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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9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3. 습격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02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현자의 눈의 활성화와 함께 곧 IV 단계 최면이 발동되었다. 그 힘은 템플의 보조 기능으로 증폭되더니 이내 그들이 자리한 하늘도시 전 구역으로 확대되었다. 신자건 불신자건 관계없이 모든 주민이 한 명도 빠짐없이 일제히 최면에 걸렸다. 말 그대로 몸이 정지되더니 털 끝 하나 옴싹달싹 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양.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뭘 그리 놀라지?”

   “인간의 정신에 간섭하는 행위는 제한받는다고 했던데…….” 

   윤혁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황망하게 칼리드를 쳐다보았다.

   “비상 상황이라 좀 다르지. 내게 주어진 권한을 바탕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어. 정체불명의 초자연적 간섭이 표식의 영향력을 훼방하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려면 아무래도 급진적인 해결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지.”

   “아무리 그래도…….”

   “지금 발동한 힘은 최면 레벨 IV 단계, 요새의 도움까지 받으면 행성 규모의 인구를 죄다 잠식할 수 있지. 물론 지구 시민에게는 이만큼 통하지 않겠지만.”

   지구는 엄연히 제로원과 일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정신간섭도 시민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카이젤의 특수한 허락이 없이는. 하지만 표식이 심겨진 하늘도시의 주민들에게는 최면을 걸기가 훨씬 용이하다.

   “당신도 같은 인간이잖아! 왜 동족에게 이런 짓을!”

   눈앞에서 사람들의 존엄성이 처참히 짓밟히자 윤혁은 저도 모르게 크게 분노하여 칼리드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칼리드의 표정은 한치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윤혁의 발악은 최상위 초인이 보기에 가소로운 몸부림에 불과했다.

   “같은 인간이라.”

   살기와 위압감이 잔뜩 서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칼리드의 목소리였으나 정작 음원은 칼리드의 입이 아닌 윤혁의 성대였다. 윤혁은 깜짝 놀랐다. 정신은 분명 멀쩡했지만,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성대와 입과 혀를 움직이는 신경계가 강제로 외부의 조종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칼리드의 말을 대신 전달했다.

   “착각하는군. 고양이와 호랑이는 다른 종이야.”

   “…….”

   “혹시 아버지가 너를 애지중지 아껴주시다 보니 그런 착각을 품게 된 건가? 너와 한 공간을 나눈다고 그분과 네가 동급이라도 된 줄로 착각했나?”

   싸늘하고 오만한 폭언들이 가슴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대놓고 칼리드에게 모욕을 당한 것도 괴로우나 이 순간 정작 가장 쓰라린 점은 다른 부분이었다. 윤혁은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방만했는지 절감하였다. 힘없는 주제에 양이 늑대 무리와 어울려 살면서도 아무런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장 잡아먹힌다 해도 변명할 말 없는 무방비함 아닐까?

   ‘정작 더한 거인은 내 눈앞에 있었거늘.’

   실로 가장 위협적인 거장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재혁은 늘 형으로서 윤혁에게 다정히 다가갔다. 식사도 같이 나누고 종종 수다도 떨 만큼 가까웠다. 분명 그것은 거짓된 관계까지는 결코 아니었다. 같이 우주선을 타고 여정을 떠났던 기간에는 고립되었다는 생각과 외로움 때문인지 하는 수 없이 형제를 의식했었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미운 정과 고운 정이 쌓였다.

돌이켜보니 제아무리 부담스러운 의무의 끈으로 맺어진 관계라고는 해도 여느 형제보다 다정다감한 것은 사실이었다. 평범한 친구처럼 영화를 보고 오락도 하고 온천에서 허울 없이 대화하는 등 지극히 소시민적인 일상을 서슴없이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둘 다 외동으로 자라나서인지 형제 우애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서 그랬을까? 둘은 오히려 함께 자라난 형제들보다도 끈끈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에야 윤혁은 거듭 중대한 무게의 진실을 무의식적으로 망각해 왔던 자신의 안일함을 발견하였다. 위버멘쉬의 정체, 그리고 그 이름과 잠재력에 실린 소름 끼치고 두려운 무게. 만약 자신이 억제자로서 감당해야 할 짐이 인류의 최후와 직결되어 있음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면 영적 부담과 종말의 의미가 무서워서라도 형과 쉬이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초인은 인간이야. 하지만 인간과는 다르다.”

