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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9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3. 습격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07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깊은 회한과 부끄러움, 그리고 반성의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부질 없이 의지하던 모든 것이 훤히 죄다 사라지고 황량한 벌판에 남겨지자 그제야 하나님 말고는 진정 붙들만한 존재가 없다는 진리를 올바르게 절감하였다.

   ‘제 허물과 잘못이 너무도 큰 것을 봅니다, 주님.’

   맨살에 적의 살기가 맞닿았다. 소스라치게 춥고 무서웠다. 그는 무력하게 벗겨진 채로 핍박하는 자 앞에서 힘없이 무릎 꿇고 있었다. 다윗의 시편에 담긴 절박한 외침이 이 순간 그의 탄원이 되었다. 적대자들의 손길로부터 제발 자신을 구해달라고 간절히 외치는 마음, 그 절실한 심정에 속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보기 좋진 않군.”

   칼리드는 조용히 훌쩍이는 윤혁의 모습을 보고 실망 조로 읊조렸다.

   “그땐 그렇게 당당하게 떠들어대셨는데 말이야.”

   스타덤에서 성좌들을 향해 외쳤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하긴 그때도 지금도 자기 위치를 믿고 설쳤던 게지?”

   물론 윤혁은 자신의 위치를 의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돌아보니 과연 그때의 자신이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떳떳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매순간의 위기와 맞닥트릴 때마다 윤혁은 저도 모르게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당초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겠다면서 속세적인 속셈을 품은 불신자인 진과 언약을 맺은 것부터 어긋났을 지도 모르겠다. 분명 불신자와 함부로 멍에를 같이 매지 말라고 경고하셨거늘(고후 6:14).

   “뭐, 당당해서 보기 좋았는데……, 지금은 좀 초라하군.”

   칼리드는 차가운 눈초리로 윤혁을 해부하듯 헐뜯었다.

   “그분의 동생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해.”

   윤혁 자신도 스스로를 살펴보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감히 큰일을 벌인 용기와 대범함은 칭찬해줘야겠지만.”

   칼리드는 윤혁을 상대로 잡담하는 이 와중에도 열심히 집중력을 발휘해 반지에 초능력을 가미하고 있었다. 아마 내부의 성분들을 분석해서 필요한 요소를 추출한 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재조작하는 듯했다. 어찌나 그 솜씨가 현란한지 한 명의 개체가 수행하는 작업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으로 재미있는 것들을 가르쳐주지.”

   윤혁은 묵묵히 천천히 고개를 올려 들고 칼리드와 반지를 쳐다보았다. 칼리드는 피식 웃었다. 아까의 맹렬한 분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운이 빠진 동태 눈만 남은 몰골이 아닌가.

   “식민지에서 태어난 인간에는 수태되는 순간부터 그 정신과 혼과 육체 속에 일곱 개의 표식이 심겨진다. 그 표식들은 세대를 거쳐 하나의 예외 없이 완벽한 유전으로 이어진다. 또 개량 시기마다 보편적으로 업그레이드되지. 원리는 우리조차 잘 몰라. 오직 원제작자인 아버지만 아시지.”

   오로지 카이젤과 그가 이 목적을 위해 부리는 전용 조수인 아크삼형제만이 표식이라는 비밀스러운 실체들의 신비를 속속들이 알았다. 하지만 칼리드에게도 어깨 너머로 언뜻 전해 받은 정보 정도는 있었다.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인 일곱.”

   일곱 개의 표식이란 곧 완전한 속박을 의미했다.

 

    1) 사람의 사고방식과 세계관 체계를 조작하고 제어하는 ‘사상제어의 표식’.

    2) 타임필드에 소속되도록 허락해주고 거주지를 제한하는 ‘소속제약의 표식’.

    3) 인류연합 대표에게 복종하고 그를 동경하게 이끄는 ‘충성의 표식’.

    4) 시뮬레이션 우주에 접속하고 그곳에 종속되도록 만드는 ‘환상의 표식’.

    5) 죽기 직전에 워프 되도록 돕고 피코머신의 작용을 매개하는 ‘생사의 표식’.

    6) 뇌리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은 학습시키고 금기는 지우는 ‘기억의 표식’.

