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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8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1. 땅 끝으로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9.21 | 회차평점 0 0

 

 

 

 

 

Chapter 61. 땅끝으로

 

 

 

 

 

 

 

 

   한 아이가 좁은 길을 걷고 있었네.

   험준하고 비좁고 걸림돌이 많아서 찾는 이가 지극히 적은 길.

   동행자가 적었기에 외로웠다네.

   하지만 처음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위로하시는 이가 함께했지.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시절부터.

   뒤에서 붙들어주고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앞에서 길잡이가 되셨네.

   위로자는 그 젊은이의 눈을 열어주었다네.

   너와 나와 더불어 걷는 친구들이 더 많이 있노라.

   그러자 정말로 친구들이 다가와 손을 붙들어주었네.

 

   아이보다 먼저 저 너머의 강을 건너간 사람도 있었다네.

   그도 젊은이에게 독려하였다네.

   얘야, 너는 좀 더 천천히, 차분 차분 걸어서 오거라.

   아직 너에게는 보고 듣고 나누고 사랑하고 도울 일이 많으니까.

   힘겨운 길이고 끝조차도 안 보이는 험준한 길이지만

   친구들과 위로자의 손에 붙들려 굳건히 묵묵히 나아갔네.

 

   때로는 짐이 무거워서 잠시 뒤를 돌아보니

   넓은 길로 흐드러지는 사람들의 쇠사슬이 자신에게 닿아있네

   당겨도 당겨도 끌려오지 않을 듯한 고된 줄다리기.

   저 반대편 절벽 앞에 서 있는 황금빛 황혼이 청년의 목덜미에 붙들려있네.

   너무도 무거워서 주저앉았네.

   옆에서 위로자가 청년의 곁을 지키며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려주네.

   이제는 그만 내가 맡게 해다오.

   네가 염려하는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당하기를 원한단다

 

 

 

 

 

 

 

*

 

 

 

 

   기나긴 약정 기간 3년도 어느 새 거의 다 지나가 끝자락을 목전에 두었다. 시간이 압축된 세상들을 여럿 거닐었기에 실제로 일행이 먹은 나이의 수는 그 두세 배의 기간에 가까웠다. 그 영향으로 세 청년은 어느덧 이십 대 후반의 신체 나이에 접어들었다.

   하늘도시 주민들과 함께하며 모든 것을 쏟아내는 사이에 그들의 전성기, 곧 푸르른 청춘의 기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하지만 신께서는 대신 이들에게 가장 값진 선물을 허락하셨다. 자기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고 구세주를 삶의 중심과 보좌에 올려놓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 그것은 바로 영원의 차원을 이 땅에 미리 옮겨심는 기회였다.

   분명 앞선 선대의 시기를 거닐던 위인 중에는 이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뜨겁고 신실했던 이들도 수두룩하게 있었으리라. 훨씬 더 지혜롭고 쓸만하고 유능한 인재들도 여럿 거쳐 갔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다운 영적 품성을 풍성하게 소유한 여러 성도가 지구라는 행성 위를 거쳐 갔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왕국을 땅끝까지 전하고 이웃에게 그 사랑을 베풀고자 평생을 헌신했다.

   그 선조들의 사역은 위대했다. 물론 때때로 기대했던 것만큼의 열매가 돌아오지 않을 때도,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때는 많았다.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사라져버린 이들도 많았다.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허무한 죽음이었으리라. 하지만 만물의 주께서는 이전 세대의 눈물과 기도를 잊지 않고 담아두셨다.

   선조들의 소망과 비전의 성취. 시간을 초월하여 자존하는 절대자의 세 위격 앞에서는 이 모든 일이 이미 다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분이 정하신 때가 이르면 그간 축적되었던 기도들은 한 방울의 낭비도 없이 놀라운 방식으로 역사를 빚어나가고 성취된다. 특별히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추구하는 기도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천상 세계의 불변의 법칙이었다.

   그렇게 후세에 이르러 어느 한 중요한 경점이 시작되었다.

   강윤혁이라는 이름의 청년과 그의 세 친구들은 어찌 보면 평범하고 또 어찌 보면 비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처음 출발할 때 품었던 소망은 솔직한 관점에서 거의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치기 어린 백일몽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구 위의 조그만 나라 하나를 복음화할 때도 수천의 목숨이 필요하거늘, 일개 넷이 무슨 수로 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사람의 영혼을 건지겠는가.

