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37회 아벨의 후예 Ch 5. 루디아의 편지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2.24 | 회차평점 ![]() |
(다음 회차에 계속)
“그나저나 지현이 너는 상당히 똑똑한 모양이로구나.”
직접 개인적인 친구가 되어 인생사를 알고 보니 지현은 대단히 훌륭한 엘리트였다. 이름만 들어도 알 저명한 대학 출신인데다 무려 입학부터 졸업까지 수석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인재였다. 실제로 곁에서 대화해보니 말하는 방식에 은연중 드러나는 체계적인 논리력과 폭넓은 견문은 참으로 놀라웠다.
재현 자신도 사고 이전에는 나름 유능한 경영자였지만 사실 지현만한 우등생은 아니었다. 그도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을 표했다. 하지만 워낙 위대한 거물과 함께 자라왔던 지현은 자신의 실력에 대해 일절 자랑이나 자만을 보이지 않았다.
“큰형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성운 회장? 에이, 세상에나. 비교 대상이 한참 잘못되었지.”
은인인지 악연인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애매한 그 인간이 떠오른 재현은 실소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그렇고 눈앞의 유지현이라는 이 어린 청년도 그렇고, 참 여러모로 비슷한 궤적의 가정사를 걸어왔구나 싶었다.
“그 사람, 아니 그분은 문자 그대로 인종이 다르잖아.”
“인종이라뇨?”
의외로 지현은 아직 초인이라는 부류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다.
‘큰형님은 한국 사람인데?’
재현은 세상 물정에 아직 어두운 어린 청년에게 이런 정보를 털어놓아도 괜찮을지 잠시 망설였지만, 어차피 성운의 동생인 이상 알게 될 테니 미리 아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역사 속에 초인들이 등장한 이야기와 그들이 세운 인류사의 축, 그리고 오늘날 초인들이 이룬 사회와 그들이 구축한 세상을 일러주었다. 그제야 지현은 이십 년 이상 큰형을 보면서 느껴온 거대한 이질감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성운 형님의 정체가 무려…….”
“많이 놀랐지?”
“당연하죠. 그나저나 그런 막후의 일들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아무래도 일반인이 접하기에는……, 복잡한 일들이잖아요. 애당초 성운 형님과는 무슨 사연이셨죠? 실례지만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아, 껄끄러운 이야기라면 안 해주셔도 되니까 부담 갖지는 마시고요.”
호기심 어린 지현의 순수한 질문. 재현은 잠시 고심했다. 크로스솔져들의 일화를 언급해야 하려나? 그러려던 차에 망설임이 들었다. 아무래도 친분을 막 형성하려는 단계에서 버거운 사연을 한꺼번에 다루긴 부담스럽겠지. 진실을 말하되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내 동생도 초인이거든.”
틀린 말은 분명 아니었다.
“네 형만큼 대단하진 않지만.”
“우와 정말요?”
지현은 몹시 신기해했다.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인상을 풀풀 풍기는 그였건만 의외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재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그만큼 짧은 시간만에 둘 사이에 신뢰가 쌓였다는 방증. 재현으로서는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응, 참고로 나랑 친하게 지내는 어떤 아저씨한테도 두 명의 아들이 있어. 형 쪽은 초인이고 동생 쪽은 우리처럼 일반인이야. 세상 참 좁지 않아? 어쩌면 이렇게 닮은 꼴이 자주도 나타날까?”
“흔치 않은 일일 텐데, 참 신기하네요.”
기존에 알던 세상과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 지현은 한편으로는 신기함과 더불어 괴리감도 느꼈다. 워낙 감각이 예민했던 지현인지라 어느 정도는 그 괴리를 직감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체를 마주하고 보니 난감했다.
‘이런 걸 알아버린 이상 큰형을 편안히 대하기란 어렵겠지?’
우우웅.
한참 대화를 하던 중, 예배 시작을 알리는 건반 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찬송가와 말씀 묵상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 집중하였다. 이후 예배는 경건한 분위기 가운데서 진행되었다. 하나님을 높이고 인간더러 죄를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가르침이 강단에서 설파되었다. 지구 교회는 지구 그리스도인들의 최후의 배수진인 만큼 오로지 성경,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한 복음주의적 성격의 교회였고 그러한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기초에 충실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연히도 그날은 리온 마흐무드가 목회자로서 처음 단에 올라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던 날이었다. 재현과 지현을 포함하여 그의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두 부유한 젊은이는 자신들과 거의 비슷한 나이의 다소 수수한 모습의 이집트 출신 목사가 당당하게 말씀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에게서는 근원을 설명하기 힘든 권위가 느껴졌는데 그 자신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거룩한 무언가를 힘입은 것 같았다.
“저분……, 나이는 저랑 비슷한데 어째 영적인 연륜이 엄청나네요.”
“그러게. 마치 백전노장 같은 분이시네.”
젊은 목사는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겸손하되 강단 있는 어투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소중한 피를 흘리심으로써 이룩한 위업을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모든 인간이 평생 저지른 모든 죄, 곧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범한 모든 죄들에 대해서 완전한 대가를 치르신 위대한 사역. 설교자는 이 놀라운 소식을 한치의 가감도 없이 선포했다.
