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39회 아벨의 후예 Ch 6. 레리엔 로즈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2.24 | 회차평점 0 0

 

 

 

 

 

 

Chapter 6. 레리엔 로즈

 

 

 

 

 

 

 

   중립지대 날씨는 연중 거의 균일했다. 위도상으로는 아열대기후에 속하긴 했지만, 지구 전역에 설치된 환경 제어 장치 덕분에 너무 덥지도 너무 차지도 않은 최적의 기후가 유지되었다. 적절하게 개간된 기후는 적절하게 재구성된 토양 및 수질과 만나 주민들의 생계를 지탱하기에 온전한 자연환경을 빚어내었다.

   또한 중립지대는 해안으로부터 10km 거리 이내의 해상, 지상으로부터 10km 고도 이내의 상공까지를 결계로 보호받는 곳이었다. 이 결계는 인류연합 수장과 섬의 여주인 사이에서 맺어진 특수 계약을 기초석으로 했다. 그렇기에 인간이 만든 그 어떤 발명품이나 시스템도 이 작은 땅을 침범하지 못했다. 오로지 여주인의 선택을 받은 자들만이 안팎을 왕래할 수 있었다.

   이렇듯 내부적인 안정성과 외부로부터의 보호가 잘 맞물린 덕에 중립지대는 세상의 풍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불변성을 자랑하게 되었다.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 유일하게 고전적 면모를 간직한 곳. 아이러니하게도 인위적인 간섭이 교차하여 빚어진 이 섬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적인 모습이 되었다.

   윤혁은 루디아의 편지를 받자마자 그 섬을 방문할 채비를 하였다. 사흘 동안 몇 가지 준비를 마친 후 그는 자가용을 타고 섬을 직접 향했다. 드라이브하는 내내 그 아름다운 땅을 다시 볼 생각에 기대감이 벅차올랐다.

   참고로 그 차량은 올해 4월, 형이 생일 선물로 장만해준 것이었다. 별 말 같지도 않은 엄청난 것들을 선뜻 준다기에 화들짝 놀라 여러 차례 만류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했다. 죄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실망한 형의 눈이 시무룩하게 축 처지는 모습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최대한 값싼 것을 부탁했었지. 그래서 선택된 결과물이 바로 이 차량. 겉보기에는 일반차량 같았다. 내부에는 무슨 기능이 탑재되어있을지 예상이 안 되긴 했지만.

   ‘에이, 설마 소형화나 거대화, 광역 관측, 은하 도약 같은 게 달리진 않았겠지.’

   참고로 이는 아직도 형의 배포와 경제 관념에 대해서 온전히 깨닫지 못한 동생의 어리숙한 추측이었다.

   여하튼 윤혁의 차량은 아무런 방해 없이 섬의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여주인에게 받은 인증 코드가 정말 효력이 있는 것인지 추가 절차도 없이 순탄했다. 다만 차량 자체는 결계의 영향을 받았기에 주차하자마자 차량 기능 대부분이 자동으로 봉인되었다. 아마도 결계 자체에 현대문물을 배격하는 성질이 내포된 듯했다. 전에도 경험해보긴 했으나 여전히 원리는 이해가 안 됐다. 다만 이렇게까지 경계가 극심한 이유는 알 것 같았다.

   ‘하긴 작은 기계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지배를 받을 테니까.’ 

   해변에 내린 윤혁은 직접 발로 걸어서 루디아의 마을까지 찾아갔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후로 벌써 5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지구와 우주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급변했건만 유대인들의 마을만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주민들이 원체 탐욕 없이 자족하는 삶을 살다 보니 굳이 억지로 발전할 이유가 없기도 했을 것이다. 그간 메시아닉 유대인이 겪은 변화는 단 한 가지, 섬이라는 좁은 공간적 틀이 주는 좁은 마음의 틀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선교 민족으로 거듭날 발돋움을 이룩했다는 점뿐이었다.

   마을에 도착해보니 예전에 보았던 것보다 활기가 넘쳐흐르는 듯했다. 딱히 현실적 여건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을 텐데도 온통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삭막하고 각박한 문명계의 도시를 거닐다가 정겨운 마을에 발을 디디니 절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윤혁은 마을 곳곳을 천천히 구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루디아네 공동체 식구들이 거하는 가옥 앞에 당도하자 윤혁은 잠시 심호흡으로 숨을 고르고는 크게 노크를 하였다.

