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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0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8. 전면개방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1.06 | 회차평점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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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권의 부여에는 여러 혜택이 뒤따랐다. 그중에는 지구 시민이 이용하는 것과 동일한 경제 시스템을 이용한 권리도 포함되었다. 물론 전에도 유사 경제 시스템의 여러 버전이 하늘도시들 내에서 통용되긴 했지만, 이젠 전우주적으로 획일화와 계량적 통일이 이루어졌다.

   3세대 초인들의 합작품인 ‘생명에 유착된 자본’ 기술로 만들어진 결실인 포인트 화폐가 모든 우주 시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졌다. 그로 인해 경제 단일화가 이뤄졌고 식민지 간의 활발한 경제 교류도 활성화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도시가 그 인구수에 비례하는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를 당장 획득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부여된 자본 자체에 양질과 악질을 나누는 질적 등급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래 전 인류연합은 경제 시스템 내에서 통용되는 자본을 이미 다양한 색깔로 구분해놓은 상태였다. 이를테면 적색 자본, 자색 자본, 백색 자본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나누면 1만 종류가 넘었다.

   이것들 중 일부는 개인에게 부여되는 사유재산용 자본이었고 다른 일부는 집단용 혹은 행정 조직용으로 설계되었다. 운용 주체의 집단성 여부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가치의 종류의 크기와 폭은 각양각색이었다.

   각 색깔의 자본 포인트는 고유 속성이 있었다. 그래서 구매 및 교류를 시행할 수 있는 품목과 없는 품목이 구분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천체 급의 인공구조물들이나 자연 천체는 최상위 자본이 아니면 대여조차도 불가능했다. 최상위 자본은 오로지 초인급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 중 가장 가난한 이조차도 풍족한 물질적 풍요를 평생 누리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종족과 기계들에게는 자본의 소유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생산하는 노예였다. 이들에게도 창조성이나 지성은 존재했으나 경제적 보상은 그런 잠재력을 펌프질하는 마중물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인간이 누릴 보상을 그들에게 나눠줘야 할 이유는 일절 없었다.

   카이젤은 인비저블 마인드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활용하여 동기를 심어 넣음으로써 인류의 노예들이 자발적으로 지식과 물질문명을 건설하되 자발적인 열심에 가깝도록 행하게끔 만들었다. 실제로 그들은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기뻐했으며 그 일을 자신들의 존재의의로 여겼다.

 

   통신 기술의 영역에서도 발전은 눈부실 만큼 경이로웠다.

   인류연합은 자신들의 기술, 인프라, 지식 일부분을 기꺼이 식민지 민간 측에 제공하였다. 비록 주민들은 그 원리를 온전히 이해하여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어쨌건 덕분에 그들도 우주급 통신 네트워크를 구현해내게 되었다.

   우선 한 행성 전역을 관통하는 기초 네트워크가 조성되었고, 여러 개의 하늘도시를 동시에 엮는 네트워크가 더 큰 울타리를 조성했다. 그런 네트워크들이 다시 모여서 좀 더 거대한 범주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이 같은 상향 과정이 반복됨으로써 우주 주민들을 한 번에 묶는 ‘유니버설 넷’이 완성되었다.

   상위 범주인 네트워크에는 마땅히 상위의 기술이 접목되어야만 했다. 이 문제도 사실 오래 전에 인류연합에 의해 해결된 상태였고 후발 주자들은 그저 진도만 똑바로 따라가면 되었다.

   현 인류는 이미 오버랩 월드, 이매진 차원, 벌크 속의 다른 멤브레인, 워프에 사용되던 슬라이딩 멤브레인, 홀로그래피-소스 축의 다른 차원들, 시뮬레이션-리얼리티 축의 다른 차원들을 통신 매체로 활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기존의 인식 한계보다 훨씬 더 높은 영역의 차원마저도 테서렉트 아키텍쳐라는 반칙을 통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었다.

