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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1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9. 에필로그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1.25 | 회차평점 0 0

 

 

 

 

 

 

*

 

 

 

 

   에이든은 귀가한 리온을 밝은 얼굴로 포옹하며 맞이했다. 올해로 벌써 열세 살이 된 에이든은 꽤 체격이 자라 소년티가 물씬 풍겼다. 키로는 리온을 넘어섰으니 완전히 성장하면 듬직한 체구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긴 마라크도 체격이 상당히 큰 편이었지.’

   자랄수록 친형을 닮아가는 아이를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다녀왔어?”

   “집에는 별 일 없었지?”

   “내가 잘 지키고 있었어.”

   아이는 칭찬을 기대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리온은 말없이 살며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온은 여행을 끝마치고 지구로 귀환한 이후로 줄곧 할아버지와 에이든과 더불어 셋이서 고향 부근에 집을 마련한채 거주하는 중이었다. 지구 너머의 아득히 머나먼 세계들을 열심히 탐험하던 때에도 그는 그들의 품을 그리워했다. 이제 다시 그는 그 소박한 기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아나스타샤씨의 예견대로라면 우리 식구도 머지않아 지구에서 축출되겠지. 반강제적으로. 확실히 공간은 한정적인데 이곳에 뿌리 내리기를 바라는 우주 인류는 너무 많아.’

   어쩌면 최고로 우수한 자들, 선택받은 실력자들만이 지구에 발을 붙이도록 허락받는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 잘하면 승리자의 직계 가족까지는 허락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유대 민족은 운명이 좀 다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이번에도 지구에 남을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영원히 시작의 땅을 상속하리라는 성경 예언이 있으니 또다시 디아스포라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건 어느 쪽이든 리온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하늘도시들 중에 가족들과 살만한 적당한 후보를 알아봐야 하려나? 너무 척박한 세계만 아니면 좋겠는데.’

   지나치게 앞서 나간 상상을 하던 중 에이든이 비집고 들어왔다.

   “아, 할아버지가 오늘 손님 오신다고 말씀하셨어.”

   “손님?”

   “형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라던데?”

   불현 듯 리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의구심이 현실로 다가오기라도 하듯,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손님 방문을 알리는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에 있는 사람은 얼굴을 로브로 감추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감지 기능이 제한 받은 것인지 문지기 인공지능조차 그자의 신분을 읽어내지 못했다.

   “반가워요.”

   문을 열자마자 곧 익숙한 얼굴의 그녀가 미소를 얼굴에 휘감은채 해맑은 기운을 발산하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맑음에 반비례하여 리온은 찌푸려진 눈가에는 먹구름이 끼었다. 당장 매정히 내쫓고 싶었지만 그게 먹힐 상대는 아니었다. 체념한 리온은 불청객을 안으로 안내했다.

   “최대한 짧게 이야기하고 가시죠.”

   “너무하셔요. 간만에 만난 지인한테 박하네요.”

   “우리의 인연은 그곳에서 이미 종지부를 찍은 걸로 알았습니다만.”

   티아라의 반들거리는 낯에 야속함을 탓하는 듯한 가식적 표정이 깃들었다. 그러나 리온은 사사로운 옛 인연에 얽매여 티아라같은 위험인물과 대화를 섞는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차라리 강재혁 대표 같으면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척이라도 했을텐데 티아라와는 도무지 상성이 안 맞았다. 이 두 사제는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늘 물과 기름의 조합과 같았다.

   “왜 2차 여행때는 저희를 방해하지 않으셨죠?”

   “어머, 걱정해주셨던 거에요?”

   “아뇨, 너무 얌전해서 수상했습니다.”

   “아무튼 감동 받았네요. 저를 그리워해주실 줄이야.”

   장난기어린 목소리에 리온의 미간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호호, 농담이에요. 별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나도 푹 쉬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카이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인지 저를 억누르더라고요. 예전같았으면 저를 더 활용하려고 들었을텐데 말이죠.”

   “……대표님께서요?”

   조금 의외였다. 그에게도 충고를 받아들일 마음의 칸이 조금은 있었던걸까?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강재혁 같은 완고한 성벽 속에도 희망의 빛이 스며들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장차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제자님?”

   “특별한 계획이랄게 있겠습니까? 그저 지금처럼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경건함으로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매일 말씀을 전하기를 힘쓸뿐이죠.”

   “호호, 그 길은 앞으로 순탄치 않을 거에요.”

   그녀의 예고는 허세가 아닌 예언에 가까웠다. 이제 하늘도시들도 머지않아 과거의 지구가 그랬던 것처럼 배교의 물결 위에 올라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타락하더라도 종교 개혁이라는 환기의 희망이 존재하나 인류연합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우주를 지배하는 한 결코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사부는 하나님을 진지하게 알아볼 생각은 있기나 한겁니까?”

   “저야 늘 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답니다.”

   티아라는 느긋한 표정으로 웃으며 반박하였다.

   “하긴, 종교라는 방법을 통해서겠죠.”

   종교. 신에게 나아가되 그분이 직접 정해놓으신 ‘유일한 진리의 길’ 이외의 방법으로 그분께 나아가려는 모든 부질 없는 시도들의 총체. 티아라보다 이 방법들에 능통한 고수가 또 있을까?

   티아라는 그 길들을 샅샅이 찾아내었고 그 위에 심지어 더욱 풍성하고 복잡한 알고리즘들을 첨가했다. 인류가 발명한 종교적, 윤리적, 철학적 도리를 이해하는 일에 있어 그녀를 흉내낼만한 자는 거의 없었다.

   그녀가 모르는 단 하나의 길은 그리스도와의 만남뿐이었다.

   “훗날이라도 회개하길 바랄게요. 너무 늦지만 않게 말이죠.”

