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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8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2. 마지막 하늘도시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9.30 | 회차평점 0 0

 

 

 

 

 

 

*

 

 

 

 

   그렇게 40일간의 막바지 여행은 평안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씨를 뿌리며 수고했던 농부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신 풍성한 열매를 맛보며 추수의 기쁨에 동참하였다.

   ‘돌아갈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윤혁과 리온과 루디아는 지구로 귀환할 기대에 마음이 들떴다. 동시에 그들은 스테판의 장래 행적을 염려하였다. 그는 이레귤러이자 감시 대상이기 때문에 자유를 얻기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혹여라도 인류연합 정부가 그의 정체를 눈치챈다면 인도적인 대우를 받긴 힘들 것이다.

   ‘진이 책임지겠다고 말은 했건만……, 이제 그도 못 믿게 생겼으니 원.’

   솔직한 심정으로 윤혁은 차라리 그를 지구로 데려가고 싶었다. 이리저리 도망쳐다니며 우주를 헤매는 삶을 살도록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구는 인류연합의 본거지이다. 더불어 초인들이 둥지를 튼 아지트다. 앞으로도 별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지구는 인류연합의 수도로 사용될 것이다. 그런 위험한 곳에 스테판을 데려가자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소. 하지만 내게는 원래부터 머리둘 곳이 전혀 없었소. 게다가 이제부터는 늘 주님께서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니 무엇을 염려하겠소. 설령 도주하는 생활을 이어간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지 않겠소?”

   “하지만!”

   윤혁의 표정 위로 적잖은 우려가 그대로 드러났다.

   “전면개방이 개시되면 아마 숨어 살기도 훨씬 쉬어지지 않겠소?” 

   스테판은 일부러 태평한 소리를 하며 윤혁을 위로해보였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으면 좋잖아요.”

   “음, 그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스테판에게는 사실 머무를 곳에 의의를 둘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고향이라는 개념이 도리어 낯설었으니까. 장차 바라볼 천국을 제외한다면 그가 정착지다운 정착지를 스스로 고를 가능성은 희박했다. 애초에 본인의 출신지마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고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는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이런 현실도 그의 마음을 처량하게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오. 나에게 그대들과의 지난 몇 년은, 내 삶과 기억 전체를 통틀어 결코 잊지 못할 시간이었소. 잠시 헤어진다 해도 당신들을 결코 잊지 않을 거요.”

   이에 세 사람도 스테판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편으로는 그와의 짧은 이별마저도 없었으면 하는 갈망이 사무치게 들었다. 더 머나먼 훗날에는 분명 마주하게 되겠지만, 그러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은 여전했다. 혹 소중한 친구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하는 염려 때문일까?

   ‘사도 바울과 고별하며 눈물 흘렸던 교회들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붙잡힐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순례길을 감당하였던 사도를 바라보며 성도들은 차마 그 고뇌의 발걸음을 말리지 못했으리라. 그 고뇌 속에는 고귀함이 담겨 있었고 그들은 그 속에서 저항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것이다. 사랑하였기에 만류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사랑하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아름다움을 묶어두지 못했겠지.

 

 

 

 

 

 

 

 

*

 

 

 

 

   “내일이면 떠나는 시간이에요.”

   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윤혁은 팀원들끼리 모여 조촐한 축하의 자리를 나눌 것을 제안했다. 진의 텔레파시 메시지가 여전히 묵묵부답인지라 돌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지 조금 걱정은 되었으나 그 고민은 잠시 미뤄두었다. 그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친구들과 함께함으로써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어쩌면 귀환 이후에는 스테판과 헤어져야 할지도 모르니 더욱더 절박했다.

   나머지 세 동료도 기꺼이 동의했다. 선교팀은 작은 건물 하나를 빌린 뒤 음식을 장만해왔다. 요리 실력이 좋은 루디아와 윤혁이 주방에서 일하였고 스테판과 리온은 곁에서 거들어주었다. 과연 부모님께 어깨너머로 배운대로 윤혁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뚝딱 완성하였다. 준비를 마친 일행은 테이블 위에 음식을 모두 갖춰놓고 모여앉았다.

   그들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우주 인류 복음화라는 역사를 그들의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게끔 도와주신 하나님께 경외의 마음을 담아 감사드렸다. 또한, 여행이 종료된 이후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을 잘 섬기고 삶의 고난들을 이겨나가기를 간구했다.

   이윽고 귀가 전 최후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넷은 지금껏 여행하며 어려웠던 일들과 고난의 순간들을 간증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신이 발견하고 배운 모든 가르침들을, 그 속에서 느낀 감정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기쁨의 열매를 맺었던 감사의 순간들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감사 제목들을 더욱 풍성하게 더해나갔다.

