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41회 아벨의 후예 Ch 6. 레리엔 로즈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2.28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들은 어떤 낯선 길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진이 윤혁을 데려왔을 때와는 다른 길이었다. 아마도 섬 주민들이 주인을 만나러 갈 때 사용하는 전용 도로 같았다.

어느 낯선 수풀 앞에 이르러서야 일행은 멈춰 섰다.

   “저기에 보이는 수풀로 만들어진 문을 넘어서면 결계 안쪽입니다. 좌로도 우로도 틀어지지 말고 직진하여 그대로 들어가세요. 미리 받아둔 통행권이 있다니까 그 부분은 따로 걱정 안 해줘도 되겠죠?”

   아비하일이 결계를 통과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윤혁은 감사 인사와 함께 세 사내를 배웅하였다. 이윽고 셋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윤혁은 비밀스러운 분위기의 문 앞에서 잠시 멈춰서 고민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관목을 깎아 만든 정원 조형물 같았으나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들어가도 될까?’

   섬의 중앙부를 밟는 건 처음인지라 긴장이 되었다. 이 문을 넘는 순간 미지의 세계에 잠기가 되리라는 불확실한 위화감도 들었다. 심호흡과 함께 감정을 갈무리한 그는 차가운 호수에 입수하는 심정으로 조심히 발을 디뎠다.

   ‘편안하면서도 부담되는군.’

   포탈도, 워프도, 게이트도 이미 여러 차례 이상 사용해보았지만, 그런 첨단 기술에 의한 이동법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무게감이 전달되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는 신중히 결계 안쪽으로 몸을 내던졌다. 다행히 아무런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조심스럽게 눈을 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았다.

   “우와!”

   저절로 감탄음이 흘러나왔다. 결계 안쪽에는 바깥과는 완전히 다른 배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찌 표현해야 좋을까. 그곳은 현대적 기술로 만들어낸 각종 화려한 구조물들과는 재질이 달랐다. 순수하게 자연적 요소로만 만들어진 정원, 그것도 대단히 조화롭고 아름답게 조성된 곳이었다.

   은은하게 부서지는 햇빛이 숲에 스며들어 빛의 알갱이가 되어 초록 속에 녹아다는 광경은 경이로움을 자아내었다. 타임필드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처럼 실제 물리적 시간이 늘여지거나 압축되는 감각은 없었지만, 그와는 다른 의미로 시간에서 벗어난 듯한 박제 공간이었다. 시간이 필연적으로 가져다주는 노화와 부패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움을 얻은 듯한 정원이었다. 흡사 에덴동산을 재현한 것 같았다.

   “굉장해!”

   그는 넋두리를 놓은 채 드넓은 정원 방방곡곡을 둘러보았다. 꽃들과 나무가 우거져있었는데 나무들은 저마다 독특한 색조로 반사광을 흩뿌렸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이 열매가 되어 매달린 것 같다는 착각도 들었다.

   별빛이 이슬이 되어 섞여든 물이 맑은 시냇물이 되어 정원 곳곳을 적시는 중이었다. 황금색 꽃잎은 태양이 된 양 선명한 빛을 발하였다. 녹빛 이파리들에는 물의 수정들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다각도로 빛을 반사하는 지라 흡사 금도금을 한 것 같았다.

   또한 보기에도 탐스러운 열매들이 곳곳에 균형 있게 맺혀있었다. 사과처럼 온대 지방에서 자라나는 것부터 열대 과일까지 함께 자라는 중이었다. 생태학적으로 도무지 같은 장소에서 재배할 수 없는 품목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있었다. 마치 마술이라도 걸린 것처럼.

   ‘말도 안 돼.’

   시뮬레이션 우주, 인조 초능력, 인공 다중우주, 조율 프로그램, 은하 간 도약 같은 문명의 첨단 산물들을 목도했을 때의 충격과는 다른 느낌의 감상이 들었다. 이 정원에는 인위적인 손길의 흔적이 부재했다.

   루디아는 이런 경치를 어린 시절부터 보며 누려왔던 것일까. 그녀는 바깥 세상의 첨단 문명 앞에 경악했었지만, 오히려 윤혁에겐 태곳적 자연의 모습이 살아있는 이곳이 더 경악스러웠다.

   그리고 감탄에 젖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 순간.

   “강윤혁 군, 어서 오세요. 관리자로서 환영 인사를 전합니다.”

   갑자기 윤혁의 뇌리로 텔레파시가 전송되었다. 급작스러운 음성에 윤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그는 깨달았다. 섬의 여주인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권역 전체가 그녀의 지배권 아래 있음을 깨달았다. 정원 전체는 물론이고 이슬과 풀처럼 작은 것들마저도.

   ‘여주인이라는 표현이……, 관용어가 아니었군.’