   계속해서 윤혁의 입을 빌려 칼리드의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인간을 초월했어. 동격이 아니야. 인간이란 나약하고 한계가 뚜렷하지. 인공지능은 물론이고 인공 생명체에게도 추월당하기 십상이야. 이미 그 발명품들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영역을 수천 단계 이상 뛰어넘었어. 인간이란 결국 미약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무신론이나 진화론을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까지 고의로 창조주께 오만함을 내비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과연 인간의 교만함은 이론이나 교육이나 철학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본성이었다. 아니 어쩌면 초인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지.

   “초인은 달라. 유일하게 초인들만이 폭발적으로 진보하는 문명에 매몰되지 않고 도리어 그 위에서 군림할 수 있지. 유일하게 초인들만이 신체적 정신적 개조를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 오직 우리만이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들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그들의 진화 능력마저 추월할 수 있다.”

   그는 자신들의 절대적 우월함을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 종족의 정점에 선 존재. 그분의 정신은 인류가 만들어낸 지식을 실시간으로 무제한 수용 가능해. 시뮬레이션 우주, 테서렉트 아키텍쳐, 인공지능, 이종족까지, 그 총체적 합을 넘어서셨지. 심지어 우리 초인들의 정신력까지 합친 합마저도 말이야. 영광스럽게도 우리는 그러한 분과 동족이다. 그 증거로 우리는 초능력의 본질을 자기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어. 애초에 이것은 초인들을 위해 설계된 힘이었지.”

   무한한 재능의 성장, 초지능체와 융화할 수 있는 영혼과 정신, 온전히 이성(理性)을 통한 연산만을 사용해 초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두뇌, 인공지능과 이종족의 성장마저 추월한 진화 속도, 한없이 완전한 준-불로불사의 육체와 외양의 아름다움까지, 과연 그들은 스스로를 드높일 만한 조건을 한껏 갖추고 있었다.

   윤혁은 눈을 들어 칼리드를 쳐다보았다. 만일 카이젤에게서 전제 군주적인 성향만을 추출해 하나로 결정화시킨다면 꼭 저런 모습일까?

   칼리드는 윤혁의 눈을 일시적으로 자신의 현자의 눈과 공명시켰다. 곧 윤혁은 무시무시한 힘을 육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식겁했다. 주민들의 초능력과는 차원이 다르단 걸 피부로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 격차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저게 바로 최상위 초인……, 압도적인 초지능과 초능력인가?’

   전신의 세포가 하나하나 부르르 떨리는 듯했다.

   ‘형은 저런 괴물들을 스물네 명씩이나 거느리고 있다고?’

   게다가 본인은 그 스물넷의 합보다도 강하다고? 절망감에 휘말린 윤혁은 힘을 잃고 고개를 푹 숙였다. 칼리드가 다시 한번 더 윤혁의 입을 조종해 자신의 선언을 선포했다.

   “우리는 역사의 특이점, 곧 호모 데우스(Homo Deus)다.”

   인간이 자신들의 신성을 선포하는 날. 신성모독의 단어가 윤혁의 입을 빌려 해산되자 찢어질 듯한 내적 고통이 윤혁의 가슴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

 

 

 

 

   저항할 힘도 남지 않았고 스테판을 구할 능력이나 기회 또한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을 할 작정입니까?”