   돌이켜보니 온갖 유형의 제각기 다른 여행지를 거닐며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들 모두를 일일이 거론하기는 힘들었으나 마음 속에는 그 인상이 선명하게 남았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고 그분을 주인으로 고백한 현지인들의 경우에는 보다 더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물론 모든 인연이 그렇게 시원하게 결론지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아쉬움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 모든 기억들 가운데는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이를테면 장차 세상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하리라는 소망처럼.

   사람들을 통해 얻은 희로애락 외에도 네 사람의 여행 가운데 임했던 난관들 가운데 세상에 의한 시련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들의 여정은 인류연합에 의해 인위적으로 기획된 세계들을 정복지로 삼은 탓에 갖가지 기상천외한 사태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마법 공학, 가짜 신들, 시뮬레이션 우주, 이종족, 괴물, 우주 전투, 초능력자, 그 외에도 많은 기괴한 것들.

   이전 시대의 선교사들이 밀림이나 오지의 위협, 혹은 낯선 이교도 문화권의 거친 거부를 감당했다면, 윤혁과 친구들은 도무지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힘든 문명의 폭거와 인류의 강제된 진화를 감당해야만 했다.

   각자의 시대에 주어진 십자가가 조금씩 다른 모양을 띠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리라. 그러나 다행이도 그 본질만은 동일했다. 또한 그 멍에가 무거워는 보여도 실상은 주님 안에서 가볍다는 사실도 변함 없었다.

   ‘그 순간에는 힘들고 고역스러웠지만, 돌아보니 기적의 연속이었어.’

   산 넘어 산의 연속이었던 지난 날들. 하나 하나의 고비를 돌아보니 지금도 머리가 아찔했다. 막상 처음 마주했을 당시에는 얼마나 곤욕스러웠겠는가. 그러나 모든 일이 지나간 뒤에 정직한 마음으로 추억해보니 그 모든 길이 주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선물로 느껴졌다.

   이후 팀원들은 해갈과 해후의 시간을 나누었다. 그들은 모든 감정을 정직히 쏟아놓았다. 심지어 서로에게 오해했던 점이나 서운했던 감정까지도. 솔직히 말하면 팀원 개개인이 성향도 다르고 출신도 다른 만큼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대단히 긴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시행 착오도 많았고 안 맞는 부분을 맞춰나가는 노력도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떠하랴.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부딪힘과 함께함을 통해 자신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점의 이기심을 버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혼자만의 신앙 생활을 고집했다면 그 같이 귀하게 깎여나가는 축복은 얻지 못했겠지.

   마지막 만찬이라는 귀한 시간을 통해 그 보배롭고 달고 쓴 경험들을 곱씹어보며 음미하니 심장 속으로 스며드는 감회의 무게가 한 층 더했다. 폭풍 전야의 평온한 하룻밤은 이렇듯 고요한 물결처럼 흘러갔다.

 

 

 

 

 

 

 

*

 

 

 

 

   다음 날, 석연찮은 느낌을 짙게 느낀 리온이 질문했다.

   “과연 후원자가 우리를 회수하러 오긴 할까?”

   벌써 진과 윤혁의 통신이 두절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대로라면 상대가 약속된 동업의 의무를 책임질지 여부도 불분명해지지 않겠는가. 불안감이 맴돌았다. 처음부터 후원자를 신뢰하지 않았던 리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계약된 의무가 있으니……, 최소한 회수는 책임지겠지.”

   윤혁도 잠시 우려를 느꼈으나 이내 기우라고 생각하고 침착히 떨쳐냈다. 솔직히 진이 아쉬울 게 있어도 지금 와서 뭘 어쩌겠는가. 어차피 이번 한 번만 넘기면 계약도 만료. 윤혁이 소망하던 사역은 이미 완수했다. 앞으로 진에게 얽매일 일도 웬만해서는 없다. 그가 원하던 반지만 넘겨주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그래, 달라질 일은 없어. 아니 없어야 해.’

   광활한 공터를 대기 장소로 잡은 넷은 하염없이 서서 기다렸다. 보통 진은 퇴장 시점이 이르면 항상 예정된 시간에 딱 맞춰 일행을 회수했기에 지금처럼 약속 시각을 넘기는 일은 이례적이었다. 분명 수상한 상황이었다. 윤혁은 최후의 보루로라도 점검해보자는 생각으로 텔레파시 송신을 시도했다.

   ‘좀 받아라, 이 인간아.’

   그러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텔레파시는 허공으로 공염불처럼 흩어졌다.

