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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23회 아벨의 후예 Ch 2. 재회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1.17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바로 그때 갑자기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초능력이 공간 전역을 뒤덮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발산하는 초능력에는 그 사람의 개인적 정신 특색과 개성이 묻어난다. 같은 파워 소스에서 온 같은 성질의 힘이라 해도 사용자에 따라 색깔이 구분되어 지문이나 홍채 같은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흔적은 해당 사용자와 유대감을 소유한 사람일수록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지금 나타난 존재도 재현 자신과 가까운 존재일까?

   재현이 기시감에 멍해진 사이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훼파된 폐허가 삽시간에 원래 모습으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무너진 건물들이 재구축되었다. 훼손된 공중 도로나 통신 시설도 원래 형태로 되돌아왔다. 무인 시스템의 복구 기능만으로는 저런 엄청난 속도를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누가 이곳을 복원하고 있다고?’

   이 정도로 힘을 정밀하게 운용할 정도면 초인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재현은 돌연 나타난 상대가 적일지 아군일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긴장이 들었다. 이미 기력이 빠질 대로 빠진 몸을 일으켜보려 시도했으나 힘이 안 들어갔다. 심지어 텔레포트 이능력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현 주변의 건물과 도로도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이어서 발걸음 소리도 들려왔다. 초능력을 통해 발산되던 짙은 존재감이 점차 선명해지고 강렬해졌다.

   이내 양복 입은 한 남자가 재현이 주저앉아 있던 골목으로 들어왔다. 긴장감에 몸을 수그리고 있던 재현은 조심스레 상체를 펴고 얼굴을 돌려 상대방을 살펴보았다. 주변 조명이 어두워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남자는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재현에게 다가왔다. 그 남자는 맹수처럼 당당하게 걷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전율하는 것처럼 보였다.

   “형?”

   익숙한 목소리에 반응한 재현의 감각. 그제야 불현듯 옛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휘몰아쳤다. 상대방과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얼굴이 뚜렷이 보였다. 깜짝 놀란 재현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현아?”

   “형?! 천재현? 맞지!”

   짙은 청록색이 스며든 흑발의 훤칠한 미남. 근사한 양복이 팽팽히 조여질 만큼 탄탄한 근육질 피지컬. 재현이 기억하던 14년 전의 모습에서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티끌만큼도 늙지 않은 채 20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그, 그게 말이지.”

   재현이 머뭇거리던 차에 수현이 달려와 그를 세게 포옹했다.

   “잠시만 이대로 있어 줘. 잘 믿기지 않아서 그래.”

   “……그래.”

   수현은 이 상황이 낯설었다. 14년 전 형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후로 그를 둘러싼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늘 밝았던 싱긋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수현의 삶은 차갑게 식어 광야처럼 각박해졌다. 초인으로 태어났으나 일반인인 형제를 아꼈던 탓에 온전히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를 거절했던 천수현. 형의 죽음만 아니었으면 지금의 진흙탕 싸움에는 얼씬도 안 하였을 것이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형, 정말로 살아있는 것 맞지?”

   “미안해, 수현아. 더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사정이 있었어.”

   “괜찮아. 이제는 돌아왔잖아.”

   수현은 가능한 오랫동안 이 꿈 같은 상황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초인 특유의 예리한 감각 탓에 자기 친형에게서 느껴지는 낯선 기운을 외면하지 못했다.

   “그간 도대체 무슨 일들을 겪었던 거야?”

   “그, 그게…….”

   “그건 그렇고, 어떤 실험을 당했길래 그렇게 된 거지?”

   다그치듯 캐묻는 동생의 무서운 표정을 보고 재현은 당황하였다.

   “내, 내가 천천히 설명할게, 수현아.”

   “날 바보로 생각하지 마! 지금 형의 몸에서 오백 종류도 넘는 서로 다른 계열의 초능력이 감지돼. 그것들은 우리가 아니면 한 종류도 제대로 다루기 어려운 힘인데 어째서 형 몸에 깃들어 있는 거지? 게다가 신체 입자의 양자적 속성까지 변형되었잖아! 무슨 짓을 당해야 이렇게 되는 거야?”