   “어머, 안녕하세요.”

   “루디 언니의 친구분이시죠.”

   귀여운 지나와 웬디가 공용어로 낭창하게 인사하였다. 아이들은 벌써 다섯 살이나 더 먹어서 그런지 처음 봤을 때에 비해 많이 성숙한 상태였다. 두 소녀는 어느덧 숙녀티가 풀풀 났다.

   “안녕.”

   윤혁도 멋쩍게 웃으며 인사했다.

   “형, 잘 지내셨어요?”

   루디아네 식구 어린이들 중 최고 연장자인 코흐가 튀어나와 윤혁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열세 살이 된 그에게서 소년 특유의 풋풋함과 파릇함이 돋보였다. 이방인 청년은 왠지 그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기억해줘서 고마워.”

   “잊을 리가요. 형은 용감한 영웅이잖아요.”

   “이런, 내가 무슨.”

   “루디 누나의 일기장에 형 이야기가 엄청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건 좀 의외였다. 루디아가 일기장을 썼다고?

   “일기?”

   “네, 지난 3년간 누나도 형이랑 여행을 다녀왔잖아요. 그때 있었던 놀라운 일들을 우리나라 사람들도 같이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장문의 수필로 정리하는 중이에요. 누나가 여행 중 매일 기록해둔 것을 모아서 수작업으로 옮긴 뒤 지금 몇 권의 책으로 다시 편집하고 있어요.”

   “우와!”

   순간 지난 여행 때 겪었던 온갖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 윤혁은 몹시 쑥스러워졌다. 그것들을 다 일지로 남겼다니. 궁금하면서도 왠지 자기 이야기가 나올까 봐 부끄러워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원래 아무리 선한 이야기라도 자신이 주체가 되면 부끄럽기 마련 아니겠는가.

   “저도 그 책 읽었어요.”

   꼬마 실베스토도 방에서 나와 한 수 거들었다. 그는 신난 목소리로 윤혁과 동료들의 일화가 일기장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떠들어대었다. 낯이 화끈 달아오른 윤혁은 황급히 웃으며 아이들의 주의집중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래도 아이들이 정말 잘 컸네.’

   불행한 과거를 안고 있는 이들이 나름 건강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보호 덕일 테고 이차적으로 같은 처지의 이웃들이 긍휼의 마음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도운 덕택이겠지.

   ‘아, 그리고 여주인이라는 사람의 공로도 간과할 수 없겠네.’

   직접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품성이 좋은 사람인 동시에 운도 좋은 사람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약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반사적 축복’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입을 것이 분명할 테니까.(창 12:3)

   ‘유대인들이 요새 선교에 집중할 수 있게 된데도 그녀의 후원이 한몫했겠지.’

   루디아의 예만 봐도 분명했다. 그녀가 바깥을 마음껏 거닐 수 있었던 건 여주인의 지원과 허락 덕택이었다. 아마 이제는 그 혜택이 더 보편적으로 확장되어 유대인 전체에게 흘러들었을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마침 그날은 공동체 소속의 어른 세 명이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40대에서 50대 사이로 보이는 성인들이었는데 제각각 외관과 이미지가 달랐다. 느무엘은 말수가 적고 침착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낯선 손님의 등장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아비하일은 싹싹한 웃음이 매력적인 삼촌뻘 남자였는데 윤혁을 보자마자 호감을 표현하며 다가왔다. 윤혁은 대형견같은 이 남자와 금세 허울 없이 친해졌다. 반면 아므람은 조금 날카로운 듯한 이미지였다. 대놓고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이방인을 경계하는 기색이 강했다. 처음에는 윤혁도 그를 대하기가 어려웠다.

   “루디아는 근 며칠간 섬 중앙에서 지내고 있어요. 일단 오늘은 이곳에서 묵으시고요. 내일쯤 강윤혁 씨도 그곳으로 올라가 보실래요?”

   아비하일은 루디아의 근황을 전해주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윤혁은 기쁘게 대답했다.

