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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0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7. 여행의 마무리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31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나저나 뭐냐, 강윤혁?”

   한즈는 이번에도 무례하고 상대를 내려다보며 놀려댔다.

   “넌 또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냐. 몰골은 그게 뭐고.”

   상반신은 나체에 몸은 온통 만신창이 신세.

   윤혁 본인이 느끼기에도 민망했다.

   “오랜만이야, 한즈.”

   “크큭, 나도. 그런데 너 이렇게 다친 걸 알면 그 인간이 또 역정낼 텐데?”

   한즈는 불량스럽게 비웃는 표정으로 뒤따라온 칼리드 쪽을 흘겨보았다.

   “큭, 칼리드 네놈은 이제 아버지한테 엄청나게 깨지겠군.”

   “착각하지 말아라. 내가 다치게 한 건 아니다.”

   “네, 네, 그러시겠죠. 어쩌라고. 아무튼, 난 네가 했다고 고발할 거다.”

   건들거리면서 칼리드를 비웃는 한즈. 그 특유의 약 올리는 모습이 어찌나 얄밉고 혈압 오르는지 순간적으로 윤혁마저도 칼리드가 불쌍한 쪽으로 느껴졌다. 물론 쥐꼬리만큼만. 칼리드 같은 악당은 더 당해도 된다.

   “잠시만, 부탁이 있어, 한즈. 제발 들어줘.”

   “응?”

   한즈는 윤혁이 무릎 꿇듯 부탁하는 모습에 약간 흥미가 동하였다.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그 사람, 내게 소중한 친구야. 너희에게 어떤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죽이지만은 말아줘. 만약 인류연합의 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 차라리 정식으로 호송해줘. 인도적인 대우와 함께.”

   “흐음? 내가 왜 그래야지?”

   한즈는 일부러 윤혁을 애타게 할 작정인지 건방진 투로 대꾸했다.

   “내가 받은 임무는 이 녀석의 호송이 아니야. 킹의 계획을 막는 방해물을 척결하는 것이지. 이 녀석도 반역자가 남긴 잔재 중 하나야. 비록 방해물을 완벽히 척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차선책으로 잔재라도 모두 없애야 하지 않겠어.”

   “죽이지 말아줘. 수술을 통해서 표식의 오류를 없애면 되잖아.”

   “…….”

   윤혁은 애처로운 어투로 외치며 부탁했다.

   “칫, 곤란하군.”

   “부탁할게.”

   한즈는 못 이기는 척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얄밉군. 네가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역시 세속적인 친구보다는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친구가 훨씬 더 좋다는 건가.”

   딱히 질투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한즈는 너스레를 떨며 생색을 냈다.

   “알았다. 대신 킹에게는 네가 알아서 좋게 말해둬라.”

   “그렇다면…….”

   “직접 지구로 호송해주지. 고마워해라 인마.”

   그제야 윤혁은 십 년 감수한 기분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다.”

   “나머지 둘은 네 동료인가?”

   한즈는 윤혁 뒤에 서 있는 리온과 루디아를 흘겨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두 사람은 느닷없이 출몰한 얼티밋 워리어에게서 내뿜어지는 엄청난 크기의 아우라에 위축된 채였다. 단순 힘만 놓고 보면 칼리드보다도 위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응, 맞아.”

   “일단은 너와 이레귤러만 따로 귀환할 거다. 너랑 이 인간, 이렇게 둘은 특별히 감시해야 하는 대상이니까. 나머지 둘은 따로 오던가 알아서 해야 해.”

   윤혁은 두 친구를 잠깐 돌아보았다. 리온과 루디아는 괜찮다면서 눈짓을 하였다. 이제 한즈는 다시 몸을 돌려 칼리드 쪽을 응시했다. 아까 전보다 훨씬 짙고 강렬한 살기가 발산되자 칼리드는 움찔거리며 가까스로 의연함을 유지했다.

   “내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길게 말하게 하지 말아라. 반지 내놓으라고.”

   “…….”

   비숍의 으르렁거리는 협박에 칼리드는 긴장한 기색이 되었다. 역시 비숍도 칼리드가 이번에 벌였던 프로젝트의 내막과 재료를 속속들이 간파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카이젤이 그에게 언질을 주었는지도 모르지.

   “그건 네 물건도 아니잖아. 킹과 저 녀석의 소유다.”

   “거부하겠다면?”

   “한판 결투하던가. 마침 나도 몸이 근질거렸거든.”

   양쪽 다 강력한 초능력을 보유했지만, 육체적인 강함에 있어서만큼은 생체병기인 비숍에게 칼리드가 감히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칼리드는 정신력만 뛰어나지 초월적인 육체 개조는 따로 하지 않으니까. 대결하면 승산이 없으리라고 판단한 칼리드는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괜히 더 일을 키워서는 곤란하다.

   “흥.”

