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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9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5. 셀레스티언 대 솔져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19 | 회차평점 0 0

 

 

 

 

 

*

 

 

 

 

 

   그 순간에도 윤혁의 머릿속으로는 희미한 잔상의 형태로 전투 장면이 전송되었다. 아직 칼리드와의 텔레파시 잔여 연결이 끊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기에 칼리드가 관측하는 정보 일부분이 그에게도 스며들고 있었다.

   ‘셀레스티언?’

   영화 속의 한 장면에나 등장하던 초능력자와 천체 괴물의 격전이 현실 위에 실체화되어 그대로 재현되는 중이었다. 항상 현실이 픽션보다 더하다고 했던가. 윤혁은 탄식했다. 지금 보는 전투는 옛날 친선 경기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때 본 바이오닉 솔져들이 작은 개미 한 마리라면 이번의 솔져들은 고래처럼 느껴졌다.

   ‘최소 몇억 배 이상 강해진 건가.’

   아니, 그 전에 수학적인 숫자 개념으로 배수를 표현할 수나 있는 것인가? 지난 사년간 인류의 과학 기술은 급속히 발전되었다. 게다가 구현 불가능으로 보였던 초능력이라는 요소까지 나타났다. 그 영향인지 바이오닉 솔져들은 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진보하였다. 이제는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스테판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한참 이어지던 스테판과 칼리드의 대화가 어느 순간에 끊겨버리더니 그 이후로는 영 심상치 않게 일이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결정인 순간에 아무 역할도 못 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한편 잠잠히 상황을 지켜보던 칼리드의 군사들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는지 천천히 다가왔다.

   -{강제로 떨어뜨려 놓자.}

   -{그래.}

   억센 거인들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윤혁은 친구들을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 굳세게 안고 버텼다. 거인들의 우악스러운 손이 뻗쳐오자 윤혁은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번쩍.

   그때 꽉 감긴 눈꺼풀의 틈새로 밝은 섬광의 일부가 스며들어왔다. 당황한 윤혁은 섬광이 희미해지자 조심스레 눈꺼풀을 위로 올렸다. 놀랍게도 상륙한 군단 전부가 일제히 시간 마법에라도 걸린 듯 정지해있었다. 정신조종에라도 당한 것인가. 영문을 몰라 방황하고 있는 와중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강윤혁 씨.”

   “……네?”

   윤혁은 깜짝 놀라 목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음파라기보다는 정신파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통상의 텔레파시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원리를 알 수는 없었으나 육감적으로 전달되는 감에 의하면 그의 호주머니에 있던 펜던트가 의미 전달 작용의 진원지였다. 인류연합 부대표가 선물했던 바로 그 기념품.

   “설마……, 카가미 씨?”  

   “그 호칭은 익숙하지 않군요.”

   “지금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이미 당신도 일부 보았겠지만, 좋지는 않습니다. 나름 이쪽은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중입니다. 매개체가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이라서 일단은 이전에 심어놓은 일회용 카드들을 소모하는 중입니다.”

   에녹은 셀레스티언과 관련된 사태가 흘러가는 정황을 대략 설명해주었다. 윤혁은 말이 통하는 상대에게라도 부탁하고 싶었다. 칼리드의 계획을 막아달라고. 하지만 어쩐지 꺼림직한 기분이 들어 망설여졌다. 에녹 역시 이번 계획과 연관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 듯싶었다.

  ‘그래, 부대표님은 이종족의 제어와 생산에 관여했었지. 어쩌면 셀레스티언이라는 저 괴물 종족도 생산 및 발명 과정에서 그의 입김이 닿았을지도 모르지.’

한 번 칼리드라는 인간에게 크게 데인지라 윤혁으로서는 더는 초인이란 작자들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에녹이 의외의 제안을 던져왔다.

   “나와 계약을 한다면 칼리드를 막는 것을 도와주겠습니다.”

   “네?”

