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26회 아벨의 후예 Ch 3. 지구 교회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1.24 | 회차평점 0 |
Chapter 3. 지구 교회
과거 하늘도시라고 불렸던 Upol(Uranopolis), 그곳의 주민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진 이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 흘렀다. 우주 표준 시간으로는 짧은 세월에 불과한 그 기간 내에 은하계 전역의 Upol들에서는 연일 놀라운 혁신과 변화가 쇄도하였다.
먼저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와 문명의 편리한 혜택이 지역 구분 없이 풍성히 제공되었다. 선진 문물과 첨단 기술, 그리고 현대적인 학문이 사람들의 삶 속에 빠르게 침투해왔다. 또한 우주 시대에 걸맞게 행정 체계도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 우리 은하에만 모여있던 1조 개의 Upol들은 근방 백여 개의 은하계로 분산 배치되었다. 자연히 은하 간 교통 통신 기술도 대거 상용화되었다. 행성들은 작은 마을처럼 취급되었다. 은하촌(銀河村)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바야흐로 우주 인류는 초인들의 지배를 받던 갑갑한 시대로부터의 탈출을 만끽하였다. 그러나 철인왕들을 비롯한 초인들이 하늘도시 내부 세계들을 제멋대로 조종할 옛 권리를 잃었다고 해서 곧장 주민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산개되었던 외부시스템들과 압제자들이 통일된 형태로 합쳐졌을 뿐이었다. 이제는 위버멘쉬의 의지가 형상화된, 눈에 보이지 않는 ‘통일시스템’이 인류연합 영역 내의 모든 인간 사회, 이종족, 기계들을 철저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역사상 단 한 순간도 완전히 자유로워진 적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철저히 제어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이 그들의 눈을 덮어버렸다.
그래도 희망적인 움직임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우주 인류가 거하는 모든 영역권 안에서 풍성한 영적 축복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지구 안에 갇힌 채 소리소문없이 소멸할 줄 알았던 복음의 불씨가 다시 한번 거대한 불길을 이루어 우주 식민지들을 휩쓸었다. Upol마다, 세부 지역마다 교회들이 세워졌으며 절대자를 찾는 자들도 우후죽순 늘어났다. 물질문명의 공허함을 깨달은 이들은 인생의 참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분주히 헤매던 중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발견하였고 많은 이들이 그 향기에 동화되었다. 그리하여 새 씨앗은 급속히 번져나갔다. 마치 초대 교회 당시의 놀라운 역사가 재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마냥 희망적이지만은 않았다. 현대 문물의 영향력은 만만치 않았다. 전면개방 초기만 해도 성령의 역사가 충만했었으나 차츰 현대주의, 과학주의, 냉소주의, 이성주의, 물질만능주의, 기복주의가 침투하여 타락의 징조를 일으켰다. 부흥이 일어나기 무섭게 21세기 지구 교회와 흡사한 쇠락의 흑역사가 발생해 부흥의 뒤를 따랐다. 문명의 규모와 수준이 지구 때보다 심히 상향된 만큼 교회의 부흥 및 타락의 사이클도 굉장한 가속도가 붙은 채 고속으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인류 사회 자체가 거대해진 만큼 지역별 타락 양상도 천차만별이요 각양각색이었다. 유사 이래로 지구상에 등장했던 모든 이단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이단 종교가 지난 수개월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출현해 범람하였다. 수백만 명 이상의 교황들이 등장해 제각기 다른 교리와 전통을 만들어 내세웠다. 일부 지역에서는 상업과 교단이 협업하여 범행성 규모의 거대 기복 교회를 창설해내었다. 십자가 복음은 내팽개쳐졌으며 기복주의, 복음 없는 무익한 설교, 장사치 행위가 판을 쳤다. 복음 전파가 비약적으로 빨랐던 만큼 타락의 속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내버려 두면 다음 세대의 신앙은 무너질 것이오.”
“우리 세대는 더욱이 말세 중의 말세이지 않습니까?”
“이런 안이한 식으로는 세상을 상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신실한 교계 지도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장차 어마어마한 탄압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르는 판국에 벌써 교회 내부의 부패로 인해 자체적으로 무너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우주 인류 사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히 필요했다.
물론 종교개혁과 관련된 소명을 품은 사람들은 이미 많았다. 하나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순교에 이르기까지 싸울 자세를 갖춘 이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을 하나로 연합시켜줄 구심점과 계기가 없었다. Upol들의 개수가 지나치게 많고 배치 범위가 넓은 탓에 각 지역의 종교개혁자들을 한꺼번에 연합시키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교통 및 통신도 통일시스템의 지배를 철저히 받았기에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에는 알게 모르게 큰 제약이 따랐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사회를 표방했어도 실상 본질은 전제적 체제였으니 필연적인 일이었다.
“이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의 의견은 하나로 수렴하였다. 우주 전역의 종교개혁자들을 묶어줄 구심점을 찾아내려면 지구의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그곳의 기독교는 소멸해가는 추세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지구는 복음이 시작된 시작의 땅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곳에는 얼마 전 하늘도시들로 하나님 말씀을 전달해준 훌륭한 교회가 아직도 남아있다. 우주 선교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던 당사자들이 생존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는 우리로서는 성지이자 고향입니다.”
인류의 씨가 시작된 고향, 그리스도께서 직접 거닐었던 이스라엘이 위치한 행성, 교회가 시작되었던 곳, 지구는 여러 방면으로 중요한 의의를 함의한 행성이었다. 지금도 우주 인류는 그리스도인과 불신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지구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일종의 귀소본능이 영혼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복음의 성지를 앙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그 갈망이 더하겠는가.
