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0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6. 대역전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23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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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발에 가까운 격렬한 부흥의 현상이 모든 하늘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사회 전역을 휩쓸었다. 아직 하늘도시 간의 완전한 교류 및 통신이 개통되지 않은 시점이기에 이러한 현상은 사회물리학적인 원리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인간이 고안해낸 그 어떤 시스템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기적이었다.
“가여운 세상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소서.”
모든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의 기치 아래 수렴하였다.
만일 사람들의 기도 제목이 단순히 자신들만 타락한 세상으로부터의 탈출하는 것이었다면 정말 심판이 곧바로 도래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자들은 마치 서로 짜고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한 마음으로 갈구했다. 탄원이 아닌 용서를.
이는 마치 과거 모세가 하나님을 향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대신 저를 통해 더 큰 민족을 이뤄주소서’라고 부탁하지 않고 ‘비록 우상을 숭배한 죄를 범했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시고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했던 것과 흡사한 현상이었다.
이러한 간구로 인한 응답은 거듭 확대되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모든 하늘도시들 내에서 회개의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다. 날마다 사람들이 복음 전도를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했다. 또 각 지역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은은하지만 강력한 영적 존재감을 드리웠다.
그들이 매일 체험하는 영적 축복의 실체를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거부하기 힘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적어도 마음의 찔림만은 받았다.
*
‘설마 이건!’
위기의 격변을 마침내 발견한 칼리드는 경악으로 인한 침묵에 잠겼다. 때는 마침 막 셀레스티언들을 가까스로 정리해가던 무렵이었다. 한 가지 위기에 잠시 손 놓고 있던 사이, 거짓 휴거 프로젝트가 근간부터 뒤흔들리고 말았다. 칼리드는 식민지 각지에서 펼쳐진 기현상을 보고받고는 당혹에 물들었다.
“모든 사람의 표식이 흔들리고 있다고?”
본래 그가 셀레스티언에 주입된 명령어는 스테판을 표준치로 삼아 일정 변화량 이상으로 표식 스위치가 흐트러진 인간들을 모두 워프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이 일에 차질을 빚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본래 체포 대상으로 낙점된 자들의 비율은 전체 인구 가운데 0.1%였건만,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폭발적으로 그 비율이 늘어나더니 100%에 이르러버렸다.
‘모두 다 감염된 것은 아닐 터인데.’
물론 그의 예견대로 문제의 그 초자연적 영향에 진정으로 감염된 자의 비중은 고작 인구 대비 2~4%가 전부였다. 문제는 간접 영향이었다. 지금까지는 개인 차원에만 머물러있던 표식 변동 현상이 공동체 범위로 확대되더니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그 이웃인 일반 대중까지 다 같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는 신앙의 영향력이 바깥으로 폭발적으로 발산된 탓이었다. 각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실제적인 믿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일시적인 영향으로 인해 감동을 받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의 전 우주적으로 증폭된 영적 권세는 일시적인 영적 간섭만으로도 표식 자체에 훼손을 가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지구의 낡은 구전 설화 가운데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 있다. 도적 무리의 수장이 복수를 위해 살해 대상의 집 문지방에 표시를 그려뒀더니, 지혜로운 한 시녀가 나서서 마을의 모든 집 위에 똑같은 표시를 덮어둠으로써 주인을 구했다는 이야기. 그 이후 복수하려던 도적은 역으로 꾐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지. 자신의 상황과 그것을 겹쳐 본 칼리드는 공포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불가능해! 이걸 이대로 내버려 두면…….”
프로젝트를 강행했다가 자칫하면 인류 전체를 봉인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양아버지는 칼리드의 그런 실수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목숨으로 책임을 물어내야 할 수도 있다.
더구나 미봉책으로 명령어를 교묘하게 변개하는 타개책마저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했다. 기껏 셀레스티언을 억제했다가 명령어를 잘못 건드리면 자칫 놈들의 폭주가 재개될 수도 있다. 칼리드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프로젝트 자체를 무산시키고 중단하는 것.
‘젠장.’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책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놈들에게는 대응책이 아무것도 없었을 터…….’
확실히 윤혁 일행은 철저히 무력했다. 그들에게서 나온 대응책은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설마 정말로 신적 존재가 작정하고 개입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제껏 겪지 못했던 경험. 실패 따위 모르던 최상위 초인이 처음으로 경외감을 느꼈다. 흡사 거대한 존재가 자신 위에서 심판자로서 도사리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거인 앞의 난쟁이, 아니 고래 앞의 새우가 된 기분이었다.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불쾌감에 세포 하나하나가 흔들렸다. 칼리드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찌 된 일이오?”
쓰러져있다가 간신히 의식을 되찾은 스테판이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 전 그대의 자신만만함은 어디로 간 거요?”
“네 놈!”
“그렇군. 당신의 계획이 틀어진 모양이오.”
칼리드는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스테판을 노려보았다.
“설마 네가 꾸민 일인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그렇소.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마치 이렇게 될 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투로군.”
“알고 있었다라. 그보다는 믿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옳겠소.”
칼리드로서는 스테판과 말다툼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내버려 두면 더 큰 사고가 벌어질 판이었다.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삭이며 내키지 않는 패배의 선택지를 택했다. 그는 거짓 휴거 프로젝트를 일시중지시켰다. 비록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타개책을 궁리하긴 했지만, 이런 수작 또한 허락되지 못했다.
