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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42회 아벨의 후예 Ch 6. 레리엔 로즈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3.0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잠시 후 빛에 적응되자 살아있는 나무 위에 세워진 수정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와.”

   소설책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요정 여왕의 성이 마치 현실 속에 완벽하게 재현된 듯했다. 오색찬란한 꽃들이 제각기 다른 빛깔을 머금고 밝은 섬광을 내비치고 있었다. 깨끗한 동물들이 샘물을 마시며 뛰노는 장면도 보였다. 그야말로 낙원을 형상화한 듯했다. 상공 쪽을 둘러싼 결계가 빛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인지 찬란한 해와 달과 별이 동시에 보였다.

   “이런 건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호호, 턱 떨어질라.”

   입을 떡 벌린 채 다무는 것마저 잊어버린 윤혁을 보면서 루디아가 까르르 웃었다. 하지만 윤혁으로서는 이 장엄한 경관의 압도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이 건설해낸 우주적이고 거대하고 복잡하고 강하고 화려한 것들로부터도 이런 종류의 감상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그때.

   “루디, 어서오렴.”

   “어머, 아가씨.”

   “친구와 같이 찾아왔구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음원을 찾자니 사방에서 균일하게 목소리의 울림이 전해지는 통에 위치를 찾기 어려웠다. 허둥대는 윤혁과 달리 루디아는 여러번 겪어본 일이었는지 매우 느긋하고 태연하게 반응했다.

   “윤혁이가 아가씨를 꼭 만나 뵙고 싶대요.”

   “그렇구나?”

   그러자 갑자기 한쪽 방향에서 빛이 솟구쳤다.

   ‘설마 이 공간 안에서는 빛과 소리마저 제어할 수 있는 건가?’

   윤혁도 왜 조금 전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는지 이해하였다.

   “반가워요, 강윤혁 군.”

   빛이 드러난 방향 쪽으로 윤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

 

 

 

 

   그것은 아름다운 정원과는 또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단언컨대 윤혁은 태어난 이래로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여인을 본 기억이 없었다. 가장 순수한 은을 곱게 녹여서 맑은 정금 속에 흩뿌린 듯한, 은빛을 머금은 금발이 화사하게 빛을 발하였다. 백옥처럼 깨끗한 피부는 달빛을 연상시켰다. 연녹색이 희미하게 섞인 밝은 하늘색 눈동자는 마치 에메랄드를 도금한 사파이어 같았다.

   이목구비와 체형도 눈부실 만큼 조화롭고 조각상처럼 아름다웠지만, 거기 깃든 아우라와 풍미, 그리고 그것과 아우러진 지성미와 단아함이 더욱 눈에 띄었다. 그야말로 금상첨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이었다.

   “저, 저는 강윤혁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내 이름은 레리엔 로즈. 편하게 레리라고 불러요.”

   너무 고귀해 보이는 분위기 덕에 감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실례지만, 저에 대해서 잘 아시는지요?”

   “워낙 루디가 남자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서요.”

   “아가씨! 남자친구는 아니에요!”

   루디아가 화들짝 얼굴을 붉히면 레리엔을 만류했다.

   “이런, 다들 친구에서 시작하는 법이란다.”

   덩달아 윤혁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이전에 레리엔이라는 여인에게는 사람을 사로잡는 강한 매력이 있었다. 티아라도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성녀의 매혹이 사람을 유혹하고 넘어뜨리는 성질의 것이라면, 지금 눈앞의 레이디는 청량하고 깨끗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눈빛에서부터 시대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결연함과 고고한 품격이 느껴졌다. 첫 인상에서부터 그녀의 고귀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나저나 당신의 외양……, 그를 닮았네요, 강윤혁군.”

   굳이 주어를 말하지 않아도 누구를 뜻하는지는 자명했다.

   “형과 잘 아시나 보네요.”

   “알다마다요. 한때는 소꿉친구였으니까요.”

   “티아라 로페즈, 그녀도 함께요?”

   “네, 저 역시 그녀와 막역한 사이였죠. 견해의 차이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말로 미루어보건대 소위 카테고리 분류 불가로 여겨지는 그 다섯 초인은 과거에 모두 친구 사이였던 것 같았다. 현재는 여러 복잡한 이유로 인해 이미 다들 절교한 상태인 듯하지만. 아무래도 권력 다툼이라는 현실이 존재하는 한 친구 사이가 유지되긴 어렵겠지. 좋지 않은 사건도 연루되어 있었고.

