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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8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0. 크로스솔져 III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9.18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이렇게 판이 충분히 깔리자 크로스솔져들의 매서운 맹활약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레비아탄의 몸을 휘젓고 다니면서 순식간에 면역세포들을 격퇴했다. 그 후에는 장기를 뚫고 신체 방어기능을 해체했다.

   정보 전투능력에 능숙한 이들은 해킹 프로그램과 바이러스를 심어 신수의 체내 균형을 깨트렸다. 특수능력을 지닌 이들은 레비아탄의 특수능력 생성 기관에 불안정성을 유발해 폭주를 일으켰다. 이렇게 특수전에 특화된 이들이 맹활약하는 동안, 무술과 격투에 능한 자들은 동료들의 곁을 굳게 보호해주었다.

   원래 이들의 제한된 전력만으로는 제시간 내에 레비아탄의 면역력을 격퇴하고 심장부에 당도할 수는 없었겠지만, 재현의 반칙인 확률 합치기가 발동되는 바람에 여러 종류의 미래에서 나타날 각기 다른 타격들이 죄다 하나로 겹쳐져 버렸다. 덕분에 피해가 중첩되면서 거대한 시너지 효과가 벌어졌다.

   마치 하룻밤 사이에 감기 환자가 췌장암 말기 환자로 돌변하기라도 하듯, 레비아탄은 급작스럽게 각혈하면서 비틀거렸다. 신체를 유지하던 기관들이 일제히 폭주하더니 연쇄적 파동이 번져나갔다. 자체 재생능력이 있었기에 서서히 안정화 상태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크로스솔져들로서는 시간벌기 성공이었다.

   “1팀 심장부 당도. 진입 성공.”

   “2팀도 성공.”

   “10팀도 완료다.”

   “7팀도 도착했습니다.”

   차례차례 공략에 성공한 크로스솔져들은 이내 적의 가장 깊은 심장부에 당도했다. 그곳은 드넓은 공터였는데 흉측한 형상의 제너레이터, 엔진, 그리고 컴퓨터들과 인공 뇌들이 즐비해 있었다. 얼마 안 가 66명의 팀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법이네.

   그리스 신화 속 키르케를 연상시키는 생김새의 아름다운 여성이 공터 한가운데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비아탄의 아바타였다. 그녀, 아니 그것은 맨눈이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달려들어 크로스솔져 열다섯 명을 집어던져 벽에 처박았다. 압도적인 전투력에 십자가 군병들은 바짝 긴장의 끈을 조였다.

   -그랜드 마스터가 황제의 미움이라도 산 걸까?

   그녀는 자조하듯 한탄하며 흥얼거렸다.

   -왜 나를 너희들에게 넘겼을까?

   레비아탄의 녹색 머리칼이 해초처럼 찰랑거렸다. 그녀는 덤벼드는 솔져들을 하나씩 두들겨 패어 제압했다. 맨손 무술만으로도 크로스솔져들의 화력 병기와 특수 무장을 손쉽게 압도하였다. 수십의 전사들이 전력으로 맹공격을 쏟아부었음에도 레비아탄의 몸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뭐, 하긴 내가 너희들을 모두 없애버리면 그만이지.

   “크윽!”

   -그거 알아? 우리 신수에는 인간을 죽이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제약이 걸려 있어. 하지만 유일하게 한 가지 예외가 있지. 그게 뭔지 알아?

   레비아탄은 흥이 잔뜩 올랐는지 타격하는 와중에 들뜬 목소리로 읊조렸다.

   -검투사 결투 방식의 사형선고야. 이번 같은 경우지. 내가 곧 검투장의 맹수고 너희는 검투사지. 비록 나 역시도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랜드 마스터와도 연락하지 못하고 지원조차 못 받지만, 그 대신 너희를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지. 그 정도 위험은 감수했겠지?

   만약 레비아탄에게 내려진 선고가 일반적인 개념의 사형선고였다면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이 초인이 직접 초능력을 사용해 레비아탄을 소립자 단위로 해체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결투 양식의 사형선고는 검투사와 맹수 양쪽에게 사형의 리스크를 부여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로스솔져들 역시 일종의 쌍방의 형벌에 노출되었다는 것.

   -너희도 여간 미움을 산 모양이네. 그러게 대들지 말고 얌전히 황제에게 고개를 숙이지 그랬어? 지금 모양이 딱 콜로세움에 던져진 희생자 꼴이잖아, 하하하!

