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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0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8. 전면개방 (6)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1.13 | 회차평점 0 0

 

 

 

 

*

 

 

 

 

   제5 철인왕 유리스는 귀한 손님의 방문에 발 벗고 뛰어나와 환영하였다.

   “어머, 언니! 반가워요.”

   “잘 지내셨어요, 유리스 양. 갈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네요.”

   “호호, 성녀이신 언니만큼이야 하겠어요?”

   티아라는 공식적으로 정치적 중립이기에 U-society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초인이 그녀를 지지하거나 최소한 긍정적으로 보는 중이었다. 유리스 역시 그녀의 열렬한 팬 중 하나였다.

   “요새 많이 바쁘시죠?”

   성녀는 상냥한 어조로 유리스의 근황을 걱정해주었다.

   “네, 인류연합 체계가 전반적으로 개편된 덕에 신경 쓸 일이 많아졌어요.”

   “어머, 참 힘들겠어요.”

   “호호, 괜찮아요. 저야 오히려 열심히 일할 기회가 생겨서 행복한 걸요. 새로운 도약에 도전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임하고 있어요.”

   “긍정적인 사고가 참 마음에 드네요.”

   서로 짜고 약속이라도 한 듯 달콤한 말들이 꿀 흐르듯 흘러나왔다.

   “성녀 언니가 저희 새어머니가 되셔야 할 텐데.”

   “에이 유리스도 참. 칼리드도 그런 민망한 소리를 하던데, 당신도?”

   “빈말이 아니에요. 솔직히 아버지와 격이 맞는 분은 없지만 그나마 고르라면 두분 뿐이잖아요. 그런데 레이디께서는 섬에 틀어박혀서 나오시질 않으니……, 결국, 사교성 좋고 인망 좋은 성녀 언니만 한 후보자가 없겠죠.”

   정작 당사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와중에 유리스는 김칫국부터 마셨다.

   “유리스, 당신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티아라는 화제를 바꾸어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언니 생각은요?”

   “음, 문명의 발전, 그리고 물질적 부와 지식의 축적도 물론 중요해요. 허나 카이는 너무 그쪽 방면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걱정이에요. 나는 부족한 면을 보충해주고 싶건만, 그이가 여간 고집이 센 것이 아니더라고요.”

   하늘도시를 돌아다닐 권한을 박탈당한 이후로 티아라는 자존심 때문에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소소한 앙심을 품고 있었다. 정작 그녀로서는 카이젤과 경쟁할 방도가 없어서 엉뚱한 상대에게 그 앙심을 풀기 시작했다.

   “어머, 그러면 언니는 화합의 시대를 추구하려는 거죠?”

   “맞아요, 나는 인간들은 물론 지성을 지닌 모든 종족이 대화와 사랑을 통해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소원한답니다. 평화가 아닌 칼을 심어주는 어느 과격한 근본주의적 집단과는 달리 말이죠.”

   리온 일행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나비효과에 대해서는 티아라도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불과 3년 만에 그 거대한 우주 인류 전체에 자신들의 도를 전파했을 줄이야. 물론 카이젤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그 종교의 전파를 돕긴 했다지만, 하여간 그 아이들의 집념만큼은 확실히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제 생각도 비슷해요, 언니.”

   “다행이에요. 하지만 아쉽게도 내겐 힘이 없답니다. ‘그 사건’ 이후 인류연합에도 U-society에도 소속될 권한을 잃어버린 내게는 초능력도 없고 초지능체도 없어요. 여러분처럼 민간 세계를 도울 조율자로서의 권한도 없죠.”

   티아라는 신세 한탄하는 척 은근슬쩍 유리스의 의중을 떠보았다.

   “내게는 물욕이나 권력욕 따윈 없어요. 그저 제가 믿는 이상과 제가 꿈꾸는 미래가 현실화될 수만 있다면 그 이상으로 바랄 것도 없을 거예요.”

   유리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제게 당신의 기술과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겠어요, 언니? 원하신다면 제가 지성체들 간의 교류와 화합을 돕겠어요. 제게는 권력과 힘이 있으니까요. 종족의 벽, 종교와 이념의 벽을 넘어 만인을 하나로 모아볼게요.”

   “어머나, 고마워요. 이렇게 기특할 수가.”

   티아라는 아이처럼 순수하게 활짝 웃으며 유리스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아니에요, 평소 존경하던 언니를 도울 수 있어서 오히려 제가 더 기쁜걸요. 아버지도 훗날 언니의 꿈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으면 그 가치를 인정해주실 거예요.”