“그분은 단지 우리의 자범죄만 담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 속에는 원죄라는 본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필연적으로 죄들을 낳습니다.”
무시무시하지만 정직한 선언들이 이어졌다. 죄악, 죄의 결과, 심판, 지옥,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와 그분의 공의까지. 그러나 동시에 달콤한 희망의 소식들, 이를테면 긍휼과 자비,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도 전달되었다.
“주께서는 그러한 죄에 찌든 본질마저 십자가에서 함께 가져가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죄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내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나의 주인 됨을 나에게가 아닌, 나를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께 양도해야 합니다.”
이어서 리온은 십자가 위의 예수께서 단순히 ‘죄의 용서’만 감당한 것이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준 원천적 능력임을 선언하였다. 한 인생이 죄악이라는 옭아매는 사슬로부터 풀려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하고 거룩한 삶으로 변화하는 과정, 설교자는 그것을 ‘거룩하게 변화하는 것(聖化)’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을 거룩케 하는 능력 또한 인간 자신의 공로나 노력이 아닌 십자가의 보혈에서 비롯됨을 지적하였다.
“우리는 일차원적이고 제한적인 시간축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시간이라는 개념 바깥에 존재하시죠. 그렇기에 그분이 구원을 베푸실 때 그분 관점에서는 죄로 더럽혀진 나의 인생 시간축 전체가 내 존재와 더불어 단번에 정화됩니다. 이미 각 성도의 구원이 확정적으로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죠.”
목사는 일부러 현시대의 과학 수준에 맞춰 용어를 채택하였다.
“하지만 시간축 속에 갇힌 성도 입장에서는 그 구원을 최종 단계까지 온전히 이루기까지는 일평생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 달려가야 할 의무가 부과됩니다. 예컨대 내가 오늘 받은 은혜와 내일 받게 될 은혜는 모두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이뤄진 한 번의 사건을 원천으로 삼고 있는 셈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단번에 은혜를 다 공급해주셨지만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그 은혜를 끝없이 공급받으며 주님의 형상으로 서서히 빚어져야만 합니다.”
아울러 젊은 전도자는 최후의 심판 이후 성도가 입게 될 ‘부활의 승리’ 또한 십자가 사건 때 지불된 대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임을 가르쳤다. 죄와 사망과 흑암의 권세는 주님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이미 영원히 패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성도들은 그저 그 확정된 승리를 굳게 붙들고 아무것도 두려워 말고 좁은 길을 걸으면 된다. 리온은 이 말로 성도들의 마음에 깊은 위로를 전달했다.
한편 재현은 강직하고 영적 순결함이 넘치는 설교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보통 훌륭한 웅변가가 인상 깊은 연설을 남길 때는 말하는 사람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기 마련이건만 이상하게도 리온의 설교는 그와 달랐다. 확실히 그 목사의 설교는 뛰어났다. 대중의 심리를 읽는 능력도 탁월했다. 그러나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설교 내내 리온 마흐무드라는 한 개인의 존재는 드러나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재현의 영혼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사람을 통로로 삼아 말씀하는 배후의 주체였다.
‘저 목사님 본인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판단은 전혀 담겨있지 않아.’
소름 끼치리만큼 순수하게 전능자의 말씀만을 전하는 자. 불순물 한 점도 섞이지 않은 순금을 연상시켰다. 자신의 지정의와 자유의지는 없애지 않되 그 모든 주도권을 신께 양도하기라도 한 것인가? 저렇게까지 자아를 죽이려면 얼마나 많은 연단을 받아야 할까. 재현으로서는 저 순금이 받아온 훈련의 시간을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참된 선지자가 나타난다면 마치 저런 느낌일까?
“심장을 비수처럼 찌르는 가르침이네요.”
지현도 뜻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응, 말씀을 듣기 전과 후의 내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아.”
한 개인이 하나님께 철저히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항복한다면 저렇게까지 강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구나. 두 청년은 심령에서부터 은은히 발생하는 잔잔한 파동과 강렬한 영혼의 맥박을 느꼈다. 기적적인 체험은 아니나 분명 하나님의 역사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표 기도가 이어졌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시간 기도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직 당신께 마음을 열지 않은 사람이 이 중에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 역시도 사랑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을 성령으로 움직여주시길 바랍니다. 그가 주께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 부디 저의 죄 또한 해결해주시겠습니까?’ 이 고백과 함께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짐을 내려놓고 나아가도록 마음을 이끌어주소서.”
그의 정직한 기도는 청중 가운데 있는 모든 이의 참된 회심과 회복을 촉구하고 있었다. 한치도 거짓이나 이기심이 담겨있지 않은 그의 순수한 부탁과 소망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품던 욕심과 아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존전으로 겸손히 나아가는 마음가짐으로 묵묵히 기도에 임했다.
*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윤혁은 그리운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포스트 양자 통신 시대를 넘어선 이때에 한 글자씩 손수 손으로 정성스레 적은 종이 편지라니, 아지자기하기도 하고 귀여운 나머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자신도 함께 아날로그적인 감상에 젖어 드는 기분이었다. 어서 빨리 친구의 소식을 확인해보고픈 마음에 윤혁은 황급히 종이를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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