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1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9. 에필로그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2.0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감이 회상 속에서 아르거리던 순간.

   “크리스 씨?”

   귓가를 때리는 음성이 크리스를 현실의 수면 위로 다시 끌어올렸다.

   “아, 미안, 형씨.”

   “무슨 걱정이라도 하셨는지?”

   “아, 아냐, 잠깐 다른 잡 생각이 들어서.” 

   섬뜩한 회상에서 되돌아온 크리스는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맞다, 아들 소식에 대해서 물었었지.”

   “네,”

   “그 사람은 나 같은 녀석은 원체 만나기 어려운 분이라서 말이야.”

   “……그렇군요.”  

   성한은 조금 맥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언제나 한 번 얼굴이라도 본다면 그 아이와 진지하게 마음을 터놓을 작정이었는데 말이죠. 이래서 아버지 역할이란건 참으로 어렵네요.”

   크리스는 속으로 ‘그건 녀석이 이상한거지 형씨의 책임과는 아무 상관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괜히 김빠지는 말을 입밖으로 터놓아서 성한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당신한테는 온순하고 순종적인 둘째가 있잖아, 형씨.”

   “윤혁이야 늘 말도 잘 듣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온 착한 아이라서 특별히 걱정이 없어요. 이번만 해도 얼마나 대견스러운 일을 놀랍게 해냈는지 모릅니다.” 

   급격히 밝아지는 상대의 화사한 미소에 크리스는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못말리는 팔불출이구만.”

   “자식을 갖게 된다면 당신도 비슷할 겁니다.”

   “허튼소리. 나는 가정같은 건 관심없어.”

   차를 다 마신 후 크리스는 볼 일이 있다며 신속히 자리를 떴다. 작별의 인사를 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전부터 성한에게 이 이야기를 꼭 남기고 싶었다.

   “크로스솔져 녀석들 말이야, 그 녀석들 제법 걸작이었어. 어쩌면 영웅을 양육해내는 솜씨는 나보다 형씨쪽이 훨씬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군.” 

   “그건 제 능력과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랑이라는 걸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물론 예전의 저 같았으면 어려운 일이었겠지만요.”

   “그런가? 참으로 낯선 이야기로군.”

   성한은 문득 크리슈나 앞에 놓인 두터운 무형의 장벽을 느꼈다. 오래 알아온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격벽이 있었다. 크로스솔져들에게는 그 벽이 없었기에 손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주님의 사랑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SS 클래스 초인인 크리슈나 앞에는 존재의 격을 근본적으로 나누는 칸막이가 있었다.

   그렇다. 어느 정도 가까이 지낼 수는 있을지언정 멍에를 함께 맬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만약에 재혁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그 역시 자신 앞에서 크리슈나보다 더 무겁고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졌으리라.

   문득 성한은 무심코 그 사람이 떠올랐다. 성질 강퍅하고 태도도 강압적인 무서운 사람이었던, 검사 시절의 자신에게조차 순수한 친절로서 다가왔던 그 사람, 온화하고 인자한 인품에서 참으로 깊은 매력이 묻어나왔던 사내. 그의 이름은 이치죠우지 쥰이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후회 어린 기억으로 회상컨대 그 당시의 자신은 쥰에게 까닭없는 미움만 잔뜩 품었었다. 아마도 카인이 동생을 미워했던 것처럼 그의 의로움을 시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검사님.”

   쥰은 항상 반갑지 않은 조우 속에서도 그를 선대해주었다.

   “이렇게 또 만났네요.”

   성한은 그런 그를 거슬려하기만 했다.

   “부디 다시 만날 기회가 되건대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쥰의 이러한 소원을 그는 매번 밟기만 했었다.

   “검사님께서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참된 기쁨을 발견하기를 바래요.”

   물론 상대의 선한 소원에도 부응해주지 못했고.

   “아무리 당신이 막아도 제가 걸어갈 길을 꺾지는 못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는 강인해보였으나 실상은 수수깡처럼 나약했던 성한과는 달랐다.

   “이걸로 다시 이별이네요.”