   이렇듯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인 제5 철인왕이 성녀의 유지를 손수 이어받으면서 배교의 물결의 준동은 당초 선교사들의 예견보다 더 빠르게 현실 위에 임할 채비를 완수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섭리였으니 영적인 추수가 빠르고 신속하게 거둬진만큼 그 쇠락도 비례하는 빠른 속도로 무섭게 임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또 하나의 위협이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일곱 중 사고뭉치인 막내 철인왕도 최근 하늘도시들에 벌어진 복음의 승리를 예사롭지 않게 눈여겨보는 중이었다.

   “참 신기해. 지구의 그 어떤 종교도 우주 인류를 휩쓸지 못했거늘. 이미 지구에서도 교세를 잃고 다 죽어가던 마당에 다시 극적으로 부활하다니, 불사조라도 된단 말인가?”

   갈트론은 간만에 말초신경을 자극해주는 쾌감을 느꼈다. 일상의 지루함 속에 마비된 그의 쾌락 중추가 다시금 환호성을 내질렀다. 갈트론은 고귀한 것을 사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고귀한 것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서 땅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는 것을 사랑했다. 그는 망가짐의 미학을 찬미하는 자였다.

   ‘오만한 칼리드는 물론이고 우리 불쌍한 고자 아빠마저 한 방 먹을 줄이야. 만약 저 고고한 무리가 형편없이 시궁창으로 떨어져 나뒹군다면 어떨까? 그 장면은 얼마나 황홀할까? 상상만 해도 짜릿하군.’

   변질과 타락이라는 테마야말로 갈트론의 창조성과 영감을 극대화하는 가장 멋진 뮤즈요 최고의 자아 처리 기제였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벌써 지구 역사상 그 어떤 이단들도 감히 상상하지 못 했던 온갖 사악한 창의성들이 샘솟았다.

   ‘그 설교자 녀석도 마음에 들던데, 혹시 이번 기회에 만날 수 있으려나?’ 

   이로써 거짓 교리의 위협이 가까워졌고 의인의 시련도 확실히 예정되었다.

 

 

 

 

 

 

 

 

*

 

 

 

 

   인류연합 대표는 부하 초인들에게 그들에게 맞는 임무를 배분한 뒤, 자신은 오랜 시간 공들였던 비밀 프로젝트를 완성하고자 다시금 먼 우주로 향하였다. 이번 목표지는 인류연합 영토 가장 끝자락에 놓여 있었다.

   최근 400여 개의 초은하단을 추가로 정복하여 영토가 대거 확대된 덕에 그 좌표는 지구로부터 대단히 멀었다. 기함 콰렌트로스-XVIII는 최근 개량된 ‘은하 간 웜홀’ 내부에서 무려 열다섯 번의 특수 워프를 동시 시행한 끝에야 목표지점에 다다랐다.

   도착하자마자 가공할 크기의 에너지 파동이 그를 맞이했다.

   ‘이런, 아직 미완성인 데다 동결까지 시켜뒀는데도 이 정도 힘이라니.’

   카이젤이 바라보는 정면 방향에는 초거대 인공구조물이 존재했다.

   ‘QUASAR-II!’

   초거대 퀘이사 군에 속한 73개의 퀘이사를 한꺼번에 압축하고 공명시켜 제작한 궁극의 엔진. 이것은 지난 번의 작품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Quasar-I가 제작되고 안정적인 양산 프로세스에 접어들 무렵, 그는 이미 후속작의 제작도 개시한 바 있었다. 그 후속작의 결실이 바로 눈앞의 괴수였다.

   ‘과연 기능을 온전히 이끌어낼 수 있으려나.’

   우주선 밖으로 나온 카이젤은 거대 에너지 덩어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여파만으로 녹아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제복 덕에 물리적 에너지는 손쉽게 상쇄되어 몸 근처에 닿지도 않았다. 설사 제복이 없었더라도 초능력으로 볍게 막아냈을 것이다.

   그는 예정대로 세 부하를 워프로 소환하였다.

   “파파, 도착했습니다.”

   흑발을 한 단정한 인상의 미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따라 푸른 눈의 갈색머리 남자가 공간을 뚫고 튀어나왔다. 마지막으로 은발의 녹안 남성이 실실 웃으며 입장하였다. 야르베스, 세미온, 하르무트. 이들은 곧 아크삼형제였고 지금 나타난 단말기들은 그들의 인형들이었다. 일반 인형이 아니라 최첨단 기술이 총집결된 병기로 최상위 초인마저 잠든 채로 조종해야 하는 초고성능 인형이긴 하지만.

   “맨몸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QUASAR-II의 에너지를 발동시키면…….”

