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86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1. 땅 끝으로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9.23 | 회차평점 0 |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리고 그때 리온이 다시금 입을 열어 또 다른 소망을 고백했다.
“한 가지 더……, 나는 거짓의 세력과도 싸워보고 싶어.”
최근 얼마 전까지 마주한 하늘도시들은 모두 사전에 복음화되지 않은 곳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류연합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나 철학이나 종교나 과학에 의해 무참히 농락당했다. 이 또한 한 축의 거짓이라 표현할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 리온이 지칭한 거짓은 그런 류가 아니었다.
지금은 복음화의 흐름이 역복음화의 흐름을 꺾고 우위를 점한 상황. 하지만 편만하게 복음이 전달된 후라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적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배교한 교회, 그리고 이단 기독교였다.
이는 실제로 지구의 역사가 미리 증명하여 보여준 바였다. 로마 정부에 의해 기독교는 공인되었으나 오히려 그 일을 기점으로 교황청이라는 배교 집단의 선두주자가 탄생했었다. 승리에 가까워졌다고 느껴질 때가 도리어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임은 분명하다. 자만은 금물이었다.
“우주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아니, 반드시 같은 일이 벌어질 거야. 초인들의 천재적인 두뇌라면 얼마든지 기독교조차 자신의 도구로 변질시킬 수 있어. 사탄의 세력들의 광기야 말할 것도 없고.”
리온은 복음화의 성취 같은 단기적인 계획이 아닌, 더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중이었다. 과연 한 수가 아닌 여러 수를 미리 바라보는 전략가다웠다.
“난 장차 나타날 그 존재들과 맞서 싸우고 싶어. 부족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그 비장하고 올곧은 뜻에 친구들은 크게 감명을 받았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같이 하실거야.’
한편, 루디아에게는 돌봐야 할 자들, 곧 동족들이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서 약속하셨던 대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완벽히 회복되는 그 순간을 소망하여 기다릴 거야. 아마도 나는 평생 그들의 보모로써 함께해야 하겠지.”
그러자 리온이 그녀를 강력히 지지하며 응원해주었다.
“나도 이스라엘과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위해서 응원할게. 분명 인류 최후의 시대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과 직결되어 있겠지. 우리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으로써, 또 주님 안에서의 한 형제로서 유대인의 회복과 축복을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소망하는 바야.”
루디아의 오랜 숙원, 그것은 예슈아를 주님으로 섬기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셨던 그 땅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의 땅에 정착한 뒤 나머지 유대인들도 영적 미혹으로부터 풀어주는 것이었다.
다만, 소원의 구체적 내용에는 전과 다른 점이 하나 첨가되었다.
이제 루디아의 소망은 동족의 구원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복음화라는 주제에도 닿았다. 유대인의 회복은 이를 위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일어날 일. 두 소원은 이제 하나로 만났다. 루디아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제사장 나라로서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여 지구를 넘어온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직접 이 자리에서 고백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개인적인 소망도 있었다. 그녀는 윤혁과 동행하기를 원했다. 말 그대로 인생의 목표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가 꿈꾸는 것을 이뤄나가도록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
‘윤혁이 바라는 것, 그의 소원은 무엇일까.’
“나는…….”
윤혁은 짐짓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었다.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롭게 신앙을 교류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어. 알다시피 지금의 식민지들은……, 속박에 사로잡혀있지. 스테판 씨처럼 특수한 경우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은 주님을 믿은 후에도 표식들의 속박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해.”
마치 예수님을 믿는다고 육신의 질병이 자동 치유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게다가 성령의 뜻에 순종하다 보니 핍박도 알게 모르게 받게 되겠지. 핍박이란 게 아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 능력이 닿는 한은 덜어주고는 싶어.”
