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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93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4. 숙청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09 | 회차평점 0 0

 

 

 

 

 

 

Chapter 64. 숙청

 

 

 

 

 

 

 

 

   셀레스티언. 인공천체이자 인공생명체. 최초로 완성된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 그것들은 개체 하나 하나가 천체에 필적하는 체구, 생명체를 능가하는 정교함, 방대한 에너지를 담은 동력원, 슈퍼컴퓨터급의 초지능, 초능력을 방불케 하는 수많은 특수능력을 담은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동안은 온갖 우주 사업의 원동력이자 드넓은 우주를 정복하는 군대가 되며, 죽어서도 사체를 통해서 유용한 특수 자원들을 남기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신규 개체도 상위 차원의 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되기에 통상 공간의 자원 소모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게다가 증식도 타임필드에서 이뤄지기에 짧은 시간 안에 은하의 별을 방불케 할 만큼 수가 늘어날 수 있었다.

   최근 몇 달간, 최종 점검 및 제어장치 이식을 마친 셀레스티언들은 통상 공간의 이면에 놓인 심계 차원 속에서 꾸준히 증식하면서 강력하게 진화해나갔다. 에녹의 조율 프로그램의 지배만으로 완벽히 제어되기 어려운 종족은 이들이 최초였다. 따라서 에녹도 고삐를 확실히 붙들기 위해 네 명의 철인왕과 협력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자연스레 제어권 일부가 칼리드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현지 소환 프로세스 가동.}

   {‘루나틱’ 365,230기, ‘헬-스텔라’ 63기}

   {‘어비스홀’ 521기, ‘이블가이아’ 40,100기}

   입술이 강제로 봉쇄된 채로 상황을 지켜보던 스테판, 그는 경악의 눈초리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빈 우주 공간에 느닷없이 거대한 구형 천체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들의 외양은 정교하고 복잡했다. 기계로 만들어낸 인공 천체 같기도 했지만 열기를 내뿜는 면에서는 자연계의 천체 같은 느낌도 들었고 꿈틀거리는 생체 조직들이 덮여있어서인지 생명체 같기도 했다.

   윤혁 역시 포탈 너머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인지하더니 화들짝 놀랐다. 흡사 별 같은 생명체들이 워프를 통해서 대거 모여들고 있었다. 몇 년 전에 본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셀레스티언의 습격’ 시리즈, 유명한 공상과학 시리즈로 형과 함께 관람했던 적도 있었다.    놀랍게도 이번에 나타난 괴물들의 모습은 영화 속 셀레스티언과 거의 똑같았다.

   ‘무슨! 공상과학 영화를 아예 현실로 만들었다고? 그것도 21세기에 만들어진 영화도 아니라 우리 세대에 유행하던 최신 공상과학 영화를?’

   초인들더러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자’라고 하던 게 이런 의미였던가.

   “아름답지 않나?”

   대기도 없는 우주 공간 속에서 슈트도 없이 편안하게 거니는 칼리드. 그는 거만함을 한껏 머금으며 자신이 막 소환한 셀레스티언들의 거대한 몸체들을 감상하였다. 지난 몇 개월간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낸 역작을 감상하는 기쁨에 그의 입가에는 의기양양한 승리자의 미소가 번졌다.

   “여기 소환된 건 내 소환 군단 중 빙산의 일각이야. 이미 은하 각 좌표, 각 지역으로 18,000종이 넘는 다양한 셀레스티언들이 대거 파견되었지. 해변의 모래알보다도 많은 수효가 몰려오는 중이지.”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 이 용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단어에 담긴 문자적인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는 집산체였다. 정말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은하계를 방불케 하는 물리적 규모의 거대한 종족이었다. 셀레스티언은 최초로 완성된 갤럭시 클래스였다. 실제로 드러난 그 위용은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벗어났다.

   “그리고 그 소환된 무리 전체도 사실은 빙산의 일각이지. 진정한 셀레스티언 본대는 칼라비-야우 차원에 주둔하고 있어. 통상 우주에 파견된 동료들을 배후에서 보조해주고 있지.”

   칼리드는 차원 이면에 주둔한 셀레스티언들과 통상 공간으로 파견된 셀레스티언들의 방대한 에너지량과 통신 능력을 기반 삼아 모든 하늘도시들의 전역을 포괄하는 모종의 프로젝트를 발동할 생각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려고…….”

   스테판은 입이 봉쇄되어 움직이지 않자 생각으로 언어를 내뱉었다. 사실 간단한 해결법이었다. 상대가 정신간섭 능력으로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 그 점을 역이용하면 된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엄두도 못낼 방법이긴 하지만.