   “당신의 선교 여행 이야기는 들었어요. 놀라운 일을 해내셨더군요.”

   “아닙니다. 그저 주님의 은총이었을 뿐이었어요.”

   “겸손하시네요. 그런 면도 마음에 들어요.”

   레리엔은 자애로운 어조로 윤혁을 칭찬하였다. 개방적이고 부드러운 태도로 보건대 그녀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최소 호의적인 수준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을 보면 적어도 성경의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적이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 맞답니다. 소식을 듣고 저도 통쾌했거든요.”

   “통쾌하다니요?”

   “그 잘난 녀석이 이복동생에게 호되게 당한 셈이니까요.”

   “아아.”

   자세한 사정까지야 알 길 없으나 어쩐지 지금의 레리엔은 카이젤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과하게 넘겨 짚은 건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윤혁은 재빨리 슬쩍 화제를 돌렸다.

   “이곳은 정말 신비한 곳이네요. 어떻게 만드신 거죠?”

   윤혁은 레리엔에게 정원에 관하여 질문했다.

   “흠, 설명하려면 복잡하답니다.”

   “하기야 제 수준에서 이해될 기술은 아니겠네요.”

   아쉬운 마음에 호기심을 삼키던 중 기시감이 스쳤다.

   ‘형이랑 말습관이 약간 비슷하시네.’

   단순히 넘기기에는 묘하게 공통분모가 느껴졌다.

   “원리의 설명이야 어렵겠지만, 간략하게나마 이야기는 들려드릴게요.”

   레리엔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상대를 달랬다. 온화하게 웃는 그녀의 외양과 품격은 심히 아름다웠다. 인간이라기보다는 별의 여왕이 지상에 강림하여 사람 형상으로 화한 것 같았다. 루디아에게 들었던 휘황찬란한 묘사도 레리엔의 실제 미모를 절반의 절반만큼도 담지 못했다.

   “사실 이곳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지구의 환경제어 기술을 빌렸답니다.”

   “환경제어 기술요?”

   “네, 제아무리 중립지대라고 해도 지구로부터 분리된 땅은 아니예요. 어떤 높으신 분께서 지구를 인공구조물로 개조하신 덕에 지표면의 모든 자연 환경은 인공 테라포밍 시스템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죠. 지구에 박혀있는 이상 하와이도 예외는 아니예요.”

   불명확했던 부분이 이제야 조금은 뚜렷해지는 듯했다.

   “저는 역으로 그 예속을 기회로 삼아 제로원의 기본 테라포밍 포맷을 이곳 한정으로 뒤틀어 역이용하였고 그 결실로 지금의 나의 권역을 재구축했답니다.”

   “하긴, 외딴 행성마저 지구와 버금가는 환경으로 바꿀 수준의 테라포밍 기술력이면 자연계의 재정립은 간단하겠군요. 하지만…….”

   이것만으로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녀 말대로 하와이가 제로원의 영향력 아래 있다면 대체 무슨 방도로 카이젤과 인류연합의 기술력은 작은 이 섬이 도용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다시금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거기 더해 계약의 힘도 빌렸답니다.”

   “계약이라고요?”

   “낯선가요? 이미 당신도 소유하고 있지 않던가요?”

   레리엔은 윤혁의 심장부를 살며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잠시 문맥을 이해하려고 고민하던 윤혁은 문득 한 기억을 떠올리고 아하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가 전에 사용했던 반지를 의미하는 모양이다. 수많은 도움과 함께 골칫거리도 함께 주었던 그 반지. 최근에 진이 ‘커버넌트’라는 핵심 기술을 언급했었던가.

   ‘그게 계약하고 관련된 거였나?’

   그 전에 다른 궁금증도 먼저 스쳤다.

   “그런데 레리엔님은 어떻게 그 반지를 알고 계시나요?”

   “몇 년 전에 초인들로부터 그 반지에 관해서 소문을 들었죠.”

   “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아이도 2년 전 시점에 딱 한 번 흘리듯 언질을 주었었죠. 사실상 제가 유도신문으로 탈취해낸 정보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그게 계약과 관련된 물건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아셨는지요? 솔직히 진이나 다른 철인왕도 반지가 대단한 기술을 내포했다는 사실만 알았지 핵심 기전까지는 몰랐어요. 진도 최근에야 연구를 통해 겨우 알아냈고 그나마도 겉핥기 식으로 알던 것으로 보였어요.”

   레리엔은 그러면 반지의 존재를 듣자마자 그 정체를 깨달았단 말인가.