   엄밀히 말해서 크로스솔져들에게는 처음부터 출정 거부권이 주어졌기에 일방적으로 처형에 던져진 레비아탄과 처지가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인들이 자진하여 선택한 이상 결과적으로는 벌을 자처한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멍청한 기독교 신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멍청하게 사잣밥이 되는구나. 믿음만 잠시 부인한다면, 정의고 뭐고 잠깐만 모른 척하고 멈어갔으면 편했을 것을, 구태여 자기 발을 스스로 묶고야 말지.

   레비아탄의 아리따운 얼굴은 폭력적인 광기로 물들었다.

   -<크큭, 아름다워. 폭력의 향연은.>

   이내 그녀의 목소리는 영에 물들어 희미하게 변했다.

   -<크크크크.>

   레비아탄이라는 지렁이 미끼를 물고 수면 위로 올라온 진짜 목표물.

   ‘지금이다.’

   이제 영웅들의 신념을 증명할 판가름의 시간이 이르렀다.

   ‘놓쳐서는 안 돼.’

   이 순간 두 무리가 자신의 신념을 걸고 발걸음을 뗐다.

   카이젤을 곁에 두고 감시하기로 선택한 크로스솔져 32명.

   카이젤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초야에 묻히기로 한 나머지 34명.

   전자는 사랑과 긍휼에 주안점을 두었고 후자는 공의에 무게를 더 두었다. 전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쪽에 배팅했고 후자는 세상과 분리되는 쪽에 걸었다. 전자는 악의 흐름과 맞서기로 했고 후자는 조용히 주님을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 쪽이 더 올바랐을까? 각자에게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는 것일까?

   그들은 판가름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목숨을 건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세상만 그분의 심판 대상이 아니었으니, 성도들이 성도로서 판단하고 생각하는 모든 가치관과 신념 역시 그분의 재판 아래 놓여야만 했다.

   앞의 32명은 미리 받아둔 검은 반지를 착복했다. 곧 각 반지는 검은색의 슈트로 변하여 그들의 전신을 덮었다. 그들은 곧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일순간에 물리적인 힘이 몇십 단계 이상 상향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정신적 측면에서는 불리함이 뒤따랐다. 성령의 온전한 인도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졌다.

   카이젤의 무제한적인 기술력은 크로스솔져들로 하여금 온전히 주님께 집중하는 일을 방해했다. 감당할 수 있는 본 역량보다 지나치게 강한 힘을 받아버린 탓이었다. 기술 자체는 철저히 중립적이었지만, 워낙 강했기에 취하기가 쉬웠다. 여간해서는 온전한 경건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물질적인 축복이 과도해지면 영적으로 나태해지듯 말이다.

   반면 후방의 34명은 반지를 착용하지 않은 채 영적인 순결성 보존에 더 집중하였다. 딱히 어느 한 쪽이 완전한 정답은 아니었다. 역할이 다를뿐. 32명의 동료가 힘과 완력으로 레비아탄을 깨부수는 역할이라면 34명의 역할은 레비아탄에 간섭한 악령을 부수는 것이었다. 그들은 육신의 무장보다 더 강한 구원의 전신 갑주를 마음속에 휘감았다.

   레비아탄은 갑자기 전황이 뒤바뀐 것을 감지하고는 패닉에 빠졌다. 한쪽에서는 압도적인 무력이 그녀의 육신을 향해 맹렬한 반격을 가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도무지 패턴을 가늠하지 못할 지혜가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레비아탄은 강력한 영적 권위를 느끼고는 전율했다. 거짓으로 조작된 영성을 가진 데다가 악령의 영향력을 받는 현 상태인지라 더 큰 권위의 영 앞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반지를 착용하지 않은 쪽의 크로스솔져 무리로부터 맹렬한 권능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가히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었다.

   그다음 상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미리 각본으로 짜이기라도 한 듯 레비아탄은 수세에 몰렸다. 수족을 하나씩 상실하더니 끝내는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궁여지책으로 자신을 장악하려던 악령에게 의지력을 보태주었지만 도리어 그 때문에 더 강한 영의 힘에 더욱 쉽게 난도질당하고 말았다.

   -물리적으로 강한 쪽은 검은 슈트를 입은 놈들인데…….