   “무섭지 않은가?”

   “어차피 잘해봐야 내 몸 밖에 못 죽이는 당신을 왜 무서워하겠소.”

   “그래? 그러면 더더욱 너를 죽이지 말아야겠군. 정신간섭으로 철저히 세뇌해야겠어. 네가 원하는 대로 네 영혼을 죽여보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보지.”

   “이 악행에 대해서 반드시 보응 받을 거요.”

   칼리드는 상대의 발악이 가소롭다는 듯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내가 무슨 일을 하려는 지 궁금해 했었던가?”

   “…….”

   “너와 마찬가지로 다뤄줄 생각이다. 죽음이란 어울리지 않는 선물이야.”

   스테판의 이마의 근육이 의문, 불길함, 분노로 바르르 뒤틀렸다.

   “너 같은 부류를 1조 개의 식민지 전체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색출한 뒤 구금할 작정이야. 우주 인류에게 심어진 ‘생사의 표식’과 ‘소속제약의 표식’에는 워프 마커 기능도 포함되어 있지. 계엄령을 기회로 삼아 두 표식의 패턴을 교묘하게 배합한 뒤 그 워프 마커를 사용할 거다. 그것을 기회 삼아 위험분자들을 강제로 워프시킬 생각이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그 많은 식민지로부터 신자들을 색출하겠다는 속셈인가. 설령 분간해낸다 해도 그 많은 인원을 텔레포트 시킬만한 에너지원이나 기술력이 과연 존재할까? 의아해하던 스테판의 생각을 칼리드가 읽어내더니 쉽게 답변을 해주었다.

   “놈들의 신앙 상태를 일일이 확인할 필요는 없어. 그건 애초부터 내 관심 밖의 문제이지. 난 그저 너와 유사한 상태를 띤 존재들만 확인하면 그만이야.”

   “설마…….”

   “그래, 표식의 페이즈 패턴이 얼마나 흐트러져 있는지, 그걸 기준으로 이상 분자들을 검출하면 되지. 조금이라도 적정선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장차 해를 끼칠만한 위험군으로 분류할 거다.”

   단지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핍박한다면 칼리드로서는 인류연합의 하수인으로서 전혀 명분이 서지 않겠지만, 표식의 왜곡 상태를 명분으로 세운다면 그 정당성의 규모는 확실히 달라진다.

   “참고로 계엄령을 발동한 상황에서는 위험군들을 강제로 송환할 수 있거든. 그들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 워프를 통해서 말이지. 체포 과정 같은 번거로움도 필요 없고 탈출할 가능성도 없지.”

   다만 얼마나 표식이 흐트러졌는지, 우주 인류의 개체들을 일제히 스크리닝하고 그 검출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기준 데이터가 필요했다. 바로 그 기준 잣대로써 사용될 희생양, 그것이 바로 특수 케이스인 이레귤러였다. 스테판은 표식으로부터의 자유도가 가장 높은 우주 인류 출신. 여타 그리스도인들의 표식 상태 변화를 측정하는 기준치로써 그야말로 적격이었다.

   “그 옛날 지구에서는 그들을 검출할 때 일일이 체포하여 십자가를 밟고서 건너가라는 협박을 활용했다지. 참으로 원시적이고 어리석은 방법이야. 그렇게 암 덩어리를 무턱대고서 자르면 도리어 미세한 암세포가 곁으로 퍼져서 더욱 퍼질 따름이거늘.”

   불순분자의 색출을 암세포의 치료로 비유한다면 탄압은 손재주 나쁜 자의 수술에 비견되리라.

   “그 방법이 잘 먹히지 않으니 나중에는 간접적으로 억제해볼 생각으로 경제적, 제도적 탄압을 가미했었지.”

   그 방법은 비유컨대 독한 세포독성 항암치료가 될 것이다.

   “아니면 노선을 바꾸어서 풍요와 자유를 통해 스스로 몰락하게 했고.”

   그쪽은 암이 스스로 퇴화하도록 유도하는 면역 치료법에 비유되겠지. 하지만 그것들을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차선책이요, 100%의 정확도, 100%의 정밀도, 완전한 민감도와 특이도를 자랑하는 이상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암이라는 질병이 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줄 아는가? 나노머신과 피코머신이라는 궁극의 분자 단위 치료기법이 나타났거든. 전신의 분자 하나하나를 색출하여 완전한 판단력과 연산력을 통해 암세포는 물론 암이 될 위험이 큰 세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검색한 뒤 그것들만을 일거에 삭제하는 일이 가능해졌어.”