그것이 마냥 좋은 길일지는 잘 모르겠다. 때로는 핍박이 신앙을 성장시키는 촉발제로서 순작용을 일으키기도 하니까. 편안한 환경이 나태함을 유발하는 것도 역사적으로 입증된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도 최소한 자유롭게 주님을 전할 환경만큼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더욱이 핍박이 영적인 유익이 된다는 이유로 능력이 닿는 데도 동포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그 뜻은 알겠지만……, 당신 힘만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잖소?”
스테판이 설렘 반 염려 반의 어조로 되물었다.
“알아요.”
“설마 당신은 ‘그’를 설득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오?”
예리한 직감에 근거한 스테판의 지적에 윤혁은 그만 정곡이 찔려 입을 다물었다. 리온도 뭔가 말하려고 했으나 윤혁의 표정이 너무도 슬프고 무거워 보여서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재혁을 감당하는 일의 무게를 윤혁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저는……, 아무래도 형을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비록 지금은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걷고는 있지만……, 때때로 두 형제의 운명이 강력한 사슬에 의해 함께 엮여있다는 느낌이 강렬히 들어요.”
사슬이 끊어지거나 어느 한 명이 다른 하나를 잡아당기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한 결착이 나리라. 에드레이가 죽기 전 알려준 위버멘쉬와 억제자의 관계, 이제는 윤혁도 그 의미를 피부로 와닿을 만큼 뚜렷이 실감하였다. 형과 자신은 서로를 향해 강대한 인력(引力)을 발산한다. 정반대의 존재임에도 서로를 버리지 못한 채 도리어 마음이 연약해지는 것도 아마 그 관계 탓일 것이다.
“미안해. 너희에게는 위험한 존재요, 세상의 수괴일지 몰라도……, 내게는 여전히 나의 피와 우정을 나눈 소중한 사람이야. 영혼의 멍에를 함께 하지는 않겠지만, 존재 자체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아.”
그러자 한참의 침묵 후에 리온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네가 필요하다면 나도 함께해줄게. 강재혁 대표님께 간언을 아끼지 않다가 설령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가 바짝 정신 차려 올바르게 생각하도록 경고를 전해줄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비장한 선언이었건만 오히려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나도. 내가 어떤 도움이 될지는 잘 몰라. 그래도 도와줄게.”
루디아가 수줍은 목소리로, 그러나 그 어떤 담대함보다도 분명한 힘을 담아 말했다. 이것은 겉치레나 위로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의지였다. 그녀는 진정으로 윤혁과 그의 꿈을 돕고 싶었다.
“나도 함께하겠소.”
스테판도 맹약 안에 자신을 묶었다.
‘필요하다면 지구의 왕을 직접 만나서라도…….’
그 나름의 비장한 각오가 그 마음 속에 있었다. 스테판은 자신의 특성을 역이용할 각오도 있었다. 자신에게는 이레귤러라는 기이한 특성이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 지구의 왕에게서 시선을 빼앗을 수 있다. 그 대가로 어떤 처지에 처할지는 모르겠다만 친구를 도울 수만 있다면 희생도 상관없었다.
*
스물여덟 번째 하늘도시로 자리를 옮긴 일행. 이전에 본 세계들과 달리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뚜렷이 보였다. 전면개방을 코앞에 두어서 그런 것인지 하늘도시의 내부 체계는 상당히 안정적인 형태로 개편된 상태였다.
인류연합 측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도적인 속임수나 괴이한 세계 왜곡 장치들은 눈을 씻고 봐도 나타나지 않았다. 문명 수준은 딱 21세기 중반의 지구권 정도였다. 시민 정신은 더욱 성숙해졌으며 안정적인 치안과 경제 배분 시스템까지 갖춰진 모습이 보였다.
더욱이 이제 교육 기관들은 우주 정부와 지구의 역사에 대해 나름 감추임 없이 공개적으로 가르쳤으며 그 일과 더불어 하나로 통합된 인류의 중요성을 교육하였다. 이제 문호가 열리고 우주 인류를 다스리는 정부인 인류연합이 공식적인 통치를 선언한다면 모두가 환호하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세계통합정부라니. 마지막 때가 정말 가깝긴 하구나.”