   그는 마지못해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 그러더니 불만스런 표정으로 비숍에게 내던졌다. 비숍은 그것을 점검한 뒤 진품임을 확인하고는 품에 넣었다. 초인들의 살벌한 대립 구도가 반지로 인해 더 격화되는 광경을 본 윤혁은 두 번 다시는 저런 물건을 품에 넣고 다니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진작 내놓을 것이지.”

   “쳇.”

   “지금 여기로 나만큼 강력한 녀석이 오는 중이야. 어차피 내놔야 했을걸.”

   “얼티밋 워리어인가.”

   “응, 칼리드 네놈이 난장판을 만드는 바람에 몇몇 정신 나간 셀레스티언들이 날뛰게 되었잖아. 지금 그거 수습한다고 킹께서 룩을 파견했거든. 지금쯤 은하계 전역의 광폭 개체들을 처리하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하나의 섬광이 포탈을 통과해 번개처럼 내려왔다. 회색 머리를 한 거구의 청년, 룩이었다. 그는 등에 기절한 세 바이오닉 솔져를 엎쳐 메고 내려왔다. 자세히 보니 셀레스티언과 싸우던 몰렉, 그모스, 밀곰이었다.

   “약해빠진 녀석들 주제에 내 전투를 훼방하긴 왜 훼방해.”

   룩은 툴툴거리면서 정신을 잃은 세 바이오닉 솔져를 땅바닥에 툭 내던졌다. 칼리드의 미간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룩은 칼리드 따위는 아예 관심도 없다는 듯 투명인간 취급하며 윤혁 쪽만을 쳐다보았다.

   “이런, 형.”

   “큐오즈린?”

   “왜 이렇게 다쳤어요. 완전 엉망진창이 되었잖아요.”

   “아, 그게 말이지……, 말하자면 좀 길어.”

   큐오즈린은 윤혁에게 다가오더니 다친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확인해보니까 아주 큰 이상은 없네요.”

   그때 한즈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일은 다 봤으니까 돌아가자. 룩 네 녀석도 임무는 다 정리했겠지.”

   “두말하면 잔소리지.”

   큐오즈린은 다리를 다친 윤혁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번쩍 들어 올렸다. 민망함에 압도된 윤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아까 바이오닉 솔져들처럼 물건 다루듯 운반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잠시만. 친구들과 인사만 좀 할게.”

   “네, 그러시던지요.”

   윤혁은 떠나기 전에 리온과 루디아에게 인사하였다. 오랜 헤어짐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집으로의 흩어짐에 가깝다긴 해도 마무리만은 제대로 해야 할 듯했다.

   “지구로 돌아가거든 나중에 셋이서 만나자. 아니, 스테판 씨랑 넷이서.”

   둘은 의연한 표정으로 웃으며 즉시 응답했다.

   “물론이야. 지금까지 수고했어, 윤혁아.”

   “기다리고 있을게. 조만간 다시 보자.”

 

   마지막으로 윤혁은 칼리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 윤혁도 조금 전의 정황을 보아 칼리드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은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 비숍에 의해 하늘에서 추락한 이후로 칼리드의 표정은 내내 안 좋아 보였다. 그래도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고 떠나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그쪽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주 인류 말인가?”

   “네.”

   칼리드는 가까스로 분함을 억눌렀다. 정치의 고수답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였으나 쓰디쓴 기분이 표정 위로 완전히 감춰지지는 않았다. 어쩌겠는가. 결과가 나왔으면 승복해야지.

   “당신의 승리로군, 숙부.”

   “그러면 역시나…….”

   “그들은 안전해. 도리어 예상을 벗어나 버렸지. 어쩌면 너의 승리라기보다는 네가 믿는 신념의 승리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칼리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난생 처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심지어 자신의 양아버지에게서조차도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을. 자신은 과연 무엇을 상대했단 말인가.

   “그랬군요.”

   윤혁은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응답하신 것을 깨닫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뭉클함을 체험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 열정적인 기쁨이 샘솟았다. 어쩌면 형에게도 희망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옅은 희망도 한 줄기 솟구쳤다.

 

 

 

 

 

 

 

 

*

 

 

 

 

   우주선에 들어가자마자 윤혁은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반면, 스테판은 삼엄한 감시를 받아야 했기에 별도의 보호 구역에 수감되었다. 이미 셀레스티언들을 소탕하라는 임무를 끝마치고 온 큐오즈린은 시간 여유가 생기자마자 윤혁 옆에 척 달라붙었다. 킹에게서 특별 감시 명령을 받았다는 핑계를 대면서.

   “저기 말이지……, 옆에 있으니까 엄청 부담스럽네.”

   윤혁은 곁에 있지 말고 떨어지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서운하네요. 그래도 친해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저 무서워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지금 옷을 안 입고 있잖아.”

   “뭐래요. 저는 만날 실험실에서 이런 취급 받는 걸요.”

   참고로 에녹의 펜던트가 발생시켰던 에너지 충격파는 생물학적 손상보다는 물리적인 입자 속성 변질을 일으키는 파동이었다. 영향권 아래 들어간 물질은 입자 하나하나가 초끈 단위로 변성을 일으킨다나.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첨단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룩은 혹시 윤혁의 신체에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지 자신이 직접 모니터링해보겠다며 옆에 남았다.