    7) 지적, 능력적 잠재력을 증폭해 초인 각성을 돕는 ‘초월 진화의 표식’

 

   칼리드는 그간 윤혁이 알고자 해도 알지 못했던 표식들의 기능들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그 중에는 스테판에게 들은 말들로 간접적이나마 유추할 수 있던 것도 있었고 전혀 가늠하지 못했던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일이지. 네가 내게서 강탈당한 이 반지, 여기에는 일곱 개의 테크놀로지가 추가로 이식되어 있어. 그런데 그것들을 보면 일곱 표식의 기능들과 일대일로 대응되는 면이 있단 말이지.”

   몇달 전 카이젤은 자기 동생이 생일 선물로 주었던 반지 한 쌍을 바라보며 모종의 영감을 얻었는데, 그는 그 영감을 바탕으로 그가 이미 완성해놓은 어떤 테크놀로지를 새로운 형태로 개편하는 데 성공했다. 동생의 생일 선물은 그 개편 작업의 첫 프로토타입이 되었다.

   그 결과로 탄생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권능의 반지. 한 쌍의 반지는 하나의 계약을 기반으로 둘이 한 몸처럼 연결되었고 하나는 나머지 하나의 힘을 일정 부분 공유할 수 있었다. 즉 카이젤이 보유한 페어만큼은 아니지만, 윤혁이 지닌 페어에도 상대편 반지의 힘이 일부분이나마 깃들어있었다.

   “이미 그 능력 중 하나는 스튜아가 한 번 사용했었지. 시뮬레이션 우주의 실체화를 끌어내는 핵 말이야. 현재로서는 아버지가 보유한 그 반지가 가장 강력한 시뮬레이션 우주 실체화 매개체거든. 탐나는 물건이지. 스튜아는 꿩 대신 닭으로 네 반지를 사용했지만…….”

   이번에 칼리드가 관심 두는 기능은 다른 쪽이었다.

   “그래, 바로 여기에 있었군.”

   이미 해부가 어느 정도 완료되었는지 윤혁의 반지의 락은 상당 부분 해체되어 있었다. 일곱 개의 에너지체가 이글거리는 모습으로 시각화되었다. 칼리드는 그중에서 붉은색의 에너지체를 정확히 골라내더니 곧바로 자신의 초능력을 새겨넣었다. 두 힘은 서로 공명하였다. 곧 칼리드의 현자의 눈과 반지에 담긴 붉은 에너지체가 함께 활활 타올랐다.

   “내가 찾던 것은 인간의 강력한 염원이나 의지를 자연법칙과 등가 교환하는 기술이야. 현실조작 급은 못 돼도 그 바로 아래 단계는 되는 기술이지. 아버지께서 끝내 완성하신 모양이군.”

   반지 속에 깃든 그 기술은 의지를 법칙에 투영시키는 힘이기도 했지만, 역으로 강한 물리 현상을 동원해 사람의 의지에 변형을 가할 수도 있었다. 칼리드에게 필요한 것은 후자 쪽이었다. 당장 수행해야 할 임무에는 방대한 위력은 정신 지배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

 

 

 

 

   드디어 반지에 심긴 능력을 온전하게 제어하는 데 성공한 칼리드는 자신이 계획한 과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몸을 일으켰다. 이제 필요한 물건 두 개는 모두 확보되었다. 쓸데 없이 대화하느라 너무 여유를 부린 탓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제는 슬슬 움직여야 한다.

   “협조에 감사를 표하지, 숙부님.”

   그는 윤혁을 묶어두던 염동력을 풀어주었다. 저항하느라 너무도 많은 신체 에너지를 소모한 윤혁은 털썩 주저 앉았다. 다리에 힘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이어서 리온과 루디아를 묶던 염동력도 풀렸다. 둘은 윤혁보다 체력 소모가 더 심한지 즉각 풀썩 쓰러졌다. 의식은 잃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잃는 편이 나을뻔했다.

   “지금부터 내가 진행하는 모든 일들은 텔레파시로 실시간으로 보여주지. 아무래도 위대하고 숭고하신 선교사 나리들께서 당신네 신도들에게 벌어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를테니까. 모르고 있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말이지.”

   붉은 눈의 미남은 조소하는 태도로 윤혁 일행을 관망하였다.

   “흥미로울 거야. 스포츠 경기를 관람한다고 생각해라.”

   곧이어 호위 군대가 내려왔다. 추진 장치 없이 하늘을 자유로이 비행하는 군사들이었다. 사람 모양의 실루엣은 지녔으나 겉표면은 외골격과 갑주로 뒤덮여 있었다. 인간 같지는 않았다. 기계인지도 이종족인지도 불명확했다. 그들은 칼리드를 맞이하러 내려왔는데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을 만큼 수효가 엄청났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몇몇은 이곳에 남아서 하늘도시를 수비해. 여파가 미치면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그때 군사 중 하나가 칼리드에게 질문했다.