   수현은 으르렁거리며 잔소리하듯 형을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재현은 풀이 잔뜩 죽어 고개를 푹 숙였다. 한참 후에야 자신이 14년 만에 만난 형에게 고압적으로 굴었음을 자각한 수현은 한숨을 내쉬며 사과와 함께 형의 어깨를 토닥였다.

   “미안해.”

   “괜찮아, 수현아.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찾았어?”

   “형이 발산한 기운을 감지했어. 초능력은 발신자의 정체를 식별하기 쉬운 흔적이야. 심지어 텔레파시보다도. 사실상 보이지 않는 지문이지. 나 정도면 우리 은하계 바깥에서도 누가 어떤 초능력을 사용했는지 대강 감지할 수 있어.”

   재현은 초능력의 효율성과 초인의 정신력 수준에 당황했다.

   “조금 전에 도시를 복원한 것도 네가 한 일이야?”

   “응. 그나저나 놀라지도 않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나 봐.”

   “……조금은. 다른 사람에게 들었거든.”

   “예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서 미안해. 형이 초인 사회와 얽히지 않기를 바랐거든. 어차피 그때는 나도 최하위 F 클래스였기에 굳이 U-society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지 않아도 됐었어. 형의 사고 이후로 한 번 더 각성했고 그 때문에 부득이하게 의무 가입하여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지만.”

   동생이 초인으로서 겪어온 일들을 대강 전해 들은 재현은 자신이 무거운 짐을 씌운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못난 형을 둔 죄로 고생해온 아우에게 미안했다.

   “이젠 그만 돌아가자, 형.”

   “하지만 수현아, 지금은 복잡한 사정이 있어.”

   “힘의 폭주 때문에?”

   수현은 단숨에 재현의 고민을 간파했다. 말문이 막힌 재현은 조용히 긍정의 신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수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어린 시절의 동생을 가까이서 보아왔던 재현에게 그 표정의 의미를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았다.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향한 분노.

   “많이 다쳤네, 형. 치료해줄게.”

   수현은 분을 억누르고 형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난 괜찮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재생되는걸.”

   그러나 형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현은 재현의 상처 위로 희미한 무형의 힘을 흘려보냈다. 이내 외상은 말끔히 나았다. 그 와중에 수현은 형의 체내에 들어있는 물질을 감지했다.

   “특수목적으로 개조된 피코머신? 이건 우주 인류의 신체에 투입한 회춘 및 우주 적응 용도의 피코머신보다 훨씬 더 높은 기능의 물건인데? 아직 상용화도 되지 않은 마당에 누가 이걸 형 몸에 주입했지?”

   재현으로서는 동생에게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비범한 지혜가 몹시 낯설었다. 자신과 함께 있던 시절에는 역시 형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일부러 감춰왔었구나. 유 회장 말에 따르면 수현이 추가 클래스 각성을 했다던데, 과연 이전보다 현격히 급이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위압감과 존재감이 확 와닿았다.

   “미안, 형. 잠시만 실례할게.”

   “무슨 일이길래!”

   재현이 미처 대꾸를 마치기도 전에 수현은 형의 옷을 확 잡아 뜯었다. 물리적으로 잡아당긴 것이 아니라 제복 자체를 나노 단위로 분해해 회수했다. 갑자기 벗은 몸이 된 재현은 화들짝 놀라 몸을 가렸다.

   “잠시 손 치워줘.”

   강압적인 어투에 움츠러든 재현은 얌전히 동생의 진찰을 받았다. 수현은 수술대 위의 환자를 살피는 의사처럼 무겁고 진중한 태도로 형의 전신을 분자 단위로 샅샅이 투시하였다. 이어서 훼파되어 누더기가 된 형의 제복도 점검했다. 수현의 초능력이 흘러 들어가자 옷은 원래 형태로 재생되었다.

   “피코머신을 이식해준 사람이 이것도 함께 준거지?”

   “……그래, 맞아.”