   이번에 칼리드가 내세운 전략은 비유컨대 역사속에서 암의 존재를 종식시킨 이 무지막지한 치료법과 일맥상통했다. 기본적으로 원리는 간단했다. 모든 인간 개체마다 표식의 스위치에 벌어진 상태 변화를 감지해낸 후 위험 기준치를 넘긴 자들만 선별하여 모조리 워프시킨다.

   이 엄청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무려 VII 단계 현자의 눈의 최면술, 템플 시리즈, 은하계급 규모의 셀레스티언들의 거대한 에너지와 특수능력, 그리고 반지의 권능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총동원되었다.

   “너희의 경전에는 휴거라는 개념이 나온다고 했던가?”

   칼리드는 비웃으며 스테판을 향해 조소하였다. 그 의미 모를 망발에 스테판의 표정은 냉정함을 잃고 일그러졌다. 저자에게서 또 무슨 불경한 발언이 튀어나올지 가늠이 되지 않아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선택받은 자들만이 홀연히 공중으로 사라져버린다라. 우스운 도피주의로군. 어디 한 번 그런 일을 당한다면 남은 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군. 그래. 우리가 너희 망상을 직접 현실화시켜주지. 너희가 기대하는 식과는 반대로 말야.”

 

   프로젝트 거짓 휴거(Pseudo-Rapture).

 

   칼리드는 즉석에서 자신의 발칙한 발상 위에 불온한 조롱의 의미를 담은 명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 위협의 크기만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으니. 고대 아말렉인이었던 하만이 기획한 유대인 학살 모략 이래로 성도들을 향한 가장 치졸하고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위협이 임박하였다.

 

 

 

 

 

 

 

 

*

 

 

 

 

   이후의 일들은 방해 없이 일사천리로 속사포처럼 흘러갔다.

   “날 죽일 생각이오?”

   “음?”

   스테판은 고된 괴로움에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칼리드의 초능력 덕택에 우주공간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국소 환경이 조정되었지만 동시에 적의 초능력은 스테판의 세포 하나하나를 섬세히 옥죄며 위협을 겸하고 있었다. 의식이 흐려지기 전, 스테판은 상대의 계획이라도 최대한 파헤칠 작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표식의 질서가 흐트러진 자들 말인가?”

   “그렇소.”

   “한심한 질문이로군. 무엇이 아쉬워서 그들을 죽여야 하지?”

   애초에 한꺼번에 워프로 한 구덩이에 모을 수 있는 마당에 굳이 죽일 필요가 있겠는가.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오늘날에는 훨씬 더 훌륭한 처리 방법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데.

   “게다가 무턱대고 죽여버리면 나로서도 몹시 곤란해. 아버지 이외의 초인에게는 우주 인류의 생살여탈권이 없으니까. 게다가 식민지 인류 모든 개체는 생사의 표식이란 것을 지녔기에 목숨을 빼앗긴다는 옵션 자체가 없어.”

   이것은 위안의 말도 위로도 아니었다. 차라리 죽임을 당한다면 그리스도인들로서는 도리어 다행일지도, 어쩌면 위대한 해방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천국이라는 소망의 실체가 있으니까. 하지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로 운명을 고정하여 일정 상태에 가두어버린다면? 그것은 분명 배는 더 비참한 형벌이 될 것이다.

   “워프 소환술을 수행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야. 지금 네 눈에 보이는 셀레스티언들이지. 워프 마커에 포박당한 인간들은 그들의 뱃속으로 순식간에 끌려갈 거다. 셀레스티언은 그 자체로 별과도 같으니 희생양들로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대지의 뱃속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는 셈이지.”

   셀레스티언의 체내에는 일종의 특수 신경조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조직은 마치 나무뿌리처럼 뻗어 나가는 구조로 각종 복잡한 생체 작용을 담당하였다. 놀랍게도 이 신경조직의 말단부에는 하위 생명체들의 뇌와 강제 접합하는 기능 또한 탑재되어 있었다. 본래 이 기능은 타 이종족이나 기계들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셀레스티언의 권속 유닛을 운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기능이었다.

   칼리드는 이러한 셀레스티언의 신경조직 접합 기능을 색다른 용도로 사용할 계략을 꾸몄다. 바로 표식의 제어에서 막 벗어나려는 인간들의 뇌를 셀레스티언의 조직에 연결하여 강제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고고하고 안전한 방법인 표식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뇌에 간섭하는 우악스러운 술책을 써서라도 불을 끄려는 것이 그의 작정이었다.

   ‘제 정신이 아니군.’