{계엄령을 강제 해제하겠습니다.}
칼리드의 명령어 탓에 하마터면 우주 인류의 대다수가 포획당할뻔 했다는 사실을 감지한 상위 관리 시스템들이 직접적으로 간섭했다. 그들은 해킹으로 강제 간섭을 일으켜 칼리드의 임시권한을 완전히 취소해버렸다. 인류의 대다수를 해칠뻔한 결정을 했으니 이는 변명할 여지가 없는 박탈 처분이었다.
{계엄령 해제로 인해 현자의 눈 최면 레벨을 다시 강하시키겠습니다.}
비상시 한정으로 발동 가능했던 VII 레벨 최면도 다시 허용 단계 IV 레벨로 격하되었다. 이 상태로는 두 번 다시 프로젝트를 획책하지 못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의 기술력, 유리스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에르샤가 이끄는 휴먼 솔져 군단이 무사히 칼라비-야우 차원에 있던 셀레스티언 종족의 통제권을 획득하면서 통상 우주로 나와 있던 셀레스티언 개체들도 후방으로 강제 귀환하였다. 여전히 날뛰는 개체들은 TUNER의 목줄에 속박당했다. 칼리드의 통제권에 놓인 셀레스티언은 이제 없었다.
“내 생각에는 그게 끝이 아닐 듯싶소.”
“뭐라고?”
의아해하던 칼리드는 불과 몇 초 후 스테판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뮬레이션 우주 속에서도 모종의 일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그것은 거짓 휴거 프로젝트의 중지보다 더 심각한 규모의 일이었다.
‘하데스 챔버에 동면된 사람들이?’
본래 식민지 주민은 누구나 죽기 직전 하데스 챔버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그들은 죽음을 보류한 채 동면 상태로 잠든다. 다만 그 와중에도 시뮬레이션 우주와의 접속만은 지속된다. 동면 상태로 꿈을 꾸는 셈이다.
그런데 조금 전 변화로 인해 하데스 챔버에 잠든 인간 중 영적 변화를 겪음으로써 표식이 흐트러진 이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시뮬레이션 우주를 매개체로 삼아 하데스 챔버에 봉인된 다른 인간들에게 영향력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즉 동면 된 인간들이 S-unvs를 이용해 다른 인간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깨어있는 인간의 땅을 넘어서 지하에까지 복음이 퍼진 셈이다. 이미 죽은 자는 회개할 수 없지만, 하데스 챔버 주민들은 엄연히 아직 살아있는 상태기에 능히 기회가 있었다.
‘원래는 이런 현상은 없었거늘…….’
이런 방식의 복음 전파가 자주 허락되는 일은 아니다. 본래 의식이 잠든 상태에서는 무의식이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지배하기에 복음은 쉽게 마음속에 침투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지금껏 하늘도시에서의 전도는 보통 지면 위에서만, 공식적으로 살아숨쉬는 자들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인 특수 상황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칼리드가 거짓 휴거 프로젝트를 시행할 때 시뮬레이션 우주를 최면의 매개체로 활용하는 바람에 의외의 변수가 형성되었다. 일시적이나마 동면 당한 사람들의 의식이 명료하게 깨어나 버린 것이다.
‘내 프로젝트가 도리어 판데믹을 더욱 확대했다고?’
이전에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이런 기적은 칼리드로서 사전에 예측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초자연적인 개입이 적극적으로 동원된 이상 제아무리 초인이라도 대응할 도리가 없다.
“자, 보시오. 저들은 전에 내가 했던 일과 똑같은 일을 수행하고 있소.”
“네가 벌였던 일이라고?”
“그렇소.”
과거에 스튜아가 시뮬레이션 우주를 이용해 우주 인류를 노예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몄을 때, 스테판은 직접 자신을 투신하여 꿈속에 잠든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공의와 사랑의 가르침을 횃불 삼아 투척했었다. 이제 그의 뜻을 이어받은 자들이 나타났다. 별도의 합의나 계승도 없이 오로지 성령의 이끔에 의하여.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닌 수경(京)이 넘는 수효의 신자들이 한꺼번에 불을 피울 것이오. 그들의 횃불들이 모조리 중첩되어 거대한 화염이 된다면 얼마나 격렬하겠소? 자, 마음껏 두려워하시오.”
스테판 때는 기껏해야 잠든 이를 깨우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칼리드 덕분에 동면자들의 의식이 깨어난 데다가 경건한 신자들의 숫자가 이전과는 달리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자연히 그 여파도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순식간에 동면 된 자들 사이에서 회심의 역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시뮬레이션 우주는 시간의 흐름도 우주 표준 시간과 달리 고도로 압축적이었기에 복음을 증언할 시간도 넉넉했다. 생명의 불씨는 큰 산불로 화하여 땔감들을 집어삼켰다. 곧 모든 하늘도시에 내장된 하데스 챔버가 그 불길 속에 잠겼다.
“이는 어리석음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자 경고요. 감사히 여기시오. 그분께서는 그대의 목숨을 일거에 빼앗으실 수도 있었소. 하지만 그분은 오히려 자비와 은혜로서 크신 권능을 보여주셨소. 지금 당신더러 그분의 권세를 깨달을 것을 명령하시는 거요.”
이스라엘을 사로잡으려 했던 파라오와 이집트를 왜 주께서 단번에 죽이시지 않고 일부러 번거롭게 열 번의 재응을 보이셨겠는가. 이스라엘을 위함인가? 아니면 이집트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도록 도우시는 은혜였는가? 이런 경고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한 자에게 훗날 기다리는 것은 적법한 심판뿐이리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여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1-4)]
스테판은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소리치며 칼리드에게 경고했다.
“오늘 그대는 주님께 완전히 패배하였소.”
조소를 던진 후 기력을 잃은 그는 쓰러지듯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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