   “그의 계획이 무산되도록 도와주겠습니다. 칼리드는 지금 당장은 내가 맡긴 임무를 수행하는 지라 본래의 그 계획을 시행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면 다시금 그 계획에 착수할 겁니다. 기회가 있을 때 미리 막아보죠.”

   “무슨 수로 막는다는 겁니까?”

   “어렵지는 않습니다. 셀레스티언은 본래 내가 설계했기에 우선적인 제어권은 내게 있습니다. 그것들을 뜻대로 쓰지 못한다면 칼리드도 계획을 완수하지 못할 것입니다.”

   몹시 달콤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남았다.

   “설마 공짜는 아닐 테고……, 무슨 대가를 요구하실 생각입니까?”

   “당신에게서 내가 착취할 것은 없습니다. 단 하나, 잠시 당신의 의지와 정신을 잠식할 생각입니다. 내가 빌려준 그 펜던트를 매개체로 활용해서 말이죠.”

   뜻밖의 요구에 윤혁은 당혹감에 뻣뻣이 굳었다.

   “그 말인즉……, 제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네, 전에 하늘도시 주민들에게 초능력을 주입했던 것처럼 당신의 정신 전체를 온전히 TUNER의 메인 서버에 굴복시킬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력이 매개체가 되어준다면 몇 배 이상 강력한 실체화를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거부감이 뱃속에서부터 솟구쳤다. 사실상 귀신들리는 요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신의 정신과 의지와 마음을 통째로 통제 불능의 존재에게 내맡기라고? 그것도 이종족들을 강제로 진화시키는 발칙한 프로그램에게? 설령 일시적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판단이 섰다. 더욱이 이번 일이 끝나고 에녹이 자신을 순순히 놓아줄지도 미지수였다.

   ‘카가미 씨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전 우주의 신자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선한 결과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선행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불법의 길과 결탁하는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궁한 길로 돌아가야 할만큼 작은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나 막상 그렇게 믿으면서도 현실의 윤혁으로서는 마음의 갈등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구해야 할 사람들의 수가 저렇게나 많은데, 내버려둬도 괜찮을까?’

   평소의 윤혁의 가치관대로였다면 더 큰 선을 위해서 악을 수단으로써 허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쉽게 판단 내렸으리라. 하지만 막상 공리주의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압박받는 상황에 이르자 선뜻 결정 내리기 어려웠다.

   ‘나 하나를 더럽히면 수 경(京) 이상이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러나 윤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영혼은 성령님의 성전임을 믿었기에 그 자리에 불경한 물건을 올려놓을 수는 없었다. 이는 그의 영혼을 구원해주신 예수님께 대한 모욕이었다. 악행과 타협할 수는 없다.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결과에는 도덕적 책임이 없다. 하나님께서 초인들의 악행을 복수로 갚아주시거나 나름의 방법으로 신자들에게 더 큰 구원을 베푸실 것이다. 하지만 윤혁이 타협해버린다면 그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거절하겠습니다.”

   윤혁은 갈등과 미련 가득한 어조로 어렵사리 입을 떼어 답했다.

   “그것이 당신의 결정입니까?”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미안합니다, 강윤혁 씨.” 

   “네?” 

   느닷없는 답변과 함께 강렬한 섬광이 펜던트에서 뿜어졌다. 펜던트의 사슬 부분이 빛의 사슬로 변하더니 윤혁의 전신을 특수한 에너지체로 칭칭 휘감았다. 그리고 펜던트의 사진첩 부분이 더욱 격하게 빛나더니 곧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끄아아아악.”

   “사과는 제 쪽에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에녹의 소리에서 미안함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악어의 눈물과 같았다.

   “제게는 인류연합의 부대표로서 위험한 이종족을 막아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의 허락이 없기에 당신의 의지를 매개체로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강제로 펜던트를 폭주시키는 방법밖에 없겠군요. 순순히 순복했다면 당신도 고통이 없었을 텐데. 이쪽도 더 높은 효율로 펜던트를 활용할 수 있어서 편했을 테고요. 거부하니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전기에 감전된 듯한 감각에 의식이 흐려진 윤혁은 비명을 질렀다.