   때마침 세 장정은 일하러 야외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윤혁은 그들의 수고도 덜어주고 나름 점수도 딸 겸 기꺼이 궂은 일에 동참하였다. 아므람은 그가 약간 못 미더운지 굳이 안 도와줘도 된다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바깥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육체노동을 안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도 소문은 들어서인지 현대 문물의 편리성은 알고 있었다.

   “보아하니 편하게 자라오신 것 같은데 애써 손에 흙 묻힐 필요 없습니다.”

   “야, 도와주신다고 하는데 왜 날을 세우냐.”

   아비하일이 난처해하며 아므람을 나무랐다.

   “저기, 걱정하실 것 없어요.”

   윤혁은 조금도 상처받은 기색 없이 온화히 웃으며 답했다.

   “수고하시는 선생님들께 비하자니 부끄럽지만 나름 집에서 부모님 도와서 식당 일도 자주 해왔거든요. 물론 진짜 야외 노동에 비할 바는 안 되겠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세 장정은 윤혁의 건실한 답변에 다소 놀랐다. 그들은 물질문명의 편리함 속에 철저히 물든 바깥세상 사람들은 육체노동의 가치는 멸시한 채 정신노동만 중시할 것으로 생각해왔다. 몸을 가꿔서 뽐낼 목적의 운동을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하지 않는 자들이 현대의 이방인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분명 그렇게 알았거늘, 눈앞의 청년은 그 기대를 깨트렸다.

   실전에 던져지자 과연 윤혁은 가르쳐주는 일마다 금세 익혔다. 유대인 남성들은 밭과 정원과 숲을 번갈아 가면서 여러 궂은일을 시켰으나 윤혁은 불평이나 투덜거림 한마디 없이 거뜬히 해내었다. 나중에는 아저씨들보다도 더 수월하게 일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힘도 튼튼한데다 체격도 좋았고 두뇌도 나름 민첩했기에 머슴으로서 자격 적격이었다.

   “더 하실 일은 없으세요?”

   시골에 어울리는 소박한 옷차림으로 땀을 닦으며 맑게 웃는 청년을 보고 아저씨들은 혀를 둘렀다. 저 이방인, 보통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구나. 요새 세상에서 보기 드문 훌륭한 사나이였다.

   “대단한걸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비하일과 아므람이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였다. 둘 다 노동을 시작하기 전보다 윤혁에 대한 시선이 고와진 것이 확연했다. 그들은 아무리 시험해보려는 의도였으나 손님에게 일을 시킨 것이 괜히 미안했는지 어서 돌아가서 씻고 편히 쉬자고 제안했다. 

   ‘몸 쓰는 일도 재밌네.’

   매일 머리에 쥐 나도록 공부하다가 편히 몸 쓰는 일을 해보니 오히려 윤혁으로서는 엔도르핀이 돌면서 기분전환이 되는 느낌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초인 몇 명만 상대해보면 두뇌 활동이 얼마나 피곤하고 버거운 일인지 체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수고에 비하면 노동은 축복이었다.

   “앉아서 기다리세요. 저녁 준비해드릴게요.”

   조용히 있던 느무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윤혁과 네 아이를 테이블에 앉히고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심심해진 윤혁은 조심히 부엌에 들어갔다. 느무엘은 세 아저씨 중에서 음식 솜씨가 제일 좋은 듯했다. 느무엘이 열심히 조리하는 동안 아비하일과 아므람은 허드렛일을 돕고 있었다. 식당에서 이런 일을 자주 해보았던 윤혁은 부엌 노동 참여를 위한 허락을 구했다.

   “지쳤을 텐데 그냥 쉬시지.”

   “원래 기운이 좀 남아돌아서요.”

   덕분에 이스라엘식 요리를 처음으로 배워보게 된 윤혁. 그는 속으로 찬양을 흥얼거리면서 기쁜 마음으로 이스라엘식 부엌 문화에 참여했다. 인간은 가정 살림을 통해서 인생의 진가를 배운다고 했던가. 그 말은 옳았다. 어느새 윤혁의 뜨거운 심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던 낯선 문화권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438회 아벨의 후예 Ch 5. 루디아의 편지 (3)
등록일 2025-02-21 | 조회수 32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440회 아벨의 후예 Ch 6. 레리엔 로즈 (2)
등록일 2025-02-26 | 조회수 37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