   리온은 한숨과 함께 대꾸했다.

   “그 배타성은 여전하네요.” 

   “편할대로 생각하세요.”  

   그날도 둘은 사사건건 모든 안건에 대해 의견대립을 빚었다. 수면위로 격정적인 감정 충돌이 드러나진 않았으나 마치 평행선을 달리듯, 둘의 논점은 만나지 못했다. 리온으로서는 참으로 피곤하기 그지 없는 교류였다.

   그래도 이제 리온은 과거와는 달리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이미 윤혁과 루디아와 스테판과 같은 친구들과 교제하며 주님을 더 긴밀하고 깊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큰 성장을 이루었다. 더는 누군가의 지배력에 자신의 영적 보배를 빼앗길 의향은 없었다. 또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다 감당하기도 바쁘기에 누군가에게 시선을 뺏길 여유도 없었다.

 

 

 

 

 

 

 

 

*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아나스타샤를 중립 지대로 초대했다. 사실은 이미 수 차례나 그녀 측에서 먼저 협력을 제의해왔던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간 유대인들은 아직은 이방인을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지켜만보던 차였다. 하지만 이젠 때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우주에서는 전면개방의 시대가 개막하였고 2등 시민으로 승격된 하늘도시 주민들의 삶의 영역은 급변하였다. 그리고 테라포밍 외계행성들에도 본격적으로 인간이 심겨졌다. 이러한 소식들이 선교사들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유대인들의 귀에 전달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구 위의 민족들에게는 일종의 위기 경보였다. 아나스타샤가 예견했던대로 지구 원주민들이 장차 버림받은 신세가 될 징조가 흐릿하게나마 나타난 셈이니까. 물론 정작 대다수의 지구 주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무감각하고 둔하게 일상을 영위했으나 발등의 불은 이미 그들 신발 끝자락을 태우는 중이었다.

   민족성이라는 구분 개념 자체를 지우려는 카이젤의 방침상 대규모의 민족 혼합 정책이 시행될 것은 불보듯 뻔했다. 이미 하늘도시와 하늘도시, 행성과 행성 사이에서도 그런 정책이 공격적으로 자행되고 있거늘 지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으리라.

   자칫하면 유대인들도 이 흐름에 휩쓸려 영향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런 긴박한 시대적 흐름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아나스타샤를 신뢰하고 그녀를 자신들의 모사로 인정하게끔 유도한 결정적인 계기였다. 더 늦기 전에 고향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자들을 회개로 이끌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시 디아스포라의 심판을 받아 뿔뿔히 흩어질지도 모른다.

   게다가 지금이야 중립지대라는 울타리가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보호해주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까지고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섬의 여주인에게는 인류연합과 맞설만한 권력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유대인 원로들은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불리한 처지, 연약한 세력, 그리고 경제 시스템에서 배제되어 버린 형편, 이 모든 요소가 자신들과 다음 세대 후손들의 발목을 잡는 올무가 된 것 같이 느껴졌다. 고민 앞에 높인 그들은 진지하게 타개책을 궁리해야만 했다.

   그러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의외로 아나스타샤는 의연하게 응수했다. 그녀는 아등바등거리지도 않았고 미성숙함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들끓는 불안감 또한 애당초 그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이전 세대의 지혜자인 에드레이 테일란드의 직속 제자. 그녀에게는 이에 걸맞은 뱀 같은 지혜가 있었다. 아울러 그녀의 마음 속에는 순결한 하나님의 지혜에서 파생된 계획들도 머무르고 있었다.

   “여러분은 지구 전역을 다시 복음화할 준비를 저와 같이 마련해나가면 그만입니다. 딱히 지구에 남기위해 여러분 스스로 정치적으로 노력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약속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보증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적절한 기회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그 타이밍만 놓치지 않고 지혜롭게 처신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 남아서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고대의 용장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의 승패 여부는 전혀 염려하지 않았고 일말의 실패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는 훗날 그 땅을 정복한 뒤 후세대가 얼마나 거룩하게 살아갈지에만 관심을 비쳤다. 마찬가지로 아나스타샤는 하나님의 약속에 담긴 목적성을 알았기에 여유로웠다. 그녀는 그 위대한 약속 안에 담긴 자체적 확증성을 다시금 유대인들에게 상기시켰다.

   “아마도 지구는 곧 우주 인류 가운데서 최고로 우수한 엘리트들만 모여 지내는 수도 겸 성지로 재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현존 지구 주민들은 당신들 유대 민족을 제외하고는 우주 전역으로 흩어져 희석되겠죠. 그러므로 앞으로 당신들이 맡을 선교 대상은 새로이 주민으로 자리할 우주 출신의 엘리트들입니다.”

   지구의 새 거주자가 될 이들은 초인에 버금가는 급의 천재일지도 모른다.

   “즉 상당히 오만한 자들이라 아마도 쉬이 마음을 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달리 이해한다면 지적능력이 뛰어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의 역사에 행하신 놀라운 섭리를 목격한다면 그들도 신적 개입을 눈치챌 것입니다. 그 중 몇몇만 건져낸다면 그들이 다시 우주 여타 지역에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현재 우주 전역에 심어진 교회들이 평범한 계층의 시민들을 공략한다면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앞으로 지구에 도래할 초인들이나 준 초인급의 인재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 이것이 아나스타샤가 구상하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 전략이었다.

   “과연 가능하겠소?”

   “당신들이 그대들의 메시아이신 예슈아와 그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신다면, 그리고 제게 아주 조금의 신뢰만 보태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비록 염려를 모두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아나스타샤의 분명한 의지와 선명한 비전이 담긴 조언을 듣고난뒤 원로들은 마음이 놓였다. 그들은 이제 흡족한 마음으로 그녀를 수용하였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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