   “말해. 누구야?”

   심문하는 수현의 어투에는 은은히 억제된 분노가 실려있었다.

   “이건 U-society 회원들이 입는 제복을 변형한 물건이야. 형도 들었겠지. 원래는 천체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 전천후 최종병기야. 몇 년 전부터는 대량양산에 성공하긴 했지만,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제복을 이용할 라이센스가 주어지지 않아. 왜인 줄 알아? 그들이 다루기에는 너무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지.”

   수현은 형이 멋모르고 실험체처럼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남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착해빠진 제 형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범인이 누구인지 형이 말해주지는 않았으나 여러 정황을 보아 답은 뻔했다.

   “유성운 회장님인가?”

   “그, 그건 어떻게…….”

   “형의 신체가 재구성된 패턴에 그분의 노하우가 많이 녹아있더라.”

   이제야 대강 퍼즐이 풀렸다. 확률왕의 특수한 재능이라면 재현이 이능력을 획득한 경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아마 수현 자신의 제복을 복제해낸 유사 제복을 재현이 다룰 수 있었던 이유에도 유전적인 공통분모와 더불어 그 이능력의 특수 성질 덕도 있었을 것이다.

   “역시 그분이 형을 무기 삼아 냉전에 내세웠던 거였어. 남의 가족을!”

   “오해하지 마, 수현아. 그 사람은 일단 나를 살려주려던 목적으로…….”

   “12년 이상을 실험실에 감춰두었는데도? 그것도 모자라 일부러 내가 위버멘쉬의 명으로 지구 너머로 파견을 나간 시점에 딱 맞춰서 형을 실험실에서 꺼내었지. 형을 양심의 거리낌 없이 마음껏 사용할 목적이었겠지. 게다가 조사해보니 형을 그 위험한 집단과 어울리도록 유도했다더라.”

   수현의 진노 담긴 흥분이 점점 고조되었다.

   “위험한 집단이라니. 그 친구들은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야.”

   “하아, 세상 물정 모르는 우리 형. 3대째 위버멘쉬께서 그자들을 주시하고 계신다고! 그분 눈에 밟혀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단 말이야. 형, 제발 그런 위험한 일들은 피하면 안 돼? 가족들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어?”

   수현은 원통함을 모두 터뜨려내었다. 재현은 지은 잘못이 컸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동생 처지에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여러 사고를 친 것이 엄연한 사실이었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하지만 크로스솔져들은 좋은 사람들이야. 나는 그들과 같이 주님을 만나 믿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들과 뜻을 같이할 의향이 있어.”

   지금의 재현에게는 가족 못지않게 소중한 일이 생겼다.

   “꼭 형이 아니어도 되잖아.”

   “지금으로서는 대체자가 없어.”

   “하아, 그들도 그런 이유로 형을 꼬드겼겠지. 형의 무력을 탐내서.”

   수현은 형이 이능력과 힘을 얻은 이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마음대로 타인과 접촉하지도 못한 채 늘 폭주를 염려해야 하며, 영 심상치 않은 무리와 얽혀 그들을 돕느라 좋지 않은 의미로 인류연합의 주목을 받게 된 상황. 차라리 힘을 없애버리고 예전처럼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텐데.

   수현은 제복의 해체로 드러난 재현의 맨몸 위에 제복을 다시 걸쳐주었다. 제복은 본연의 기능이 복구되었을 뿐 아니라 수현의 기술 조작으로 제련까지 되어서 그런지 재현의 힘의 안정화와 몸의 회복을 더욱 수월하게 보조해주었다. 대충 작업이 끝나자 수현은 형의 손목을 꽉 붙잡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중력과 관성과 광학을 무시하는 초능력 덕에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궤적을 조작할 수 있었다.

   “가자, 형.”

   둘은 공중 비행으로 어디론가 날아갔다.

   “가, 가다니? 어디로?”

   “마침 당사자께서 내일 외우주로 출국하신다는데 늦기 전에 찾아봐야지.”

   이내 재현의 얼굴은 당혹감과 걱정으로 물들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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