그 여파로 집적된 빛에너지가 임계점을 뛰어넘었고 공간 충격파들이 섞여서 이상 현상을 일으켰다.
그것은 힘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특수 기술 없인 도무지 방어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재현의 진격으로 인해 발생한 일격은 상대성이론마저 무시하면서 신수들을 갈아버리며 질주했다. 공간을 가득 뒤덮던 포격들이 법칙 왜곡으로 인해 모조리 뒤틀려 산란되었고 신수들은 차례차례 믹서기에 갈리듯 갈려 나갔다.
그렇게 적의 대열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며 관통되었다. 빛의 일격은 상대가 재배열할 틈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후방까지 갈아버리면서 진행했다. 빛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서 공간 붕괴 현상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신수들은 접근해오지도 못하고 알아서 당구공처럼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콰아아아앙.
크로스솔져의 히든카드, 천재현은 그대로 목표물인 레비아탄의 복부를 정통으로 관통했다. 워낙 덩치가 커서 구멍을 내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작전상으로는 충분했다.
“헉헉.”
위력을 과도하게 높인 탓에 재현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무력화된 레비아탄이 보였다. 실드며 배리어며 장갑이며 죄다 송두리째 뚫려버린 상태였다. 잠재력과 기술 위력을 극대화하고 신체를 안정화해주는 유사 제복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재현은 이 위력의 수조 분의 일조차 못 버티고 먼저 증발했을 것이다. 그는 지친 나머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아직 임무가 더 남아있어.’
그는 관통의 순간에 레비아탄의 몸체에 자신이 박아넣었던 제복 파편들을 원격 조작해서 레비아탄의 혈관을 죄다 침식해버렸다. 녀석은 곧 무력화되었다. 어떻게든 속박을 풀어버리려고 몸을 뒤틀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정말 고마워요, 재현 씨.”
“감사드립니다. 최고로 멋졌습니다.”
“염치없지만, 바깥쪽의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크로스솔져들은 찬사와 함께 다음 작전을 위해 앞으로 나섰다.
미리 계획했던 대로 재현의 일격이 개시되는 순간 미리 준비된 이동 장치를 통해서 빛의 궤적을 따라 이동해온 크로스솔져들이 재빨리 레비아탄의 뱃속으로 잠입했다. 그들이 구멍으로 들어가는 동안 레비아탄의 관통상이 재생되지 못하도록 재현은 제복의 상의 부분을 무기로 바꾸어서 작살을 꽂듯 놈을 봉쇄했다.
덕분에 레비아탄은 반격하지 못했지만, 문제는 나머지 신수들이었다. 놈들은 재현의 위력을 깨달았는지 섣불리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장 큰 위협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행동의 방향을 올바르게 고쳤다. 그들은 집중적으로 원거리 포격만 가했다. 속성에서의 불리함을 고려했는지 특수 공격은 포기한 채 그저 화력 집적도만 높였다.
‘어떻게든 바깥에선 내가 막아내야 하는데.’
재현은 적의 포열로 인한 열기에 질식할까 봐 염려하여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주님께서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계심을 느꼈다. 또한 그 곁에는 다른 일꾼이 함께하고 있었다. 등 쪽으로 든든한 감촉이 느껴졌다. 찬영의 슈트가 닿는 감각이었다.
“찬영아.”
“형, 같이 맡아요.”
사실 성운이 재생 치료를 시행했을 때부터 찬영과 재현 두 사람의 이능력은 같이 모여있을 때 효율성이 극대화되도록 설계되었다. 찬영의 에너지 상쇄 능력이 재현의 신체와 제복을 통해 공유되었다. 이윽고 재현의 이능력까지 섞이자 강력한 상쇄의 파동이 일어나면서 신수들의 빔이 소멸하였다.
*
은하계 외곽에 세워진 어느 인공천체 구조물. 그곳은 요새 겸 우주 도시였고 이종족들이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는 식민지이기도 했다. 비즈니스 시찰 목적으로 지구에서부터 출장을 나온 한 남자가 거대한 도시와 플랜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어딘가 모르게 흡족하지 않은지 계속 표정을 찡그리고 고민 중이었다. 사업 자체는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었기에 그 자신도 어디에서 불편감이 몰려오는지 깨닫지 못했다.
-이상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말한 부분들은 잘 부탁드립니다.”