   ‘제발!’

   이대로 구조되지 못하면 어쩌지? 설마 평생을 이 외지에서 살라는 게 하나님의 뜻일까?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따라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지구에 돌아가야만 했다. 아니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윤혁은 차라리 진은 포기하고 대신 형에게 구조를 요청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쳐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물건은 꺼림칙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으로 의지하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물건임이 이미 수 차례나 입증되지 않았는가.

   “하아! 미안해. 잘 안 풀리네.”

   윤혁의 한숨에 친구들의 수심도 깊어졌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 어, 어?”

   푸념하던 윤혁은 갑작스러운 채널의 개통에 번뜩 긴장했다.

   “무슨 일이야?”

   “설마 연락이 된 건가?”

   루디아와 리온도 윤혁의 반응에 나타난 변화에 함께 놀랐다. 윤혁은 온 정신을 텔레파시 신호에 집중시켰다. 곧 잡음이 들리더니 서서히 선명한 음으로 수렴되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진의 목소리와는 좀 느낌이 다른데?’

   정확한 확인을 위해 최대한 집중력을 높였다.

   “누구시죠?”

   “……았다.”

   순간 몹시도 섬뜩한 위화감이 스쳤다.

   “마침내 찾았군.”

   무시무시할 정도로 냉혹한 목소리가 뇌리로 흘러들었다. 직감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한 윤혁은 반사적으로 텔레파시 채널을 해제했다. 공포감에 식은땀이 등에서 비 오듯 흘렀다. 온몸의 교감신경이 시끄러운 경보음을 울렸다.

   “위험해!”

   윤혁의 나지막한 내뱉음을 끝으로 정적이 깨어졌다. 하늘에서 맹렬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일행이 매번 진입하거나 회수될 때도 이레 그랬던 것처럼 공간 균열이 생성되었다. 하늘도시를 감싸는 마의 경계마저 관통하는 거대한 문이 개방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민들 몰래 일행만을 몰래 빼내어 주던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문이 아니었다. 하늘도시 전역의 시민들이 대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위압적인 규모의 문이 공중 위에 활짝 열렸다.

   “저, 저건!”

   “거, 거짓말! 포탈의 크기가 무슨…….”

   격한 진동이 하늘도시 전체를 태풍 앞 나뭇가지처럼 흔들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난 듯했지만, 근원지는 땅이 아니었기에 건물은 무엇하나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섬뜩하게 작렬하는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허물어뜨렸다.

   이윽고 거대한 하늘의 틈이 더욱 넓게 활짝 찢어지더니 온 하늘이 어두워졌다. 인공태양에 의해 내내 낮으로 유지되던 하늘이 삽시간에 밤하늘로 변했다. 정확히는 밤하늘이 아니라 황량한 우주 공간이었다.

   이어서 섬광들이 사방을 수놓았다. 일행이 맨눈으로 볼 수 있도록 훤히 노출된 우주 공간 쪽에 무언가가 워프해서 다가왔다. 함대와 요새들이었다. 전에 본 함대, 즉 인공우주식 하늘도시 내부에 서식하던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해낸 함대와는 달랐다. 그런 조잡한 것들 따위는 마치 종이비행기처럼 하찮게 느껴지게 할 만큼 웅장하고 강대했다.

   ‘설마……, 인류연합 함대?’

   분명히 그것 말고는 후보가 없었다. 물론 윤혁이 예전 첫 우주 여행 때 보았던, 카이젤의 소유권을 상징하는 마크는 없는 것으로 보아 정규군은 아닌 듯했다. 아마 정규군보다는 격이 낮은 군대이리라.

   ‘그때의 그 군대보다는 약한가? 아니, 아니야.’

   정규군이 비정규군보다 강한 건 분명한 사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의 기술력 발전의 비약적인 규모를 감안해야 했다. 3년 전에 윤혁이 보았던 카이젤의 직속 함대보다 현재 나타난 ‘2류 군단’이 절대치로는 훨씬 더 강력해 보였다. 불과 몇 년 만에 인류의 지식은 상상력의 한계마저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진화했으니 당연히군사력과 함대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아!”

   그리고 다음 순간, 함대마저 무색하게끔 할만한 존재감이 공기 중으로 전달되었다. 물리법칙을 뒤틀 정도의 거대한 힘이 하늘도시 전역을 휘감았다. 윤혁은 즉각 그 힘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전에 에슈타르에게서 목격한 권세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초거대 규모라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지만, 그 힘의 본질은 분명 초능력이었다. 이윽고.

   “처음 뵙는군, 숙부.”

   온 공간을 가득 메우는 전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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