   “이유는 간단해요. 왜냐하면 카이와 나도, 당신과 카이 사이에서 맺었던 것과 같은 기전으로 작동하는 계약을 상호간에 체결하여 증표를 만들어두었으니까요.”

   그녀는 목에 걸려있는 보석 목걸이를 가리켰다.

   “그러면 그 물건도……, 커버넌트라는 기술의 산물입니까?”

   만일 레리엔도 예전에 커버넌트라는 기술로 구축된 무언가를 카이젤에게서 받았다고 가정한다면 대강 앞뒤는 들어맞는다. 인류연합 간부들조차 모를 미지의 지식일지라도 직접적인 수혜자 본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맞아요. 카이가 가장 아끼는, 그의 비장의 테크놀로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비전(祕傳)이죠. 일종의 계약 마법과 유사해요.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긴 하지만, 사실상 전 인류를 통틀어 카이만 이해하기에 우리에겐 마법이나 마찬가지죠.”

   커버넌트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무형의 ‘계약의 힘’, 이 힘은 일반적인 사회계약과 달리 엄연히 실존하는 실체이다. 일견 생명에 유착된 자본 시스템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강도로 사람의 참된 본체에 유착할 수 있는 힘이다. 그렇기에 제작자인 카이젤조차도 커버넌트를 생성하는 순간 그 계약을 어기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제약 조건이 있다면, 형은 왜 그런 불리한 멍에를 스스로 메죠?”

   “왜냐하면 그만한 반사 유익이 있으니까요. 커버넌트를 구성하는 ‘계약력’은 그 자체로만 머물지 않고 가공을 통한 진화가 가능합니다. 일반적인 과학 기술이나 초능력으로는 도무지 구현이 불가능한 힘을 그 속에 새겨넣을 수 있어요.”

   주축이 되는 줄기는 단순한 계약의 힘이나 그 줄기를 성장시킬 때 분화되어 나오는 이차적인 파생물들은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고, 외부 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그 형태와 다양성과 효율의 폭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각종 부수익의 효력이 더욱 큰 셈.

   참고로 칼리드가 반지를 탈취했을 때 사용했던 ‘염원과 법칙을 교환하는 힘’도 그 대표적인 부수익의 예였다. 재혁의 것도 아닌, 윤혁의 반지만 해도 그런 강력한 기술력이 무려 일곱 개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 위험한 힘이 담긴 폭탄을 멋모르고 쥐고 있었다는 생각에 윤혁은 오싹했다. 포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 반지는 이미 진에게 양도했습니다.”

   “흐음, 제자 녀석에게……, 그렇군요. 차라리 잘 생각하셨어요. 분수에 걸맞지 않게 위험한 힘을 다루다가는 도리어 위험해지는 법이니까요.”

   정작 그렇게 말하는 레리엔의 얼굴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스쳐갔다.

   “그러면 어쨌건 이 정원이 놀라우리만큼 경탄스러운 아름다움을 소유한 이유 또한 레리엔님의 목걸이, 그러니까 형과 맺은 커버넌트의 산물과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네, 정확하게 이해하셨어요.”

   “계약의 부산물이 환경 가공력이라면, 계약 내용 자체는 무엇이었는지요?”

   “중립국로서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었어요. 제가 인류연합에 어떤 간섭이나 방해도 벌이지 않고 카이의 부하가 될 초인들을 교육시켜주는 대신, 제 고향인 이 섬만큼은 카이의 입김도 그 어떤 식으로도 닿지 않도록 계약했죠.”

   이제야 비로소 레리엔이 중립지대의 여주인으로서 확고하게 권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커버넌트라는 그 미지의 힘의 잠재력도 놀랍다고 생각되었지만, 그것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레리엔도 놀라웠다. 무려 그 카이젤이 계약을 맺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면 그녀 자체의 위상도 상당하다는 방증이겠지.

   더욱이 그 같은 막강한 권력자 아래로 들어가기를 거절하고 기어코 독립을 쟁취하다니. 그것도 많은 유익과 기회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생각보다 훨씬 더 당차고 용감한 여인이구나 싶은 감상이 들었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분이네.’

   “자, 그나저나 귀한 손님을 너무 오래 문턱에 세워뒀군요.”

   여주인은 감상에 젖은 두 일행을 일깨우며 초대의 손짓을 하였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따스한 차라도 대접해드리죠.”

   그녀는 윤혁과 루디아 두 사람을 수정 건물의 내부로 맞이하였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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