   형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매개로 기계 문명을 뿌리부터 열매까지 완벽히 지배하고 있듯, 이 여인은 비록 좁은 이곳 한정이지만 자연환경을 구석구석 다스리고 있었다. 그것도 형과 같은 강제적인 지배 방식이 아니다. 그녀는 자연물들로부터 온전한 친밀감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 영역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저기……, 죄송하지만, 당신은 이 중립지대의 여주인이신가요?”

   이에 화답하여 여인의 부드럽고 정숙한 목소리가 메아리쳐 귓가에 착륙했다.

   “그렇답니다. 제가 당신을 이곳에 초대했습니다.”

   “초대는 감사드립니다만……, 제가 당신을 어떻게 찾아뵈면 될까요?”

   아무리 면밀히 둘러봐도 주변에는 사람 살만한 건물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자연물들도 아름답긴 해도 워낙 미로처럼 조성된 탓에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러다가 정원 미로에서 미아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기우가 들었다.

   “그녀가 당신을 찾으러 갈 겁니다. 그녀의 인도를 따라서 오세요.”

   “그녀라면…….”

   “용감한 선교사 청년이여, 당신의 소중한 친구가 여기 머무르고 있답니다.”

   정황상 루디아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룻은 건강히 잘 지내고 있나요?”

   “물론이에요. 직접 보는 편이 낫겠죠?”

   저번에 성녀와 대화했을 때도 텔레파시를 이용했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달리 위화감이나 불길한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을 무너뜨리려는 적의나 교활한 꿍꿍이가 그 속에 전혀 녹아있지 않았다. 음서도 청량하고 투명하며 정직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어투에 분명한 강단이 느껴졌다. 온화한 외면에 강인한 내면이 조화롭게 버무려진 느낌이었다. 첫인상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언어인가요? 처음 듣는 언어인데 저절로 이해되네요?”

   여인이 내보낸 낯선 언어는 요정어처럼 유려한 음률로 구성되어있었다.

   “이건 2세대들이 만든 언어들을 조합한 뒤 제가 직접 개량한 언어랍니다. 처음 듣는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제 텔레파시의 특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전송 시 별도의 번역 알고리즘 없이도 누구나 이해하도록 조성해두었답니다.”

   그런 것도 가능하다니. 저런 것도 특수 재능에 속하는 걸까? 초인이라는 존재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 깊어졌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넋 놓고 있던 윤혁에게 달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윤혁아!”

   루디아의 목소리가 발원한 쪽으로 윤혁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룻?”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그녀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에 비해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다. 반곱슬의 머리는 좀 더 길러진 상태였다. 단출하면서도 깔끔하고 예쁜 옷을 입고 있었다. 정원과 하나가 된 것마냥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만의 개성과 풋풋한 매력이 발산되는 듯했다. 같이 여행을 다닐 동안 줄곧 느껴왔던 친밀감과는 또다른 느낌의 감정이 내면에서 작게 회오리쳤다.

   “아……, 그래, 나, 나도.”

   “어머,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어색해해? 꼭 수줍음 타는 것처럼.”

   ‘내가 어색해한다고? 수줍음이라고?’

   기분이 조금 낯설었다. 머쓱한 기분에 윤혁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토록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왔는데 막상 눈앞에서 갑자기 친구와 재회하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둔 바를 잊어버렸다.

   “잘 지냈지? 내가 보낸 편지는 받았고?”

   “응, 소식 잘 들었어. 오던 길에 식구들도 만나 뵈었어.”

   “다들 너 좋아하지?”

   “좋으신 분들 같더라.”

   “사실 우리들 사이에서 너는 꽤 유명해. 이방인과 우리의 징검다리, 그리고 우주 시민들에게 진리의 불꽃을 던져준 용감한 사나이……. 너를 롤모델로 생각하는 어린이들도 많아.”

   “로, 롤모델은 무슨!”

   괜한 추켜세움에 윤혁은 낯이 화끈거렸다. 과분한 칭호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과한 관심과 칭찬은 사양이다. 물론 유대인들에게 긍정적인 자극과 도전을 주었다면 그 점은 다행이지만. 루디아는 부끄러워하는 윤혁의 모습이 귀여운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가끔씩 섬 밖으로 외출도 해줘. 그래야 친구들이랑 만나지.”

   윤혁은 루디아를 자주 만나지 못한 게 아쉬웠는지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동안은 잠시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졌어. 자주 못 찾아가줘서 미안해.”

   사실 루디아는 섬 밖 세상에서 벌어지는 변화가 조금은 무서웠다. 이제 지구 시민들은 언제라도 지구 밖으로 축출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예외이리라 기대하긴 어려웠기에 긴장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전 약소국으로 전락한 처지이다. 인류의 지배자가 입김만 불면 당장 흩어질 만큼 연약하다. 어쩌면 유대인들로서는 차라리 이 섬에 머무는 편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윤혁은 루디아가 겪어온 인고의 시간, 난민 시절의 고통을 잘 알았기에 그녀가 불안해하는 바를 잘 이해했다.