   비록 초인들보다는 기술력 수준이 한참 낮아도, 일반인들도 이러한 고차원 물리 세계를 매질로 응용하는 통신 기술에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민간형 네트워크는 완성도 측면에서는 불완전했지만, 비교적 민주적인 성질을 띠었다. 그랬기에 민간형 네트워크는 만인이 공평하게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일반 민중이 까마득히 모르던 다른 네트워크가 존재하였다. 바로 카이젤과 초인들이 운용하는 ‘중앙집권형’ 네트워크, 이것은 민간형 네트워크를 우스운 아이 장난감으로 보이게 할 만큼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절대적 성능에서는 물론이고 간섭 가능한 물리 차원의 범주도 훨씬 광활했다. 물론 지배력과 통제력의 비대칭성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중앙집권형 네트워크는 이름 그대로 정보의 생산 및 점유 주체가 오로지 한 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더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다. 중앙집권형 네트워크는 민간형 네트워크들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변형, 삭제, 생성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즉 대중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 시대의 정보 재산 소유권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언론의 자유니 알 권리니 정보의 평등성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 인류연합이 구축한 시스템과는 백만 광년 정도 떨어진 허상이었다. 다만, 워낙 세계 자체가 거대하다보니 그러한 권리들이 존재한다는 환각 정도는 받을 수 있었다.

 

   한편, 새로 시민이 된 사람들은 교통 기술의 혜택도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했다. 대량으로 생산된 우주선 덕택에 거의 모든 하늘도시 시민들이 은하계 전역을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성계 간 이동과 관련해 법적, 제도적 제약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고도로 발전한 워프와 게이트 덕분에 은하계는 은하 촌이라 불릴 만큼 좁아졌다. 또한 인류의 거주 영역이 은하 너머로 대거 확장되면서 은하 간 이동기술 역시 서서히 대중에게까지 확대 보급되었다. 기존에 쓰이던 은하 간 게이트로는 블랙홀 기반 게이트와 IDD가 있는데 둘 다 이제는 대중 상용화가 가능할만큼 충분한 질적, 양적 향상을 이룩한 상태였다.

   최근에는 우주의 공간 팽창을 따라잡아 자동 확장이 가능한 웜홀 터널이 개발되면서 웜홀 형태를 띤 영구적 은하 간 게이트도 개발되었다. 이로써 대형 우주선 한정이긴 해도, 은하와 은하 사이를 웜홀을 통해 단기간에 횡단하는 일까지 가능해졌다.

   여기에 은하 간 웜홀 그 자체에 접촉이 가능한 곡면 형태의 멤브레인까지 새로 발견되면서 은하 간 게이트 기술에 워프 기술까지 접목되었고 사람들의 우주 이동은 한층 더 편리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권과 표식은 위에서 언급된 모든 교통, 곧 우주선 탑승부터 워프 작용, 게이트 통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이동수단의 사용에 있어 엄중한 검열 장치로 작동했다.

   이는 다른 모든 건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인류연합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자만은, 혹은 적어도 그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우물 안 개구리로 갇혀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될 것을 시사했다.

 

   생산과 산업 부문에서도 눈부신 변화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범 초은하단 규모의 시장 경제가 도입되면서 식민지 주민들도 인류의 산업 발전에 본격적으로 이바지하게 되었다.

   사실 개방 이전 하늘도시 내부에 실험적 시도로 인공 다중우주가 창조되었을 때 주민들은 자체적인 역량을 동원해 우주 규모의 생산력을 확보한 바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잠재력은 상당하다는 증거. 그런 역량을 마냥 놀려두자니 인류연합 처지에서도 몹시 아쉬웠다.

   물론 과거에 쓰였던 인공 다중우주는 어디까지나 문명 잠재성을 평가하기 위해 카이젤이 고안한 특수한 실험장치였다. 식민지들이 공식적으로 인류연합에 복속된 지금은 인공 다중우주는 폐기되었고 따라서 과거 같은 식으로 독자적인 민간 우주산업을 형성하기란 불가능했다.