   “우려하진 마시죠. 죽지도 않고 불구가 되지도 않을 겁니다. 다만, TUNER 본체의 실체화 과정에서 에너지 충격을 받을 테니 그 순간만큼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잠깐의 쇼크웨이브가 지나간 이후 윤혁은 기력을 잃고 풀썩 쓰러졌다.

 

 

 

 

 

 

 

 

*

 

 

 

 

   환상계를 샅샅이 뒤진 칼리드는 엘이 준비해둔 안배들을 모두 색출해냈다. 그는 그녀에게 감염된 시스템의 부분들을 암세포 수술하듯 깔끔히 삭제하고 리셋했다. 아울러 그녀가 숨겨둔 물리적인 장비와 시설들까지 남김없이 파괴했다.

   나아가 혹 그녀가 숨어들 만한 가능성이 있는 장소들은 경비를 몇 배 이상 강화했다. 심지어 다른 차원까지도. 그녀의 몸 혹은 정신체라도 남아있을까 우려되는 차원들은 빠짐없이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시행했다.

   그렇게 엘 피어슨이 십수 년간 은닉하며 쌓아온 음모들은 하루 아침에 모조리 파괴되었다. 적어도 이 은하계 내에는 그녀가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한 순간 정체를 드러낸 경솔함으로 인해 공든 탑들은 모두 숙청당했다.

   또한 은하계 바깥은 그녀로서 통행할 능력이 없었다. 은하 간 이동 게이트들은 카이젤의 엄격한 절대 보안이 걸려있기에 정보든 물질이든 순환 과정에서 제어를 받는다. U-society 소속 초인조차도 카이젤의 감시를 피해 넘나들지 못하는 마당에 엘과 같은 반역자야 말할 것도 없다.

   “헌데 왜 본체는 관측되지 않는 거지?”

   이 부분은 여전히 석연찮았다. 초자연의 간섭이 직접 도와주지 않는 한 그녀가 달아나거나 지원을 받을 방도는 전혀 없어 보였다. 몇 차례 더 색출을 시도해보았으나 여전히 허탕이었다.

   “생처럼 약삭빠른 여자로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기회에 그녀가 몰래 추가적으로 숨겨두었던 다른 음모들을 발현되기 이전에 색출해냈다는 점이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효과 만점의 백신을 맞은 셈이었다.

   “두 번 다시 이번 같은 일이 없도록 방비해야겠어.”

   여전히 칼리드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녀를 직접 찾아내서 제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불길했다. 제아무리 모든 기반을 잃었다지만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불편했다.

   “으으.”

   스테판이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았다. 칼리드는 초췌해진 그를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그토록 기세등등했건만 이제는 기운 빠진 반송장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네게는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군. 생각지도 못한 방해물이 끼어들기는 했지만, 네 덕분에 그녀의 음모들을 죄다 무너뜨릴 수 있었으니까.”

   어쨌건 이 이레귤러는 나름 엘이 사활을 걸고서 준비해둔 카드였음이 밝혀졌다. 수색해본 결과, 그녀가 이레귤러와 그 파생물을 활용해 여러 음모를 차근차근 준비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칼리드 쪽에서 운 좋게 그녀의 카드를 확보하는 바람에 역추적을 당하고 무산되어 버렸다.

   “남은 건 셀레스티언의 수습인가. 서둘러야겠군.”

   비록 엘이 남긴 바이러스들은 모두 제거되었다지만, 일단 날뛰기 시작한 셀레스티언들을 수습하려면 아직 처리할 일이 많았다. 이 번거로운 수고를 하도록 만들어준 마녀를 향해 마음속으로 각종 저주와 욕설을 퍼부으며 칼리드는 다시 통상 공간으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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