   “어차피 발명자인 내가 직접 QUASAR-II와 접촉해봐야 그 한계를 올바르게 알 수 있다. 나중에 적응되면 원거리에서도 조종하는 일이 가능하겠지만, 첫 가동은 어쩔 수 없지.”

   “부담스러우시면 말씀하시죠.”

   부담이라고? 카이젤은 피식 웃었다. 이 아이들은 여전히 그를 모르는구나.

   “실없는 소리는 여기까지만 하지.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카이젤이 QUASAR-II라는 괴물마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엔진에서 방출되는 힘에는 한줄기 한줄기마다 일종의 의지가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바로 주인을 알아보는 분별의 의지. 그러므로 아무리 큰 힘이 방출되어도 주인만큼은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는다.

   {트리니티 알고리즘을 발동하겠습니까?}

   이윽고 보조 관리자인 통일시스템이 넷에게 질문하였다.

   “허한다.”

   “저희 셋도 공동 승인하겠습니다.”

   {프로젝트, ‘라와 가이아(Rah/Gaia)’ 발동 완료.}

   곧 QUASAR-II의 거대한 권능이 카이젤과 아크삼형제가 이루어낸 트리니티 삼중 축을 통로로 삼아 만개하더니 이내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넓은 우주 전역으로 충만히 스며들었다.

   “야르베스, 세미온, 하르무트, 잘 연습해둬라. 나 혼자서도 얼마든 조정할 수 있겠지만 너희가 보조하면 그만큼 전력을 절약할 수 있으니까. 너희도 후에는 직접 비슷한 일을 맡아야 하니 잘 익혀라.”

   카이젤의 명이 떨어지자 곧 인류가 이미 정복해놓은 수천만 개의 은하와 조만간 정복할 예정인 수억 개 은하에 흩어져 있던 행성들과 항성들이 마법에 걸린 양 진동하였다. 별의 혼(魂)들의 반응이었다. 그것들은 신호에 반응하듯 카이젤의 의지에 힘입어 움직였다.

   “그래, 이것이 내 작품의 진정한 진가.”

   최강급 엔진 QUASAR-II의 초고밀도 특수에너지가 항성혼과 행성혼에 간섭하여 지금의 원격조종 작업을 가능케 하는 중이었다. 곧 행성의 대기, 지각, 맨틀, 핵의 재질이 실질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별들을 지배하는 주체는 이제 나와 내 종족으로 바뀐다.”

   테라포밍 전용 요새를 동원해 행성을 재구축하는 기술력이야 사실 이미 한참전부터 인류에게 있었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인 접촉조차 없이 원격으로 의지만 써서 행성을 변형시키는 작업은 완전히 다른 궤의 개념이었다. 아크삼형제마저도 지금 벌어지는 현상이 현실임을 믿지 못했다.

   ‘항성혼들이 우리의 의지와 연결되었다고?’

   ‘설령 그게 가능하다 쳐도 이런 괴이한 일을 벌일 정도의 에너지량이라?’

   ‘게다가 힘의 낭비조차 없이 별을 직접 조작하는 초정밀 작업이라니.’

   놀랍게도 카이젤은 한번에 그 엄청난 수의 별들을 테라포밍하면서 지치기는커녕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업이 진행될수록 학습효과가 쌓여서인지 점점 더 수월하게 일을 수행해냈다. 그는 냉소를 터뜨렸다.

   “허무하군.”

   QUASAR-II와 융합한 이 순간의 그는 태양의 신이자 대지의 신이었다.

   “지금껏 테라포밍에 투자해온 각종 노력과 시간이 허무해질 지경이야.”

   하늘도시는 유지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단점이 있다. 테라포밍 행성은 초기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두 모델은 일장일단이 있었다. 하지만 QUASAR-II의 실효성을 입증한 지금, 더는 두 모델을 비교하는 의미는 없어졌다.

   이제는 테라포밍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힘겹게 행성 후보를 구해야 했다면 이제는 QUASAR-II 덕에 아무 제약 없이 아무 후보지나 뽑아서 인류를 위한 행성으로 재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의 양산이나 다름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구상하는 최종 모델은 아니지.’

   최종 종착역이 될 것, 곧 ‘항성마저 불필요한 완전 독립형 인공 행성 모듈’. 그꿈이 완결에 이르기 전까지는 당분간 이 퀘이사 엔진의 힘이 인간 터전을 개간하는 핵심 원동력이 되리라. 현재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했다.

   두 번째 퀘이사, 그 괴물의 능력에 힘입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라와 가이아’를 자기 몸에 담은 위버멘쉬는 무한한 야심이 압축된 황금빛 눈으로 머나먼 우주 너머를 오만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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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그의 바벨탑의 높이는 계속해서 올라갈 것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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