하지만 그 땅은 크기가 제한되어 있었기에 우주 인류 전부를 수용할 수 없었다. 테라포밍된 식민지 외계행성과 Upol 사이에서는 비교적 우주 인류의 자유로운 왕래와 이주가 허락됐지만 유일하게 지구로의 행선만큼은 제약을 받았다. 오로지 선택받은 우승자들만이 지구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는 준 초인 급에 맞먹는 탁월한 실력자가 되어 자신의 우수성을 명백히 증명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기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아마 교회가 지구로 향할 방도는 거의 없을 겁니다. 힘과 권세, 지혜와 능력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된 자들만이 지구 티켓과 지구 시민권을 얻을 테니까요.”
“하지만 역으로 지구의 교회들이 우리에게 오는 것은 가능합니다.”
고민 끝에 Upol들의 교회들은 자신들의 영적 침체기를 극복하고 부흥의 열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지구의 신자들에게 초청의 서신을 보냈다. 이미 통신 네트워크 기술도 철저히 통일시스템과 인류연합의 지배하에 놓여있었기에 그 서신중 얼마만큼이 당도할지는 불분명했다. 미시적으로는 무한한 자유가 존재하나 거시적으로는 완전한 지배가 임한 세계의 특성상 이러한 현실적 한계는 어쩔 수 없으리라. 그저 하나님께서 적어도 한 통이라도 제대로 당도하도록 허락해주시리라 믿을 뿐이었다. 성도들은 매일매일 편지 작성을 멈추지 않으며 분주히 일했다.
*
한편 지구 위의 남은 교회들에서는 색다른 전개가 벌어지고 있었다. 외부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표명한 지구 시민들 모두에게 일련의 메시지가 일관적으로 전송되었다. 일종의 선별장치였다. 누가 진정한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지를 대량적으로나마 분석하기 위한 용도의 선별장치. 그러나 선별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참된 알곡들로 하여금 현시대의 영적 긴급성을 직시하고 한 마음으로 모이기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일괄 메시지 속에는 프로그램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정보를 전달해주면서 미묘한 유도신문의 질문을 던졌다. 올바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은 시험에 통과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그릇된 신앙을 형성했거나 세상과 타협한 이들은 통과하지 못했다. 메시지가 깊은 단계로의 진입을 허락하자 차츰 참된 신자들은 탄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얼마나 최후의 종말과 가까운지를 실감 나게 깨닫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적잖은 신자들이 주님이 주신 소명을 향한 투지를 태워 올리며 헌신을 다짐하였다.
한편 그 메시지에는 중요한 거름종이 두 개가 내포되어 있었다. 하나는 최근 지구 시민들의 사회 내부에서 대대적으로 재개된 성녀의 ‘평화주의’에 대한 경고, 다른 하나는 인류연합의 미래 행보에 대한 경고였다. 불편과 위기를 감수하고라도 세상에 굴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이 메시지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본주의적 사고관에 물든 이들은 인류연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설령 의혹을 품더라도 두려움 때문에 맞서려 하지 않았다. 성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위명과 덕망이 워낙 대단했다.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는 그녀를 거짓 선지자로 의심하기란 쉽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메시지 내용을 작성한 사람은 리온 마흐무드, 기술적인 도움을 제공한 사람은 강윤혁이었다. 둘은 지구상에 아직 남아있는 ‘참된 교회’들을 연합시켜야겠다고 판단했다. 종교를 통합시키려 했던 현대적 에큐메니컬 운동과는 개념 자체가 달랐다. 오로지 참된 신자만을 찾아내어 철두철미한 진리 안에서만 연합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윤혁.”
“네가 글을 쓰느라 더 수고했는걸.”
리온은 윤혁과 통화를 나누면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상의했다. 둘의 논의는 인류연합이 지구 교회의 탄생에 주목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관련 있었다. 더 훼방 거리가 늘어나기 전에 대비할 필요성이 있었다.
“메시지는 최대한 우회적으로 표현해야 해. 지금은 정보 하나하나가 완벽히 감시당하는 시대야. 인류연합과 영적으로 타협할 수는 없겠지만 노골적으로 대적 감정을 드러내서도 곤란해.”
“그런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형의 시선은 내가 최대한 다른 쪽으로 끌어볼게.”
“무리하진 마. 강재혁 대표님은 무서우리만큼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유형의 인간이야. 아무리 너라도 인류연합의 방해물이 된다면 가차 없이 질책하겠지.”
윤혁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언젠가 될지는 몰라도 카이젤과의 대립은 불가피하리라. 이미 염두에 두고는 있었으나 그 일이 당장 내일이나 모레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이 드니 새삼 긴장감이 몸을 사로잡았다.
“아,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하지는 마, 윤혁.”
“고마워.”
“내가 응원할게. 당분간 너는 우주적 규모의 종교 활동에는 개입하지 마. 그렇지 않아도 너를 주목하는 세력이 너무 많아. 지난번 여행으로 초인들에게도 단단히 찍혔지. 그들도 문제지만 잠정적으로는 네 형이 제일 위험 요소야.”
리온이 당부 위에 당부를 거듭 덧붙였다.
“잘 알고 있어. 주의할게.”
“크로스솔져들께서도 마찬가지고.”
“안 그래도 형님들, 누님들도 다들 몸조심하고 있어.”
“그래. 늘 건강 조심해. 이쪽 일은 믿고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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