   처량해진 신세의 윤혁이 기력 없이 반문했다. 저항자의 의지가 완전히 꺾인 것을 똑똑히 목격한 칼리드는 이번에는 본인의 입을 사용하여 직접 말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가르쳐줌으로써 마음을 좌절시키고자 하는 의도였다.

   “모조리 잡아야지.”

   구체적인 대상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뻔했다.

   “하지만 아무리 당신이라도 5억 개가 넘는 하늘도시를 무슨 수로…….”

   “현재는 1조 2300억 5701만 9872개. 최근에 대폭 개수를 늘렸거든. 너무 광범위해서 내가 일일이 처리하지 못할까 봐 염려해준 건가. 그것참 고맙군.”

   칼리드는 조롱하는 투로 비아냥거렸다.

   “물론 숙부 당신 말대로 아무리 최상위 초인이라 해도, 설령 계엄령 권한을 부여받은 나라고 해도 1조 개 이상의 하늘도시를 일일이 뒤지는 건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 불가능한 계획을 가능케 할 수단들이 이미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의 칼리드는 회수해야 할 물건이 여럿이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그중 하나가 스테판이었으니 나머지 하나는 분명 윤혁에게 있으리라. 그 예상에 답해주기라도 하듯 칼리드는 다시 초능력을 발산했다. 윤혁의 셔츠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벗겨진 상반신이 드러남과 동시에 목걸이에 걸린 반지가 권능으로 생성된 격한 바람에 흔들렸다. 반지는 칼리드가 발산하는 초능력에 반응해 격렬히 진동하였다.

   “크윽”

   위급함을 느낀 윤혁은 재빨리 목걸이로 매둔 사슬에서 반지를 빼낸 뒤 자신의 손가락에 끼려고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그 행동이 분명 바람직한 태도는 아닐 테지만,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는 달리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윤혁의 발버둥은 손쉽게 가로막혔다.

   “이런, 알아서 꺼내줘서 고맙군.”

   윤혁의 손이 염력에 의해 굳었다. 칼리드는 염동력으로 반지를 잡아당겼다. 헬리웃이 강탈하려 했던 때처럼 특수한 결계가 발동되었다. 반지는 마치 소유권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윤혁에게 들러붙었다.

   하지만 현 상황과 이전과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헬리웃은 일개 E 클래스였으나 칼리드는 무려 SSS 클래스의 초인이었다. 또한 초능력의 존재도 적잖은 차이점이었다. 결계는 손쉽게 찢어졌다.

   이에 긴급 반응으로 더욱 많은 결계들이 튀어나오더니 윤혁의 몸과 반지 사이를 굳게 매듭지었다. 하지만 칼리드는 알렉산더 대왕이 엉킨 끈을 칼로 베어내듯 손쉽게 해체했다. 무식하게 베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연산해서 풀어내는 방식으로. 몇 차례 실랑이가 더 반복되었지만,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칼리드의 승리로 끝났다.

   잠시 후, 반지는 칼리드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허망할 정도로 간단하게.

   {해킹 프로세스 시작하겠습니다.}

   칼리드는 수하 인공지능들을 반지 속에 대량 투입하여 반지 내부에 걸린 암호와 락을 해제했다. 이미 진이 오랜 시간 동안 이 반지를 연구해놨고 이번 거래를 통해 칼리드가 진에게서 자료 일부분을 인계 받았기에 해킹 절차는 별로 많은 수고를 요하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어리석게도 힘에 의존하려 했었구나.’

   자책감과 탈진감에 윤혁은 털썩 주저앉았다. 재물을 쌓으면 하나님과는 멀어진다고 했었던가. 저 반지 또한 분명 천문학적인 가치와 권력을 탑재한 재물이리라.

   ‘도대체 얼마나 우매한 짓을…….’

   지금껏 위기가 닥치면 저도 모르게 그 힘에 손길이 갔음을 부정치 못했다. 유혹을 뿌리치겠노라고 그렇게 결의를 했는데 결국 자신의 나약함만 증명한 꼴이 되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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