   스테판 입장에서는 참으로 충격적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 해칠 잠재력이 농후한 이런 류의 기능이 셀레스티언들의 정신 체계에 처음부터 버젓이 삽입되어 있었다. 더 충격적인 점은 인류연합 측에서 이런 모든 부분을 감안하고도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승인해주었다는 것이었다.

   “포로들은 기억부터, 정신체계, 의지, 감정, 학습 기능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뇌 구조 체계를 모조리 개조당할 거다. 두 번 다시 제멋대로 표식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말이야. 그리하여 마땅히 지배당할 자들이 자기 운명을 거부했을 때 어떤 처벌이 가해지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

   하나 같이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말들뿐이라 스테판은 이 순간 자신이 인간의 언어를 듣고 있는 것인지 악마의 지껄임을 듣고 있는지 분간하지 못했다. 영혼을 죽이겠다는 의미가 저런 뜻이었을 줄이야. 믿음이라는 고귀한 정신 기능과 직접 연접한 뇌 부위가 인위적으로 누군가에게 개조당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이런, 너무 슬퍼할 것 없어. 너희들의 고귀한 희생 덕택에 표식 시스템은 한계를 보완하고 더욱 완성된 체계로 거듭날 것이니까. 개선된 기술에 힘입어 온 인류는 다시 하나로 묶이게 되겠지. 우리를 회전의 축으로 삼아서 말이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우주 인류의 운명은 결국 이종족과 별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전락한다. 새로이 탄생한 더 강력한 인종인 호모 데우스, 곧 초인들과 그들의 왕인 위버멘쉬를 중심으로 삼아 회전하는 일종의 군집 복합체나 다름없이 추락하리라.

   “너희 말대로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셈이니 나쁘지 않겠지?”

   분노한 스테판은 이를 부득 갈았다.

   “……이런 마왕 같은 자.”

   “초인들은 나를 그렇게 칭하기도 하더군.”

   “회개치 않으면 필히 두려운 형벌이 임할 것이오.”

   “천벌이라. 인간은 운명을 늘 정복해왔지.”

   “오만함에서 유래한 착각이오. 인간은 신께 대적해서 승리할 수 없소.”

   “뭐, 그러면 우리가 신의 위치까지 진화하면 되겠군.”

   두 사람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듯 한 치도 만나지 않았다. 애초에 두 사람의 영혼이 지향하는 방향 자체가 전혀 상반되었기에 타협점이 형성될 턱이 없었다. 그러나 신경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내 스테판은 괴로움과 함께 시야가 서서히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프로세스가 시작되는 중이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부터 정신을 잃으면 곤란해.”

   칼리드는 스테판의 이마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쥐었다. 곧 염동력으로 생성된, 보이지 않는 초미세 단위의 메스 수십 억 가닥이 스테판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이어서 염동력은 뇌뿐 아니라 신체 온 부위로 스며들었다. 칼리드는 원자와 소립자 하나하나를 슈퍼컴퓨터처럼 분석하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극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한 스테판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칼리드는 상대방의 고통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지 인상을 약하게 찡그리며 작업의 복잡성에만 집중하였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다가 답답함과 짜증을 느끼는 아이처럼.

   이내 그는 분자라는 물질계의 단위를 넘어 차원 이면에 속한 부분까지 살피기 시작했다. 현자의 눈이 이글거렸다. 사물의 이치와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특유의 분석능력이 발동되었다.

   ‘일곱 표식은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아원자와도 일일이 결합되어 있기 하나, 그 본체는 물질 차원 속에 새겨진 것이 아니다. 인간의 구성 성분 중 초물질적 차원 혹은 상위 차원에 결부된 무언가, 그쪽에 뿌리를 두고 있지.’

   표식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칼리드에게조차도 역량을 벗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대강의 문제점이나 오류를 진단하는 정도라면 가능하다. 특히 지금과 같이 초능력 기술이 발달한 때라면 예전보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칼리드는 찬찬히 이레귤러의 본질적 오류가 어디에 놓였는지를 살폈다. 그는 미래예측시스템과 접속하여 스테판의 표식 데이터를 역산하고 검산해보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의 표식이 이리도 기묘히 뒤틀린 것인지, 이유는 무엇인지, 범인은 대체 누구인지를. 수많은 슈퍼컴퓨터가 네트워크를 통해 칼리드와 연결되었고 이내 이들도 이레귤러 분석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칼리드는 천재 신경외과 의사가 뇌종양을 찾아 뒤지듯 정밀하게 살피면서 고민했다. 그 와중에 발생한 격렬한 고통은 희생양을 미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괴로움 끝자락에 스테판은 무의식중으로 떨어져 버렸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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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SF소설 속 세계나, 현실세계나 ..... 세계를 경영한다는 정재계의 리더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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