   그렇기에 이 일이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그분의 힘을 완전히 의지하지 않고서는 일점일획의 성취도 불가능한 임무였다. 그러나 지난 세대의 성도들이 정성스레 쌓아온 기도들이 무르익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기한을 채운 선진들의 기도의 향은 신의 뜻 아래서 완전히 익어 청년들을 맞이하였다.

   절대자는 무한한 섭리 속에서 세상 임금들의 획책과 계략마저도 자신의 큰 뜻을 위한 도구로 다스리셨다. 거악의 세력도, 인간의 세력도 감히 그가 계획해놓은 흐름을 꺾어놓을 수 없었다.

   인류를 거대하고 강력한 무적의 세력으로 번성시키기 위해 왕이 기획했던 인구 정책, 악마는 이 제도를 역이용해 무수한 영혼을 심판의 불못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가두리 양식장 속의 물고기처럼 불어난 인간들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 채 부나방처럼 므깃도 산의 고기 방패가 되기를 소망했고 그리 유도하였다.

   동시에 인간들의 왕은 만민을 자기 발밑에 굴복시키고자 우주 인류의 역사를 자신의 입막대로 조종하였다.

   하지만 이 정책과 음모는 보기 좋게 더 원대한 계획의 일부분이 되고야 마는 수모를 당하였다. 결국, 피조물들은 창조주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태는 반전되어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가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 앞에 나아가도록 할 기회의 발판이 예비되었다.

 

 

 

 

 

 

 

*

 

 

 

 

   스물여섯 번째 하늘도시에 당도한 선교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번에는 긍정적인 의미로. 분명 그들이 아직 복음을 전하기 이전인데도 곳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게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길거리마다 교회가 즐비해있거나 대규모 집회가 펼쳐지고 있는 것을 기대했더라면 실망했으리라. 하지만 대부분의 도심 지역에 숱한 지하 아지트가 존재했고 거기서 가정 두어 개씩이 한 교회를 이루어 합심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모두가 공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드러낼 만큼 정치 여건이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과학주의적 사고방식이 사회 전반에 녹아있던 탓이 컸다. 다른 요인도 있었다. 임박한 ‘전면개방의 시대’가 도래하기 직전이 되자 인류연합과 휘하 시스템들도 전보다 훨씬 더 공개적인 지배 체계를 앞세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풍요와 풍성한 지식과 물질, 자유로운 삶을 선사하는 대가로 시스템을 향한 충성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시스템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곤욕스럽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편리한 사회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어서라도 예배를 드리며 꿋꿋이 신앙을 지켜나가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 특히 남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하는 자들이 영혼의 갈급함을 해결하고자 절대자의 임재를 갈구했다. 바깥에서는 시스템이, 안으로는 표식의 영향력 때문에 신께 나가는 길은 거칠고 장애물투성이였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복음을 믿었고 또 이웃과 그 진리를 공유했다.

   도리어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으로 편이한 대우를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하늘도시의 교회들은 주후 1세기의 교회와 같은 순결하고 성령 충만한 모습을 그나마 오래 간직할 수 있었다. 배교한 자들은 시스템에 흡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교회로서의 자취를 잃었다. 오로지 참된 알곡 성도들만이 배교하지 않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가혹한 심판대로서의 사회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순결함을 유지해게끔 작용해주는 유용한 면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의 뜻대로 승리하신다.”

   이렇게 막상 숙원이 이뤄지는 역사를 지켜보면서도 선교사들은 마냥 들뜬 마음이 되기보다는 겸허함에 잠긴 심정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한함과 무력함을 잘 알았다. 수년 간의 모험은 그들에게 이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가르쳐주었다. 스스로에게는 승리의 비결도, 비법도 없음이 자명했다.

   주님께서 퍼 놓은 밥상에 슬쩍 숟가락을 얹는 것만이 유일한 승리의 비결이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가 본디 그렇게 창조되었음을 알기에 조금도 자존심 상하지는 않았다. 아니, 애당초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히기로 각오한 이상 자존심이라는 개념이 마음속에 자리할 자리는 없었다.

   네 일꾼은 각 지역의 지하 교회들을 방문하였다. 그들에게 위로의 소식을 전하였고 예배도 같이 나누었다. 아울러 넷은 지역 교회가 주민들에게 보다 더 활발히 복음을 전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기도와 더불어 실질적인 신앙의 조언을 제시해주었다.