   그녀는 정신없이 가격해 들어오는 칼날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째서 입지 않은 놈들에게서 더 무서운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레비아탄은 끝내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우선 그녀에게는 진정한 영혼이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었고, 또한 고민의 답을 얻어보기도 전에 칼이 몸통을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연속 공격에 그녀는 처참히 해체되었다. 뇌와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머리 부분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크로스솔져들은 놈의 ‘증거물’이 아바타의 머리 부분에 심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전투가 종료되자 32명은 재빨리 반지를 벗어버렸다. 그제야 내면에서 솟구치던 흔들림이 가라앉았다. 그들은 지나치게 강력한 물리적 요소에 의존하는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지 철저히 배우게 되었다. 아울러 그자를 곁에 두고 감시하되 휘둘리거나 넘어지지 않으려면 얼마나 강한 굳건함이 필요한지 깨달았다.

   ‘우린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을 해버렸는지도 모른지.’

   그것은 주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임무였다.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이 느껴졌다.

   전투 종류 후, 검은 반지들이 일제히 스스로의 형태를 변형해 거대한 사슬의 모습으로 합쳐졌다. 그 사슬은 레비아탄의 머리, 정확히는 아바타의 머리를 휘감아 봉인했다. 잠시 후 보랏빛 섬광이 일더니 증거물은 머리째로 텔레포트 되었다.

   이어서 신호를 전해받은 재현이 다시 한번 일격을 가해 레비아탄의 심장부까지 구멍을 뚫었다. 그는 증거물에 손상이 가해질까 봐 확보 전까지는 개입하지 않고 일부러 기다리던 차였다. 이제는 이미 임무가 종료되었으니 봐줄 필요가 없었다. 재현은 두 번씩이나 고위력의 공격을 쏟아부은 탓에 탈진해버렸다.

   “괜찮아요?”

   신해가 그를 낚아채서 부축했다.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우리처럼 솔져 출신도 아닌데……. 저희야 인류연합 대표에게 당한 일이 워낙 많아서 감정이 있다지만, 당신은 오히려 인류연합 측 간부의 형제 아닙니까? 꽤 심적 부담이 크셨을 텐데요?”

   “사적인 감정과는 관련 없습니다. 저 사악한 신수들이 지구 시민들의 정신을 오염시켜 악령의 영향력에 취약하게 노출시켰다잖아요. 그렇다면 마땅히 부숴야죠. 과분한 힘을 받은 자로서 책임을 졌을뿐이예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 재현. 솔져들은 탈진한 재현과 함께 자신들의 지친 몸을 이끌고 레비아탄의 몸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미리 탈출용으로 예비해둔 장비들을 발동했다. 이윽고 재현이 한 번 더 무리하여 찬영의 연계 도움을 받아 세 번째 일격을 가해 길을 열었고 그 궤적을 따라 팀 전원이 공간의 문 너머로 도약했다.

 

 

 

 

 

 

 

 

*

 

 

 

 

   도륙된 레비아탄의 머리는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카이젤의 손바닥 위에 소환되었다. 찰나의 시간 만에 그것은 해부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보들을 모조리 흡수한 카이젤은 그 즉시 초자연적 영향력이 남겨둔 증거물들을 취합하여 이종족과 거짓 영성을 잇는 미싱링크를 추출했다. 이제 이 데이터는 인비저블 마인드에 남겨진 마지막 미완성 부분에 끼워 맞출 퍼즐 조각이 될 것이다.

   “정녕 위대한 힘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인가?”

   오로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과민 반응하는 거짓 영성이라니. 가뜩이나 위협적인 요소가 하필이면 그 불확정성과 맞물려 움직인다? 문득 그의 동생 윤혁이 떠올랐다. 그리고 리온이라고 했던 그 선지자도.

   “괜히……, 꺼림칙하게 말이야.”

   그러나 카이젤은 본업에 충실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지막까지 작업을 이어갔다. 어쨌건 최종적으로 잘 추출된 마지막 한 조각은 인비저블 마인드 위에 무사히 부착되었다.

융화가 순조로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초자연적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여러 가지 계략들이 흘러갔으나 일단 급한 불은 꺼두는 편이 좋겠다 싶었다. 일라이저의 신수들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다.

   “일단은 신수들부터……, 모조리 죽이거나 뇌 수술을 해버려야겠군.”

   잠시 고민거리를 주긴 했으나 이것은 작은 해프닝일뿐이다. 앞으로는 이런 미연의 문제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인비저블 마인드가 완성되었으니 이종족의 제어권도 곧 그가 독차지하게 된다.

   ‘셀레스티언들의 활동만 점검해본 뒤 인비저블 마인드를 활성화한다.’

   그는 조만간 있을 셀레스티언 실험을 감시하고자 시스템들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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