   이제 우주선이나 우주 요새 이상 급의 생산품은 제작부터 유통, 소유에 이르기까지 그 권리가 철저히 인류연합 측에 배타적으로 종속되었다. 인공 다중우주들이 존재하던 때나 없어진 현재나, 실질적인 자원 제공의 원천은 인류연합 측이었으니 어찌 보면 억울할 거리는 없는 처사였다.

   한편, 세 종류의 요소가 민간 산업의 무질서한 도약과 승천을 제한했다.

   먼저, 시민들이 최상위 자본을 운용할 권한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경제권 제약’이 족쇄로 놓였다. 두 번째로는 생산 주체나 원천지와 무관하게 기계, 인공적 생산품, 인공생명체를 강제로 지배하는 위버멘쉬의 절대적 지배력, 곧 네 개의 초지능체가 경제의 무제한적 자유 방임을 가로막았다.

   마지막으로 인류연합 측에는 엔진 같은 주요 부품의 에너지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기술이 있었다. 에너지를 자아내는 작용도, 변형하는 프로세스도, 전부 연합의 권세에 의해 지배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왕의 지배라 해야 옳겠다.

   결과적으로 민간 세력의 독주 가능성은 철저히 제한되고 예방되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버젓이 존재하는 한 제아무리 민간 세력이 산업을 고도로 발전시켜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인류연합으로부터 독립하기란 꿈도 꿀 수 없었다.

   “비싼 대가를 치러가면서 실험한 목적은 다 이런 데 있었지.”

   “물론입니다. 세력 독립이란 결코 허락해줄 수 없는 망발. 그런 미래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와 그들의 위치 격차는 벌어질 것입니다.”

   카이젤과 에녹은 일전에 그들이 구축한 인공 다중우주들에서 벌였던 각종 인류 실험의 데이터를 매우 요긴하게 활용했다. 그들은 이미 과거의 실험들을 바탕으로 우주 인류의 잠정적 분열을 막을 궁극의 지배 알고리즘을 구축한 뒤였고 전면개방의 시대가 이르자마자 준비된 모든 것을 즉각 가동했다.

 

   한편, 초인과 일반인의 지식의 격차는 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쉬이 메워지지 않았다. 보통 한 문명권의 지식 총량은 개개인의 능력치보다는 쌓여간 역사의 크기와 인구 집단의 크기, 그리고 그에 맞물려 축적된 정보량에 비례하건만, 이 경우에는 그런 법칙이 적용되지 못했다.

   초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첨단 지식의 일부분을 일반인들에게 적선하였다. 어디까지나 탈내지 않고 서서히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만. 언제나 그들은 보유한 카드의 극히 일부분만을 내놓았다.

   반면, 일반인들이 창출해낸 지식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조리 공적 자료로 추출되어 압축된 뒤 실시간으로 인류연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지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두 무리의 관계는 목축인과 가축의 착취적 관계와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는 위버멘쉬와 나머지 초인들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비대칭적으로 적용되었다.

   다만, 문화의 측면에서는 초인들도, 그들의 왕도 착취보다는 다소의 너그러움과 관용을 보였다. 그 오만한 위버멘쉬조차도 일반 대중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다양성에 담긴 가치를 오롯이 인정했다.

   꼭 물질적인 부유함과 문명의 발전으로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문화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보화이자 인류의 공동 자산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하늘도시들 속에는 제각기 다양한 문화가 풍성히 형성되어 있었다. 무려 1조 개의 영역과 그에 비례하여 다양화된 문화, 그 다양성이 획일적 정책 때문에 훼손된다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었다.

   과거에는 소위 서구화 현상이라 불리던 비대칭적인 문화간 융화가 지구 위에서 존재했었다.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위버멘쉬는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나름대로 여러 문화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섞이도록 조율하였고 그러한 노력은 그런대로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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