   왜 그 순간이 어른거릴까, 혹 미련이라도 남았던 것일까.

   “항상 건강하시길. 주님께 당신의 축복을 구합니다.”

 

   온갖 장면들의 파편이 혼재되어 아른아른 스쳐지나갔다. 사실 쥰 그와는 잊을만하면 자주 마주쳤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신 것일가, 아니면 악연이라고 표현해야 옳으려나. 어쩌면 쥰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악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고달픈 인간을 붙여주셨는가 속상하기도 했겠지.

   그러나 항상 잘못을 범하는 쪽은 성한 자신이었다. 그는 상대를 선입견의 시선으로 재단하였고 고달프게 쥐어짰으며 정죄하고 몰아붙였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쥰은 꿋꿋이 성한을 온유함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실제로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옳은 쪽은 쥰이었다. 성한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그 작은 존재의 삶에 담긴 아름다움을 꺾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올곧았던 인간은 오래 전 떠나갔고 몹쓸 짓만 했던 자신은 도리어 이 땅에 남았다. 하나님은 왜 위대한 순교자인 초대 교회의 집사는 때이른 죽음을 맞게 하시고, 도리어 그를 죽인 범죄자인 사울을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셨던 것일까. 인류 경영의 섭리는 참으로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여하튼 대척점에 놓인 채 제 길을 걸어가는 그 모습을 보건대, 과거의 자신과 쥰의 평행선은 지금의 크리스와 자신이 그리는 평행선과도 겹쳐보였다. 그 미래를 예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깊은 씁쓸함이 밀려왔다.

 

 

 

 

 

 

 

 

*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헤어지려던 무렵이었다.

   “음?”

   볼 일을 마치고 문 밖으로 나서려던 크리스는 눈에 익은 얼굴들을 발견하고는 묘한 기분이 들었는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크로스솔져들은 자신들의 이전 상관을 보더니 몹시 불편해하는 표정으로 목례를 하였다. 크리스는 별다른 대답조차없이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성한 아저씨.”

   “어서오렴. 얘들아.”

   성한은 방문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체크해보았다. 크로스솔져들 가운데 대표격 인물들만 찾아온 것을 보아 나름대로 중요한 결의를 전할 참인듯했다.

   “안에 와서 식사하렴. 윤혁이도 곧 있으면 들어올텐데 보고가고.”

   “아닙니다. 오늘은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무디가 제법 묵직하게 분위기 잡으며 서두를 꺼냈다. 여댓명 정도의 크로스솔져들이 무디 곁에 모였다. 동시에 그 반대편으로는 케리와 신해를 포함한 여댓명이 모였다.

   “히어로를 그만뒀어요. 곧 일반 시민의 신분으로 돌아가겠죠.”

   머뭇거리던 신해는 큰 마음을 먹고 말을 꺼냈다.

   “아저씨도 아셔야할 것 같아서요.”

   “그랬구나.” 

    이후 무디는 헛기침 몇 번 후 신해의 바통을 이어받아 부연설명을 하였다.

   “히어로즈 시스템은 이제 인류연합 군 시스템의 일부분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그러니 더는 우리에게도 히어로로 남을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무력 체계의 부품으로 전락하기를 원치 않으니까요.” 

   옆에 있던 아도니람도 덧붙였다.

   “인류연합 대표에 관하여는 여러 차례 저희끼리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최근 있었던 일들, 곧 신수 사냥 임무, 그리고 별안간 신수들의 성질이 돌변하여 갑자기 온순해진 일을 알려주었다. 자세한 뒷사정은 모르겠지만, 3대째 위버멘쉬가 직접 나서서 모든 인공 지성체들을 지배하기로 작정한 영향으로 판단되는 바였다.

   “우리가 신수와 맞서싸운 이유는 다른게 아닙니다. 그들의 거짓 영성, 그리고 그로 인한 악령과의 상호작용이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가장 위험한 적수는 신수가 아닌 인간입니다.”