“뭐, 항상 그래왔지.”
“초대째 위버멘쉬 때부터 이미 세상은 통일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
초대째 위버멘쉬, 에드레이의 동생인 칼튼은 이미 한 세기 전에 하나 된 지구촌을 만들어내었다. 2대째 위버멘쉬인 이벨리아는 무력으로 초인 군벌들의 세력을 휘어잡았고 마음만 강하게 먹었으면 거의 통일할 뻔했다.
그리고 3대째 위버멘쉬, 카이젤은 기어코 우주 규모의 인류 제국을 건설하는데도 성공했다. 이렇듯 적그리스도로 각성할 가능성을 내포한 씨앗인 초인들의 왕은 어느 세대건 상관 없이 항상 인류를 하나로 뭉치는 방향의 행보를 펼쳤다. 앞으로초인 등장이 몇 세대나 더 반복될지는 주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설령 다음 번 초인 세대가 있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이런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번져나가는 기색이 명료했다. 벌써 선교팀은 연속으로 세 텀이나 복음화된 지역을 마주했다. 이 사실을 고려할 때 한 가지 명료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에녹의 언급이 사실이었다. 식민지 전역에 복음이 충분히 퍼졌으며 교회가 곳곳마다 세워졌음이 명백했다.
직접 찾아가 보지 못했지만, 나머지 하늘도시들도 사실상 마찬가지라고 봐도 좋으리라. 일부 초인들이 ‘판데믹’이라고까지 경멸적으로 부르며 극도로 경계했던 현상이 부쩍 현실 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이 사실이 주님을 향한 기쁜 감사와 더불어 통쾌함을 가져다주었다.
어느 날 낡은 교회 건물 앞에 모인 선교사들은 현지의 지역 교회 및 가정 교회 일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작은 기념비 하나를 세웠다. 먼저 넷은 그 기념비 앞에서 묵념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렸다.
당신께서는 진실로 승리하셨습니다.
나약한 우리라는 그릇을 사용하셔서 대적을 무찌르셨습니다.
당신의 이름과 뜻과 왕국과 거룩함이 영원히 영광 받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다 함께 당신의 의의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길에서 엇나가지 않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다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직접 그분의 승리와 영광을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미약한 남종과 여종을 그 자리에 참여케 하여주셨습니다.
이날을 잊지 말되 과거의 영광에 얽매이지 말고 더 정진하도록 해주소서.
기념의 기도와 아울러 선교사들은 2차 여행 시작 당시 지구를 떠나온 다른 팀 멤버들의 이름을 기념비에 하나씩 새겨넣었다. 선교팀은 묵념하며 기도드렸다. 만일 이들이 삶 전체를 소비해주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가 이만큼 급속도로 번져나가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천국에 미리 올라간 동료들이 몹시 자랑스러웠다.
‘고마워.’
특히 리온의 심령에 와닿는 묵상의 무게는 그 깊이와 체감의 차원이 달랐다. 그와 평생 동행했던 소중한 동료들도 저 이름 가운데 여럿 새겨져 있었다. 다들 먼저 천국으로 떠났기에 당장의 심정적으로는 아쉽지만, 언젠가 재회의 날이 올 것을 믿고 알기에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때까지 리온은 성실하게 자신에게 부여된 일들을 맡을 생각이었다.
묵념의 시간은 한 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기도가 끝날 무렵, 윤혁은 한 가지 일이 더 생각났는지 기념비에 이름을 하나 추가로 새겨넣었다. 비록 살아생전에 더 넓은 세계가 정복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도 하늘나라에서 모든 일을 지켜보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영광을 돌려드리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에드레이 א 테일란드.
“고맙습니다. 편히 쉬세요. 일은 끝까지 완수하게요.”
다시 만날 그날이 기다려졌다.
(다음 회차에 계속)
이전회
38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1. 땅 끝으로 (1) |
다음회
38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1. 땅 끝으로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