-네, 회장님.
이종족 총독들에게 사업 진척 보고를 받고 정리를 마친 직후, 남자는 잠깐 휴식을 취할 겸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는 수첩을 펼쳤다. 별안간 짙은 기시감이 뚜렷해졌다. 관측에 기반한 이성적 판단 정보는 아니었다. 육감에 가까운 비이성적인 느낌이었다.
‘제길.’
그는 무의식적으로 늘 습관적으로 그랬듯, 수첩 곳곳에 끼워진 사진 중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것은 낡게 바래진 구식 인화 사진이었다. 갈색머리의 선량한 얼굴을 한 사내가 청록색 띤 흑발을 지닌 남자 옆에서 멋쩍게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 속의 두 형제를 우두커니 쳐다보는 사내의 표정에 복잡한 감정이 섞여들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 채 무기력하게 중얼거렸다.
“형…….”
아무래도 당분간 며칠은 또 씁쓸한 뒷맛에 잠을 설칠 듯했다.
*
레비아탄의 뱃속에 쳐들어간 크로스솔져들은 팀 단위로 쪼개어져서 괴물의 체내 회로를 순회하면서 최단 경로를 검색하였다. 괴물의 신체가 어찌나 단단한지 가장 여린 모세혈관벽마저도 마치 금강석과 같았다. 크로스솔져들의 맹공격으로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저 몸체를 두부처럼 찢어버린 재현의 파워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새삼 실감되었다.
-크로스솔져니 뭐니 하면서 스스로의 신앙을 자랑하지만, 결국은 너희도 인간의 기술력에 의존해 설치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이번 위업도 순전히 저 바깥에 있는 녀석 덕분이었지.
레비아탄의 면역세포들이 크로스솔져들과 격돌을 벌이는 와중에 계속해서 비웃었다. 참고로 면역세포라고는 해도 하나하나가 사람만큼이나 크기가 컸다. 전투력과 지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크로스솔져들은 말로도 싸움으로도 순순히 밀려나지 않았다.
“어불성설이군.”
“너희는 너희를 제작한 기술은 물론이고 그 알량한 기술력의 근원이 된 인간들의 지성을 만들어낸 창조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그러게나. 하여간……, 신수 주제에 자신들이 영혼이라도 소유한 줄 알고 착각한다니, 말세라니까.”
케리와 신해는 면역세포들을 무참히 참수해버리면서 그들을 조롱했다.
“우상 놈들을 일일이 깨부수려면 시간이 걸리겠어.”
무디는 밀려드는 우글거리는 면역세포 군단을 노려보며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는 슈트에 장착된 특수능력을 발동해 적들을 일제히 얼려버렸다. 신해는 오른팔을 변형하여 검을 생성한 뒤 봉쇄된 면역세포들을 토막 냈다.
“고맙다.”
손과 발이 협동하듯 그들의 팀웍은 온전히 맞물렸다.
레비아탄의 다른 신체 부위에서도 맹렬한 선전이 이어졌다.
“숫자가 너무 많은데, 괜찮을까?”
프랑케는 이기는 와중에도 불안했는지 걱정스러워했다.
“재현 씨의 이능력이 제대로 발동되기만 했다면 괜찮을 거야.”
크로스비는 동료를 믿고 기다리자고 제안했다.
“이번 미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역할이 중요하니까.”
과연 그녀 말대로 재현은 찬영의 엄호를 받으며 다음 단계로 착실히 이행 중이었다. 그는 ‘확률 겹치기’와 ‘확률 다각화’를 발동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유사 제복의 연산 보조 기능이 더해진 덕분에 스킬 시전의 정밀도나 실체화 범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직전의 파괴적인 물리 일격보다 오히려 확률 계열 능력이 제복과의 궁합이 좋았다.
그렇게 작전대로 크로스솔져들이 뱃속에 진입한 순간, 그들이 다양한 배열로 진격하는 각기 다른 경우의 수들이 한꺼번에 실행되었다. 이후 각 경우의 수의 미래들로부터 성공적인 요소들만 추출되었다. 이후 현실에서는 그 성공적 요소들만 선택적으로 합쳐져 동시에 실현되도록 재현의 확률 프로그램이 가동되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이전회
38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0. 크로스솔져 III (3) |
다음회
38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0. 크로스솔져 III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