   인간의 죄악, 그것이야말로 온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장 근본적인 영적 병폐이다. 칼과 창만으로는 인간의 죄와 맞서싸울 수 없다. 유일한 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힘과 말씀의 능력 뿐이다. 이것들은 크로스솔져들이 유일하게 확신하는 진리였다.

   “이것이 우리가 손에서 칼을 내려놓으려는 이유입니다.”

   “……너희 생각이 그렇다면야.”

   아쉬움이 남았던 성한은 떠보듯이 질문했다.

   “그래도 평생 해온 일을 포기해버리면 서운하지 않겠니?”

   그러자 신해 옆에 말없이 서있던 케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옛부터 무력을 사용해 명성을 떨친 영웅은 많았습니다. 고전 신화 속에만 해도 참 많이도 등장했죠. 근현대 때 유행했던 슈퍼히어로 만화도 사실상 신화 속 영웅들의 연장선이나 마찬가지에요. 저희는 이런 ‘영웅 숭배’가 예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악습임을 깨달았어요.”

   케리가 잘 말한 대로 고대 신화 속 각종 영웅 설화에는 성경을 모방한듯한 요소가 참 많았다. 우상 신을 만들어낸 원작 저자가 사탄이었을테니 각종 중복되는 요소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일도 이상한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이렇게 메시아를 표절해 만들어진 영웅들은 대체로 온유하신 예수님과 달리 ‘폭력과 부도덕으로 가득한’ 영웅들이요 나르시시즘과 자아 도취로 똘똘 뭉친 오만한 자들이었다.

   “현대의 히어로 매체도 악랄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 이야기들은 온갖 은밀한 비유를 이용해 선과 악을 혼미하게 만들었죠.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놓았고 반대로 그분께 대적할 적그리스도 세력은 영웅인 것마냥 미화시켜왔죠.”

   현실 속에서 그 실례를 보다보니 더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것을 사람들도 부디 깨달았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더욱더 영웅적 존재에 열광하기 바빴다. 분명 앞으로는 초인들을 그런 마음가짐으로 경배하겠지.

   “사람들이 그런 류의 ‘만들어진 영웅’ 이야기에 자꾸 세뇌당한다면 훗날 종말의 때가 이르러 판가름의 시금석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어리석은 길을 향해 몸을 내던지게 될 것입니다.”

   무디는 자신들이 왜 ‘무력을 휘두르는 히어로’라는 직책을 그만 두었는지 합리적으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상당부분 일리가 있었다. 이에 성한은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냐며 반문했다.

   “너희의 재능이 꼭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면? 위기가 닥쳐온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니? 무력 자체가 악은 아니야. 다윗 왕도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무력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활용했지. 오늘날 같은 신약 시대야 그럴 일이 드물겠지. 하지만 신수 때와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잖니.”

   “만약 그러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면 되는 일이죠.”

   신해가 명쾌하게 딱 잘라 결론을 지었다.

   “우선은 매 순간 주님께서 주신 양심에 의거해 판단하며 행동할 생각입니다.”

   웨슬리도 한마디 덧붙여 의지를 견고히했다.

   ‘그래, 이렇게 해산이로구나.’ 

   근 몇 년 간 동고동락하였던 66인은 이제 일반인의 신분으로 돌아갔다. 이들 중 절반 가량은 카이젤을 향해 경계의 태도를 보였다. 나머지 절반은 자신들의 은인이자 대부인 성한을 생각하여 성한의 아들인 그자를 불쌍히 여겼다. 이는 각자의 신앙 양심에 따른 결론. 누구도 동료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뜻은 없었다.

   크로스솔져들은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조촐한 잔치 자리를 마련하여 성한 가족을 초대하였다. 그리고 다 함께 여운을 나누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여운을. 바로 그 자리에서 크로스솔져들은 놀라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저씨의 둘째 아들인 윤혁과 뜻깊은 친분의 약속을 맺었다. 이들은 앞으로 윤혁을 친형제 이상으로 아끼며 돌봐주겠노라고 결의를 다해 마음속으로 맹약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413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9. 에필로그 (4)
등록일 2024-11-28 | 조회수 29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41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9. 에필로그 (6)
등록일 2024-12-11 | 조회수 20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