   -{남은 표적물들은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

   칼리드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태연히 명령했다.

   “이레귤러는 내가 직접 수거한다. 나머지 셋 중 제일 키 큰 사람……, 그래, 너희에게는 특별 보호대상이겠지. 그는 그분의 귀한 동생이니 정중히 대해라. 최대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지구로 귀환시켜 드려. 그리고 나머지 둘은…….”

   자랑하는 내내 무표정했던 표정에 처음으로 미소가 걸렸다.

   “너희 율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마음대로 다뤄라.”

   윤혁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친구들을 놔줘.”

   그는 분한 표정으로 다시 칼리드를 노려보았다.

   “이제 내가 아니라 저 녀석들의 결정에 달린 문제야. 저 영혼조차 없는 불쌍한 비인간들, 너희가 그토록 얕잡아보던 무생물들을 향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봐. 혹시 아나? 운이 좋으면 네 친구들의 신체라도 온존시켜줄지도 모르지.”

   칼리드는 그리스도인들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여기면서 자부하는 태도를 불쾌히 여겼다. 기계나 이종족들과 비교해서 지능도 육체도 능력도 압도적으로 도태된 주제에 말이다. 칼리드는 나약한 인간들이 자신의 ‘특별한 존엄성’을 신에게서 발견하려는 무책임한 태도를 싫어했다. 존엄성을 증명하려면 위대해지면 될 것 아닌가. 아울러 그는 지난번 윤혁이 티아라를 상대로 이겼던 비결인 그 원리를 조롱해보고 싶었다.

   “신의 형상께서 인간의 발명품 앞에 비는 꼴이 참 가관이겠군.”

   그르렁거리는 윤혁을 외면한 채 칼리드는 스테판의 목덜미를 붙잡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필라 다섯 개로 만들어진 반투명한 성채에 다시 탑승하려다가 귀찮은지 그것을 관통하여 날아올랐다. 그저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풍압만으로 성채가 산산조각났다. 강력한 힘에 대한 과시인 동시에 재력의 과시. 성채 조각들은 형상조작 기능에 힘입어 얼음 괴수 군단의 형상으로 바뀌어 재기동했다.

   “자, 이제 시작이다.” 

   칼리드의 한쪽 눈이 스테판을 향했다. 입이 봉쇄된 탓에 스테판은 자음이나 모음 없이 소리만 지르며 무의미한 발버둥만 치고 있었다. 칼리드가 스테판에게 전하는 말들은 텔레파시의 형태로 윤혁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실시간으로 사태파악을 할 수 있도록.

   “준비물은 모두 마련되었군.”

   가장 먼저 현자의 눈. 표식을 명분으로 계엄령을 발동하는 바람에 카이젤이 허락해준 IV 단계보다 무려 세 단계나 더 높여 VII 단계까지 발동하는 일이 허가되었다. 둘째는 현자의 눈의 반동을 완충하고 나아가 정신파를 우주 전역으로 확산하도록 증폭을 도와주는 요새 템플(temple). 이 템플은 은하 전역에 흩어진 1만 기의 동일 기종과 실시간으로 양자 공명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셋째는 조금 전에 하늘도시에서 선교사 일행으로부터 탈취해온 두 개의 강력한 비기. 특별히 반지에 담긴 ‘염원과 법칙을 교환하는 힘’은 칼리드의 통제 하에 거의 다 놓였다. 당장이라도 본 기능의 80% 이상은 사용할 수 있으리라.

   남은 열쇠는 바로 포로 자체였다.

   “이레귤러, 너를 왜 데려왔나 궁금할 테지.”

   “…….”

   “나는 너의 ‘왜곡된 표식’을 역이용해서 우주 전역에 흩어진 ‘표식이 흐트러진 자’들을 검색하려고 해. 그 과정에서 잠깐 뇌 수술을 시행할 거다. 실례하지.”

   스테판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동안 다른 워프 반응이 나타났다. 칼리드가 고대하며 찾던 마지막 준비물들이 당도했다. 불꽃의 눈이 번뜩였다. 그 괴이체들의 실루엣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스테판의 안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래, 이제 시험해볼 차례로군. 셀레스티언의 능력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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