   “바보 같지?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불안해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실 나 같았어도 비슷했을 거야.”

   윤혁은 그녀가 내일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잠시 잊도록 격려해주었다. 둘은 한 시간 동안 대화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동화같이 아름다운 정원 한가운데를 거닐면서 자유로이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낭만적인 기분에 흠뻑 젖는 듯했다.

   “시간이 되면 나랑 함께 나가서 바깥을 둘러보자. 요새 리온은 열심히 말씀 전하는 중이야. 스테판도 건강해. 최근 우리 집 근처에서 숙박하고 있더라. 언젠가는 한 번 다 같이 얼굴도 봐야지.”

   “정말? 어머, 너무 잘됐다.”

   옛 동료들의 무사희소식에 그녀는 뛸 듯이 반가워했다. 그녀가 행복해하자 윤혁의 입가에도 편안감의 미소가 걸렸다. 둘은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며 각자의 불안감과 고민을 우정을 통해 떨쳐내었다.

 

 

 

 

 

 

 

 

 

*

 

 

 

 

   바야흐로 윤혁과 루디아는 거대한 정원의 가장 깊은 심장부에 해당하는 좌표에 다다랐다. 그곳의 울타리가 여주인이 머무르는 영역을 감싸고 있었다. 오로라처럼 생긴 반투명한 장벽이 공간을 보호하는 중이었다. 실드나 배리어나 결계와는 전혀 다른 패턴이었다. 정원이 그러하듯 결계도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서 들어가자.”

   “으, 응.”

   밝은 미소와 함께 루디아는 긴장으로 뻣뻣해진 윤혁을 풀어주었다.

   “저기……, 여주인, 그러니까 아가씨는 어떤 분이셔?”

   “음, 우리 아가씨?”

   그 질문에 루디아의 눈에 감탄과 자랑스러움의 이채가 어렸다.

   “지혜롭고 아름답고 신중하고, 성정도 곧고 부드러운 분이셔.”

   “소문대로 대단하신 분인가 보네.”

   “응, 물론이지.”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루디아와 그녀는 몹시 각별한 사이인 듯했다.

   “내가 전에 열두 살 무렵 안 좋은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해줬지?”

   “으응.”

   다시 거론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일화. 그때 루디아와 동행하던 공동체 식구들이 대거 몰살당했다고 했었다.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루디아의 눈은 항상 회한과 슬픔으로 젖어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슬퍼 보이는지 윤혁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상처를 자기 마음에 큰 짐으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루디아도 희망과 기쁨의 기억을 회상하였다.

   “그 사건으로부터 몇 달 후, 아가씨께서 자기 영토인 이 섬에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초대하셨어. 당시로서는 영문을 몰랐지.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푸셨을까. 물론 아가씨의 아버지분이 옛날에 이스라엘 국민이시긴 했지만, 그 이유만으로 선뜻 은혜를 베풀기란 쉽지 않잖아?”

   “분명 그건 그렇지.”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가족으로 대해주셨어. 물론 세입자인 우리는 부담을 느꼈지만, 아가씨는 우리 민족 모두에게 자신의 자원과 정성을 헌신해서 풍부한 물자를 제공해주셨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도록.”

   “훌륭한 분이시네.”

   “그뿐 아니라 이번에 지구 선교에 자원한 동포들을 위해 경제 활동을 위한 임시권도 주셨어. 이제 메시아닉 유대인 모두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녀에게 큰 마음의 빚을 지고 있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잊지 않고 그녀가 받을 축복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중이지.”

   “그렇게까지 각별한 줄은 몰랐네.”

   단순한 은인 그 이상의 존재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그분은 너하고는 어떻게 친해지신 거야?”

   “열네 살 무렵에 아가씨네 아버지랑 만났거든. 성격 좋고 친절한 분이라서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어. 자연히 그분을 통해 아가씨와도 알게 되었고. 그 후 같이 지내며 친해졌지. 따지고 보면 위치상 나는 아가씨의 메이드나 마찬가지인데 권위 의식 전혀 없이 나를 여동생처럼 여겨주셨지.”

   루디아는 울타리 한가운데의 정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찬란하고 신비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부신 나머지 윤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드디어 오랫동안 떡밥만 무성했던 그녀가 등장하는군요
이전회

440회 아벨의 후예 Ch 6. 레리엔 로즈 (2)
등록일 2025-02-26 | 조회수 37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442회 아벨의 후예 Ch 6. 레리엔 로즈 (4)
등록일 2025-03-03 | 조회수 24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