   “이건 여간 복잡한 문제가 아니예요. 최첨단 의료장비로 일일이 세포 하나하나를 살펴야 해요. 참고로 우리들 몸을 치료할 때도 사용되는 물건이죠. 인류의 첨단 기술력이 죄다 응집되어 있달까요.”

   “그래서 네가 응급 대기 요원이 되어주겠다? 거참 눈물나게 고맙네.”

   “천만에요.”

   “칭찬 아니야.”

   윤혁은 툴툴 혀를 차며 입술을 비죽였다. 치료받는 내내 무방비하게 벗겨진 상태여야 한다는 점이 상당히 부담스럽긴 했다. 납치당해서 수모를 겪는 편보단 나아도 동물원의 실험체가 된 기분 같아 영 어색했다.

   “가동 원리상 어쩔 수 없죠. 편하게 생각하세요.”

   “하아, 모르겠다.”

   결국 체면은 포기하기로 하고 수치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서 빨리 종결되었으면. 지구로 향하는 길이 심정적으로 지루하고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쨌건 무사 귀환인가. 감개무량하네.’

   돌이켜보니 어느덧 선교 여행을 시작한 지 3년이 흘렀다. 중간에 반년간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어쨌건 말이다. 물론 그간 먹은 나이는 그 이상이었다. 하필 타임필드 속을 거니는 바람에 우주 표준 시간보다 긴 세월을 몸으로 받아내었다. 세보지는 않았지만 얼추 자신도 신체 나이로 29살 정도 되었으리라. 생각해보니 출발할 당시의 형 재혁의 나이와 비슷했다.

   ‘아니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타임필드까지 고려하면 수만 살 이상이지.’

   그런 늙지도 않는 괴물은 차치하도록 하자. 새삼 자신도 나이를 꽤 먹었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하지만 젊음을 소중한 일에 다 사용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두 차례의 여행은 결코 잊지 못할 찬란한 추억이 될 것이다.

   “아! 큐오즈린, 혹시 그 괴이한 종족의 정체는 뭔지 알아?”

   문득 셀레스티언에 대한 궁금증이 도진 윤혁이 질문했다.

   “아, 저도 이번에 싸우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인류연합 부대표와 네 명의 철인왕이 함께 합동 프로젝트로 제작해낸 세기의 역작이라네요. 제가 몰랐던 걸로 봐서 아마 기밀 프로젝트였겠죠?”

   “그들은 왜 자신들도 제어 못 할 괴물들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애초부터 제어하지 못할 것을 상정하고 제작했을 거에요.”

   “뭐라고?”

   큐오즈린은 윤혁에게 카이젤의 의도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하아, 참 악취미네. 부하들을 시행착오용 백신으로 사용하다니 말이야. 하늘도시만 그런 식으로 써먹을 줄 알았는데 초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네.”

   “원래 형네 형님은 그런 분이시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 셀레스티언이라니.

   ‘왜 하필이면 나랑 함께 본 영화에서 나온 괴물들이냐고!’

   은근 감정이 상하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정작 제작하고 설계한 당사자는 카가미 부대표겠지만 어쩐지 모르게 얄미움의 감정은 형쪽으로 투사되었다. 실제로 최고 책임자이기도 했고.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런 사태는 없을 거예요. 이제 킹께서 절대적인 권력으로 모든 이종족을 직접 지배할 테니까요.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통해서 기계들을 지배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이종족들은 생명체잖아. 기계랑 달리 강한 개성이 있는데도?”

   “좀 어렵게 빙빙 돌긴 했지만, 끝내 킹께서도 궁극의 해답을 찾은 것 같아요.”

   여튼 대단한 인간이다. 난 사람은 난 사람이구나. 윤혁은 굳이 그 해답이란 게 무엇인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현 세상의 실체를 많이 알면 알수록 우울한 위화감만 도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너도 굉장하네. 그런 괴물들을 힘으로 제압했다는 거 아니야. 바이오닉 솔져들도 그 정도는 아니던데.”

   “제가 좀 굉장하죠. 물론 진짜로 셀레스티언 종족 전체가 덤볐으면 개인 개체에 불과한 저로서는 상대할 수 없었겠죠. 아니 상대도 안 될걸요.”

   사실 따지고 보면 윤혁의 말은 딱히 칭찬이 아니었다. 큐오즈린 역시도 셀레스티언에 필적하는 괴물이라는 의미였으니까. 상처받을까 봐 최대한 온건히 표현했을 뿐이었다. 순간 윤혁은 전에 만난 알리엔의 일화가 떠올랐다. 적어도 큐오즈린이나 한즈만큼은 진짜 인간이 맞다고 믿고 싶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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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당장은 일단락이 되었지만, 아직 강재혁을 상대하려면 갈 길이 멀단다, 윤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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