   다만, 네 사람은 자신들이 식민지에 복음을 들고 찾아온 최초의 씨앗 중 하나였다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혹 하나님께서만 받으셔야 할 영광을 무심코 도둑질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맙습니다. 이방인 형제들이여.”

   여하튼 지역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선교사 일행의 방문으로 큰 위로를 얻었는지 고난 가운데도 웃음과 평안함을 되찾았다. 그들의 행선지가 닫는 곳마다 은혜로운 능력이 증폭되었고 슬픔과 상처는 회복되었다. 대놓고 크게 울려 퍼지지는 못했지만, 찬양도 은은히 구석구석 흘러들었다.

 

 

 

 

 

 

 

 

*

 

 

 

 

   스물일곱 번째 텀에 찾아간 세계는 복음이 크게 뿌리내린 곳이었다. 물론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단계였다. 그래도 푸른 잎이 싱싱하게 솟아나 생기를 머금어가는 나무 정도는 되었다.

   신자들은 우주 인류 모두에게 씌워진 보편 표식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희미하게나마 조금씩 그 힘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표식을 이겨내려는 과정에서 치열한 영적 투쟁을 벌여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임한 덕일까?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고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려는 이들이 나타났다. 신자들의 삶이 그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신자들은 비록 사회적으로는 소외되었으며 물질적으로는 덜 풍요로웠으나 그들의 삶에는 그 어떤 문명의 힘도, 기술력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위대한 기적이 은밀히 녹아있었다.

   여러 지역을 방문하면서 각 교회에 권면과 용기를 전달해준 뒤 선교팀은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만일 이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예수님을 믿을 환경을 선사해준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시민권이 보편적으로 배포된다든지, 표식이 해제되거나 약화된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상상의 단계에 머물렀다. 우선 정치적인 문제와 직결되니 그들 선에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선교의 초야에만 묻힌 채 세상 정치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데 등한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직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지도자가 직접 자기 의지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한 아직은 소원할 듯했다.

   ‘형은 왜 저들을 속박했을까?’

   그것은 과연 단순한 야망 때문만일까?

   카이젤이 그런 선택을 한 근본적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이킬 가능성이 생긴다. 이제 윤혁에게는 이 또한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억제자로서의 소명을 감당하고, 동시에 우주 인류에게 신앙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 두 문제는 사실상 하나로 맞닿아있었다.

   윤혁에게는 앞으로 더 확고한 의지와 결단이 요구될 것이다. 가족은 가까이 대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적은 더더욱 가까이 두고 감시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은 양쪽 모두 해당하였다.

   “너희는 이번 일들이 무사히 마무리되면 뭘 하고 싶어?”

   무심코 윤혁은 세 동료에게 질문했다.

   급작스런 질문에 셋은 자기 나름의 고민에 잠시 잠겼다. 하늘도시 선교 플랜은 조만간 마무리되겠지만, 네 사람의 인생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은 종말이 닥쳐오지 않았으니 그전까지는 계속 나름의 신앙 여정을 완수해야 할 것이다. 각자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나는 이미 저번에 말했던 바와 똑같아.”

   리온에게는 그 답이 명확했다. 그는 이미 어느 정도 목회자로의 부르심에 굳건히 다짐을 쏟은 상태였다. 그는 지구에 귀환하는 즉시 성경 공부와 제자 수련, 구제와 봉사에 힘쓰면서 목회자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 나갈 계획이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훈련되어 충분히 자격이 갖춰진다면……, 하늘도시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비록 내 고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3년간 이곳 사람들과 지내며 우주 인류에게 정들어버렸거든. 두 번째 고향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야.”

   리온의 고백에 친구들은 긍정적인 의미로 매우 놀랐다. 그가 지구를 등지고 우주 식민지 인류를 위해 남은 인생을 다 바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깊게 확장된 모양이다. 어지간한 사랑으로는 선교지를 위해 고향마저 등질 각오를 하지는 못할테니까.

   ‘하기야 과거 위대한 선교사들도 현지를 자기 조국처럼 사랑하게 되었지.’

   선교지에서 평생을 두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다가 소문도 없이 빛도 없이 죽어간 선교사들의 삶의 향연이 리온이라는 작은 거인 위에 겹쳐 보였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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